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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1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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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승곤 목사 |
참고 : | 새길교회 주일설교 |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셔서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 중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피성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설정해야 할 6개의 도피성 중 모세는 요단 동편 땅에 이미 3개의 도피성을 설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나머지 3개를 더 설정하라고 명하였습니다. 도피성 제도의 올바른 운용은 무모한 피 흘림과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사회적 중제 제도로서 아무런 고의성 없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함으로 피의 보수자로부터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에서는 가나안 땅을 평균해서 세 구획으로 나누어 각 구획의 중심부에 도피성을 설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도피자가 어느 곳에 있든지 피의 보수자에게 잡히지 않도록 가장 가까운 곳에 도피성을 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피성을 알리기 위하여 도로에는 반드시 도피성이라는 표지판을 게시하도록 하였습니다. 도피성으로 도피할수 있는 조건은 정당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여 공의와 사회 질서 유지를 확립하려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도피성의 제도가 현대교회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중제 제도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모습은 곧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는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신의 성품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거룩한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간직해야 할 인권 문제의 가장 핵심입니다. 고대국가 중 헬라나 로마 같은 나라에서도 신전 같은 성역에 있어서 도망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성역 제도가 있어 성역 그 자체를 신성히 여겨 죄의 유무를 막론하고 일단 그곳에 들어간 것만으로 살인자를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시행한 도피성 제도는 무분별하게 살인한 사람까지도 보호하는 그러한 무질서한 제도가 아니라 정당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사회질서와 공의를 수행하기 위하여 도피성을 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오늘날 최초로 발달한 복지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중제 제도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중제 제도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시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교회가 이 사회에서 억울하게 법과 양심의 심판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선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도피성은 도피하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길을 잘 안내했습니다.
고의성 없이 실수로 사람을 살인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피의 보수자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지역에 도피성을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도피성으로 도망하려고 할 때 그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모르면 도중에 잡혀서 죽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거리의 도피성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건으로 그 도로를 잘 닦고 도로의 넓이는 약 14km 가량 만들고 그 길에는 반드시 ‘도피성’이라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 놓으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셔서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살인한 사람을 동해보복 즉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보복하는 관습에서 생명을 보호하라는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라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소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감정에 치우쳐 무죄한 사람의 생명까지도 취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도피성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오는 길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넓게 만들고 알려야 할 것입니다. 죄인들이 찾기에 쉽게 편리하고 쉬어야 도피성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도피성은 의도적 살인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 실수한 사람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도피서이라고 해서 결코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가 아니었습니다. 도피성에 도피할 수 있는 도피성 제도의 규례를 보면 만일 살인 사건이 나면 성읍의 장로들은 도피성을 사람을 파송하여 그곳에 피신해 있는 살인자를 체포하였습니다. 그후 장로들은 여러 사람이 있는 성문 앞에서 그 살인자의 고의성 여부를 재판하였습니다. 만일 재판으로 인하여 고의성이 없으면 그를 도피성으로 보내져 대제사장이 죽을 때가지 그곳에서만 머물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의성이 판명되면 그는 사형에 처하여졌는데 이때 맨 먼저 피살자의 친족 즉 보수자가 돌을 들어 그 살인범을 친후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돌을 던져 죽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 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사회 공동체의 공의와 질서 및 순수성을 유지하고 죄악에 대하여 엄히 경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도피성의 역할 감당함에 있어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죄를 짓고 교회를 빙자하여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는 마땅히 배격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교회 안에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면서도 교회를 은신처로 범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도피성이 되어야 하지만 사회공공 질서를 파괴하고 도피해온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의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입니다. 구약 시대의 도피성은 그 의미와 목적에 있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오늘날에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하여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의 도피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피성이 되어야 할 교회가 도피성 역할을 감당하기 못하고 오히려 살인자의 은신처가 된다든지 도피해온 무죄한 백성을 세상으로 다시 몰아내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에서 교회를 바라볼 때 과연 도피성이라고 여기고 언제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위치에서 있어야 하고 길을 찾는데 어렵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와 사회의 벽에 높아 들어가기 어려운 교회가 우리 주변에 있다면 이는 도피성 역할을 잘 감당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보혈을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쉴곳 없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도피성이 되어 그들을 위로하고 보호해 주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막과 같은 곳이라 마음 놓고 쉴만한 물가와 그늘이 필요한데 이러한 역할을 감당해야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구약 시대에 물리적 사시적 도피성이 있다면 현대에는 교회와 성도가 바로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도피성이 되어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첫째,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중제 제도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모습은 곧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는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신의 성품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거룩한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간직해야 할 인권 문제의 가장 핵심입니다. 고대국가 중 헬라나 로마 같은 나라에서도 신전 같은 성역에 있어서 도망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성역 제도가 있어 성역 그 자체를 신성히 여겨 죄의 유무를 막론하고 일단 그곳에 들어간 것만으로 살인자를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시행한 도피성 제도는 무분별하게 살인한 사람까지도 보호하는 그러한 무질서한 제도가 아니라 정당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사회질서와 공의를 수행하기 위하여 도피성을 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오늘날 최초로 발달한 복지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중제 제도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중제 제도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시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교회가 이 사회에서 억울하게 법과 양심의 심판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선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도피성은 도피하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길을 잘 안내했습니다.
고의성 없이 실수로 사람을 살인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피의 보수자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지역에 도피성을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도피성으로 도망하려고 할 때 그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모르면 도중에 잡혀서 죽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거리의 도피성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건으로 그 도로를 잘 닦고 도로의 넓이는 약 14km 가량 만들고 그 길에는 반드시 ‘도피성’이라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 놓으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셔서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살인한 사람을 동해보복 즉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보복하는 관습에서 생명을 보호하라는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라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소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감정에 치우쳐 무죄한 사람의 생명까지도 취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도피성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오는 길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넓게 만들고 알려야 할 것입니다. 죄인들이 찾기에 쉽게 편리하고 쉬어야 도피성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도피성은 의도적 살인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 실수한 사람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도피서이라고 해서 결코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가 아니었습니다. 도피성에 도피할 수 있는 도피성 제도의 규례를 보면 만일 살인 사건이 나면 성읍의 장로들은 도피성을 사람을 파송하여 그곳에 피신해 있는 살인자를 체포하였습니다. 그후 장로들은 여러 사람이 있는 성문 앞에서 그 살인자의 고의성 여부를 재판하였습니다. 만일 재판으로 인하여 고의성이 없으면 그를 도피성으로 보내져 대제사장이 죽을 때가지 그곳에서만 머물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의성이 판명되면 그는 사형에 처하여졌는데 이때 맨 먼저 피살자의 친족 즉 보수자가 돌을 들어 그 살인범을 친후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돌을 던져 죽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 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사회 공동체의 공의와 질서 및 순수성을 유지하고 죄악에 대하여 엄히 경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도피성의 역할 감당함에 있어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죄를 짓고 교회를 빙자하여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는 마땅히 배격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교회 안에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면서도 교회를 은신처로 범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도피성이 되어야 하지만 사회공공 질서를 파괴하고 도피해온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의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입니다. 구약 시대의 도피성은 그 의미와 목적에 있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오늘날에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하여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의 도피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피성이 되어야 할 교회가 도피성 역할을 감당하기 못하고 오히려 살인자의 은신처가 된다든지 도피해온 무죄한 백성을 세상으로 다시 몰아내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에서 교회를 바라볼 때 과연 도피성이라고 여기고 언제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위치에서 있어야 하고 길을 찾는데 어렵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와 사회의 벽에 높아 들어가기 어려운 교회가 우리 주변에 있다면 이는 도피성 역할을 잘 감당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보혈을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쉴곳 없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도피성이 되어 그들을 위로하고 보호해 주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막과 같은 곳이라 마음 놓고 쉴만한 물가와 그늘이 필요한데 이러한 역할을 감당해야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구약 시대에 물리적 사시적 도피성이 있다면 현대에는 교회와 성도가 바로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도피성이 되어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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