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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과 두려움은 항상 생긴다

여호수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394 추천 수 0 2009.06.11 16: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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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수1: 5~9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2월 13일 주일3부설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의심과 두려움은 항상 생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느 전쟁터에서 장군이 두 병사를 불렀습니다. “너희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적의 상황을 정탐하고 오너라” 그런데 두 병사 중에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장대하며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장군님의 명령을 듣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병사는 외소하고 얼굴은 창백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그를 보고 웃었습니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적의 정보를 탐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건장한 병사는 늠름하고 담대하게 자기가 본 사실을 장군에게 보고했습니다만 이 둘째 사람은 너무 나약하고 창백한 얼굴을 가지고 허약한 사람이라 덜덜덜 떨면서 하도 턱이 떨어서 말도 못합니다. 무릎을 덜덜덜 떨면서 그는 겨우겨우 자기가 가서 본 사건에 대한 정보를 보고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그러나 장군은 오히려 이 연약한 사람에게 가서 등을 두드려 주면서 “너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군인이다. 왜냐하면, 너는 천성적으로 약하고 두려움이 많고 허약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이를 극복하고 나가서 의무를 다했으니 너야말로 훌륭한 병사라”고 칭찬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의 생애를 다룬 책 “예수 지하철을 타다”를 쓴 일본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말하기를“ 신앙은 본래 99%의 의심과 1%의 희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었습니다. 좀 과장된 말씀같습니다만 사실입니다. 신앙이란 많은 의심 가운데서 조그마한 믿음의 불빛을 가진 것입니다. 전혀 나는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사람은 거짓말입니다. 언제나 의심이 많은 가운데 조그만한 신앙의 불빛이 반짝입니다. 금을 채광하는 곳에 보면 돌멩이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조그만한 금덩어리 하나 그것을 보고 산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러므로 의심없는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마음에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장군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장하다. 의심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너는 적은 신앙으로 이것을 극복하고 훌륭한 삶을 살았으니 장하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의심하고 두려워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역시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라고 말하면 굉장히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요, 훌륭한 분으로 칭찬하지만 실제로 그 생애를 깊이 들여다보면 신앙이 나약하고 의심이 많고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가나안 땅으로 나왔습니다.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오면 하나님의 축복이 강물처럼 넘실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웬말입니까? 가나안 땅에 대기근이 다가왔습니다. 물은 없고 풀은 다 마르고 짐승떼들은 굶어죽고 종들은 다 도망을 치고 그야말로 고난 속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조카 롯은 밥 달라고 울고 아내는 당황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만 마음속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가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주고 복주며 창대케 하고 창대케 하리라는 그 믿음이 흔들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이제 자기 생존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해야 될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끝까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여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를 믿고 가나안 땅에 머물겠습니다하는 그런 믿음의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환경을 바라보고 허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자기생존을 위해서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지 아니한 애굽땅으로 피난을 가기로 작정을 하고 이제는 거짓말조차 만들어 냅니다. 자기 아내를 보고 “당신은 이쁜 여자라. 애굽에 내려가면 사람들이 당신을 취하고 나를 죽일 터인즉 이제부터 오빠라 부르고 여보라고 부르지 말라. 나도 너를 동생으로 취하겠다.” 그래서 형제간, 자매간 같이 서로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위대한 믿음을 보여줄 것 같은 아브라함이 굉장히 나약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의심이 많고 불안과 공포에 떨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정말 수모를 당하고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매 하나님이 그를 다시 복구시켜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온지 10년이 지나고 난 다음 85세가 되었을 때 상속자가 없으매 하나님께 나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상속자를 달라고요. 어느 날 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천막에서 불러내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별들을 헤아렸습니다.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헤아리고 또 헤아렸는데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를 보고 감격하고 마음에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라의 말을 듣고 또 믿음이 사라지고 마음에 의심이 꽉 들어왔습니다. 믿음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습니다. 사라가 말하기를 “여보! 당신 이제 나이 85살이오, 얼마 있지 않으면 자식을 낳을수 없소. 나는 75살이오 이미 경수도 끊어졌으니 당신의 후사를 이을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후사를 이을 궁리를 하십시오. 내 여종 하갈이 이쁘고 건강하고 생기발랄하니 하갈을 첩으로 취해서 아들을 얻으십시오.” 그 말에 그만 아브라함의 마음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린 것입니다. 조금 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되리라고. “믿습니다.”하고 돌아와서 그만 사라의 말을 듣고 난 다음 마음이 사시나무 흔들리듯이 흔들려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불안에 떨고 사라의 말대로 하갈을 취해서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 약속위에 서서 나갔더라면 오늘날 중동에 저 비참한 전쟁을 피할 수 있었고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도 피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불신앙으로 심은 씨앗을 오늘날 수많은 비극과 살상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위대한 믿음이 용사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생활 속에서는 나약하고 불안하고 공포에 떤 적이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늘 회개하고 그래도 조그만한 불씨가 남아있는 믿음을 붙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승리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믿음의 조상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말씀을 붙잡아야 됩니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심히 바람이 불어올 때 무엇을 붙잡아야 되지 않습니까? 붙잡지 아니하면 바람에 밀려가지 않습니까? 날라갑니다. 그러나 든든한 기둥을 붙잡아야 되는데 우리가 믿음이 흔들릴 때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리처드 범브런트 목사님은 1948년 루마니아가 공산화 될 때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10년이상 감옥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수년동안은 지하 어두운 곳에 갇혀서 불빛도 없는 곳에 지냈습니다. 그러나 버브란트 목사님은 성경을 수백 번 읽으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어찌 나를 이렇게 버리시는가! 내가 주를 증거하는데 왜 공산당 손에 나를 넘기셨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나약하신가!” 그는 그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신앙에 대한 의심과 불안과 공포가 휩쓸어 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경을 읽었는데 성경에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1년 365일 동안 매일매일 두려워 말고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용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그는 훗날에 해방되어서 자유를 얻고 미국에 건너가서 훌륭한 신앙의 증거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항상 묵상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심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심과 불안이라는 눈보라가 칠 때 이 눈보라를 막아주고 눈을 녹여줄 수 있는 길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천국으로 가는 순례가 크리스챤이 의심의 성에 갇히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을 가다가 의심이라는 큰 성에 크리스챤이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의 주인은 절망이라는 거인이었는데 크리스챤을 흠신 두들겨 패고 성의 뒷마당으로 데리고 가서 먼저 죽은 사람들의 해골을 보여 주면서 절망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야 이놈아! 너는 의심의 성에 들어왔으니 이제는 절망이다. 살아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크리스챤은 그날 밤 어두운 토굴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난 후에 다음날 아침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렇다! 나에게는 약속의 열쇠가 있다. 그 열쇠는 이 의심의 성에 있는 모든 문도 열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자유롭게 될 수 있었는데 이제껏 이 어두컴컴한 토굴을 갇혀 있다니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가!”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열쇠를 자물쇠에 꽂았습니다. 그러자 즉시 의심의 성의 문이 열렸고 크리스챤은 계속해서 순례의 길을 갈수 있었다는 천로역정의 기록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천로역정에 있는 나그네처럼 천국가는 동안에 수많은 의심의 성에 들어가서 절망이라는 거인에게 사로잡히고 늘씬 얻어맞아 신앙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을 탈취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약속이라는 열쇠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고 약속을 생각하고 약속을 따라 기도하면 이 의심의 성문을 열고 우리는 뛰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잃지 아니하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약속의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말씀이 별로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가 어둡고 캄캄한 고난에 처할 때는 말씀만이 의심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2. 의심하고 두려워한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해서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의심과 두려움으로 떨던 사람입니다. 더구나 수제자인 베드로 보십시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베세다광야에서 큰 기적을 행하여 수만명을 먹이고 난 다음 제자들을 독촉해서 빨리 갈릴리를 건너가 가버나움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밤캄캄한 밤중에 큰 바람이 불어와서 배가 바다를 헤처나가는데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십니다. 높은 파도를 밟고 낮은 파도를 밟으시면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환한 빛을 내고 오시니까 제자들이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뱃사람들은 바다에 유령이 나타나면 배가 파선된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유령이다고 고함쳐서 모두 다 혼비백산했는데 예수님께서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자 베드로가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주시여든 나로 물위로 오라고 명하소서” 나는 이런 점에서 베드로를 참 존경합니다. 어마어마한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담대하게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전부다 웅크렸는데 베드로는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가 치는데 배밖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을 쳐다보고 오라는 말씀을 의지하고 물위로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일진광풍이 불어와서 베드로의 얼굴을 때리매 물보라가 얼굴에 콱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이 들어오자 그는 물에 빠져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주여 내가 죽나이다. 나를 건져주소서.” 예수님이 그를 건지면서 하신 말씀이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가 조금 전에는 말씀을 의지 했을때는 믿고 나갈 수가 있었는데 말씀에서 눈을 돌이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자 의심과 두려움이 들어오니 물에 빠진 것입니다. 갈릴리의 바다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의 마음의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말씀에 서 있다가 말씀에서 눈을 돌이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자 의심과 두려움이 들어오므로 그는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한 인도선교사님이 기록한 간증을 읽고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커다란 비단뱀의 습격을 받아서 산속에서 감겼습니다. 비단뱀이 얼마나 힘이 센지 감아서 조이면 어떤 짐승도 질식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님이 뱀을 벗어나려고 버둥대는데 점점 더 뱀이 더 조아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 말씀이 이사야서 30장 15절이 생각나더랍니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그래서 즉시 그 말씀을 받아서 그는 발버둥 치는 것을 그치고 잠잠하게 이 말씀을 묵상하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잠시 있다가 뱀이 스르르 풀더니만 그만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았는데 그 주위의 주민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물으니까 비단뱀은 죽은 동물은 절대로 안 먹는 답니다. 휘어 감았는데 끝까지 발버둥을 치는 놈을 먹지 죽어서 축 늘어진 짐승은 안 먹는 답니다. 만약 이 선교사가 살아나려고 끝까지 발버둥을 쳤으면 그는 뱀에게 먹혔어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갑자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잠잠하게 마음을 차근히 가라앉고 있으니까 죽은 줄 알고 죽은 것은 안 먹으니 그냥 풀어주고 가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도 한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불안, 공포, 절망으로 발버둥을 치고 안절부절하면 마귀에게 먹힙니다. 그러나 안전히 처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의지하고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베세다 광야에서 빌립과 안드레를 보더라도 둘이 다 믿음의 위대한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제자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베세다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명이 와서 말씀을 듣고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배가 고프니까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셔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때 빌립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환경을 바라보고 그는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주님! 광야입니다. 떡살 곳도 없구요. 돈도 없고요.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입니까? 못 먹입니다.” 빌립은 아예 의심과 두려움으로 포기해 버렸습니다. 똑같은 제자인 안드레는 그래도 의심을 하면서도 믿고 믿으면서도 의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심이 잔뜩 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조그마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나가 어린아이의 점심 도시락 중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주님께 보고하는 말씀을 보십시오. 믿으면서 안 믿고 안 믿으면서 믿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별로 신앙이 안가지만 그는 신앙의 감으로 가져왔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나는 믿습니다. 그러나 안 믿어요. 안 믿습니다. 그러나 믿어요.” 이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빌립은 아예 포기해 버리고 “나는 안 믿습니다.” 그랬는데 그래도 안드레는 “나는 믿습니다. 안 믿어요. 안 믿습니다. 그래도 믿어요.” 그러나 포기해 버린 빌립은 주님이 사용할 수 없어도 포기를 하지 않고 믿으며 투쟁을 하고 있는 안드레를 사용해서 주님이 복을 내리셔서 그 수많은 군중을 다 먹이고 12바구니 남은 기적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주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몸부림친다는 것은 믿는 믿음으로 서려고 하고 안 믿음으로 낙심하고 “나는 믿습니다. 안 믿어요. 안 믿습니다. 믿어요.” 이러한 발버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가운데 있는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중국의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가 하루는 런던 선교부에서 더 이상 선교비를 보낼 수 없으니 선교 사업을 중단하고 귀국하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국의 깊은 내지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그때는 중국이 막 공산화될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부에서 더 이상 돈을 못대주겠으니 돌아오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자기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보따리를 꾸렸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상하이로 나왔습니다. 하룻밤 여관에서 지내면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성경구절 두 구절이 기억이 납니다. 첫째는 사무엘서에 나오는 ‘에벤에셀’ 즉, 주님께서 지금까지 도와 주시지 않았느냐. 너의 힘으로 목회 했느냐? 에벤에셀 지금까지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네가 내지에서 선교하지 않았느냐? 둘째 성경구절은 ‘야웨이레’ 하나님은 미리 아시는 고로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먼 미래까지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데도 이미 살아갈 길을 예비해 놓은 하나님이 아닌가! 그 두 성경을 밤새도록 묵상하고 난 다음 “그렇다.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장래도 도울 것이고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고로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은 런던 선교부에서 못 도와주더라도 내가 선교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예비했을 것이다.” 그래서 봇짐을 싸고 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신앙선교회라는 선교회를 자기 스스로 조직을 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교한 결과로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 깊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공산화되고 난 다음에 기독교가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중국이 자유롭게 되고 난 다음 들여다보니 허드슨 테일러가 심은 이 복음의 씨앗은 수천만, 수억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승리를 한 것은 허드슨 테일러가 그 믿음의 시련가운데서 의심하면서도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이란 영적인 전쟁입니다. 전쟁은 여러분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 않습니까? 복싱시합을 보세요. 때려서 상대방 코를 때려서 피가 흐르게 하면 상대방은 나를 때려서 눈이 찢어집니다. 이 복싱시합에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말숙하게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때리고 맞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마귀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마귀를 때리기도 합니다. 마귀는 의심과 불안과 공포로써 때리고 또 우리는 믿음으로 반격을 하고 그와 같은 싸움이요, 레슬링인 것입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금요철야기도에 모대학교 학생 한 사람이 기도받으러 왔습니다. 그는 시골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인데 위궤양으로 너무나 고생을 했습니다. 치료도 받을 수가 없고 피가 넘쳐흐르고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교회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금요일날 병자기도회에 나와서 제가 기도를 했는데 그가 “믿습니다.”하고 일어났습니다. “목사님~ 나는 지금 기도를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습니다. 아이고 안 믿어지네.” 나는 그 청년의 절규가 저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목사님 말씀대로 “오늘 병이 나은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소원이요,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도 진실한 고백입니다. “아이고 안 믿어지네.” 믿으면서 안 믿고 안 믿으면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우리 사람들의 체험인 것입니다. 내가 “믿습니다” 하는데 불신앙이 함께 그 속에 들어있고 “나는 안 믿습니다.”하는데도 또 믿음이 그 속에 들어있고. 그래서 믿음과 불신앙은 서로 섞여서 끊임없는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야고보서 1장 6절에는“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끊임없이 의심과 불안이 공격해 오는데 어떻게 단호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단호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후계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될텐데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서 1장 5절로 9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여호수아가 의심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첫째로, 말씀을 항상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바로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율법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폭풍우가 불고 쓰나미가 다가와도 말씀이란 흔들리지 기둥을 붙잡고 있으면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말씀을 놓아 버리면 떠내려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부탁하는 것이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 이 말씀이 마음을 떠나지 말게 하라.
시편 119편 92절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고난 중에 멸망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고 말씀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드와이트 무디 목사님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그 아들을 낳았을때 이름을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라고 무디목사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전장에서도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 포악한 독재자인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이기고 구라파를 해방시킨 것입니다. 당시 아이젠 하워는 늘 자기의 사무실 벽에 붙여놓은 성경구절이 있었습니다. 자기 수첩에다 기록한 성경구절이 있어 늘 그것을 보고 묵상했습니다. 그것이 스가랴서 4장 6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그는 전쟁이 힘으로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된다는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는 전쟁동안에 전략을 짤 때 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모략과 재능을 주시고 능력을 주옵소서.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나 나의 신으로 된다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가 성령께 의지하고 나갔기 때문에 능히 독일을 이기고 이태리를 이기고 구라파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위대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말씀이 바로 의심과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
12년전 영국 런던의 한 신문편집자가 국회의원 대학교수, 사업가, 작가 등 사회 각계 중요인물 1백명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3년간 감옥생활을 한다면 꼭 지니고 갈 세권의 책과 그 이유를 적으십시오.” 그런데 조사결과 놀랍게도 응답자의 98%가 첫 번째의 책으로 성경을 꽂았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기독교인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불신자나 무신론자인데 성경을 가지고 가겠다고 응답한 사실은 성경을 택한 이유는 한결같이 “고난을 당하거나 소외 당했을때 성경이 용기와 위로를 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좋을 때는 소설책도 읽지요. 재밌는 이야기책도 읽지요. 그러나 내가 극한의 고난에 처할 때는 나를 고난에서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희망을 주시고 꿈을 줄 수 있는 책이 성경밖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가장 필요한 친구가 성경말씀이라고 그들이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의지할 때 비로소 의심과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의심이 없는 세계가 없어요. 공포와 불안이 없는 세계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살고 있어요. 그 가운데서 미전투구를 해요. 그러나 말씀에 서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억하면 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기고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기도와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의심과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밸트는 비록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가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을 당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은 아이젠 하워 사령관의 총지휘하에 대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노르망디 해안은 험한 절벽인데다가 상륙작전 전날 일기예보에 폭우와 짙은 안개가 낀다고 해서 도저히 작전을 행할 수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수상, 아이젠 하워 사령관은 모두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17시간 동안 먹지도 아니하고 계속해서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예레미야서 33장 2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루즈벨트 대통령이 17시간 동안 집무실에서 기도할 동안에 원래는 폭풍우가 불고 안개가 끼고 도저히 상륙작전을 실천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 곳인데다 또 그곳에서는 미리 UN군이 상륙할 것을 안 독일 사령관이 철통같이 방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기계화부대였습니다. 탱크와 중무장이었습니다. 이 부대를 동원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막을 수가 있었는데 그 명령은 히틀러밖에 내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전선에 있는 모든 전차부대를 불러들이는 것은 히틀러밖에 못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슨 시간이냐. 히틀러가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히틀러가 너무 깊이 잠이 들었는데 사령관이 히틀러 집무실에 와서 바깥에서 손을 부비고 있습니다. “아이고 히틀러 총통 좀 잠에서 깨어 나십시오. 깨어 나십시오.” 왜요? 히틀러 성격이 하도 고약하기 때문에 잠을 깨웠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히틀러가 잠잘 동안에 손을 비비고 기다립니다. 얼마동안 잠잤느냐.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다 상륙할 때까지 잠을 잤습니다. 하나님이 코를 비틀어 버린 것입니다. “야~ 이놈아! 잠자~”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고 잠잡니다. 그러니 독일은 버젓이 연합군이 상륙하는 것을 알면서도 방비할 기계화부대를 동원하지 못해서 다 상륙하고 난 다음에 히틀러가 잠을 깨고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UN군이 지상에 튼튼한 기지를 만들어 놓았을 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의심과 불안과 초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상전문가들은 폭풍우가 불고 안개가 끼어서 절대로 상륙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심과 불안도 기도는 능히 극복하게 만들어 주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가 의심과 불안과 공포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절대로 거짓이 없습니다. 주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기도해야 그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 안하는데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믿음이란 영적전쟁이다
셋째로, 성경에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굳세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마음을 굳게 먹어라. 담대하게 먹어라. 저도 신앙상담하면서 수없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탄이 되었을 때 제게 기도받고 나갈 때는 제가 언제나 말합니다. “마음을 굳게 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면 하나님은 화를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시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끝까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늘 저는 그 말을 합니다. 성경에는 신명기 31장 8절에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잠언서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강하고 담대한 것은 여러분 마음에 결심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흔들려서 못할 때가 많아요.
19세기 독일의 불름하르트는 튀빙겐대학에서 물리학, 천문학, 세계역사, 철학을 공부하여 당대 가장 학식있는 경건했던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는데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20년 동안 귀신들려 정신병이 걸린 드브스라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사불성으로써 20년동안 살았습니다. 블름하르트는 이 자매를 위해 영적전쟁을 치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늘 그녀를 위해서 매일같이 기도를 했는데 한번은 1845년 7월 20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자매를 두고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원수 귀신아 드브스 자매에게서 떠나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아~ 불름하르트 박사님이 헛된 일을 하고 있구나! 저런다고 낫느냐?” 그러나 불름하르트 교수는 굳게 믿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여 계속해서 그 자매를 위해서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그해 12월에 드브스 자매에게 갑자기 경련이 일어나고 고함을 치더니만 귀신이 떠나가고 정신이 말짱해져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자 온 교회 목사와 성도들이 이 광경을 보고 “이야말로 하나님의 기적이 불름하르트 박사의 기도를 통해서 일어났다.”고 감탄했습니다. 어떡해서 일어났습니까?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학자요, 석학이었지만 영적전쟁은 오직 기도를 통해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매달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해외선교를 많이 합니다. 수 만명 혹은 수십 만명 혹은 백 만명이 모여서 있습니다. 말씀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 죄인 회개할 사람 나오라고 하고 그 다음 병자위한 기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저의 마음은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가 와서 내게 말합니다. “오늘은 병자위해 기도하지 말아라! 한 사람도 안 나을 것이다. 너 만일 병자위해 기도하고 치유된 사람 나오라고 한 다음에 한 사람도 안 나오면 너 망신, 하나님 망신 합동 망신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만큼 수고했으니까 그만하고 축도하고 돌아가거라!”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성령께서 말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저는 언제나 그 갈등 속에서 몸부림칩니다. 제가 해외선교를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니고 수십년 하지 않았습니까? 그만하면 마음속에 용감하고 담대하게 될것 같은데 안 그래요. 언제나 수많은 군중앞에 서서 설교를 끝마치고 난 다음에는 곧장 마귀가 와서 말합니다. “야~ 오늘은 절대로 기적이 안 일어난다. 너 망신, 하나님 망신 합동 망신, 대한민국 망신 다한다. 온갖 주접은 다 떨 것이다. 그러니 그만두라! 그냥 물러서도 너 손해 볼 것 없잖느냐. 저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으니까 다 잘했다고 하지 못했다고 할 사람 없지 않느냐.” 아이고 그 말 따라갈까 싶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같이 하노라!” 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눈에는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소리 안 들려도 담대하게 나갈 때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번연히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고도 그 다음날 또 흔들리는 것입니다. 또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체험담을 말씀해 드리는 것은 제가 저의 생애 속에 강하고 담대 했을때 가장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했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놀래서 뒤로 물러갔을 때는 아무런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고 마음을 굳게 먹는 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마음을 굳세게 하고 담대하게 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수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블레셋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 왔을 때 사울과 그 역전의 용사들은 다 의심과 두려움으로 혼비백산했습니다. 골리앗이 와서 이스라엘에 대항할 사람 보내라고 할 때 아무도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40일 동안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공갈하는데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들은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때에 초립동 다윗 17살쯤 먹은 소년이 왔습니다. 그는 분노막심해서 사울왕에게 가서 “내가 가서 싸우겠다. 어떻게 할례받지 않은 저 이방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합니까? 내가 가서 싸우겠다.” 사울왕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야~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장군이요, 지금은 대장군이요. 너 17살 먹은 초립동이 나가서 어떻게 싸운다는 것이냐? 못 싸운다.” 그때에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고 가면 입에서 빼앗고 달라 들면 주먹으로 쳐서 죽였으며 사자와 곰도 내 주먹에서 죽었는데 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사자와 곰 중에 하나같이 되리이다.”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간이 배밖으로 나왔어요. 얼마 전에 TV에 보니까 어린아이가 간이 배밖에 나온 어린아이가 있어요. 정말 간이 배밖으로 나와서 덜렁덜렁 하는데 그것 수술해서 넣지도 못하고 너무 불쌍합니다. 그런 간이 배밖으로 나오지 말고 믿음의 간이 배밖으로 나와야 돼요. 다윗은 간이 배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역전의 용사인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들이 다 두려워서 혼비백산 하는데 불과 17살쯤 되는 초립동이 일어나서 “내가 나가서 싸우겠다.”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린 소년이든 장년이든 강하고 담대함이 없으면 하나님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마귀가 언제나 우리에게 빼앗는 것은 강하고 담대함을 빼앗고 불안과 의심과 공포와 좌절감을 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하여 나가겠다고 하니까 사울왕도 장군들도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목자의 옷을 입고 물멧돌 다섯 개 가지고 나갔는데 무엇으로써 싸워서 이기겠느냐. 입심으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의심과 불안과 공포와 싸울 때 입심으로 싸워야 됩니다. 입심이 약하면 져요. 입술에 고백이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 열사람이면 여덟사람이 기도하고 믿습니다로 나갔다가 다 넘어뜨려지는 것은 입으로 마귀와 입씨름에서 집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망했다.” 항복하므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기도하고 믿었으면 강하고 담대하게 입으로 고백하고 입심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가면서 골리앗과 입씨름에서 이겼습니다. 다윗의 입심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들어보세요.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간담이 서늘한 말을 했습니다. 다윗의 입술의 고백이 벌써 골리앗의 마음을 쥐어 흔들었습니다. 마귀의 싸움에는 입심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입심이 약하면 안돼요. 내 말로 네가 묶였으며 내 말로 네가 사로잡혔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의심과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려면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담대한 말씀을 고백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입심이 약하면 밤낮 마귀에게 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전쟁에 입심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야 되고 기도와 성령을 의지해야 되고 그리고 강하고 담대해야 되고 마지막으로 입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같이 담대하게 입씨름에서 이기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가서 물멧돌로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대승리를 가져오게 했지 않습니까?
제가 존경하는 오스틴 팁 목사님이 임종이 가까웠을 때 꿈을 꾸었는데 그가 나중에 죽기 전에 간증을 했습니다. 꿈에 마귀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딥! 너는 평생동안 내 일을 방해한 나의 원수다. 너는 지금 병이 들고 힘도 없고 죽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내가 너를 복수할 것이다. 너를 끌고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딥 목사님은 오히려 마귀에 호통을 쳤습니다. “마귀야! 네가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나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 너는 나에게 손가락 하나도 댈 수 없다.” 그러니까 마귀가 그만 돌아서더니만 휙 하고 사라지더랍니다. 입심으로 이겼습니다. 바로 죽는 자리에서 임종에서도 마귀가 다가 왔을 때 입씨름으로 이긴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무엇을 가지고 매고 푸느냐, 입술의 고백으로 매고 푸는 것입니다.

[결론]
특별히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 외에는 그 영혼 속에 의심과 두려움과 괴로운 싸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과연 내 기도를 들어 주실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 하나님이 과연 나를 돌보실까?” 끊임없는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과 초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주여~ 믿나이다. 아이고 안 믿어지네.” 그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께 온 아버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상에 가서 기도하고 난 다음 제자들하고 내려오니까 그 아버지가 뛰어나와서 “주님이여, 내 아들이 흉하게 귀신들려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던져집니다. 내 아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무엇을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그때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니 그 아버지가 뭐라고 했습니까? “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아이고 안 믿어지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금방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가 하면 또 없고 없는가 하면 또 있어요. 믿는다하면서 또 안 믿고 안 믿는가 하면서 또 믿어요. 채광하는 곳에 가보십시오. 금이 있는 곳을 파헤쳐서 수많은 바위덩어리를 깹니다. 그 가운데 조그만한 금덩어리 하나가 있습니다. 금덩어리 하나를 귀하게 여겨서 그 많은 바위를 파헤쳐 내어 놓는 것입니다. 바위 때문에 채광하는 사람이 불평하지 않습니다. 금을 발견한 것을 기뻐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산더미만한 불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조그마한 금덩어리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앙의 그 바윗덩어리를 보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조그마한 금 같은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크면 좋지요. 믿음이 사과만하다. 수박만하다. 혹은 오렌지만하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의심이 태산 같아도 조그만한 믿음하나만 있어도 즐거워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것은 여러분의 의심이 아니라 의심가운데 있는 반짝하는 조그마한 믿음 그것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그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마시고 안 믿으면서도 마음속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감사하시고 안 믿으면서도 믿고, 믿으면서도 안 믿지만은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면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들어서 여러분의 생애 속에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의심과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심과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의심이나 불안이나 공포나 좌절이나 절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조그마한 불빛인 믿음이 있는 것을 주님은 보고 즐거워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태산을 옮기는 기적을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믿음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 있는 것을 찾아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적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서게 도와주시고 하나님께 굳세게 기도하고 성령께 의지하게 도와주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도와주시고 말씀의 고백으로 입심으로 이기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삶속에 마귀를 이기고 믿음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을 붙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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