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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명기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044 추천 수 0 2015.01.03 17: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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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8:7-1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787490 

jys.jpg 정용섭 목사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8:7-18, 창조절 제 11주 (추수감사절), 2014년 11월16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오늘의 설교 제목을 생각해보십시오. 교회에 다닌 경력이 어느 정도 되는 분들은 흔하게 들었던 문구라는 걸 아실 겁니다. 그래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믿음생활을 잘하고, 교회에 잘 나오라는 권고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저 말씀은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삶과 죽음, 또한 생명 완성과 구원과 그 과정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저 명령이 바로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를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교만과 죽음

오늘 설교 본문인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40년에 걸친 미디안 광야생활을 거의 끝내고,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주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압 광야에 머무르고 있을 때 모세가 행한 연설 모음집입니다. 지금부터 3천4,5백년 전 이야기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십시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저들이 거쳐 온 미디안 광야의 40년은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고생길이었습니다. 애굽에서의 삶과 비교해보면 광야생활은 노숙자나 피난민의 그것입니다.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는 늘 부족했습니다. 언제 도둑떼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여러 부족들과 수없이 싸웠습니다. 많이 다치고 많이 죽었습니다. 늘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스무 살 이상 되는 사람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이들과 달리 모세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애굽을 탈출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 40년 만에 광야의 유목민 신세를 면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노파심으로, 다른 한편으로 영성에 기초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이 본문만 해도 11, 14, 18에서 반복해서 나옵니다. 우선 11절만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이 말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힘들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다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실제로 그랬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12-14절에서 소상하게 말합니다. 가나안에서 먹고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며, 소와 양이 많아지고 재산이 증식되고 소유가 풍부하게 되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소유와 교만과 하나님 망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유가 늘어나면 교만해진다는 게 옳은 말일까요?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요즘 한국은행이 발행한 오만 원 권이 어딘가로 숨는다고 합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차라리 현금으로 자기 집의 금고에 넣어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비상장 주식이 상장이 되면서 갑자기 수십 억 재산가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부자가 되면 마음이 어떻게 될까요. 제가 그걸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갑을관계’라는 말이 우리사회를 특징짓는 말이 되었습니다. 갑은 을을 우습게봅니다. 을은 어쩔 수 없이 갑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이런 관계에서 갑은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소유, 또는 권력이 많으면 자기중심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철저하게 인간중심입니다. 조금만 편리하거나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강과 산을 마음대로 파헤칩니다. 원자력발전소도 무조건 지으려고 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주변을 지배하려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어거스틴은 죄의 본질을 ‘휘브리스’, 즉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아퀴나스는 ‘아모르 수이’, 즉 자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교만과 자기 사랑은 자기 집중, 즉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런 죄로 인해서 인간이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지성인들은 이런 기독교의 죄론을 짜증스럽게, 기분 나쁘게, 또는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인간을 공연히 죄책감에 빠뜨린다고 말입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기독교가 죄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죽음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독교 교리가 멀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여기서 기독교의 죄론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을 시도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거론하고 있는 교만이 왜 인간을 파멸로 끌어들이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교만(휘브리스)은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살아있기는 하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주변세계와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감옥 안에서는 그런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 몸을 보십시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계속해서 바깥세계와 순환됩니다. 피부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세포가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죽습니다. 그런 세포는 암세포입니다. 중풍에 걸려 누워있는 사람이 옆으로 돌아눕지 않고 그대로 누워만 있으면 욕창이 생깁니다. 세포의 질식사가 바로 욕창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밖으로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세계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교회도 죽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렇습니다. 영혼은 하나님과의 소통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에만 집중하는 사람의 영혼은 결국 죽습니다.

그런 죽음은 실제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거니까 일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교만한 사람들도 세상에서 멋지게 사는 걸 보니 교만과 죽음의 관계는 종교적인 의미일 뿐이지 실제적이지는 않다고 말입니다. 예, 겉으로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분들은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런 삶에 축적되는 온갖 욕망들과 허위의식들이, 그리고 세련미 안에 숨겨진 교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아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런 삶을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는 것만은 알아두십시오.

 

낮춤과 복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풍요로운 삶으로 인해 교만해지고, 결국 그런 교만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가 염려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곧 생명과의 단절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반복해서, 귀가 닳도록 권면하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합니다. 고상한 철학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아주 간단한 사건을 짚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16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그 사실을 전합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은 먹을거리입니다. 영양학적으로는 별로 뛰어난 게 아닙니다. 최소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신앙의 핵심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실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이자 인식입니다. 광야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돈도 벌어야 하고, 건강도 챙겨야 하고,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보장된다고 해서 우리의 생존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우리 생존의 근거가 우리 안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밥과 사과도 우리 몸 안에서 자라는 게 아닙니다. 밖에서 자란 걸 우리가 먹을 뿐입니다. 좀더 크게 보면 지구도 스스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태양에 기대 있습니다. 태양도 더 근본적으로 우주에 기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의존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최소한의 먹을거리인 만나가 바로 우리 생존에 필요한 충분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그걸 경험했습니다. 물론 궁핍한 광야의 현실에서 애굽의 풍부한 먹을거리가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겨우 굶주림을 면하는 상황에서 간혹 모세를 원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만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런 시험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희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수련회에서 우리는 ‘성찬 영성’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찬 때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빵과 포도주가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먹을거리, 또한 충분한 먹을거리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런 사실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셨다고 선포했습니다.

16절 후반절을 좀더 세밀하게 보십시오. 거기에 더 놀라운 진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시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세 가지 진술이 나옵니다. 낮춤, 시험, 복입니다. 교만은 죽음을 몰고 오는 반면에 만나로 인한 낮춤은 복을, 즉 구원을 줍니다. 만나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복에 대한 보중이라는 겁니다. 이게 옳은 주장일까요?

만나가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이것, 만나 사건은 생존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 시험을 주시는 분은 태우는 불과 같습니다. 그 불을 통과하면 필요 없는 것들은 타버립니다. 여기서 필요 없는 것은 자기가 뭔가를 이루었다는 교만입니다.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하나님만 신뢰할 때 사람은 복을 얻습니다. 그런 희망과 신뢰 자체가 복입니다. 이게 어떤 분들에게는 추상적으로 들릴 겁니다. 그걸 제가 억지로 이해시켜드리기는 힘듭니다. 한 마디만 보충하겠습니다. 만나 영성을 아는 사람은 이제 모든 삶의 조건을 풍요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농사가 잘 되든지 않든지 상관없이 모든 조건이 만나보다는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뚫어보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네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늘 만나만 먹고 생존의 최소 조건에 만족해서 살라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걸 부정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도취되어서 광야의 삶을 망각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자 숫자와 헌금, 그리고 예배 처소를 확장하는 것에 도취되어서 교만해지는 것이 문제이지 그것 자체를 터부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저는 우리 교우들이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자로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에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이 바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라도, 또한 그 명령의 깊이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표현이 설교 제목에 나옵니다. ‘네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남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로 너의 하나님입니다. 바르트는 <복음주의 신학입문>에서 하나님을 3인칭으로 하면 신학이 본래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2인칭인 ‘당신’으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네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일치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르트는 이렇게 부언합니다. “신학 작업은 정말 진실하게 예전 행위의 형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를 향한 기도로서 실행되어야 한다.”(128쪽). 여기서 예전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공동의 기도를 드리고, 공동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함께 찬송을 부릅니다. 이런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응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네 하나님’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즉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숨을 쉬듯이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을 우리는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그렇게 부를 준비가 안 되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농사를 짓지도 않고 소와 양을 키우지는 않습니다. 최근 중국과의 FTA 체결로 인해서 농사는 점점 더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만 추수감사절이지 별로 실감이 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자동차나 집 구입에 더 실감이 갑니다.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영혼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실존과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준 충고와 명령에 기대서 저도 오늘 여러분에게 똑같이 말씀드립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마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십시오. 그럴 때만 참된 의미에서의 복을 얻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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