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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광야학교의 교훈

신명기 이상호 목사............... 조회 수 2598 추천 수 0 2011.08.24 21: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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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8:1-10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오늘의 말씀/신 8:1-10               

인생 광야학교의 교훈 

 ●오해(五害) : 흉년의 다섯 가지 피해(수해, 한해, 풍해, 박상해, 병해)

인생은 광야입니다.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고통과 시련이 있습니다. 파산이라는 광야, 실패라는 광야, 이별이라는 광야, 슬픔이라는 광야,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이라는 광야를 건너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광야와 같다고 합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아주 특별한 학교의 학생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학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입학해서 졸업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입학하기는 굉장히 쉬운데 졸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입학하지만 다 성공적으로 졸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의 이름은 바로 연단과 시험이라는 훈련입니다. 이 학교가 바로 광야학교라는 곳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이미 이 학교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진급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왜 나에게 이런 광야의 고통이 있느냐?"고 불평하고 절망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은 왜 우리를 광야학교로 부르셨을까요? 고난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1. 겸손케 하시려고 (to humble) 2절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귀를 꽉 막아 버리고 자기 최고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교만하여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한가지 작전을 세웁니다. 바로 힘들고 어려운 '광야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분에게 꾸준히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그분은 차갑게 거절하며 자신은 살만하니 무능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에게나 전도해서 위로를 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오만함이 실어 전도하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년이 흐른 후 그분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 목사님을 만나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요청하더라는 것입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이라며 애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등 따뜻하고 배부르고 모든 것이 편안할 때는 자기의 실력을 믿고 교만해 하지만 심한 환난이 다가와 때리면 그 교만이 박살나고 '자기' 라는 우상이 산산조각 깨져버리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2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절상반절에도 "너를 낮추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낮추신다'는 말은 영어로 'humble'이라는 단어로 '겸손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우리를 광야학교에 입학시킵니다.

70년대의 한 인기 가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대마초 사건에 걸려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3개월 가량 징역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어느 사형수로부터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 가수는 대마초 사건으로 해서 감방에 들어와 있을 때만 해도, 자기가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사형수로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추악한 죄인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형수의 진지한 전도에 감동을 받아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대마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출감한 후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낙옆지던 그 숲속에"라는 가사로 대히트를 쳤던 <너>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이종용목사님이십니다.

여러분! 왜 사형수가 판사보다 구원받기 쉬운지 아십니까? 사형수는 자기에게 대해 절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감방밖에 있을 때 보다, 감방안에 들어가서 예수 믿기가 쉬운지 아십니까? 감방 안에 들어가면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광야생활 때문에 마음이 낮아져서 그렇습니다.

집 떠나, 친구 떠나, 가족 떠나, 물설고 낯설은 땅에 오면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이곳이 광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머리 숙이는 사람이 됩니다. 주제 파악을 잘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를 광야학교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어려움들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임을 믿습니다. 저도 지난 몇 개월 동안 광야학교에 입학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저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왜 저 사람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할까? 왜 내 마음을 못 알아주는 걸까?" 항상 "왜? 왜?"였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밤잠을 설친 적도 있습니다. 하도 기가 막혀 밥맛을 잃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후에 깨닫고 보니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써, 목사로써, 저를 겸손한 사람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셨습니다. 그냥 놓아두면 엎어지고 코가 깨질까 염려되어,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를 광야학교에 입학을 시키셨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지난 세월 동안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지 물질로, 자녀로, 인간관계로, 건강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주제 파악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훈련시키신 주님의 섭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시험하시려고 (to test) 2절

다시 한번 2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 시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광야 학교를 통하여 세상적인 생각, 인생관, 습관, 철학, 문화를 깨끗이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여 믿음과 순종의 훈련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순종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믿음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시험'라는 단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시험이라는 단어는 유혹이라는 'Temptation'이라는 말과, 학교에서 치루는 시험의 의미인 Test라는 두가지 단어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시험이란 올무에 빠뜨리기 위한 악의적인 Temptation이 아닌, 더 큰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선의의 Test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더 큰 축복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종종 우리를 Test하십니다.

어느 한 집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친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애야, 너는 친구가 많은가 보구나?" "예, 아버지, 저는 많은 친구를 두었습니다." "그래, 이 애비는 친구가 하나 밖에 없는데, 너는 친구가 많구나? 그런데 하나 물어보아도 괜찮겠니? 이 애비 친구는 나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말 귀한 친구란다. 너의 친구들은 어떠니?" "예, 아버지, 제 친구들도 저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얼마나 의리가 많은데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와 내가 각자의 친구들을 시험해 보면 어떻겠니?"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가마니에 둘둘 말아 넣은 다음, 짊어지고 각자의 친구 집을 방문하기로 하고, 먼저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집에 도착했습니다. 친구집에 도착한 아들은 힘차게 그 집 대문을 두드리며, "여보게 날세, 나야, 나. 내가 실수로 사람을 찔러 죽였다네. 이 시체를 잠시만 맡아 주지 않겠나? 나 자네의 가장 친구야!"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친구는 문도 열어주지도 않고 "미안하네. 나는 당신 같은 친구를 둔 적이 없네"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상심한 아들은 그 다음 친구집에 가서 똑같이 "여보게 날세, 나야, 나. 내가 실수로 사람을 찔러 죽였다네. 이 시체를 잠시만 맡아 주지 않겠나?"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친구집을 갔지만, 어느 누구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아버지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여보게 나야,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네"라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문을 열면서 "어서 들어오게.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자네 친구 아닌가?" 결국 아버지가 짊어지고 간 시체, 아니 새끼 돼지를 가지고 그 날 저녁 잔치를 벌였다는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가 많습니까? 그러나 진실된 친구를 평소에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진실된 친구는 어려울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충신은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시험을 치루어 보면 구분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광야생활을 할 때에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똑같습니다. 똑같이 기도하고, 똑같이 찬양 드리고, 똑같이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고난과 역경의 광야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지, 아니면 믿음의 사람인 척 하는지 구분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주님에 대한 사랑을, 주님에 대한 열정을 테스트하기 위해 때로는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광야같은 환경이 다가올 때에, 절망하지 마시고 테스트에 넉넉하게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테스트에 합격한 사람들에게는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테스트를 너끈하게 통과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가르치려고 (to teach) 3절

3절을 보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가 다시 한번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시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이 전에 먹어 보지 못한 만나를 주어 먹게 하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셨습니까? 전쟁놀이를 가르치려고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습니까? 아니면 담력훈련 시키려고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전여행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 만나가 새벽마다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만나는 결코 자연의 소산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급해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리던 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에서 어디를 바라보겠습니까? 하늘을 바라볼 것입니다. 땅에는 아무 것도 없고, 날마다 하늘에서 음식물이 쏟아지면 당연히 하나님만 의지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사방으로 완전히 둘러 쌓여 꽉 막혀 있고 뚫린 곳이라곤 하늘밖에 없다면, 여러분들은 어디를 보겠습니까? 당연히 하늘을 바라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광야생활을 하게 함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가르칩니다. 물질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가르칩니다. 건강을 잃게 하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가르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지도 거두지도 안했지만, 40년 동안 먹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의지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축복 가운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4. 축복하시려고 (to go well) 7-10, 16절

고난과 훈련이 끝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훈련 캠프 때에 열심히 뛰고 달리며 훈련한 선수들이 정기 시즌 때에 영광의 자리에 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광야학교의 훈련이 끝나면 놀라운 축복이 주어집니다. 7∼10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훈련을 통과한 사람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아름다운 땅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밤 주인이 종들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섣달 그믐날, 내가 자네들에게 약속한대로 내일부터 자유를 줄 걸세. 그 동안 수고했네. 자네들은 내일이면 자유의 몸이 될 걸세.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날이 새기 전까지 밤새도록 모두 새끼를 꼬도록 하게. 특별히 새끼를 꼴 때는 가늘게 꼬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꼬도록 하게. 이 일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라네" 그리고 주인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아 있는 종들 중에 불평 잘하고 일을 잘 하지 않는 종이 불평을 했습니다. "참, 저 영감은 악질이야, 최후까지 부려먹으려 들거든, 섣달 그믐날 어느 놈이 일을 한담" 그러자 착실하고 일 잘하는 종이 그를 나무랐습니다. "여보게, 불평 말게. 세상의 주인이 우리 주인만 같아 보게. 어느 누가 종살이가 힘들다고 하겠나? 우리는 내일부터 자유의 몸이니 주인님이 시킨 대로 일을 해드리세 그려!" 성실한 종은 마지막까지 주인이 시킨 일을 마치기 위하여 밤새 새끼를 가늘고 길게 꼬았으나, 어떤 종은 꼬지 않았고, 어떤 종은 굵고 짧게 형식적으로 조금 꼬아 놓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주인은 약속대로 종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그 동안 내 집에서 죽도록 일을 해 준 자네들을 그냥 보내기는 마음이 섭섭하여 이제는 선물을 주려 하네. 어젯밤에 꼰 새끼들을 가지고 와서 이 광속에 있는 엽전을 그 새끼에 꿸 수 있는 대로 꿰어 가지고 가서 아무쪼록 잘 살기 바라네." 이 말을 듣고 착한 종은 얼른 뛰어가서 밤새껏 꼰 새끼에 엽전을 엄청나게 많이 꿰어 가지고 기뻐하며 주인께 감사하고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들이 불평하며 꼰 새끼줄에는 엽전을 하나도 꿸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자유의 몸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기에 필요한 엽전을 주려고 테스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테스트하십니다. 광야로 이끌러 가셔서 테스트하십니다. 은혜를 베풀려고 테스트합니다. 축복하시려고 테스트하십니다. 15∼16절을 보겠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것은 마침내 무엇을 주려 하심이었다고 합니까?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의 작전은 고난에 있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엿먹이려고 고통으로 몰아 넣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습니다.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광야학교에 입학시킵니다. 믿으십니까?

고난의 끝은 복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부끄러워 하지 마십시오. 영광스럽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고난은 손해가 아니라 거룩한 투자입니다. 막10:29-30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고난은 백배의 축복이요, 영생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고난은 씨앗이요 축복은 수확인 것입니다. 조그만 씨뿌림으로 백배이상의 수확을 할 수 있다는 기대속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성도는 고난을 씨뿌려 백배의 축복을 수확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들을 주님께서 인도하셨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삶이었지만, 그 가운데 우리를 훈련시키셔서 마침내 저와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 계획임을 믿으시고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광야학교에서 훈련시켜 주신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 길을 걷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낮추시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2).
2. 믿음과 순종의 훈련(테스트)을 위해서입니다(2). 
3. 가르치려고 (to teach) 3절
3.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7-10절,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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