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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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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
본문: 수 1:9- 18, 찬송가 347장, <통> 382장
살쾡이가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다람쥐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람쥐를 본 살쾡이는 특별히 큰 소리를 내거나 요란한 몸동작을 하지 않고 매서운 눈으로 다람쥐의 눈을 쏘아봅니다. 그러면 다람쥐는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가 스스로 땅위에 엎드린 살쾡이 앞에 툭 떨어져 먹이가 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종종 두려움에 빠집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내적 평안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의 실체를 가만히 살펴보면 허수아비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리석은 참새들은 허수아비를 보고 무서워 달아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참새들은 허수아비 근처에 잘 여문 곡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은 인생의 독소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미신을 섬깁니다. 즉 두려움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두려움을 없애고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아프리카에는 ‘뱀잡이수리’ 라는 아주 특이한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평소에 아주 잘 날아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고통을 감지하거나 위험한 것을 느끼게 되면 갑자기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해버린 ‘뱀잡이수리’는 땅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끝내는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다치게 되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 ‘뱀잡이수리’와 같은 특징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처음에는 상당한 훈련에 의해서 의지적으로라도 조금씩 기도를 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지만, 막상 기도가 필요한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는 기도를 잊어버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하거나 방황하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평소 기도의 습관을 살려 위기 때에 백 퍼센트 발휘하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비록 심령은 연약하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되십시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27:14)
대도시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 가면 양봉을 하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벌통을 갖다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보자들은 그 벌통 주위에서 있다가 벌이 옷 속에 들어가거나 몸에 붙으면 깜짝 놀라 날뛰며 벌을 떼어내려고 발버둥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호들갑을 떨 때는 거의 언제나 벌에 쏘여 퉁퉁 붓곤 합니다. 그런데 양봉을 하는 아저씨가 벌통을 손질하거나 꿀을 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간혹 얼굴에 망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손이나 팔에 벌이 달라붙어도 그저 그대로 둔 채로 일을 다 마칩니다. 그러면서도 거의 벌에 쏘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조금 잘 되거나 자기에게 조금 손해가 된다 싶으면 앞장서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그런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듯 의연하게 대처하며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예외 없이 두 경우의 결말은 참고 기다린 사람 쪽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에는 그 일을 하실 분이 하나님뿐이시라는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웁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습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30:18)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1:6-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경쟁적인 세상입니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씨름을 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취직을 하려고 하면 너무나 경쟁이 치열해 좀처럼 좋은 직장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옛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가졌던 심정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무런 힘과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높은 장벽을 쌓고 추호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극히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그의 길이 평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전임자 모세는 기적의 지팡이가 있었고 홍해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한 능력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그런 능력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더 이상 모세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여호수아를 더 능력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만 붙들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모든 적을 이기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읽는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해야 하고 직장인들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의 사자가 우리 앞에서 모든 문제를 미리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절대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우리는 훨씬 빨리, 그리고 쉽게 성공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생각대로 믿는 것이 좌로 치우치는 것입니다. 그 대신 너무 영적으로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은 우로 치우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면 기가 죽게 되어 있고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 발로 밟는 땅은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 겁을 먹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시도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결국 움직이고 땅을 밟는 자만이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을 이루실 때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며,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구나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쓰실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에 쓰임을 받게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호수아를 통해 우리는 이 귀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상고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로 준비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들어가 큰 민족으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모르는 왕조가 들어서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가 되어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범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광야생활 40년이 끝나고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광야 40년을 그렇게 방황하는 동안 애굽에서 나오던 당시에 20세 이상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고 광야 40년 동안 인도했던 모세도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엄청난 과업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권위 있는 지도자와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의 철저한 헌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바로 지도자입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절)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그들을 권위 있게 이끌어갈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며 헌신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고, 가나안 정복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부담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때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여호수아에게 와서 그의 권위에 절대복종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여호수아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1:17-18)
여호수아 생전에 그에게 도전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이들의 전적인 순종과 헌신이 가나안 정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세 번째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뛰어나고 백성들이 잘 따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신 말씀이 바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 5)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과 함께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결코 굴하지 않는 강력한 승리에의 확신과 용맹성을 가지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싸워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서 싸우신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죽은 후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간단한 말은 많은 내용과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본문은 모세를 ‘여호와의 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수1: 1)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가정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했던 시기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태어난 아들이 범상치 않은 아이인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에 아이를 담아 나일강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공주가 목욕하러 왔다가 모세를 발견하고 자기 아들로 삼아 길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애굽의 왕실에서 왕자들과 함께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학문과 무예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 왕실에서 그렇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는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 동족을 돌아보기 위해 나갔다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 일 때문에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애굽의 촉망 받던 왕자가 졸지에 살인자, 도망자가 되어 낯설고 황량한 광야에 던져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를 준비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된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으로 다듬어졌습니다. 그가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바로에게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만 들고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분노하며 날뛰는 절대군주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적을 나타냈습니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열 가지 재앙이 내린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냈습니다. 80세 된 노인 모세가 애굽의 절대군주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간 후 바로는 다시 마음이 강퍅해져서 기병대를 동원하여 홍해 앞에서 멈추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갔습니다.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광야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서 아우성을 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손을 내밀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속에 난 마른 땅으로 홍해를 건넜고, 뒤따라오던 애굽 군대는 모두 홍해에 수장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광야는 마실 물이나 먹을 양식을 구할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만 있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모세는 써서 먹을 수 없는 물도 고쳤으며,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 40년 동안 양식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진멸을 당할 위기에서도,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용서를 받아냈습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광야에서 질병이 돌고 독사에 물려 다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도,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모세는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나누는 대선지자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모세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그 후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34:10-12)
모세는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이스라엘의 큰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모세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과 손실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에 모세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바로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언급하면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렇게 중대한 시기에 모세를 데려가셨을까요? 가나안 정복 전쟁은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두려운 큰일이었습니다. 그나마 모세가 죽지 않았더라면 훨씬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정복 전쟁까지 감당하고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이면 이 큰일을 앞두고 모세를 죽게 하셨을까요? 모세가 그토록 위대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모세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이었습니다. 모세가 행했던 엄청난 일들은 모세가 자신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복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사람, 즉 여호수아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사명과 임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고 광야에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새 시대가 밝아왔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새 시대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나안 정복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모세에 비교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정복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가 감당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을 감당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위대한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행하시고자 하십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아 이 귀하고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되겠습니까? 오늘 가나안을 정복할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기뻐하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당신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을 붙드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을 감당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새 시대에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함께 감당해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한 것을 예비해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어떤 일도 이길 수 있으며, 아무리 크고 어려운 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다시금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막중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얼마나 떨며 두려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평생 함께 하실 것이며 승리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 10)
오늘 본문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를 ‘모세의 수종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본래 여호수아는 모세의 종이었습니다. 모세의 종이었던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나치기 쉬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종으로 섬기는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40년 동안 종노릇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여호수아는 지도자로 준비되어갔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여호수아를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동안 여호수아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요셉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에 노예로, 그리고 감옥에서 죄수로 연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사울 왕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지도자가 되기 전에 연단의 과정을 충실하게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을 맡기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 당신은 지금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하는 사람은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수1: 2)
모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충격과 손실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슬퍼하며 낙심했겠습니까? 더구나 그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죽음을 전혀 개의치 않으시는 듯 ‘이제 일어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 부모나 배우자, 또는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슬퍼하며 실망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나 배우자의 죽음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슬픔을 털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집사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자녀들에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에 전념하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자녀들이 떠나가고 나면 어머니들이 매우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고 감당해나가면 더 행복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내가 박차고 일어나야 할 상황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새로운 사명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3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밟는 곳은 모두 이미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싸움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땅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만히 있으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얻는 방법은 나가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것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할 때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일어나 그 땅을 발로 밟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확실하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5절)
이 약속의 말씀은 곧 승리에 대한 보장입니다. 앞으로 여호수아는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적들이 여호수아를 공격해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여호수아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평생에 결코 그를 떠나시거나 버리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계셔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대상18:13)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했는데,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이 없거나 흔들릴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할 때 우리는 담대할 수 있고 무슨 일에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말씀은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1:6)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은 7절과 9절에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매우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은 타고 나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통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때만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늘 마음이 불안해지고 두려움과 염려에 시달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의 모든 일들을 가장 선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확실히 믿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흔들리며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짓눌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과 육이 지쳐 무력해지고 불안감이 엄습해옵니다. 나는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회개하고 은혜를 간구하자 마음이 다시 평안해집니다.
이것은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며 새롭게 결단합니다. 그러면 평안함과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문제들에 집중하게 만들고, 거기서 다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시 흔들립니다. 아마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믿음으로 굳게 서서 살아가기로 결단했는데 또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까? 문제들과 씨름하는 동안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까? 또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문제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선하게 인도해주시는 것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함으로 강하고 담대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이라는 막중한 일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평생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가지 명령하셨습니다. 앞으로 여호수아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 일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7, 8절을 보십시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늘 치우치는 존재입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치우치고 힘들면 힘든 대로 치우칩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치우치고 기쁘면 기쁜 대로 치우칩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치우치고 부하면 부한 대로 치우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순종하라는 말씀은 외면하고 복 주시겠다는 약속만 붙잡으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치우치는 것들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온전히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치우지지 말고 순종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싸우신 전쟁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날마다 순간마다 총사령관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작전 명령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매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시를 받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지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며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합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10: 28- 31)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미지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길을 가기 때문에 우리는 늘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 당황하며 넘어집니다. 이러한 인생길을 안심하고 안전하게 걸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길에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새 시대의 새 사명을 안고 두려운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7-9)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31: 6- 8)
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40: 31)
우리 소망은 오직 여호와께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가르치시고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중에 하나가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미28:2)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에게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무장하고 순교자적인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충성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에서 끝까지 강하고 담대한 신앙으로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힘이요 반석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에게도 다윗처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어떤 환란과 시련과 핍박과 시험이 몰려와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겁내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태연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환경보다 더 크시고 강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옵소서. 세상의 어떤 강한 자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위기의 순간에도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이 경쟁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너무 기가 죽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씩 실천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으로 나의 구원을 삼게 하소서. 하나님의 비밀한 것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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