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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15: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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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교자 자매 |
참고 : | 대한 YWCA 연합회/새길교회 2006.12.3. 여선교회 헌신예배설교 |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의 주역이었던 미국의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오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손발이 사슬에 묶인 채 노예시장에 애처롭게 서 있는 한 소녀를 보게 된 링컨은 그 소녀가 너무 불쌍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값은 지불하고 그 노예소녀를 샀습니다. 그를 집에 데려와 목욕을 하게하고 새 옷을 입히고, 따뜻한 음식을 먹이며 며칠을 쉬게 한 후에,약간의 용돈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산 것은 우리 집의 노예로 삼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너를 자유케 해 주려고 한 것이다. 이제 너는 더 이상 팔려온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 돈을 가지고 나가서 과거는 잊어버리고 자유로운 몸으로 새 출발을 시작하여 잘 살아라.”
이 말을 들은 이 소녀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노예의 딸로 태어났고 지금까지 노예로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면서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서 따뜻한 관심이나 보살핌을 받아 본 적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주인님이 나타나셔서 값을 나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아 보았으며 주인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나를 그 지긋지긋한 노예시장에서 사 주시고 나를 이렇게 대접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주인님을 떠나 내가 어디로 갑니까? 나는 일평생을 주인님 곁에서 주인님을 섬기면서 내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 삶을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며 기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내 보내지 마시고 주인님 집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 소녀는 평생을 링컨의 집에서 그와 같이 살면서 그를 섬겼고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백악관에 까지 같이 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 봉독한 신명기와 출애굽기에 있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히브리 노예법에 따르면 어떤 이유로 종이 되었던지 주인을 섬긴지 6년이 지나면, 7년 째 되는 해에 종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이 새 삶을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저들을 빈손으로 내어 보내지 말고 곡식과 양들을 충분하게 주어 보내도록 했습니다. 이 법은 애급의 속박에서 종노릇하던 저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며 또한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나타나 있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제 종의 신분에서 풀려나서 어깨를 펴고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종이 그동안 자기를 사랑해 준 주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게 되기를 포기하고 자진하여 그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되기로 결단하며, 그 귀에 구멍을 뚫으며 서약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빚으로 팔려온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 가족이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분량의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예 청년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자비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주인은 무시하거나 학대하지 않고 이 어린 종을 사랑하고 보살펴주었습니다. 때가 되니 결혼도 시켜주었고, 자녀도 낳았습니다. 빚으로 팔려온 종의 신분이었지만 주인의 어질고 자비한 마음과 아껴주는 사랑의 큰 빚을 지며 주인의 집에서 주인을 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6년이란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이제 히브리 율법의 노예규정에 따라 주인은 이 종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젊은 종은 지난 6년을 되돌아봅니다. 이 주인을 만나기 전, 그는 이 집 저 집으로 팔려 다니면서 절망스럽고 무거운 삶을 살아왔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 주인을 만나 후, 세상과 자신을 향한 저주, 원망, 불평이 사라졌음을 봅니다.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자비로 끌어 안아주고 사람대접 받으며 살게 해 준 주인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하게 해 준 은혜, 태어나는 자녀들을 기쁘게 받아 준 사랑을 기억합니다. 지난 6년 동안 이 주인에게서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이 주인을 떠날 수 없다는, 떠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말 합니다
“나는 주인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아니 떠날 수 없습니다. 주인의 그 큰 사랑을 받은 나, 주인님을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주인님을 떠나 사는 것보다 주인을 모시고, 이 집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 더 큰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내가 주인을 떠나 어디에서 이 감사, 이 사랑, 이 감격, 이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주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므로 주인님을, 이 집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고백하는 종이 있거든 그의 귀를 문기둥에 대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뚫으라! 그리하면 영원한 종이 되리라. 신명기 15:17, 출애굽기 21:6의 말씀은 주인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영원한 종이 되기를 원하는 종에게 행해졌던 의식이며, 또한 죄와 죽음의 노예였던 우리들을 당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루시며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참 헌신의 귀한 원리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1. 자발적이고 자의적인 섬김입니다.
억지로의 섬김이나, 목적을 가진 섬김은 무거운 짐이요, 고통이며, 또한 복 받기를 원하는 목적의 섬김은 투자입니다. 억지로 종을 잡아두거나 사정하여 머물게 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네 종이 너와 네 집을 사랑하여 너와 동거하기를 원하거든’이 유일한 조건이며 또한 영원히 주인을 섬길 수 있는 자격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너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다 받았은즉’, 내 삶, 생명, 가정, 재능, 물질, 기회, 성취… 특히 구원의 은총, 구속함을 통한 자유함….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임을 깨닫고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며 내 삶의 주권을 내 자신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서 내가 주인이 된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신 삶으로 나 제일주위에서 하나님 제일주의 원칙으로 주인이 아닌 종의 삶을 살겠다는 자발적이며 자의적인 결단이 헌신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단이 가능할까요?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2. 사랑이 그 동기입니다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을 하루 같이, 그리고 그 다음 7년을 또 하루 같이 야곱은 머슴으로 일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광의 왕관대신 고통과 수치의 가시관을 쓰시고 화려한 깃발대신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시고 경배와 높임대신 침 뱉음과 회초리를 받으시며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 모두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이런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세주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 왕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며 부활의 영광을 맛보려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거짓과 더러움, 욕심과 교만, 어리석음과 악함으로 멸망의 길에서 헤매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에, 우리들을 죄 중에서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 인간들을 죽음에서 살리시려고 이 수치와 억울한 고난을 자진하여 받으신 것 아닙니까?
사랑은 사랑으로 답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답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사랑 이외엔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돈으로 답하고, 열심으로 답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헌신한다고 착각합니다. 또는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에 헌신해야 한다고도 착각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지 남편을 위한 일에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하면, 그의 뜻에 맞추게 되고 그를 위한 일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하신 물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박한 지식이나 세상적인 똑똑함이 아닙니다. 큰일을 해 낼 수 있는 능력이나 자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 하늘나라 일꾼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종교적인 지식이나 교리에 따른 종교생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적으로 배우고 깨달은 진리를 받아들이며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감격하여 그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감사의 사랑운동입니다.
사랑 없는 정의는 정죄함과 교만으로, 사랑 없는 진리는 독선으로 이어지며, 사랑 없는 평화는 거짓된 속임수임을 우리는 압니다. 사랑은 감성적인 느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희생의 원동력이며, 상대방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킬 수 있는 순종의 비결이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자기부인의 원천적인 힘이며, 상대를 닮아가는 변화의 기본적인 힘입니다.
Christian은 Christ-like,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의 뜻 아닌가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그리스도 닮은 모습은,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를 사랑함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문설주에 귀를 대고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여기에 피로 붉게 물들여진 기둥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의 보혈로 붉게 물들여진 십자가 기둥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한 그의 사랑을 알게 된 우리는 이 십자가를 떠날 수 없으며 또한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피 묻은 기둥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께서 저를 그토록 사랑하셨으니, 나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주님만을 섬기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 귀에 영원한 종의 표시인 구멍을 뚫어 주십시오.”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 귀를 뚫는 것이요, 헌신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영원한 종의 표시인 이 구멍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어리석고 미련한 실패자의 표시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그 영광의 날,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대하는 날, 우리 귀에 뚫린 그 상처 난 구멍에 하늘의 귀한 보화들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귀 거리를 만들어 장식해 주실 것입니다. 추한 상처자국이 아닌 빛나는 훈장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향한 더 뜨겁고 더 큰 사랑을 느끼고 싶다
나는 하나님을 향한 더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싶다
이 시대의 죄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내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통해서만 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아! 나는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주님께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영국국민을 사랑하여 영국의 운명을 바꾸어 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기쁨이 되어드리는 것도,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도, 나를 이길 수 있는 힘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사랑의 선물로 인류에게 보내주신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째 주일에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고백과 결단으로 우리 귀에 구멍을 뚫으십시다. 혹시 이미 오래 전에 뚫었던 구멍이 점점 작아지고 막혀져서 그 흔적이 흐려지지는 않았는지, 또는 영원한 종이 되겠다는 결단으로 뚫었던 귀 구멍에 세상을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사랑하는 귀걸이가 걸려있지는 않는지 살피십시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생명까지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 아기 예수께 뜨거운 고백을 드립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내가 너를 산 것은 우리 집의 노예로 삼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너를 자유케 해 주려고 한 것이다. 이제 너는 더 이상 팔려온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 돈을 가지고 나가서 과거는 잊어버리고 자유로운 몸으로 새 출발을 시작하여 잘 살아라.”
이 말을 들은 이 소녀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노예의 딸로 태어났고 지금까지 노예로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면서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서 따뜻한 관심이나 보살핌을 받아 본 적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주인님이 나타나셔서 값을 나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아 보았으며 주인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나를 그 지긋지긋한 노예시장에서 사 주시고 나를 이렇게 대접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주인님을 떠나 내가 어디로 갑니까? 나는 일평생을 주인님 곁에서 주인님을 섬기면서 내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 삶을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며 기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내 보내지 마시고 주인님 집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 소녀는 평생을 링컨의 집에서 그와 같이 살면서 그를 섬겼고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백악관에 까지 같이 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 봉독한 신명기와 출애굽기에 있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히브리 노예법에 따르면 어떤 이유로 종이 되었던지 주인을 섬긴지 6년이 지나면, 7년 째 되는 해에 종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이 새 삶을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저들을 빈손으로 내어 보내지 말고 곡식과 양들을 충분하게 주어 보내도록 했습니다. 이 법은 애급의 속박에서 종노릇하던 저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며 또한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나타나 있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제 종의 신분에서 풀려나서 어깨를 펴고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종이 그동안 자기를 사랑해 준 주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게 되기를 포기하고 자진하여 그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되기로 결단하며, 그 귀에 구멍을 뚫으며 서약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빚으로 팔려온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 가족이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분량의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예 청년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자비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주인은 무시하거나 학대하지 않고 이 어린 종을 사랑하고 보살펴주었습니다. 때가 되니 결혼도 시켜주었고, 자녀도 낳았습니다. 빚으로 팔려온 종의 신분이었지만 주인의 어질고 자비한 마음과 아껴주는 사랑의 큰 빚을 지며 주인의 집에서 주인을 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6년이란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이제 히브리 율법의 노예규정에 따라 주인은 이 종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젊은 종은 지난 6년을 되돌아봅니다. 이 주인을 만나기 전, 그는 이 집 저 집으로 팔려 다니면서 절망스럽고 무거운 삶을 살아왔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 주인을 만나 후, 세상과 자신을 향한 저주, 원망, 불평이 사라졌음을 봅니다.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자비로 끌어 안아주고 사람대접 받으며 살게 해 준 주인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하게 해 준 은혜, 태어나는 자녀들을 기쁘게 받아 준 사랑을 기억합니다. 지난 6년 동안 이 주인에게서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이 주인을 떠날 수 없다는, 떠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말 합니다
“나는 주인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아니 떠날 수 없습니다. 주인의 그 큰 사랑을 받은 나, 주인님을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주인님을 떠나 사는 것보다 주인을 모시고, 이 집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 더 큰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내가 주인을 떠나 어디에서 이 감사, 이 사랑, 이 감격, 이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주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므로 주인님을, 이 집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고백하는 종이 있거든 그의 귀를 문기둥에 대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뚫으라! 그리하면 영원한 종이 되리라. 신명기 15:17, 출애굽기 21:6의 말씀은 주인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영원한 종이 되기를 원하는 종에게 행해졌던 의식이며, 또한 죄와 죽음의 노예였던 우리들을 당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루시며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참 헌신의 귀한 원리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1. 자발적이고 자의적인 섬김입니다.
억지로의 섬김이나, 목적을 가진 섬김은 무거운 짐이요, 고통이며, 또한 복 받기를 원하는 목적의 섬김은 투자입니다. 억지로 종을 잡아두거나 사정하여 머물게 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네 종이 너와 네 집을 사랑하여 너와 동거하기를 원하거든’이 유일한 조건이며 또한 영원히 주인을 섬길 수 있는 자격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너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다 받았은즉’, 내 삶, 생명, 가정, 재능, 물질, 기회, 성취… 특히 구원의 은총, 구속함을 통한 자유함….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임을 깨닫고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며 내 삶의 주권을 내 자신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서 내가 주인이 된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신 삶으로 나 제일주위에서 하나님 제일주의 원칙으로 주인이 아닌 종의 삶을 살겠다는 자발적이며 자의적인 결단이 헌신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단이 가능할까요?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2. 사랑이 그 동기입니다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을 하루 같이, 그리고 그 다음 7년을 또 하루 같이 야곱은 머슴으로 일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광의 왕관대신 고통과 수치의 가시관을 쓰시고 화려한 깃발대신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시고 경배와 높임대신 침 뱉음과 회초리를 받으시며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 모두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이런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세주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 왕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며 부활의 영광을 맛보려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거짓과 더러움, 욕심과 교만, 어리석음과 악함으로 멸망의 길에서 헤매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에, 우리들을 죄 중에서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 인간들을 죽음에서 살리시려고 이 수치와 억울한 고난을 자진하여 받으신 것 아닙니까?
사랑은 사랑으로 답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답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사랑 이외엔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돈으로 답하고, 열심으로 답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헌신한다고 착각합니다. 또는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에 헌신해야 한다고도 착각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지 남편을 위한 일에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하면, 그의 뜻에 맞추게 되고 그를 위한 일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하신 물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박한 지식이나 세상적인 똑똑함이 아닙니다. 큰일을 해 낼 수 있는 능력이나 자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 하늘나라 일꾼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종교적인 지식이나 교리에 따른 종교생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적으로 배우고 깨달은 진리를 받아들이며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감격하여 그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감사의 사랑운동입니다.
사랑 없는 정의는 정죄함과 교만으로, 사랑 없는 진리는 독선으로 이어지며, 사랑 없는 평화는 거짓된 속임수임을 우리는 압니다. 사랑은 감성적인 느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희생의 원동력이며, 상대방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킬 수 있는 순종의 비결이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자기부인의 원천적인 힘이며, 상대를 닮아가는 변화의 기본적인 힘입니다.
Christian은 Christ-like,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의 뜻 아닌가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그리스도 닮은 모습은,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를 사랑함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문설주에 귀를 대고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여기에 피로 붉게 물들여진 기둥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의 보혈로 붉게 물들여진 십자가 기둥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한 그의 사랑을 알게 된 우리는 이 십자가를 떠날 수 없으며 또한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피 묻은 기둥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께서 저를 그토록 사랑하셨으니, 나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주님만을 섬기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 귀에 영원한 종의 표시인 구멍을 뚫어 주십시오.”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 귀를 뚫는 것이요, 헌신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영원한 종의 표시인 이 구멍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어리석고 미련한 실패자의 표시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그 영광의 날,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대하는 날, 우리 귀에 뚫린 그 상처 난 구멍에 하늘의 귀한 보화들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귀 거리를 만들어 장식해 주실 것입니다. 추한 상처자국이 아닌 빛나는 훈장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향한 더 뜨겁고 더 큰 사랑을 느끼고 싶다
나는 하나님을 향한 더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싶다
이 시대의 죄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내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통해서만 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아! 나는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주님께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영국국민을 사랑하여 영국의 운명을 바꾸어 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기쁨이 되어드리는 것도,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도, 나를 이길 수 있는 힘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사랑의 선물로 인류에게 보내주신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째 주일에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고백과 결단으로 우리 귀에 구멍을 뚫으십시다. 혹시 이미 오래 전에 뚫었던 구멍이 점점 작아지고 막혀져서 그 흔적이 흐려지지는 않았는지, 또는 영원한 종이 되겠다는 결단으로 뚫었던 귀 구멍에 세상을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사랑하는 귀걸이가 걸려있지는 않는지 살피십시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생명까지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 아기 예수께 뜨거운 고백을 드립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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