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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키려면

여호수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56 추천 수 0 2010.10.18 23: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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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수2:1-14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2007.10.21/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어떤 경기든 역전하여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계속 지고 있다가 9회 말에 홈런을 쳐 역전시키면 관중들을 환호합니다. 1977년 파나마에서 홍수환 선수가 상대 선수의 강펀치로 네 차례나 넘어졌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고국의 권투팬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 왼손 훅으로 상대를 쓸어뜨려 절망을 승리의 환호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4전 5기의 대역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험난한 실패의 현장에서 일어서 승리하는 역전 인생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신자유주의 , 지식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7년 4월 국내 매출액 100대 기업의 직원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대기업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1.7년에 불과했습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에 부가가치세를 납부한 전국 음식점 약 56만 6000곳 중 10년 이상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곳은 전체의 7.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을 마지막까지 역전승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역전의 인생을 삶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중년 실직자에서 벤처대부로 우뚝 선 정문술 사장이나 퇴출된 뒤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을 보면 얼마나 용기가 납니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고통을 행복으로 뒤집는 인생을 보며 감격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수많은 고난의 강과 역경의 늪을 건너지만 쓰러지지 않고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희망과 용기가 생깁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라합같은 여인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절보면 기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드러운 표현이고 실제적으로는 매춘부, 창녀입니다. 어떻게 기생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기생들이 그렇지만 너무 가난하여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어선 길이었을 것입니다. 여리고는 당시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큰 샘을 소유한 풍요로운 지역입니다. 상업과 농업 매우 번성한 땅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결국 매춘부로 전락하였을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딸이 매춘부로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스스로 매춘부로 인생을 살기 원하겠습니까? 자신의 인생을 숙명으로 받아드리고 체념하며 사는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할 희망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버림받고 소외된 비참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극적으로 변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이 망하기 직전에 인생이 극적으로 역전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는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살리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가족 모두를 구원시킨 최초의 이방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가족의 수치였는데 이제 가족을 살리는 자랑스런 여인이 된 것입니다. 결혼도 하지못하고 그저 비참하게 인생을 끝마쳐야 할 여인이었는데 이방 여인으로 그것도 과거 매춘부 출신으로 유다 지파 살몬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춘부가 왕족이 된 것입니다. 다윗 왕의 고조모가 되었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 다윗 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위대한 왕국으로 생각하는 다윗 왕조가 나온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명문가정을 이룬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온 여인 중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혈통과 가문을 왕족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마태 1:5)
그 뿐입니까? 히브리서에 보면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 라합이라는 여인의 믿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영적인 명문가문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의 믿을 소개하고 바로 기생 라합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모세 다음에 가나안 정복의 명장 여호수아나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정복의 공헌을 세운 명장 갈렙의 믿음을 소개할 것같은데 하나님은 라합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에도 행함있는 믿음을 소개하면서 기생 라합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위대한 행함있는 믿음을 소개하면 야고보서에서는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바로 라합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대단하게 평가해 주시는 것입니까? 참으로 비참하게 살다 죽음으로 그 모든 수치를 마감해야 했던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킨 인물입니까? 성경의 인물 중에서 라합처럼 역전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도 숙명 같은 인생을 역전시켜 참으로 하나님 안에서 복받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답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신분이 변화되는 믿음으로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라합의 인생이 어떻게 역전되었는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라합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이겠습니까? 라합의 직업입니다. 매춘부라는 직업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조건과 환경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이 기회가 되고 디딤돌이 되어 숙명같은 비참한 운명을 역전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합은 자신의 비참한 신분이 기회가 되어 인생을 역전시킨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두고 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을 여인숙으로 택하였습니다. 아마 이들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하루 밤을 지내기에는 가장 안전한 집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생이 아니었다면 결코 정탐꾼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만남을 돈버는 기회, 몸파는 기회가 아니라 신분을 바뀔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을 해 올 것이라고 예측한 여리고 왕은 곳곳에 경계를 강화하고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하라고 엄명을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기생 라합의 집에 위장하고 잠입했지만 곧바로 왕에게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이스라엘 사람이 정탐하러 들어 왔다고 왕에게 보고 된 것입니다. 간첩 침투 소식을 듣고 왕은 군대를 라합의 집에 급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라합이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마음에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을 숨겨 주고 자신의 나라를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신고하여 상급을 받고 좀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 라합은 이 두 사람을 숨겨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내게 왔으나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유인책을 썼습니다. 그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 쯤 급히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따라 잡으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지붕의 삼대 밑에 숨긴 것입니다(6). 위험한 길, 모험의 길을 택했습니다. 만약 탄로 나면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왜 이들을 숨겨 주고 거짓을 말하고 유인하여 이스라엘을 도와 주었을까요? 9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그의 인생을 역전시킨 비결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믿는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다는 것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마르게 한 일,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쓰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의 무소부재성을 믿게 된 것입니다. 자기 민족이 이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신다는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존재를 믿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을 믿고 그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살아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시어서 가나안 땅을 능히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권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음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믿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그분이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숙명처럼 매춘부로 살 수 밖에 없는 기생 라함을 믿음의 영웅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타락의 땅에 핀 믿음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숙명처럼 죽어가는 인생,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인생, 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늘 죄의 지배 속에서 허덕이어야 할 인생,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늘 불안 속에 살아야 할 인생을 역전시켜 천국 백성으로 참된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로 이 땅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아는 믿음이 아닙니다. 귀신들도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라고 했습니다. 듣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록 이방 여인입니다. 창기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니까 인생이 역전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변화되어 지옥으로 가는 인생이 천국으로 가는 인생으로 역전됩니다. 우리는 작은 믿음이라고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욥기 8장 5절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기생 라합은은 작은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명문 가문을 만들고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든지 인생은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신분이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창녀에서 신앙인으로 신분이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신분이 결정되는 것은 부모에 의해서도 되지만 배우자를 만나 결혼함으로도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면 우리의 신분은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만나자 다윗은 목동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자 랍비에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은 어부에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조를 위해서는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마음 체계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2.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삶의 질을 변화시켜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켰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신분이 변화되어 지옥가는 인생이 천국 가는 인생으로 역전됩니다. 이것은 순간적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질이 순식간에 역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숙명처럼 가난으로 살던 사람이 그 순간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으로 인하여 숙명처럼 비참하게 살던 사람 모두가 그 순간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인생의 문제로 늘 근심 걱정하고 사는 사람들은 어느 날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만족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라합을 보십시오. 어떻게 인생을 역전시켰습니까? 작은 믿음으로 큰 일을 하였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하여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으면 삶의 질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죽은 믿음과 같습니다.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행함있는 믿음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믿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만 머무르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에서 멈추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손발로 실행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릎 쓰고 간첩을 자기 집에 숨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과감하게 모험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죽음과 삶의 주관자이며 역사의 주인이다는 사실을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에서 줄을 매달아 정탐꾼을 피신시킵니다.(15) 이웃들이 보면 어떻게 합니까? 비상사태입니다. 도망가는 방법까지 알려 줍니다. 만약 걸리게 되면 당장 반역죄로 처형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믿는 믿음에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9).
그래서 야고보를 통하여 하나님은 라합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행함있는 믿음의 대표자로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바로 라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많이 아는 것 중요합니다. 고백하는 믿음 중요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따라 주어야 진정 믿음의 능력을 체험받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삶의 부정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작은 믿음이지만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다 보면 삶의 질은 어느새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궁지에 빠지면 빠질수록 오히려 더 높은 곳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러 차례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도산 위기에 빠진 크라이슬러 사를 재건하여 뛰어난 경영가로 명성을 날린 아이아코카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역경에 빠졌기 때문에 오히려 행운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나서야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진지하게 대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질곡에 들어가면 그 때 내게 주신 믿음의 능력을 발휘할 때라고 받아들이고 그 믿음대로 행해 보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하나님께서 건너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만 있으면 삶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으면 그 말씀 의지하여 법궤를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리고성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면 무너질 것이라고 믿고만 있으면 삶은 역전되지 않습니다. 적들이 돌을 던질지 화살을 쏠지 모르지만 말씀 의지하고 그저 돌면 역적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 장군이 한 여인의 말만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났게 될 것이라고 믿음만 가지고 있었으면 삶은 역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니까 문둥병이 깨끗이 치유되어 숙명같은 인생은 역전되었습니다. 문둥병 환자 제사장에게 보이라면 가다가 죽은 한이 있더라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숙명같은 인생이 역전되어 지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누가 그랬더라, 성경에서 그랬더라로 끝나면 안됩니다. 작은 것이라고 내가 걸어가고 내가 행하고 내가 실행을 해야 합니다. 행함있는 믿음이 능력이 있습니다. 라합의 행함있는 믿음은 육신의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구원을 믿음으로써 라합은 그것들을 믿는 사람답게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첩자들을 구출해 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습니다.

3.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최후의 승자가 되어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켰습니다.
숙명같은 인생의 역전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최후 승자가 중요합니다. 아간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땅도 차지하지 못하고 정복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온가족이 죽는다면 최후 승자는 아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오순절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참으로 부흥하는 교회에 있었지만 거짓을 말하다가 부부가 죽임을 당한다면 최후 승자는 될 수가 없습니다. 과정에 집착하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최후 승자가 되어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키려면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 하나님 앞에 평가받을 날을 늘 바라보면서 사는 믿음입니다. 라합을 보십시오.
라합이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으니까 너희들도 내 아버지 집을 선대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무엇을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를 생각합니다. 분명 여리고를 점령할 때가 올 것을 확신하고 그 때의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정탐꾼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정탐꾼은 이 일을 누설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주실 때 그 요구를 반드시 들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창에 자신들을 달아 살려준 붉은 줄을 매달고 부모 형제를 그 집으로 모으라고 했습니다. 붉은 줄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보증물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히9:11-22)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시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어린양의 피와 같이 예수님의 보혈 상징하는 내용입니다. 그 보증물을 믿고 의지하면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가 노아의 방주를 짓고 그 안에 들어감으로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 시대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거하면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롬3:21-26) 있으면 최후 멸망의 날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붉은 줄을 매달라는 말을 듣고 라합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붉은 줄을 창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을 보십시오. 여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라합과 그 가족은 살아났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수 6:17)"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수 6:23)"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수 6:25)" 이러한 라합의 믿음을 하나님은 히브리서 기자를 통하여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상급받은 믿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결국 함께 멸망한 것이 아니라 다 멸망할 때 살아 났다는 것입니다. 나쁜 환경을 극복하고 마지막 승리한 멋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개하면서 11:6에서 이런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믿고 나아가면 상을 주십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까지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최후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는 말을 들으면 안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우리는 여리고가 무너질 때 살아 남은 라합처럼 마지막 이 세상의 종말이 올 때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 최후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그 날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약1:12)을 받습니다. 사명을 다 감당한 사람은 의의 면류관(딤후4:8)을 받습니다. 믿음의 정조를 지킨 사람은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고전9:25)을 받습니다. 주를 위해 순교한 사람은 순교자의 면류관(계2:10)을 받습니다. 충성스럽게 영혼을 돌본 사람들은 영광의 면류관(벧전5:4)을 받습니다. 영혼을 구원 사역에 전력한 사람들은 기쁨의 면류관(살전2:19,20)을 받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들은 자랑의 면류관(살전2:19)을 받습니다.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키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신분이 변화되는 믿음으로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켜야 합니다.
구원얻는 믿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삶의 질을 변화시켜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켜야 합니다.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마지막 주님 앞에 설 때 최후의 승자가 되어 숙명같은 인생을 역전시켜야 합니다.

2007.10.21/열린교회/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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