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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11:3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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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만자 자매 |
참고 : | 새길교회 |
오늘의 성서 본문은 구약성서 사사기 11장 34-40절이지만, 이야기는 10장 6절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사사기는 구약성서 일곱 번째에 나오는 책이며 공동번역에는 판관기라고 나와 있는데 사사 혹은 판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프팀'이란 말은 '재판을 집행하는 자들', '돕는 자들', '통치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구원자', '구세주'(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소문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 가나안에 들어와 살게 된 초기 200여년 동안에 나라를 다스린 지도자들이었던 사사들의 이야기들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들어온 초기 이스라엘은, 당시의 가나안과 고대 근동 국가체제인 전제군주제 곧 왕권국가를 거부하고, 사사들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였습니다. 이 때를 초기 이스라엘의 평등공동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왕 파라오에 의하여 노예로 살았던 자신들의 과거 경험에서 왕권 국가의 모순을 절감하였고, 왕은 오직 야훼 하나님뿐이라는 신앙에 의하여 왕권정치를 비판했으며, 당시의 주변 국가들과는 다른 평등사회를 지향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사들의 통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능력을 받는 카리스마적 지도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상설 군대가 없었으며 전쟁이 발발하면 조직되었다가 전쟁이 끝나면 군대는 해산되고 모두 자신의 일상적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사기에는 모두 12명의 사사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두 가지의 지도자 유형을 보입니다. 한 가지는 전쟁영웅이고 다른 한 가지는 재판관 형태의 행정 지도자였습니다. 사사시대 동안에는 가나안족, 모압족, 암몬족, 미디안족, 블레셋족과 같은 주변 민족들의 억압들이 있었고 이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여러 부족들은 자기 방어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이 사사기는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보유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를 가진 책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해 들어간 형태는 사사기 앞에 나오는 책 여호수아서에 의하면 단번에 1회적으로 정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사기에 의하면 가나안 원주민과의 동화와 혼합과 타협의 과정을 가지면서 점차적으로 이주해 들어간 흔적이 많습니다. 예루살렘의 여부스족은 다윗 때까지 정복되지 않고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사기는 4가지 요소의 양식을 가진 독특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악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이방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에 진노하시고 그들에게 벌을 내립니다. 그 벌은 외국이 그들을 정복하고 압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이방 신들을 제거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지도자를 세워서 구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전쟁의 승리로 나타납니다. 이는 곧 죄, 심판, 회개, 구원이라는 신학적 양식에 의하여 사사기가 구성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신앙관, 역사관을 신명기적 역사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입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0장 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또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블레셋과 암몬 자손에게 이스라엘을 내어주시어 고통을 당하게 하니,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하면서 입다의 등장의 서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전쟁 영웅이요 대사사인 입다와 그의 딸에 대한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이스라엘이 암몬이라는 나라에 의하여 위협을 받게 되었으나 이에 대적할 만한 장수가 없어 장로들은 염려가 컸습니다. 마침 입다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창녀의 아들이었고 정실 자녀들과 불목하여 고향을 떠나 돕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따로 살고 있었으며 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비적의 두목이었습니다. 장로들은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입다에게 찾아가 나라를 구해줄 것을 요청하고 전쟁 후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에 입다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암몬과의 전쟁에 출전합니다. 성서는 이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다 라고 표현하여 전쟁의 승리를 암시합니다. 그러나 입다는 하나님에게 서원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자기 집에서 맨 처음 나오는 사람(것)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합니다. 입다는 물론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개선 장군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런데 자기 집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사랑하는 무남독녀였던 것입니다. 이 딸은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면서 아버지의 승전을 축하하려고 기쁨에 넘쳐 환영을 나왔습니다. 이에 사사 입다는 가슴을 치며 '네가 내 가슴을 찢는구나,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돌이킬 수도 없는데...'하면서 비통에 젖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서원기도의 내용을 들은 이 딸의 비통함도 말할 수 없었을 터인데 그러나 여기서 이 딸은 매우 침착하게 모든 것을 초월한 성인의 태도를 보입니다. "아버지의 서원기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그대로 실행하십시오. 그러나 두달간의 말미를 주십시오. 처녀로 죽는 몸 여한이나 없게 친구들과 산에 가서 실컷 울고 오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아버지 입다는 이를 허락하였고 그 딸은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두달을 함께 지낸 후 돌아와서 그 아버지에 의해 번제물로 드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말미에 덧붙여진 내용은 그때부터 이스라엘에는 처녀들이 해마다 산에 올라가서 나흘동안 입다의 딸을 기억하며 울고 지내는 관습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증거의 주제인 회상과 관련되는 구절은 바로 이 11장 40절 "이스라엘에 하나의 관습이 생겼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동안을 슬피 우는 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이 입다와 그 딸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특별한 문제에 먼저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곧 번제라고 하는 제사, 특히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신 제사의 문제입니다. 이는 구약성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 인신 제사를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도 그런 인신 제사를 받았을까?" 하고 의문을 갖게 합니다. 어떤 여성 신학자는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이 그의 외동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그의 충실한 믿음으로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를 멈추게 하고 수양을 준비하시어 제물을 삼게 했으며 아들 이삭을 구출하셨다는 창세기 22장의 이야기와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의 남아 선호적인 곧 가부장제의 유지 편에 서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입다의 딸의 불행에 침묵하는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더 논쟁할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물론 이 이야기는 성서가 결코 인신 제사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는 근거 본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성서에는 오히려 고대사회에서 있었던 인신 제의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내용이 있으며, 야훼 하나님이 제사보다는 윤리적 삶을 더 원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속하는 것이며 더욱이 전쟁영웅 이야기와 이스라엘 처녀들이 해마다 행하는 애곡 관습이 합쳐지면서 그 애곡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재편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애곡 모임은 아마도 가나안의 관습인 것 같습니다. 그 가나안의 관습이 전쟁영웅 입다와 그 외동딸의 이야기와 결합되어 애곡 모임을 이스라엘 역사의 과정에 끌어들여 그 기원을 설명하는 성서의 편집사적 과정에 의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서 편집사적 과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튼 한 처녀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고 해마다 기억하고 회상하였다는 사실과 그래서 그것이 이스라엘의 한 관습, 곧 전통이 되었다는 사실을 성서는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 우리 현실에 의미를 준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처녀는 죽으면 이름이 남겨지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며 미혼에 죽은 이들의 제사는 지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처녀들의 이 애곡 모임은 입다의 딸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 없이 과거 역사의 망각 속에 파묻혀 버릴 이야기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기억은 결국 인신 제사가 얼마나 비인간적 행위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처녀로 억울하게 죽은 그 딸의 불행함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결코 그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호소하는 희망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애곡 모임은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집단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해마다 이스라엘 처녀들이 줄을 지어 산으로 올라가면서 나흘간을 그렇게 슬피 우는 의식을 가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대단한 시위입니다. 처녀들의 애곡 행렬에 최루탄을 쏠 수도 없고 또 그들이 다만 추모 모임을 한다는데 그것을 막을 명분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처녀들은 단지 우는 모임을 통해서 그들이 느끼는 불행의 원인을 고발하고 이후로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대대로 소리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입다의 딸의 가련한 죽음에 동참하고 있으며 망각될 이야기를 역사의 표면으로 계속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입다의 딸은 샤일라라고 하는 이름을 얻었고 길이 기억되었다고 하며 반면 딸을 태워 죽인 입다는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상의 힘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참으로 기억의 민족입니다. 경전이 그들의 역사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하는 예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철저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에 근거하여 다시는 불행하고 불의한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스라엘 초등학교 교과서 첫장에 '우리는 애굽의 노예였습니다'라고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운 역사를 덮고 은폐하고 좋은 것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치의 역사를 회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성서의 전승입니다. 신명기 6장 20-25절에 "... 옛적에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있었으나, 주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라고 후대의 자손들을 교육하라고 합니다. 신명기 26장 5-9절에는 이스라엘이 해마다 드리는 신년제의 때마다 꼭 들려져야 할 이야기(학자들은 이 내용을 이스라엘의 소 신앙고백문이라고 한다)도 또한 이집트에서의 노예살이의 회상입니다. 성서시대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땅을 넓히고 또 화려한 부귀와 영화를 이룬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회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수치스러웠던 노예의 역사를 회상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도 대단합니다. 그것은 가정 단위로 지켜지는데 그 때는 애굽에서 탈출 준비를 하였던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동이고 누룩 없는 딱딱한 빵에 쓴 나물 등 당시의 음식을 그대로 먹는 의식을 행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히틀러 나치 학살에 대해 '용서는 하되 망각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과거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역사에의 회상이 그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새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너무나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망각을 잘하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교과서를 왜곡하여 기록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실은 일본 강점기의 역사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를 회상함으로 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워 가는 한 예는 정신대 여성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30년대에 17-20세의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젊은 미혼 여성들이 만주, 필리핀, 오키나와 등지로 끌려가 위안부로 전락 당했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난과 희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몇십 킬로미터씩 늘어선 병사들을 받으며 누운 채 주먹밥을 먹어야 했던 그들, 전쟁의 막바지엔 무자비하게 총살당했던 그들, 마치 입다의 딸이 불에 태워지듯이 그들의 몸이 고통의 도가니에 들어간 역사입니다. 그러나 몸의 고통보다 더 절망을 그들에게 준 것은 소위 정절을 잃고 더렵혀졌다 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이 고향 공동체와 영원히 이별하게 된 슬픔의 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애곡해 줄 누구도 없어서 50년 간을 망각 속에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1963년 한일협정을 할 때도 이들은 보상 대상에는 물론 언급조차 되지 못했고 곳곳에 서 있는 위령탑에도 기록되지 못했으나, 1988년부터 교회 여성들이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하였고, 1991년 36개 여성단체들이 정신대 대책협의회를 조직하였고, 그 해 최초로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시작하였으며, 1992년에는 아시아 여성 연대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UN 인권위원회의 의제로 상정되어 내년에 1차 조사 보고서가 나올 예정으로 된 것입니다. 요즈음도 매주 수요일 12시에 여성들이 일본대사관 앞에 나가 이 문제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처녀들은 일년에 나흘간 애곡하였는데 한국 여성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애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각 속에 묻혔던 여성 희생의 사건이 몇몇 여성들의 노력으로 역사의 표면 위로 떠 올라왔고 이제 큰 애곡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신대에 대한 회상은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의 황폐화를 재인식시키며 지구 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할 것과 제국주의적 침략이 다시 변형되어 나타나지 않아야 함을 경고합니다. 또한 여성을 성으로 농락하는 국가적 강간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외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민족입니다. 친일파에게도 그랬고 군부독재에도 그랬습니다. 5.18 광주사건이 15년이 지나는 동안에 우리는 진심으로 그 희생자들을 위하여 애곡도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당한 그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12월 5일 수요일 한 방송국에서는 광주항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가난한 이들의 돌볼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김영철씨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당시 계엄군으로 참가하여 오직 명령수행에 충실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역사의 희생자들입니다. 김영철씨는 현재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직도 광주 도청 건물 계단에 서 있었습니다. "야 보안대장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그의 부인이 마련해 온 정성스런 음식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아직도 광주항쟁의 시간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또 계엄군이었던 김씨도 현재 법무부 치료 감호소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정신착란증세, 대인기피증세로 형수까지 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얼굴도 드러낼 수 없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광주사건 희생자들 집단의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삼청교육대의 사망자가 52명, 후유증 사망자가 2백여명, 장애자가 수백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억울함에 아무런 동참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요즈음 우리 현실이 한 우스운 이야기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주부가 건망증이 점차 심해졌는데,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전화가 와서 무선전화기로 받았는데 마침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낼 때 통화가 끝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전화기를 냉장고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는데 그 후 다른 전화가 걸려와 전화를 받으려고 전화기를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건망증 심해 가는 주부들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우리가 5.18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이 이런 상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건 진상은 냉장고 안에 넣어 놓고 요란하게 벨소리만 울려대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이제 우리의 기억력을 확실하게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 동안 일년에 나흘간만이라도 애곡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우리 역사 속에 희생당한 이들을 위하여 애곡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광주문제가 오늘 이만큼이라도 역사의 표면에 떠 오른 것은 그 동안 몇몇 사람들의 부단한 그 사건의 회상작업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것입니다. 결코 역사의 망각 속에 묻어버릴 수 없는 일, 그 한들이 소리되어 떠다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방영된 모래시계며 제 4공화국 그리고 코리아게이트 등과 같은 드라마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지난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안티 비엔날레라고 이름 붙여진 망월동의 작품은 그 절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끊임없는 회상으로 오늘 이 상황까지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회상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철저한 기억과 망각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인이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자비와 긍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회상은 바로 이 하나님의 기억과 망각 안에 담긴 자비와 사랑에 의존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의 회상이 보복이나 원한 갚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참여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1995년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한해는 대란이 일어난 한해였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우리사회에 충격적인 일들이 발생한 해였습니다. 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사실 성탄절도 하나의 회상입니다. 예수의 성육신 하신 사건의 회상입니다. 예수도 이 땅에 오셔서 희생당한 분입니다. 그의 희생을 위해 오심을 매년 한번씩 회상하는 것이고, 성만찬에는 그 희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희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감당하신 이 역사 안에 희생당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과 동일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회상은 불의가 심판 받고 정의가 승리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를 새롭게 한다는 믿음을 낳게 합니다.
최근에 우리를 슬프게 한 사건들 - 위도의 훼리호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가스폭발사건 등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토록 많은 희생자들을 가진 우리 사회는 불행한 사회일 것입니다. 회상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은 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입다의 딸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이번 성탄절에는 특히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성탄절을 맞으면서 예수의 오심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읍시다.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일들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통하여 새 역사를 만드는 힘을 가지는 성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전승시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중요한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회상의 힘은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사사기에는 모두 12명의 사사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두 가지의 지도자 유형을 보입니다. 한 가지는 전쟁영웅이고 다른 한 가지는 재판관 형태의 행정 지도자였습니다. 사사시대 동안에는 가나안족, 모압족, 암몬족, 미디안족, 블레셋족과 같은 주변 민족들의 억압들이 있었고 이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여러 부족들은 자기 방어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이 사사기는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보유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를 가진 책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해 들어간 형태는 사사기 앞에 나오는 책 여호수아서에 의하면 단번에 1회적으로 정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사기에 의하면 가나안 원주민과의 동화와 혼합과 타협의 과정을 가지면서 점차적으로 이주해 들어간 흔적이 많습니다. 예루살렘의 여부스족은 다윗 때까지 정복되지 않고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사기는 4가지 요소의 양식을 가진 독특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악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이방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에 진노하시고 그들에게 벌을 내립니다. 그 벌은 외국이 그들을 정복하고 압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이방 신들을 제거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지도자를 세워서 구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전쟁의 승리로 나타납니다. 이는 곧 죄, 심판, 회개, 구원이라는 신학적 양식에 의하여 사사기가 구성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신앙관, 역사관을 신명기적 역사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입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0장 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또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블레셋과 암몬 자손에게 이스라엘을 내어주시어 고통을 당하게 하니,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하면서 입다의 등장의 서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전쟁 영웅이요 대사사인 입다와 그의 딸에 대한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이스라엘이 암몬이라는 나라에 의하여 위협을 받게 되었으나 이에 대적할 만한 장수가 없어 장로들은 염려가 컸습니다. 마침 입다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창녀의 아들이었고 정실 자녀들과 불목하여 고향을 떠나 돕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따로 살고 있었으며 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비적의 두목이었습니다. 장로들은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입다에게 찾아가 나라를 구해줄 것을 요청하고 전쟁 후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에 입다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암몬과의 전쟁에 출전합니다. 성서는 이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다 라고 표현하여 전쟁의 승리를 암시합니다. 그러나 입다는 하나님에게 서원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자기 집에서 맨 처음 나오는 사람(것)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합니다. 입다는 물론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개선 장군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런데 자기 집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사랑하는 무남독녀였던 것입니다. 이 딸은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면서 아버지의 승전을 축하하려고 기쁨에 넘쳐 환영을 나왔습니다. 이에 사사 입다는 가슴을 치며 '네가 내 가슴을 찢는구나,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돌이킬 수도 없는데...'하면서 비통에 젖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서원기도의 내용을 들은 이 딸의 비통함도 말할 수 없었을 터인데 그러나 여기서 이 딸은 매우 침착하게 모든 것을 초월한 성인의 태도를 보입니다. "아버지의 서원기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그대로 실행하십시오. 그러나 두달간의 말미를 주십시오. 처녀로 죽는 몸 여한이나 없게 친구들과 산에 가서 실컷 울고 오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아버지 입다는 이를 허락하였고 그 딸은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두달을 함께 지낸 후 돌아와서 그 아버지에 의해 번제물로 드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말미에 덧붙여진 내용은 그때부터 이스라엘에는 처녀들이 해마다 산에 올라가서 나흘동안 입다의 딸을 기억하며 울고 지내는 관습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증거의 주제인 회상과 관련되는 구절은 바로 이 11장 40절 "이스라엘에 하나의 관습이 생겼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동안을 슬피 우는 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이 입다와 그 딸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특별한 문제에 먼저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곧 번제라고 하는 제사, 특히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신 제사의 문제입니다. 이는 구약성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 인신 제사를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도 그런 인신 제사를 받았을까?" 하고 의문을 갖게 합니다. 어떤 여성 신학자는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이 그의 외동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그의 충실한 믿음으로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를 멈추게 하고 수양을 준비하시어 제물을 삼게 했으며 아들 이삭을 구출하셨다는 창세기 22장의 이야기와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의 남아 선호적인 곧 가부장제의 유지 편에 서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입다의 딸의 불행에 침묵하는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더 논쟁할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물론 이 이야기는 성서가 결코 인신 제사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는 근거 본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성서에는 오히려 고대사회에서 있었던 인신 제의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내용이 있으며, 야훼 하나님이 제사보다는 윤리적 삶을 더 원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속하는 것이며 더욱이 전쟁영웅 이야기와 이스라엘 처녀들이 해마다 행하는 애곡 관습이 합쳐지면서 그 애곡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재편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애곡 모임은 아마도 가나안의 관습인 것 같습니다. 그 가나안의 관습이 전쟁영웅 입다와 그 외동딸의 이야기와 결합되어 애곡 모임을 이스라엘 역사의 과정에 끌어들여 그 기원을 설명하는 성서의 편집사적 과정에 의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서 편집사적 과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튼 한 처녀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고 해마다 기억하고 회상하였다는 사실과 그래서 그것이 이스라엘의 한 관습, 곧 전통이 되었다는 사실을 성서는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 우리 현실에 의미를 준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처녀는 죽으면 이름이 남겨지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며 미혼에 죽은 이들의 제사는 지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처녀들의 이 애곡 모임은 입다의 딸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 없이 과거 역사의 망각 속에 파묻혀 버릴 이야기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기억은 결국 인신 제사가 얼마나 비인간적 행위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처녀로 억울하게 죽은 그 딸의 불행함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결코 그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호소하는 희망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애곡 모임은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집단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해마다 이스라엘 처녀들이 줄을 지어 산으로 올라가면서 나흘간을 그렇게 슬피 우는 의식을 가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대단한 시위입니다. 처녀들의 애곡 행렬에 최루탄을 쏠 수도 없고 또 그들이 다만 추모 모임을 한다는데 그것을 막을 명분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처녀들은 단지 우는 모임을 통해서 그들이 느끼는 불행의 원인을 고발하고 이후로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대대로 소리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입다의 딸의 가련한 죽음에 동참하고 있으며 망각될 이야기를 역사의 표면으로 계속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입다의 딸은 샤일라라고 하는 이름을 얻었고 길이 기억되었다고 하며 반면 딸을 태워 죽인 입다는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상의 힘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참으로 기억의 민족입니다. 경전이 그들의 역사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하는 예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철저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에 근거하여 다시는 불행하고 불의한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스라엘 초등학교 교과서 첫장에 '우리는 애굽의 노예였습니다'라고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운 역사를 덮고 은폐하고 좋은 것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치의 역사를 회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성서의 전승입니다. 신명기 6장 20-25절에 "... 옛적에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있었으나, 주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라고 후대의 자손들을 교육하라고 합니다. 신명기 26장 5-9절에는 이스라엘이 해마다 드리는 신년제의 때마다 꼭 들려져야 할 이야기(학자들은 이 내용을 이스라엘의 소 신앙고백문이라고 한다)도 또한 이집트에서의 노예살이의 회상입니다. 성서시대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땅을 넓히고 또 화려한 부귀와 영화를 이룬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회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수치스러웠던 노예의 역사를 회상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도 대단합니다. 그것은 가정 단위로 지켜지는데 그 때는 애굽에서 탈출 준비를 하였던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동이고 누룩 없는 딱딱한 빵에 쓴 나물 등 당시의 음식을 그대로 먹는 의식을 행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히틀러 나치 학살에 대해 '용서는 하되 망각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과거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역사에의 회상이 그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새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너무나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망각을 잘하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교과서를 왜곡하여 기록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실은 일본 강점기의 역사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를 회상함으로 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워 가는 한 예는 정신대 여성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30년대에 17-20세의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젊은 미혼 여성들이 만주, 필리핀, 오키나와 등지로 끌려가 위안부로 전락 당했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난과 희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몇십 킬로미터씩 늘어선 병사들을 받으며 누운 채 주먹밥을 먹어야 했던 그들, 전쟁의 막바지엔 무자비하게 총살당했던 그들, 마치 입다의 딸이 불에 태워지듯이 그들의 몸이 고통의 도가니에 들어간 역사입니다. 그러나 몸의 고통보다 더 절망을 그들에게 준 것은 소위 정절을 잃고 더렵혀졌다 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이 고향 공동체와 영원히 이별하게 된 슬픔의 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애곡해 줄 누구도 없어서 50년 간을 망각 속에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1963년 한일협정을 할 때도 이들은 보상 대상에는 물론 언급조차 되지 못했고 곳곳에 서 있는 위령탑에도 기록되지 못했으나, 1988년부터 교회 여성들이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하였고, 1991년 36개 여성단체들이 정신대 대책협의회를 조직하였고, 그 해 최초로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시작하였으며, 1992년에는 아시아 여성 연대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UN 인권위원회의 의제로 상정되어 내년에 1차 조사 보고서가 나올 예정으로 된 것입니다. 요즈음도 매주 수요일 12시에 여성들이 일본대사관 앞에 나가 이 문제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처녀들은 일년에 나흘간 애곡하였는데 한국 여성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애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각 속에 묻혔던 여성 희생의 사건이 몇몇 여성들의 노력으로 역사의 표면 위로 떠 올라왔고 이제 큰 애곡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신대에 대한 회상은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의 황폐화를 재인식시키며 지구 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할 것과 제국주의적 침략이 다시 변형되어 나타나지 않아야 함을 경고합니다. 또한 여성을 성으로 농락하는 국가적 강간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외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민족입니다. 친일파에게도 그랬고 군부독재에도 그랬습니다. 5.18 광주사건이 15년이 지나는 동안에 우리는 진심으로 그 희생자들을 위하여 애곡도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당한 그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12월 5일 수요일 한 방송국에서는 광주항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가난한 이들의 돌볼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김영철씨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당시 계엄군으로 참가하여 오직 명령수행에 충실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역사의 희생자들입니다. 김영철씨는 현재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직도 광주 도청 건물 계단에 서 있었습니다. "야 보안대장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그의 부인이 마련해 온 정성스런 음식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아직도 광주항쟁의 시간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또 계엄군이었던 김씨도 현재 법무부 치료 감호소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정신착란증세, 대인기피증세로 형수까지 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얼굴도 드러낼 수 없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광주사건 희생자들 집단의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삼청교육대의 사망자가 52명, 후유증 사망자가 2백여명, 장애자가 수백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억울함에 아무런 동참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요즈음 우리 현실이 한 우스운 이야기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주부가 건망증이 점차 심해졌는데,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전화가 와서 무선전화기로 받았는데 마침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낼 때 통화가 끝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전화기를 냉장고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는데 그 후 다른 전화가 걸려와 전화를 받으려고 전화기를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건망증 심해 가는 주부들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우리가 5.18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이 이런 상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건 진상은 냉장고 안에 넣어 놓고 요란하게 벨소리만 울려대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이제 우리의 기억력을 확실하게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 동안 일년에 나흘간만이라도 애곡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우리 역사 속에 희생당한 이들을 위하여 애곡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광주문제가 오늘 이만큼이라도 역사의 표면에 떠 오른 것은 그 동안 몇몇 사람들의 부단한 그 사건의 회상작업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것입니다. 결코 역사의 망각 속에 묻어버릴 수 없는 일, 그 한들이 소리되어 떠다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방영된 모래시계며 제 4공화국 그리고 코리아게이트 등과 같은 드라마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지난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안티 비엔날레라고 이름 붙여진 망월동의 작품은 그 절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끊임없는 회상으로 오늘 이 상황까지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회상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철저한 기억과 망각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인이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자비와 긍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회상은 바로 이 하나님의 기억과 망각 안에 담긴 자비와 사랑에 의존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의 회상이 보복이나 원한 갚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참여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1995년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한해는 대란이 일어난 한해였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우리사회에 충격적인 일들이 발생한 해였습니다. 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사실 성탄절도 하나의 회상입니다. 예수의 성육신 하신 사건의 회상입니다. 예수도 이 땅에 오셔서 희생당한 분입니다. 그의 희생을 위해 오심을 매년 한번씩 회상하는 것이고, 성만찬에는 그 희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희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감당하신 이 역사 안에 희생당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과 동일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회상은 불의가 심판 받고 정의가 승리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를 새롭게 한다는 믿음을 낳게 합니다.
최근에 우리를 슬프게 한 사건들 - 위도의 훼리호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가스폭발사건 등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토록 많은 희생자들을 가진 우리 사회는 불행한 사회일 것입니다. 회상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은 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입다의 딸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이번 성탄절에는 특히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성탄절을 맞으면서 예수의 오심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읍시다.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일들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통하여 새 역사를 만드는 힘을 가지는 성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전승시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중요한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회상의 힘은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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