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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26: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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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쓴 뿌리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남에 대한 원망과 불편했던 것들, 상처받았던 것들은 빨리 잊어버릴수록 좋습니다.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으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은혜가 메마르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이 자라지도 못하고 신앙생활에 기쁨과 풍성함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하루라도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잊지 말고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면 항상 은혜가 더욱 충만해지고 믿음이 굳건해지며, 언제나 기뻐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성도는 사탄이 쉽게 공격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감사주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감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첫 열매를 드리라(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 때 그들은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1-2절)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그들이 얻은 모든 것이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여호와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거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즉시 드려야 했으며, 이러한 예물을 드리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첫 열매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첫째,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비천했던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셋째,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셨고, 첫 열매를 드릴 때 더욱 풍성한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그 예물 자체보다 그것을 드리는 우리의 감사와 헌신을 다짐하는 신앙고백에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러한 신앙고백과 감사를 담아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물과 함께 우리의 믿음과 감사와 헌신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를 가지고 성소로 가서 드리면서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3절)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그들의 힘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은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신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고백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가나안 땅에 들어와 이렇게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이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이 수고하고 애써서 얻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요, 내가 노력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항상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모든 은혜로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5-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를 가지고 성소에 와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회상하며 고백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왕년에 한창 활동했던 시절에 대해서 무용담을 늘어놓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비천한 과거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것보다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것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실패와 수치와 가난과 비천함으로 뒤범벅되어 있지 않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 비천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때때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회상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까?
조상의 비천함과 번성(5절)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5절) 여기서 말하는 조상은 야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서 12지파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으며, 그의 형 에서가 그를 죽이려 하자 밧단 아람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사실 야곱은 아람 사람이 아니지만, 본문에서 그를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 묘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강권적인 간섭이 아니었더라면 야곱은 타향에서 평생 이용만 당하고 고생하다가 일생을 마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셔서 그로 하여금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내들과 아들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시련과 고통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요셉을 팔아버린 아들들은 그의 옷에다가 짐승의 피를 묻혀 가지고 와서 아버지에게 내보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팔려간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요셉을 통하여 온 가족이 애굽에 가서 염려 없이 살게 하셨습니다. 그 때 야곱의 가족은 70인이었습니다. ‘내 조상이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갔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자손은 큰 민족으로 번성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심(6-8절)
그러나 애굽에서 번성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고통이 닥쳐왔습니다. “애굽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게 되자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하여 호의적인 정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이 크게 번성하여 감당할 수 없게 될까 염려한 나머지 그들을 노예로 삼아 심한 고역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을 막기 위해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나일강에 던지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통과 슬픔은 말로 다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2:23-25)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당시 그 누구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그들을 해방시키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너무나도 놀랍고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본문은 그 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험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8절)
이 출애굽 사건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기억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로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출애굽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아무 소망도 없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얻게 된 일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죄와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다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축복의 땅을 주심(9절)
이렇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신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그들로 건너게 하셨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본문의 시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은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 외에도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가 내렸고, 반석에서는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보호하며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서는 강하고 많은 민족들을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가나안에서 풍성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첫 열매를 거둘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와서 그 은혜를 고백하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나이다.”
오늘 당신에게 이러한 뜨거운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오늘 내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니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다윗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다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것이 당신의 진정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이 언제나 당신의 입에서 떠나지 않으며, 이 고백을 할 때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헌신과 경배(10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들을 회상하며 고백하면서 첫 열매로 감사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릴 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뻤겠습니까?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음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며, 현재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품안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하면서 크게 안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첫 열매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삼 년마다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12절). 이 십일조는 매년 드리는 십일조 외에 드리는 또 다른 십일조였습니다. 매년 드리는 십일조에 비하여 삼 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자칫 소홀해질 염려가 있었으므로 그 해를 특별히 ‘십일조 드리는 해’로 정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특별 십일조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 년마다 한 해씩은 십이조를 드렸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제직 세미나를 인도하는 중에 가장 열심 있는 두 집사님들에게 “집사님이 드리는 헌금은 모두해서 전체 수입의 몇 퍼센트나 됩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두 분 다 15퍼센트쯤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정도면 열심히 헌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제외하고는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십일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약간의 헌금을 제하고 나머지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면 잘못된 자세입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 사용해야 할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30퍼센트 정도를 헌금해왔습니다. 감사절과 절기가 있을 때는 40퍼센트 정도를 헌금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신이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좀 더 활발하게 해나갈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를 정성껏 드렸을 뿐만 아니라, 삼 년마다 십일조를 더 드려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첫 열매를 드리면서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면서 즐거워했으며, 추가로 드린 십일조로 그들을 보살폈습니다. 그것은 곧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주시면서 우리의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는 이들, 갇힌 자들과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감사절에 정성을 다해서 힘껏 드린 예물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이고 아름다운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감사절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은혜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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