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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9: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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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09·25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는 매일 어떤 결정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는 것은 심각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도 중요한 문제를 놓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배우게 됩니다.
또 실패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고 견고한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작은 성 아이에서는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아간의 죄를 제거한 후 그들은 다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 모든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모세의 율법을 빠짐없이 낭독했습니다. 백성들은 율법이 낭독될 때마다 아멘으로 소리쳐 화답했습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미래는 이 율법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또 다시 패배하게 되고 비참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기브온 사람들과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진으로 찾아와 먼 곳에서 왔다고 속이고,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화친을 청했습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들의 말에 속아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살고 있는 족속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맺은 조약 때문에 그들을 살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속은 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14절) 아이 성 전투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가 패배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또 다시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특히 죄악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사도 바울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이 새롭게 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연합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정복하는 것을 보고 가나안 족속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족속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다 멸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들도 여리고나 아이처럼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여러 족속들은 연합전선을 구축했습니다.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1-2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단순히 땅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을 참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죄악이 가득 찬 것을 보시고 드디어 그들을 심판하기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우상과 죄악이 가득한 그 땅을 심판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그곳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다투며 전쟁을 일삼던 족속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과 가나안 연합군 사이에 대규모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직면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성도가 여리고에서 승리하고 아이에서 또 다시 승리할 때 사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성도가 부흥회를 하면 사탄도 부흥회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할수록 부딪히는 것이 많아지고 강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갈등과 싸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당하는 갈등이나 어려움이 없다면 자신의 신앙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브온 족속
가나안 족속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하려고 할 때 유독 기브온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워서는 전혀 승산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싸우기 보다는 화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과는 화친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먼 곳에 있는 성읍을 칠 때는 먼저 화평을 선언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 즉 가나안 땅에 있는 민족들과는 화친하지 말고 다 멸하라고 명했습니다.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20:15-18)
기브온 사람들은 이 사실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보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멀리 있는 족속들인 것처럼 속이고 와서 조약을 맺자고 청했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3-6절)
기브온 족속이 이렇게 화친을 청해온 것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나라도 세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 두 사람도 아니고 한 성읍이 항복을 해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화친을 청했습니다. 기브온이 이렇게 항복해온 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철저하게 가나안 족속들을 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여리고나 아이 사람들을 살려주고 적당히 화친을 맺었더라면 기브온 사람들이 항복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 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타협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타협하거나 굴복하기 시작하면 다음부터는 믿음을 지키기가 불가능해집니다. 한 번 술을 받아 마시면 다음에도 마셔야 합니다. 주일에 출근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도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은 어렵게 얻은 직장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주일에는 출근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습니다. 그 대신 평소에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일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철저히 선을 그었기 때문에 회사가 아무리 바빠도 출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철저하게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라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속아 넘어간 이스라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족속들의 제의를 받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들은 먼 곳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와 항복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7절)
이 질문에 기브온 사람들은 더욱 그럴듯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니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라 하였나이다”(9-11절)
보기에도 정말 먼 곳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고, 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외모도 그럴듯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며, 겸손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대단히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 조약을 맺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회심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에 편입된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고 멸망케 하는 씨앗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속아 넘어간 이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중요한 문제에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기브온 사람들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갔을까요? 우리도 때로 잘못된 결정을 내려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온에게 속어 넘어간 원인을 알게 되면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원인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하면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큰 성읍이 통째로 항복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자진해서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분 좋고 수지가 맞는 일입니까? 이런 조건을 마다한다면 바보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했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일인가를 생각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들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있습니까?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유리하고 이익이 되느냐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것이 옳은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점만 확실히 짚어보아도 결정적인 실수는 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간 결정적인 원인은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14절) 이스라엘은 여리고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에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승리한 이스라엘이 이번에 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하나님께서 다 가르쳐주셨을 것이며, 속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중요한 일들을 결정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는 방법은 우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뜻과 주장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듣는 말씀을 통해, 오늘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 목장에서 나누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순종하면 속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조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하는 것보다 옳은 일인가를 먼저 따져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인지를 말씀에 비추어 따져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아 올바른 결정을 내림으로 인생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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