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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수14:6-1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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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 스트레이트 스토리 >
지난 화요일 저녁, 서울에 계신 한 선배 목사님 내외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73세의 앨빈 스트레이트 할아버지 이야기를 그린 스트레이트 스토리라는 영화입니다. 영화 내내 스트레이트 할아버지가 잔디 깎는 기계를 운전하며 형을 찾아가는 영화로, 얼마나 영화가 지루한지 11 커플이 영화를 보는데 4 커플이 영화 도중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영화 끝난 후 나머지 7 커플은 감동으로 잠시 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번 겨울에는 왠지 하나도 춥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힘과 용기가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트레이트 할아버지는 아이 키울 능력이 없다고 4자녀를 정부에 뺏긴 딸과 사는데 어느 날, 오래 전 말다툼으로 만나지 않던 형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그 연락을 받고, 시속 8킬로로 42일 동안 잔디 깎는 기계를 몰고 형을 찾게 되는데, 도로를 따라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을 통해 인생의 교훈을 나누고, 결국 형을 만나는 작은 성취를 통해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버스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잔디 깎는 기계로 느리고 고통스런 여행을 한 것은 오랜 세월 동안 형을 용서하지 못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로 택한 여정이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고 아무 것도 없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저는 이 스트레이트 할아버지를 보면서 언뜻 성경에 나오는 갈렙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85세 노인 갈렙의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희망을 줍니까?
< 갈렙의 성실 >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갈렙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표현됩니다.
본문 14절 말씀에서도 역시 갈렙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표현됩니다. 갈렙은 원래 에돔 족속이었던 '그니스 사람(the Kenezite)'으로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민족감정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믿음 좋고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믿음 좋고 성실한 사람은 반드시 쓰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미국 대통령 승계 서열 3위에 있는 국무장관은 흑인 이민가정 출신인 파월입니다. 그는 미국 육사 출신도 아니고 ROTC(학사장교) 출신으로 군 최고 자리에 올랐습니다.
지연, 학연, 혈연이 출세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입니다. 그런데 성실한 사람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본문에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겸손히 헤브론을 요청하는 모습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원래 갈렙은 45년 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던 정탐 동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 앞에 나아가 헤브론을 당당히 요구하지 않고 겸손히 청원합니다. 결국 갈렙은 무릎을 꿇고 여호수아의 축복을 받고 그의 허락 하에 헤브론을 차지합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라이벌 의식을 가질 위치임에도 오히려 여호수아를 높여주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갈렙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넓은 마음의 갈렙아! 너야말로 정말 위대한 나의 제자이다!"라고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갈렙은 원망과 불평, 섭섭함과 인간적인 감정을 다 이기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연장자이자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모세를 충성스럽게 받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 밑에서 같이 활동한 동료 여호수아를 이렇게 받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갈렙의 위대한 점입니다. 갈렙은 둘째 자리라도 기쁘게 그 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정말 잘 믿는 사람은 첫째의 능력을 가지고도 둘째 자리에 있기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셋째, 넷째 자리보다 둘째 자리에서 시험에 잘 빠지는 이유는 경쟁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경쟁심보다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사람의 보상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음에 하늘을 품고 있었던 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스타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스타보다 썩어지는 밀알을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에서 성실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성실하게 보고했다는 말은 사실대로 보고했다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정탐한 12명 중에 10명은 "가나안이 강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사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보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절망시켰습니까?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는 충분히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실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성실함은 단순히 정직하고 충성하는 것 이상으로 그 행동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실한 믿음과 헌신적인 열정을 반드시 기억하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결국 갈렙은 그런 성실한 믿음으로 가나안 땅의 핵심인 헤브론 땅을 얻게 됩니다.
< 갈렙의 믿음 >
그러면 갈렙의 믿음은 어떤 모습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니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이 구절에서 '온전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말레'는 원래 '만족시키다'는 뜻입니다. 즉 갈렙은 하나님께서 만족할 만한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본문 12절을 보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산지'는 헤브론 산지로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정복하기 힘든 땅을 나이 85세에 달라고 하는 용기를 보십시오. 이처럼 우리는 환경을 초월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불꽃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개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핑계하는 자가 되지 말고 환경을 극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노루를 피하면 범을 만나고, 나무 십자가를 피하면 쇠 십자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반드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 어려운 환경이 생길까요? 대가를 치르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지만 왜 어떤 사람을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할까요? 성공하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기 위해서 과감히 결단하고 대가를 치릅니다.
그렇게 대가를 치르고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으면 반드시 더 큰 축복이 준비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갈렙에게는 헤브론 산지보다 더 어려운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월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도 극복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45년 전과 비교해서 몸은 약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 강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겸손함은 필요하지만 결코 나약한 모습, 자신 없는 모습은 없어야 합니다. 항상 담대하고, 용기 있고,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이 나아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은 약해져도 믿음은 강해져야 하고, 꿈과 희망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을 따라 몸은 늙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늙지 말고 더 새로워져야 합니다. 믿음이 늙지 않고 꿈을 잃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환경을 극복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면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18세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조지 휫필드는 복음 전파에 열정을 바쳐서 30년 동안 일주일에 평균 50시간을 설교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해지자 사람들이 조금 쉬라고 했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1770년 9월 29일, 병약한 상태에서 전도집회를 마치고 보스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엑스트라는 작은 마을에 묵는데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날만은 쉬라고 말했지만 휫필드는 몰려온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을 전했고, 그날 밤 집회는 은혜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식사하라고 휫필드를 깨웠지만 그는 이미 천국에 간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몸은 늙어가도 꿈과 열정만은 결코 잃지 말아야 합니다.
< 갈렙의 비전 >
어떻게 갈렙이 85세가 되도록 건강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서 '그 날에'라는 말을 보면 갈렙은 45년 전의 꿈을 잃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의 일생을 건강하게 지탱시켜주었던 것은 바로 거룩하고 소중한 꿈이었습니다.
갈렙이 지나왔던 광야의 삶을 포함한 45년의 삶은 참기 힘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물과 양식은 부족했고, 추위와 더위, 전쟁, 뱀, 전갈, 전염병의 공격까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까지 들어갔지만 갈렙은 45년 전의 꿈을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더 훌륭한 점은 꿈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바로 그 꿈이 그의 믿음과 건강을 지켜주었고, 마침내 그는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중도에 포기합니까? 꿈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꿈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희망을 지켜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적인 꿈은 점차 희미해지지만 거룩한 꿈은 더 선명해져야 합니다. 천국의 꿈이 더 선명해지고, 그 꿈을 기초로 거룩한 일에 대한 꿈을 선명하게 가지면 마음은 항상 건강할 수 있고, 나이가 들어도 열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혹 그 꿈을 이루지 못해도, 그 꿈을 가지고 사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서울에 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이 50이 넘어 북한 선교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부동산을 하나씩 포기하면서 북한 선교를 위해 후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꼭 그런 식으로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그는 말합니다. "지난 50년 동안은 남을 생각하며 살지 못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헌신하면서 그분은 이제껏 몰랐던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왜 돈을 벌고, 왜 그토록 열심히 자녀를 키우고, 왜 그토록 열심히 삽니까? 인생의 보람과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꿈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과 환상과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 진정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꿈이 거룩한 꿈이 되게 할 때 그것이 복된 인생의 모습입니다.
<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오히려 "이 산지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85세에 노인마저 요단강 변 기름진 땅을 원하지 않고 험난한 헤브론 산지를 원했습니다. 뭐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갈렙은 대접받으며 편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험난한 산지를 달라고 하면서 자기 인생을 다시 새롭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틀림없이 아낙 자손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처럼 85세의 노인이 희망이 잃지 않았다면 우리도 결코 희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가장 큰 실패는 입시 실패나 사업 실패가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실패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길은 활짝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너무 공부를 못해 부모는 그 소년을 아예 포기했습니다.
선생님도 그 소년을 가망 없다고 보았고, 친구들은 '바보'라고 같이 놀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쥬리히 공대에 입학시험을 쳤는데 그 시험에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수해서 쥬리히 공대에 들어간 후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게 시작했습니다. 그가 26세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42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탄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건강한 믿음이고,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산이 있으면 산을 오르면 됩니다. 오르기 힘들면 산을 깎든지 터널을 뚫으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사실상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희망을 만들고 희망의 빛을 비추고 전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선교란 희망을 감염시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거룩한 일은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죄는 희망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땀을 흘려도 우리 인생은 황무지처럼 변해버립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희망을 전하는 삶입니다. 세상일에 짓눌려 희망이 줄어들고, 더불어 마음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그들의 장점을 깨우쳐주고, 격려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우리가 돈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가 바로 희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거룩한 비전이라도 포기하면 그것은 헛된 몽상이 불과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아무리 거룩한 비전을 세워도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역시 헛된 몽상이 됩니다. 비전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도 기도 후의 행동이 없으면 역시 헛된 몽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대가를 치르면 반드시 그 비전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편안하고 쉽게 예수님 믿으려고 하면 우리의 비전은 결코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갈렙이 비전의 성취를 위해서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준비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40세에 비전을 받고 45년이 지난 8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비전을 성취하지 않습니까? 그 45년 동안 갈렙은 비전이 늦게 이루어진다고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4년 정도는 너끈하게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써도 참고 삼킬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비전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비전을 이루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더욱 확신을 가지고 그 비전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성급히 판단하며 비전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원래 신앙적인 선택이란 처음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시작했지만 점차 창대하게 되는 길이 바로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넓은 길만을 찾는 것은 아무리 해도 신앙적 선택이 아닙니다. 갈렙처럼 나이 85세에도 "이 어려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면서 어려운 길에서 축복의 씨앗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요단 땅과 같은 벌판만을 구하지 마시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용기 있게 선포하고 그 산지를 향해 도전하여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그 어려운 산지가 어떻게 됩니까? 그곳이 팔레스타인의 중심지역이 됩니다. 그리고 그 헤브론 지역에 예루살렘이 건설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서게 됩니다. 현실의 눈으로는 정복하기 힘든 땅이지만 정복하면 놀라운 은혜의 터전이 됩니다. 어려워도 용기 있게 선택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곳을 축복의 땅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돈이 없고,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보십시오. 그의 도덕정치는 성공하지 못해서 현직에 있을 때 정말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결국 다음 번 선거에서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에게 비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에 기초한 정치보다 연극적인 요소가 있는 정치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습니까? 그에 대한 평가가 날로 높아지지 않습니까? 그분의 나이가 지금 8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60세에 히말라야 정복을 시도했고, 64세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봉을 정복했습니다. 또한 분쟁과 어둠에 있는 곳에 가서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항상 말합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할 때 인생은 늙기 시작한다." 그래서 카터는 후회할 시간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꿈꾼다고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맨 날 후회만 하고 탄식만 하면 그 인생은 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얼마든지 인생을 젊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솔직히 두렵긴 합니다. 사람들이 한 물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이의 산지'도 정복해야 합니다. 지난 화요일 만난 선배 목사님은 온누리 선교훈련원에서 10년간 선교사를 훈련시키고 70세가 되면서 새롭게 하실 일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도전이 되는지 모릅니다.
< 갈렙의 승리 >
결국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얻었습니다. 그 뒤 헤브론 산지가 어떻게 변합니까?
본문 15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갈렙은 그 땅을 정복하고 희망과 평화를 심고 내일의 예루살렘의 기초를 닦습니다.
험한 산지를 축복의 땅으로 만든 이 삶이 바로 진정한 승리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헤브론을 얻는 것은 성공입니다. 그러나 헤브론을 축복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승리입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 후의 평화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축복을 받고 성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축복과 성공이 공동체의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 성공은 재고해야 합니다. 아무리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내 야심만을 채우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 패배입니다. 기독교인의 참된 성공은 성공 후에 그 성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렙은 진정한 의미의 성공자인데, 그런 성공자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 한동대에 있는 저의 1년 선배 목사님이 태국에서 나환자 선교를 위해 애쓰는 태국 코코스(kokos, 밀알) 선교회에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지금 코코스 선교회에서는 약 100여명의 나환자 자녀를 맡아 교육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년부터 우리 교회와 요삼일육선교회에서 코코스 선교회를 지원하려고 하는데 여러분들도 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정한 성공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성공을 통해 사랑을 건네줄 때 오히려 사랑을 받아 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꿈을 가로막는 일을 만나지만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할만한 곳에서 희망을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갈렙처럼 믿음을 가지고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희망을 만들려고 애쓸 때 세상의 어둠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갈렙의 성실, 갈렙의 믿음, 갈렙의 비전으로 희망을 가꾸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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