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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11:3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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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만자 자매 |
참고 : | 새길교회 2010.2.7 주일설교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기억되는 역사, 기억되는 삶”
[사사기 11 : 37 ~ 40]
최만자 자매
우리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담은 그릇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늘 두려워지는 것은 혹시 알쯔하이머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것인데 아마 우리 모두의 두려움일 것입니다. 요즈음 주말 연속극 중에 이 병에 걸린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병을 전혀 모르다 늦게야 알게 된 막내딸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붙잡고 ‘아무리 그래도 가족은 알아야 되잖아, 사랑하던 사람들은 기억해야 되잖아’라고 외치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존재함이 관계 속에 있는 것이고 그 관계가 기억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기억의 상실은 내 존재함의 상실과도 같은 것일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도 가족 안에 이런 경험을 이미 하신 분들도 있고 또 현재 그로인해 아픔을 가진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저는 지금 이야기의 시작을 기억상실로 꺼냈지만 사실 오늘 저의 말씀증거는 기억상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반되는 ‘기억되어짐’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성서 안에서 ‘기억되어짐’에 대한 한 특별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그 이야기가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성서본문은 전체 이야기의 결말 부분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스라엘에 아직 왕정이 시작되지 않고(대개 기원전 1200-1000년 사이) 사사들(판관들)에 의하여 나라가 이끌어 지던 시대에 일어난 입다의 딸의 이야기입니다. 사사(쇼프팀)라는 히브리 말의 뜻은 ‘재판을 집행하는 자’ ‘돕는자’ ‘통치자’등을 의미합니다. 사사에는 두 유형의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전쟁영웅들로 지파 의용군 지도자들이거나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카리스마적 인물들을 말하면서 대 사사라 하고 다른 하나는 통치자 그룹인데 일종의 행정부적 통치기능을 담당했던 자들로 소사사라 부릅니다. 입다는 전쟁영웅으로 대사사에 속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길르앗에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여기에 맞서 싸울 전사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길르앗의 입다라는 사람이 싸움을 매우 잘하였는데 그 출신이 창녀의 아들이고 서자 취급을 받아 형제들에게 구박받고 쫓겨나서 다른 지방으로 가 건달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암몬의 침략으로 시달리던 이스라엘 장로들이 결국 입다를 찾아가서 길르앗을 위해 싸워 이기면 길르앗의 우두머리로 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입다는 그동안의 설움과 한을 한꺼번에 다 풀수 있는 이 조건을 수락하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암몬과의 협상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어 전쟁이 불가피해 졌고 전쟁에 앞서 그는 ‘만일 하나님이 저 암몬군을 제 손에 붙여 주시면 암몬군을 쳐 부수고 돌아올 때 제 집 문에서 저를 맞으러 처음 나오는 사람은 야훼께 번제로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합니다. (여기에 제물이 종을 말하는지, 동물을 말하는지, 분명치 않다) 물론 입다는 크게 승리하였고 암몬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입다가 승전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맞으려 나온 첫 사람은 소고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그의 승전을 축하하러 나온 그의 무남독녀, 그의 사랑하는 딸이었습니다. 이를 본 입다는 옷을 찢으며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이 자식아, 네가 내 가슴에 칼을 꽃는 구나(후벼 파는 구나),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 하필 왜 너란 말이냐! 주께 서원한 것이어서 돌이킬 수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이냐!(11:35)라고 소리칩니다. 영문을 모르고 있던 딸이 아버지로부터 앞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참으로 지혜롭고 결단력 있는 대답을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를 두고 야훼께 서원하셨으니 서원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야훼께서 아버지의 적수인 암몬 사람들에게 복수해 주셨는데 저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11:36)’ 그런 후 한 가지 청을 합니다. 그에게 두달 동안의 말미를 주어 친구들과 산을 돌아다니며 처녀로 죽게 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실컷 울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이를 허락하였고 딸은 친구들과 더불어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것을 슬퍼하며 실컷 울었습니다. 두 달이 지나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입다는 자신의 서원대로 그를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이 후부터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관습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동안 슬피 우는 관습이 생긴 것입니다.(11:40)
학자들은 입다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서 보다는 후대에 편집자들이 소사사 이야기를 대사사 이야기로 변형시켜 놓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큽니다. 특히 입다의 번제물 드리겠다는 서원에 관하여서는 다양한 견해들을 말합니다. 29절에 보면 전쟁에 앞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였다’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이미 전쟁의 승리가 암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입다가 인신제사의 서원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다를 신앙심이 얕은자 라고 비판하게 됩니다. 그러나 32-33절과 연결시켜 볼 때 이이야기는 소 사사의 이야기를 대 사사 이야기로 전환하는 편집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전쟁에 앞선 장군의 서원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므로 입다의 서원을 비판 할 것 없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입다의 딸의 이야기는 그 해석의 무게가 ‘인신제사’에 대한 고대현실과 그것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부태도에 더 주어져 있으며 딸에 대한 애도는 이스라엘의 한제의의 배경을 밝히는 원인론적 전설이라고 말합니다. 어찌했건 이 이야기는 참으로 잔혹한 고대 인신제사의 실행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회에 전혀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사건으로 결말을 승화시키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입다의 딸의 태도와 그가 남긴 한 전승에 있습니다. 이 처녀의 태도는 정말 지혜롭고 아름답습니다. 원망과 분노로 가득차서 아버지에게 폭언이라도 내뱉을 상황에서 오히려 이 딸은 아버지 말의 불가피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부정하거나 항거하지 않고 분노하거나 낙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신세에 대한 슬픔을 극도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 슬픔을 벗어 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요구합니다. 그의 말미는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취하지 못한 생을 위한 애곡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 딸의 죽음은 세 가지 슬픈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인생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죽는 안타까움입니다. 둘째는 그의 죽음이 가혹한 폭력에 의한 것입니다. 셋째는 결코 후대에 기억될 수 없는 사람으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세 번째 기억될 수 없는 사람으로 죽는 것에 가장 슬픔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본문에서는 그가 처녀의 몸으로 죽는 것을 슬퍼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사회에서 처녀로 죽는 것은 바로 상속자가 없는 죽음이란 뜻이고 그것은 곧 후대에 이름이 남지 않으며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처녀로 죽는 것을 친구들과 함께 애도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슬픔을 혼자 감당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애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친구들은 마침내 그의 슬픔을 기억하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두 달이 끝나고 약속한 시간에 딸은 돌아왔고 아버지는 맹세대로 행했다고 화자는 전합니다. 그리고 그 후기는 그것이 이스라엘의 한 관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관습이라는 말은 전통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한 전통이 되었다’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생각하고 이스라엘의 딸들은 해마다 나흘간 애곡하러 갔다(40절). 이는 그녀가 선택한 여인들이 그녀를 영원히 망각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녀를 기억되는 역사로 기억되는 생애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해마다 애곡하는 관습을 만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맹세로부터 희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망각에서 기억으로 전이시켜 냅니다. 그래서 입다의 딸의 비극을 완화시키는 듯 보입니다.
후대의 기록에서 입다는 이중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파를 위기에서 구출한 공적의 기록에서는 그는 수를 다하고 죽어 대표적 사사에게 주는 묘비를 받았고 그 이름을 대대에 떨치고 있습니다(삼상 12:11). 외경에서도 그는 칭송받고 있고(집회서 46,11-12), 신약성서 히브리서 11장에도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된 그의 딸은 이름도 없는 존재로 되어 있고 다만 이스라엘의 딸들의 기억 속에서만 숭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유다의 전통에 의하면 입다는 푸대접을 받고 오히려 딸이 기억되고 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입다는 죽을 때 시체가 토막나는 징벌을 받았다고 하며, 그 딸은 Shailah라는 이름을 받았고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저는 입다의 딸이 그 무모하게 죽게된 상황에서도 그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고 세간인들에게 교훈을 주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기억하도록 만들어 놓은 사실이 참 경이롭게 여겨집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 너무 많았던 처녀인 듯합니다. 그 꿈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을 하나도 못이루고 그냥 사그러져야 함이 너무나 억울하고 한이 맺혀서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기억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요절의 죽음, 가능성을 펼쳐 보기도 전에 끝나 버리는 자신의 인생, 여기서 저는 저 아이티 소년 소녀들의 죽음과 눈망울이 왠지 겹쳐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우리는 마치 땅에 쏟아지면 다시는 담을 수 없는 물과 같다’ 고 삼하 14,14에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 처녀는 그의 죽음을 그의 삶 속에 담아내려 하였습니다. 먼 날까지 기억되는 삶으로 말입니다.
입다의 딸의 이야기에서 ‘기억되어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기억되어야 할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선 2010년은 특히 우리역사에서 많은 기억할 것들을 말해주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우리 현대사의 굵은 매듭과 줄기를 이루는 사건들이 꺾어지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경술국치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에 길고도 짙은 암운을 남긴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입니다. 민주주의를 시민의 힘으로 실현해 냈으나 결국은 좌절한 미완의 혁명 4.19혁명 50주년입니다. 이 민주의 화두는 현재 다시 우리들의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노동자의 권리,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전태일 열사 분신은 어느덧 40주년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민족민주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광주민주화운동도 30주년을 맞은 해가 바로 2010년 경인년입니다.
이 굵직한 우리의 현대사를 기억해 내고 생각하는 것은 입다의 딸의 희생의 아픔을 기억하듯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대하는 것은 단순한 회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 역사를 거울로 우리 내부와 외부의 시대적 흐름을 비춰보면서 동시에 미래 역사를 조망해 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경술년 1910년 8월 29일 공포된 한일 병합 조약, 그것은 참으로 국치였습니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1조에서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라고 규정하였고 이후 일본은 조직적 식민지 수탈을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된 지금에 이르러도 일본이 그 병합을 ‘동아시아 안정을 위해, 혹은 러시아의 조선침략을 막기 위해’라는 등의 자기합리적 이유를 내세워 범죄의 인정을 기피하려는 역사인식과 태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1995년 그들의 패전 50주년을 맞아 행한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에는 어느정도 진전된 사죄태도가 있기는 하였지만 2001년 역사교과서 제작에서 그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기술을 강행하는 등(나중에 어느정도 수정되긴 했지만) 일본의 역사인식은 여전히 침략정당화에 기울고 있습니다. 또 한편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차원도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족주의적 저항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는 현실입니다. 최근 역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역사관점을 더 근본적인데 두어야만 한다는 견해를 말합니다. 식민지 지배에서 식민주의가 얼마나 사람을 큰 고통과 불행속으로 밀어넣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불의한 세상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식민 종주국이 얼마나 비문명화되고 - 야만화된 나라인가를 드러내는 비판적 관심으로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코끼리를 쏘다“에서 그는 영국인이 이유없이 버마사람들의 중요한 재산인 코끼리를 쏘아 죽이는 야만적 행위를 보고 영국 경찰을 그만 두었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식민지 종주국의 횡포와 야만행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에서 이런 야만적 행위가 있다는 사실의 폭로, 제국주의 비판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일병합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크다란 상처를 입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일제시대 동안 겪었던 정신대 여성들의 고통이 가장 큰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신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오늘 입다의 딸의 이야기와 많은 연결을 갖습니다. 1930년대 대부분 17-20세의 조선의 딸들이 필리핀, 만주, 오끼나와 등지로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정신대 여성들은 대개 가난한 집의 딸들이었고, 강제로, 혹은 돈을 벌게 된다는 유혹에 넘어가 정신대로 끌려가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전쟁 막바지엔 총알받이가 되었고, 그들은 전쟁후 고향 공동체로 돌아 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환향녀라는 딱지를 붙이게 되어 소외되고 경멸당해야 했기에 감히 귀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애곡해 줄 아무도 옶어 50년동안 그들의 이야기는 깊이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들 삶의 비참함은 오끼나와의 빨간 기와집에서 살던 배봉기 할머니와의 힘겨운 인터뷰에서 폭로되어졌고 한국에서는 김순덕 할머니의 증언으로 역사의 수면으로 떠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신적 고통, 육체적 질병(*두통 등), 대인기피증, 외로움 등으로 고통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들이 저들의 발자취를 추적하기 시작하였고 1991년에는 36개 여성단체들이 정신대 대책협의회를 결성했고, 1992년 그것은 아시아여성연대로 발전했으며, 2000년에 이르러 일본을 국제 전범으로 재판하는 모의국제전범재판을 일본 동경에서 열기에 까지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요일 마다 정신대 대책협의회가 이끌고 그에 속한 여성단체들이 교대로 운영하는 할머니들을 위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시위운동은 바로 이스라엘 딸들의 입다의 딸을 위한 애곡모임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원한을 푸는 혜원적 차원을 갖습니다. 옛 시간에 맺혔던 원한들을 풀어내고 해방시켜 줍니다. 기억하는 것은 불의로운 것들을 드러내어 정의를 지향하게 합니다. 기억하는 것은 처음 사랑을 지속하게 합니다. 기억하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새 힘을 줍니다. 이것은 성서적 메타노이아의 경험이라 할 것입니다. 기억의 힘은 그러므로 매우 창조적입니다.
우리 민족의 삶을 왜곡시키고 우리사회 갈등문제의 뿌리가 되었고 남북 민중의 삶을 질곡속으로 몰아 넣은 분단의 역사, 한국전쟁 그 60주년을 기억하는 일,
우리 민족의 행복을 가져올 자유와 민주, 그리고 아름다운 민족을 이룰 자유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젊은 목숨들이 피를 흘렸던 4.19 혁명을 기억하는 일,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된 노동자들의 권리와 기본 인권을 위해 22살 재단사가 몸에 불을 붙여 태웠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는 일,
이땅의 정치적 정의와 민주화, 그리고 짓밟히는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비상계엄령 군부 폭력에 항거하여 수많은 피를 흘렸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일, 특히 이 광주 운동과 관련하여 그 처참했던 사건으로 왜곡되고 파괴된 개인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광주민주화 운동 피해자 김영철씨와 당시 계엄군으로 참가했던 김씨의 이야기입니다. 김영철씨는 ‘들풀야학’ 교사로 있었는데 지금도 도청 계단에 서서 ‘야 보안대장이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아직도 그 시간과 사건안에 갇혀있는 상태로 정신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계엄군 김씨도 법무부 감호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정신착란증세, 대인기피증등으로 고통 속에 있으며 형수까지 살해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이 얼마나 엄청난 비인간화와 고통의 삶을 결과하였는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역사에 누적된 한을 풀고 다시는 그런 불행사를 반복치 않겠다는 깊은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이 한낱 국가적 국경일로 기념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들의 과제가 아직도 미완임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화는 다시 오늘의 화두가 되고 있는 불행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더욱 더 역사적 사건들을 기억하며 내일의 정의, 평화, 생명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의 기억과 동시에 우리 개인적 차원의 삶에서 기억되어짐은 어떤 것일까요? 여기서는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가의 내용보다는 나는 다른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어질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는 최근에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매우 독특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사건이나 사고로 죽었거나 어떤 연유로 죽었던지 죽은 사람의 소식을 들으면 그 곳으로 가서 그 사람을 위해 애도하며 다니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의 모습을 매우 비인간적이고 탐욕적이고 속물적인 한 기자가 발견하고 취재를 위해 그를 쫓아 다니다가 그에게 감동되어 그도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그 애도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의 죽음 앞에서 그를 애도하기 위해 일본 전역을 떠도는 청년, 그는 신문에서 각종 사망 소식을 접하면 현장에 찾아가 그만의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 하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달래고 명복을 비는 것입니다. 세상 떠난 사람의 사람다움을 찾아내어 그것을 자기 안에 새기는 것이 애도의 방식이라 합니다. 그는 아무리 불량배이고 악한이라도 그의 죽음 앞에 가서 그를 아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누구를 사랑했나요? 누구로부터 사랑 받았나요? 어떤 일로 사람들이 그분에게 감사를 표했는지요?라는 등의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라도 비록 그가 파렴치한으로 지금은 죽었다 하더라도 그의 어린시절 사랑 받았거나 또 어떤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되고 그는 이 내용을 알아 세상 떠난 그 사람의 사람다움을 찾아내고 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그가 모든 인간의 본래적 가치, 모든 인간의 존엄을 찾아 헤메는 사람이었음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역사적 사건의 기억에서 우리는 거시적 정의와 구조의 본질에 대한 기억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면 나의 일상적이고 개인적 차원에서의 기억은 사람의 진정성과 사랑의 삶에서 형성되는 기억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텐도의 행위처럼 누구일지라도 그의 사람다움을 찾아내어 사랑하고 기억하는 그런 삶을 산다면 후대의 누구라도 나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삶은 지금 내모습 이대로 기억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어떤 것일지라도 내안에 있는 사랑의 요소들은 기억되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들의 기억의 생리는 가장 아프거나 가장 아름다운 것을 저장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고 아픔과 아름다움은 사랑의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다의 딸의 지극한 슬픔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사랑의 힘이 된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입다의 딸이 죽음의 슬픔을 친구들과 같이하였고 또 친구들이 그 사건의 전승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 의미깊다고 여겨집니다. 입다의 딸은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형성하는 모델을 보여줍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나 우리 삶에 대해서 새길의 식구들이 이런 ‘의식 공유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새길의 20여년 역사에서 민족의 앞날과 인간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전승해 나가는 공동체로서의 발전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기억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망각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어미가 낳은 자식을 잊을 지라도 나는 이스라엘을 잊지않을 것이라고 기억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이 망각과 기억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억과 망각도 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안에서 그분의 온전하심을 향하고 참여하는 것임을 다시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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