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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에 생각하는 영적 전염병(Thinking of Spiritual Epidemic at Thanksgiving)
신명기 김영봉 목사............... 조회 수 3089 추천 수 0 2013.04.29 23:16:37성경본문 : | 신8: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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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11년 11월 20일 주일 설교
감사절에 생각하는 영적 전염병Thinking of Spiritual Epidemic at Thanksgiving"
신명기 8:11-20
1.
Happy Thanksgiving! 감사절을 맞아 교우 여러분의 영혼에, 가정에 그리고 직장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절에 함께 하는 정겨운 식탁마다에 주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감사절이 되어 더욱 외로움을 느끼는 분들도 계십니다. 홀로다 싶을 때 마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외로운 이들, 뒤쳐진 이들, 실패한 이들, 홀로된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그런 분이라면, 외로울 때 주님 안에서 위로를 얻고, 기쁘고 즐거울 때 외로운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지난 주간, <한국일보>는 “대한민국, 어플루엔자에 감염되다”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3회에 걸쳐 실었습니다. ‘어플루엔자’라는 말은 영어권 세계에서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Affluence라는 단어와 Influenza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입니다. 영어의 affluence는 ‘부유함’을 뜻하는데, ‘rich’ 혹은 ‘wealthy’보다 더 강한 말입니다. 돈이 흘러넘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Influenza라는 말은 보통 flu라고 줄여서 사용하는데, '유행성 감기'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affluenza는 ‘부자 병’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병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전염되는 병입니다. Affluenza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PBS 방송에서는 이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부자병. 명사. 1. 상류층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생기는 감정. 그 감정은 부풀어 있고 게으르며 충족되지 않는다. 2.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한 결과로 생긴 질병으로서, 스트레스, 과로, 탈진, 채무 상태 등의 증상을 낳는다. 3. 경제 성장에 대한 중독.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
미국이 ‘부자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원래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기회가 돌아가는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자는 꿈’이었는데, 그것이 어느 사이에 기회의 땅에서 마음껏 벌어보자는 ‘탐욕의 꿈’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이렇게 타락하자,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부자 병’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자 병’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졌고 정직한 사람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였던 미국은 급속하게 타락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미국에서 부자가 존경을 받았습니다. 공정(fair) 사회의 룰을 지키고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여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사회를 위해 그 부를 넉넉히 기부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 크게 부자가 되지 않아도 혹은 가난하게 살아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분복’(one's lot)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세계 각지로부터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을 찾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신화 혹은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부자는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도 이상의 부에는 분명히 어떤 부정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합니다. 미국 의회원(congressman) 중 57명이 미국 상위 1%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미국 민주주의가 금권주의(plutocracy)로 타락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돈 가진 사람이 권력도 갖고 명예도 갖고 모든 것을 가지려 합니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억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운동은 이 같은 정서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전통은 1621년 플리마우스에서 53명의 청교도들(the puritans)이 첫 해의 추수에 대해 감사하며 드린 예배에서 시작합니다. 현대 미국의 역사는 크게 두 줄기로 형성되었습니다. 하나는 청교도들의 이주입니다.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또 다른 줄기는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정신적으로 우리가 청교도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백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온 사람들은 끝도 없는 탐욕을 위해 분투했지만, 신앙의 자유를 위해 찾아 온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나눌 줄 알았습니다. 거부(巨富)가 되려고 이민 온 사람들 중에는 끝도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토착민인 인디언들을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한 때 우리가 즐겨 보았던 서부 영화들은 대부분 그 같은 탐욕으로 인해 생긴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잔혹했던 미국인들의 인디언 학살은 대부분 경제적인 탐욕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탐욕은 언제나 비극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이 땅을 찾은 사람들은 목적이 달랐기에 사는 모습도 달랐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첫 번째 추수감사 축제에는 53명의 청교도만이 아니라 왐파노악(Wampanoag)이라는 이름의 인디언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인디언 인권주의자들(Indian activists)은 이것이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목적은 경제적인 부를 일구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디언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분명히 차이가 났을 것입니다.
그 이후의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청교도적인 정신이 미국의 정신에 깊이 그리고 널리 스며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헌법도 그렇고, 독립선언서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 받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기회가 열려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공동선을 위해 협조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꿈이며, 예수님의 꿈이었고, 청교도들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85:10-11)
한 동안, 미국은 이 거룩한 꿈을 이룬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때, 미국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닮고 싶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지상에서 가장 미움 받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고, 미국 안에서도 계급 혁명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부자 병’이 온 나라를 점령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염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을 때, 그 전염병을 치료할 병원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부자 병’을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병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다면 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그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는 맘몬주의, 물질주의, 금권주의, 쾌락주의 등에 대해 경고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일깨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부자 병’에 오염되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이 전염병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성서적 원리’ 같은 제목의 설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 영혼에 깊이 스며든 ‘부자 병’ 바이러스를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에 만연한 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부자 병’을 예방하는 백신도 가지고 있고, 치료약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바로 백신이며 치료약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이름이 ‘구약’이고 ‘신약’입니다, 라고 말하면 유치하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이것은 좋은 비유입니다.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면, 그 말씀은 백신이 되어 이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미 감염된 사람은 치료받을 것입니다.
‘부자 벙’을 치료하는 데 ‘구약’도 좋기는 하지만, 신통하지는 못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우리의 탐욕을 정당화시키고 만족시키는 도구로 악용될만한 본문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면, ‘부자 되는 법’을 가르치는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책들을 보면, 주로 구약성경의 본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목을 조금만 비틀면, ‘하나님은 당신이 부자 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전염병을 치료하는 데는 역시 ‘신약’이 좋습니다. 신약성경은 아무리 비틀어도 그런 가당치 않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3.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신명기 8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신명기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정착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의 설교라지만, 그 설교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8장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자 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13:5)이라고 부릅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비옥한 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관용어(idiom)였습니다. 요즈음에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황량한 들판을 보고 의문을 가집니다. “이게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까?” 지금의 상황은 그렇습니다만, 모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8장에도 가나안 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데리고 가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 골짜기와 산에서 지하수가 흐르고 샘물이 나고 시냇물이 흐르는 땅이며,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 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며,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돌에서는 쇠를 얻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입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옥토에서, 당신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7-10절)
약속의 땅 가나안은 누구나 성실히 노력하면 부족함 없이 누리며 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이 비옥한 땅에 진입할 찰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은 가슴이 설레었을 것입니다. 40년의 방랑 끝에 이처럼 좋은 땅에 들어가 정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 하나님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요로운 물질로 인해 ‘거부 전염병’에 걸릴 위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부자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적은 출애굽기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19:5-6)
하나님께서 세상 여러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세상 모든 민족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민’(all peoples)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민’(elected people)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슨 특별한 장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만을 사랑하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어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세상 모든 민족을 위해 살아가야 할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받았습니다. 제사장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 거룩한 나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가나안에 이끄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자가 된다고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군사 대국이 되는 것으로도 안 됩니다. 대중문화로 세계를 정복한다고 하여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토가 넓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질적인 조건은 거룩함에 이르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친 물질은 거룩함에 이르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4.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구절이 이 대목입니다.
당신들이 마음 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주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당신들에게 힘을 주셨음을 당신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18-19절)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성실하고 근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가나안처럼 비옥한 땅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면,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부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잘 먹고 잘 살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이루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곧 그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어 세상 모든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가나안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얻은 부로 인해 그 언약을 잊고 자신의 사명을 망각한다면, 제 아무리 많은 부를 얻었어도 실패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풍토병이었던 ‘부자 병’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될 것을 염려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그 땅에서 부를 얻는다면, 그 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똑바로 알라고 하십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들의 목숨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에게 맡기고 살아야 하는 유랑의 기간 동안에는 이 믿음이 항상 살아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믿음은 더 순수해지고 절실해집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번영하고 잘 살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 잘 하면 되는구나.’라는 착각 속으로 빠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대로 땅이 응답하니, 더 이상 하나님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이 물질의 속성이요, 인간의 또 속성입니다. 물질을 가질수록 믿음은 지키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자기 잘 나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물질은 다만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자 되게 해 주셨다면, 그것이 언약을 이루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을 이루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물질은 도구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물질은 너무도 쉽게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이 물질의 또 다른 속성이고, 그것이 또한 사람의 또 다른 속성입니다. 물질에 물들면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향락을 즐기다 보면 더 많은, 더 깊은 향락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거룩한 나라, 제사장의 백성이 되라는 소명은 잃고, 물질에 탐닉하여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됩니다.
아뿔싸! 하나님께서 염려하셨던 그 일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의 번영으로 인해 하나님을 망각했고 자신들의 사명도 망각했습니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가 되기를 사양하고, 부자 백성, 강한 나라가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그 꿈은 이루어졌고, 그들은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것이 실패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나라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부자 병’은 이렇게 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치명적인 병입니다.
5.
이제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이 땅에 이민자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한국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정의로운 삶을 위해 미국을 택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살 수 없어 미국을 피신처로 삼아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공부하러 왔다가 좋은 기회가 주어져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동기와 이유는 사람마다 차이기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려는’ 분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다만 문화생활 정도로 생각한다면 모르되, 제대로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혹은 제대로 믿고 있다면, 이민 생활에 대한 자세가 믿지 않는 사람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골드 러시’(Gold Rush)의 소문을 듣고 이 땅을 찾았던 초기 이민자들처럼 거부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왔을지언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다음에는 목표가 달라져야 합니다. 이 땅을 처음 밟았던 청교도들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름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그랬듯, 미국 땅도 역시 ‘부자 병’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이 전염병은 여러 가지의 변종을 만들어냅니다. ‘성공 병’, ‘일류 병’, ‘명품 병’ 등이 그것입니다. 거부가 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생각하고 분투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심하게 망가지고 타락합니다. 우리 자신만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두루 해를 입히게 됩니다. ‘부자 병’에 걸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을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해를 입는지요! ‘일류 병’에 걸려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들을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 자녀들이 얼마나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는지요! ‘명품 병’에 걸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집, 비싼 차, 명품을 사들이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값싸 보이는지요! 내적으로 얼마나 공허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으면, 새로운 목적이 보입니다. 쟈녀 교육을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 오셨습니까? 정의로운 사회를 찾아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다 좋은 목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이 결국 우리를 배신할 것입니다. 설사, 성공한다 해도 그 성공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이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고 그분이 기대하시는 거룩한 백성으로 변해가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을 목적이 되면, 결코 배신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 거룩한 목적은 우리를 진정으로 복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랬던 일입니다. 청교도들이 이 땅에 올 때 마음에 품었던 꿈입니다. 그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계속 이루어가야 할 꿈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려는 목적을 향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다 보면, 거부가 될 수도 있고,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공할 수도 있으며, 이 땅에서 이름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같은 성공과 번영으로 인해 교만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습니다. 명품을 들고 다니며 과시하지 않습니다. 비싼 차를 몰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 기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성공과 번영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지지도 않고, 불신앙에 빠지지도 않으며, 함부로 낭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실하게 근면하게 산 결과로 거부가 되지 않아도, 자식들이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살아도, 그것으로 인해 불평하거나 주눅 들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시는 ‘분복’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시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오직 거룩한 백성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자 병’에 걸린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집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런 자랑거리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었으나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부자 앞에서 주눅이 듭니다. 명품을 가지고 싶으나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명품을 가진 사람 앞에서 작아집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은 부자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부자가 그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저 사람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해 줄 것입니다.
6.
이 아름다운 감사절에 진실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땅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통해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부자 병’, ‘성공 병’, ‘일류 병’, ‘명품 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한 주간 동안에도 통제되지 않는 열과 통증으로 끙끙 앓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도록 풍성한 식탁을 차려 놓고도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에 마음을 둔 사람들은 더 없이 맑고 밝은 마음으로 감사하며 이웃과 기쁨을 나눌 것입니다. 그 모습에 하나님도 환하게 웃으실 것입니다.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자로, 성공한 사람들로 세우시려 하신다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물으실 것 같습니다. “누가 있어 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가 되어 줄 것인가?” 그 옛날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사 6:8)라고 하나님께서 탄식하실 때, 예언자 이사야가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처럼,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써 주십시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결단하고 응답한 후에야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저희도 거룩하라 하신 주님,
저희의 병을 고쳐주소서.
부자 병을,
성공 병을,
일류 병을,
명품 병을
고쳐 주소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기를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의 전염병을 퇴치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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