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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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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08.1.20 새 해에 주신 말씀 3: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The War Is in God’s Hand)
--사사기 7:1-8
1.
세계 전쟁사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전쟁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꼽겠습니까? 얼마 전 개봉되었던 영화 ‘300’에서 그려진 테르모필레(Thermopylae) 전투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주전 480년,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하기 위해 남하하자, 스파르타 왕 레오디나스(Leonidas)는 300명으로 구성된 정예 부대를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그들을 저지합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용감하게 싸웁니다. 이렇게 300의 정예군이 시간을 벌어준 까닭에 그리스인들은 연합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고, 결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이 전쟁이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300명의 정예 부대로 백만 대군을 막아냈다는 것만으로도 기록적입니다. 물론,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로 인해 결국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겼다”(They lost the battle but won the war.)고 말하는가 봅니다. 이 전쟁이 가장 위대한 전투로 꼽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전쟁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만일 300명의 정예군이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면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점령했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서양사 그리고 세계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3백명의 스파르타 정예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기드온이 이끌었던 3백명의 정예군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기드온의 전투 역시 전쟁사에 기록될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3주일째 기드온에 대해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에는 기드온의 소명 이야기(calling story)를 보면서, 나에게 주신 능력과 은사와 물질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기드온의 영적 준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기드온의 특별한 전쟁 이야기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기드온의 전쟁도 테르모필레 전쟁처럼 특별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3백명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2십만명도 넘는 미디안의 대군을 싸워 이겼다는 것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기드온의 군대가 사용한 무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들고 싸운 무기는 빈 항아리와 나팔과 횃불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칼과 창을 사용하여 싸웠지만, 처음에는 이같이 무기 축에도 들지 않는 도구들을 가지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2.
기드온에게 주어진 병사가 처음부터 300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디안의 참혹한 압제와 박해 아래서 죽은 듯이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이 나서서 거사를 도모하자 일제히 따라 나섭니다. 처음에 그를 따라 나선 사람들의 수가 3만 2천명이었습니다. 2십만명이 넘는 미디안 군을 대항하기에 3만 2천명은 너무나도 초라한 수였습니다. 더구나 미디안 사람들은 오래도록 전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래도록 압제를 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전쟁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의 기드온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해 투정하고 싶은 상황이 아닙니까? 아마도,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 하나님, 가만히 숨 죽여 사는 사람을 끌어 내셨으면, 군사라도 충분히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오합 지졸의 병사들을 이끌고 미디안을 대항해 전쟁을 일으키라는 말씀입니까? 병사의 수로 따져도 저들은 우리보다 10배도 더 됩니다. 저들은 최신 무기로 무장해 있고, 전쟁을 치루기에 충분한 식량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기도 부족하고, 식량도 곧 바닥이 날 형편입니다. 도대체,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막막하기 그지 없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주신 대답은 더 충격적입니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2절). 지금 가지고 있는 군대가 미디안 군대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데, 그것도 많다는 겁니다. 지금의 군대를 데리고 나가 싸워 승리하게 된다면, 자기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착각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만큼 병사의 수를 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먼저, 두려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을 전하는 기드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겉으로는 “너희들 가운데 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 길르앗 산을 떠나라.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 남으란 말이다!”라고 당당하게 명령했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 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아닙니다, 장군님! 저희는 모두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를 모두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대답하기를 바랬을 겁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하나님, 안 되겠는데요. 아무도 돌아가지 않겠다는데요. 그냥 다 데리고 가야겠지요?”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세 사람 중 두 사람꼴로 자리를 뜨는 겁니다. 기드온의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나중에 보니, 3만 2천명의 군사가 1만명으로 줄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 이제 죽기를 각오한 병사 만명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마음을 다시금 찢어 놓으십니다. 아직도 많다는 겁니다. 한 번 더 걸러 내라는 겁니다. 이번에는 물이 흐르는 개울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하고, 손으로 물을 움켜 개처럼 물을 핥아 마시는 사람들만 선택하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돌려 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릴 없이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병사들이 물을 마시는 꼴을 보며 그는 또 다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물을 손으로 움켜서 핥아 마시는 사람은 백 명에 세 사람꼴이었습니다. 다 골라내고 보니, 남은 사람은 3백명뿐이었습니다.
3.
이 즈음 되어 기드온은 포기했을 것입니다. 병사들을 하나라도 더 잡아 두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포기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전투에서 이기려는 마음까지 포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제 남은 희망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미디안을 능히 싸워 이길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더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드온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나는 이길 도리가 없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2절)고 말씀하실 때, 실은 기드온을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로써 기드온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여 나중에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 공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기드온이 자기 자신이나 병사들의 능력에 의존했다면, 그는 필경 패배했을 것입니다. 혹시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는 기고만장해져서 타락의 길에서 질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진정한 승리를 안겨 주시는 방편으로 병사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새 해 벽두에 이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진리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20만 대군을 맞서야 하는 기드온은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컸겠습니까? 그 엄청난 일을 어찌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그의 마음은 참으로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군사의 수를 더 모집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군사를 조금만 더 주십시오. 이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반대의 대답을 주십니다. 군사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늘이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오합지졸의 3만 2천명보다는 정예부대 300명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군사들은 오히려 해가 될 뿐입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염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일치 단결하여 전투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발목이나 잡아 챌 가능성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병사로서의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전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개울가에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병사들을 모두 돌려 보내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주의한 병사들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줄어들게 되면, 나는 자연히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그것이 오합지졸일지라도, 내 마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양자간의 선택의 갈림길에 봉착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손상이 오더라고 더 많이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소유를 어느 정도 포기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살아있게 할 것인가? 우리의 욕심으로 따지면야, 둘 다 가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4.
구약성경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사사기에서 일관되게 듣게 되는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교향악의 주선율과 같고, 찬송가의 후렴과 같습니다. 피비릿내가 진동하는 ‘가나안 잔혹사’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모든 기록을 통해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이 말씀은 굳이 전쟁에만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 관계된 진리입니다. 인생은 축제에 비유할 수도 있지만, 또한 전쟁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정치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사업도, 경제 문제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사회의 문화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내 가정도, 내가 고민하는 부부관계도, 나를 불안하게 하는 자녀의 미래도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 하나부터 온 우주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며 그분의 손길을 분별하며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이 사실을 부정하고 내 뜻대로, 내 야심을 따라, 내 능력과 기지로써 일을 성취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만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기도만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매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반대로,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일을 이루기를 힘쓰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아쉬움이 언제나 그의 마음을 지배할 것입니다. “아,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런데 이 두 선택지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소위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기드온이 그렇게 했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으며,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할 수가 없어서, 전쟁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내려 놓고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하기를 기대하시는데, 우리는 지금 가진 것으로는 부족하니 더 많이 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결국, 따져 보면, 하나님을 향해 부단히 기도하고 있다 하더라도, 엄밀히 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 있고, 돈을 믿고 있으며, 물질을 믿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을 얻고, 더 많은 사람을 얻고, 더 많은 물질을 얻으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더 확실히, 더 분명히 그리고 더 빨리 얻을 수 있다고 믿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읽은 기드온의 이야기는 또 다시 충격을 줍니다. 우리가 당면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질이 아니라 더 많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더 많이 달라고 간구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내려 놓을 것이 없는지 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도 없어 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문제도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풀어가실 수 있도록 맡기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2008년도의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꿈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우리의 계획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도모하고 노력하고 힘쓰는 모든 일들도 결국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인정하십시다. 매일 아침,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선언하십시다. 매일 아침, “내 하루의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선언하십시다. 매일 아침, 직장의 문을 들어서면서 “내 직장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선언하십시다. 너무도 잊기 쉬운 이 진리가 우리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지도록 선언하고 또 선언하십시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 힘쓰십시다.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순종하기 위해 줄일 것, 버릴 것, 그리고 내려 놓을 것이 없는지 찾아 보십시다. 3만 2천의 군사보다 3백명의 군사가 더 강했습니다. 2만 9천의 오합지졸은 기드온의 판단만 흐리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없애 버려야 할 ‘군살’이었습니다. 군살은 행동을 굼뜨게 할뿐 아니라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이같은 군살이 우리 살림 살이에는 없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몸집을 줄이는 것이 건강하듯,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자 성어에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the better)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도 많을수록 좋고, 차도 많을 수록 좋고, 자식도 많을 수록 좋으며, 재산도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도 이상의 군살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반대가 오히려 진리에 가깝습니다. ‘다다익해’(多多益害, the more the worse)가 맞는 말일 경우가 더 많다는 뜻입니다. 정도 이상의 돈은 우리를 타락시키거나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해롭습니다. 정도 이상의 물질도 마찬가지로 해를 끼칩니다. 정도 이상으로 많은 일에 붙들리는 것도 해롭습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말했듯이, 우리가 꿈꿀 것은 오직 “단순화, 단순화, 단순화!”(Simplify, simplify and simplify!)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3만 2천의 병사가 3백명으로 줄어들었을 때, 기드온은 하나님께 100%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삶의 규모를 줄이고, 군살을 제거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하늘을 쳐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적어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커지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커지는만큼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줄이고 버리고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유한 자원(limited resource)의 일부를 내려 놓는 대신 무한 자원(unlimited resource)이신 하나님께 더욱 깊이 연결됩니다. 전쟁이 진실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추구할 자원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해집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안심하기도 하고 또한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가진 것이 충분하다 싶어 안심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가진 것이 적다 싶어서 불안해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신과 우상 숭배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형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믿음을 얻게 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마져 다 놓아 버리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만을 철저히 믿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6.
작년,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몽골 선교사 이용규 박사가 쓴 <내려놓음>이라고 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래의 보장과 가족의 안전까지 모두 내려 놓고,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있는 교회를 섬기며 몽골국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책은 그분이 유학 생활과 선교 생활을 통해 체험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뭔가 작은 것이라도 붙들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 그것까지 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내려 놓았을 때 채워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왜 한국 교계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의 제목 <내려놓음>은 절대로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제목이 아닙니다. 모두 다 부자되기를 꿈꾸고, 모두 다 어떻게든 성공하기를 꿈꾸는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제목의 책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책 안에 기록된 생생한 하나님의 역사의 이야기들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철저한 내려놓음의 이야기들은 실로 감동스럽습니다. 또한 그렇게 내려 놓을 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더 더욱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이 책이 많은 신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들도 이렇게 철저하게 순종하고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지 못할 뿐입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가 대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게 됩니다.
대리 만족을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더라도 내려 놓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내가 ‘나’라고 붙들고 있는 자아도 내려 놓아야 하고,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계책과 술수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나 자만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에 믿음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때로는 재산에 대한 믿음도 포기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믿음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동안 꼭 기억하고 사십시다. 매일 매일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십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식대로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우리는 다만 하루 하루 그분을 따라 가십시다. 혹시 이 믿음을 저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내려 놓을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에 쥐어져 있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가 처한 전쟁에서 승리를 안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승리를 얻기 위해 더욱 그분만을 의지하며 순종하고 따라가는 새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실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믿게 하소서.
저희는
저희 홀로 싸우는 전쟁인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으로 싸워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심을 진실로 믿게 하시고
그 믿음 안에서
하루 하루 살게 하소서.
참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이끌어 주소서.
아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The War Is in God’s Hand)
--사사기 7:1-8
1.
세계 전쟁사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전쟁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꼽겠습니까? 얼마 전 개봉되었던 영화 ‘300’에서 그려진 테르모필레(Thermopylae) 전투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주전 480년,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하기 위해 남하하자, 스파르타 왕 레오디나스(Leonidas)는 300명으로 구성된 정예 부대를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그들을 저지합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용감하게 싸웁니다. 이렇게 300의 정예군이 시간을 벌어준 까닭에 그리스인들은 연합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고, 결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이 전쟁이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300명의 정예 부대로 백만 대군을 막아냈다는 것만으로도 기록적입니다. 물론,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로 인해 결국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겼다”(They lost the battle but won the war.)고 말하는가 봅니다. 이 전쟁이 가장 위대한 전투로 꼽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전쟁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만일 300명의 정예군이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면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점령했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서양사 그리고 세계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3백명의 스파르타 정예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기드온이 이끌었던 3백명의 정예군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기드온의 전투 역시 전쟁사에 기록될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3주일째 기드온에 대해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에는 기드온의 소명 이야기(calling story)를 보면서, 나에게 주신 능력과 은사와 물질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기드온의 영적 준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기드온의 특별한 전쟁 이야기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기드온의 전쟁도 테르모필레 전쟁처럼 특별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3백명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2십만명도 넘는 미디안의 대군을 싸워 이겼다는 것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기드온의 군대가 사용한 무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들고 싸운 무기는 빈 항아리와 나팔과 횃불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칼과 창을 사용하여 싸웠지만, 처음에는 이같이 무기 축에도 들지 않는 도구들을 가지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2.
기드온에게 주어진 병사가 처음부터 300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디안의 참혹한 압제와 박해 아래서 죽은 듯이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이 나서서 거사를 도모하자 일제히 따라 나섭니다. 처음에 그를 따라 나선 사람들의 수가 3만 2천명이었습니다. 2십만명이 넘는 미디안 군을 대항하기에 3만 2천명은 너무나도 초라한 수였습니다. 더구나 미디안 사람들은 오래도록 전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래도록 압제를 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전쟁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의 기드온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해 투정하고 싶은 상황이 아닙니까? 아마도,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 하나님, 가만히 숨 죽여 사는 사람을 끌어 내셨으면, 군사라도 충분히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오합 지졸의 병사들을 이끌고 미디안을 대항해 전쟁을 일으키라는 말씀입니까? 병사의 수로 따져도 저들은 우리보다 10배도 더 됩니다. 저들은 최신 무기로 무장해 있고, 전쟁을 치루기에 충분한 식량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기도 부족하고, 식량도 곧 바닥이 날 형편입니다. 도대체,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막막하기 그지 없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주신 대답은 더 충격적입니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2절). 지금 가지고 있는 군대가 미디안 군대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데, 그것도 많다는 겁니다. 지금의 군대를 데리고 나가 싸워 승리하게 된다면, 자기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착각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만큼 병사의 수를 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먼저, 두려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을 전하는 기드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겉으로는 “너희들 가운데 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 길르앗 산을 떠나라.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 남으란 말이다!”라고 당당하게 명령했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 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아닙니다, 장군님! 저희는 모두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를 모두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대답하기를 바랬을 겁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하나님, 안 되겠는데요. 아무도 돌아가지 않겠다는데요. 그냥 다 데리고 가야겠지요?”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세 사람 중 두 사람꼴로 자리를 뜨는 겁니다. 기드온의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나중에 보니, 3만 2천명의 군사가 1만명으로 줄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 이제 죽기를 각오한 병사 만명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마음을 다시금 찢어 놓으십니다. 아직도 많다는 겁니다. 한 번 더 걸러 내라는 겁니다. 이번에는 물이 흐르는 개울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하고, 손으로 물을 움켜 개처럼 물을 핥아 마시는 사람들만 선택하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돌려 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릴 없이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병사들이 물을 마시는 꼴을 보며 그는 또 다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물을 손으로 움켜서 핥아 마시는 사람은 백 명에 세 사람꼴이었습니다. 다 골라내고 보니, 남은 사람은 3백명뿐이었습니다.
3.
이 즈음 되어 기드온은 포기했을 것입니다. 병사들을 하나라도 더 잡아 두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포기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전투에서 이기려는 마음까지 포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제 남은 희망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미디안을 능히 싸워 이길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더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드온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나는 이길 도리가 없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2절)고 말씀하실 때, 실은 기드온을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로써 기드온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여 나중에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 공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기드온이 자기 자신이나 병사들의 능력에 의존했다면, 그는 필경 패배했을 것입니다. 혹시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는 기고만장해져서 타락의 길에서 질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진정한 승리를 안겨 주시는 방편으로 병사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새 해 벽두에 이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진리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20만 대군을 맞서야 하는 기드온은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컸겠습니까? 그 엄청난 일을 어찌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그의 마음은 참으로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군사의 수를 더 모집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군사를 조금만 더 주십시오. 이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반대의 대답을 주십니다. 군사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늘이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오합지졸의 3만 2천명보다는 정예부대 300명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군사들은 오히려 해가 될 뿐입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염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일치 단결하여 전투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발목이나 잡아 챌 가능성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병사로서의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전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개울가에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병사들을 모두 돌려 보내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주의한 병사들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줄어들게 되면, 나는 자연히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그것이 오합지졸일지라도, 내 마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양자간의 선택의 갈림길에 봉착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손상이 오더라고 더 많이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소유를 어느 정도 포기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살아있게 할 것인가? 우리의 욕심으로 따지면야, 둘 다 가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4.
구약성경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사사기에서 일관되게 듣게 되는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교향악의 주선율과 같고, 찬송가의 후렴과 같습니다. 피비릿내가 진동하는 ‘가나안 잔혹사’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모든 기록을 통해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이 말씀은 굳이 전쟁에만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 관계된 진리입니다. 인생은 축제에 비유할 수도 있지만, 또한 전쟁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정치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사업도, 경제 문제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사회의 문화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내 가정도, 내가 고민하는 부부관계도, 나를 불안하게 하는 자녀의 미래도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 하나부터 온 우주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며 그분의 손길을 분별하며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이 사실을 부정하고 내 뜻대로, 내 야심을 따라, 내 능력과 기지로써 일을 성취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만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기도만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매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반대로,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일을 이루기를 힘쓰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아쉬움이 언제나 그의 마음을 지배할 것입니다. “아,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런데 이 두 선택지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소위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기드온이 그렇게 했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으며,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할 수가 없어서, 전쟁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내려 놓고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하기를 기대하시는데, 우리는 지금 가진 것으로는 부족하니 더 많이 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결국, 따져 보면, 하나님을 향해 부단히 기도하고 있다 하더라도, 엄밀히 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 있고, 돈을 믿고 있으며, 물질을 믿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을 얻고, 더 많은 사람을 얻고, 더 많은 물질을 얻으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더 확실히, 더 분명히 그리고 더 빨리 얻을 수 있다고 믿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읽은 기드온의 이야기는 또 다시 충격을 줍니다. 우리가 당면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질이 아니라 더 많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더 많이 달라고 간구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내려 놓을 것이 없는지 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도 없어 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문제도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풀어가실 수 있도록 맡기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2008년도의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꿈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우리의 계획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도모하고 노력하고 힘쓰는 모든 일들도 결국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인정하십시다. 매일 아침,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선언하십시다. 매일 아침, “내 하루의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선언하십시다. 매일 아침, 직장의 문을 들어서면서 “내 직장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선언하십시다. 너무도 잊기 쉬운 이 진리가 우리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지도록 선언하고 또 선언하십시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 힘쓰십시다.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순종하기 위해 줄일 것, 버릴 것, 그리고 내려 놓을 것이 없는지 찾아 보십시다. 3만 2천의 군사보다 3백명의 군사가 더 강했습니다. 2만 9천의 오합지졸은 기드온의 판단만 흐리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없애 버려야 할 ‘군살’이었습니다. 군살은 행동을 굼뜨게 할뿐 아니라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이같은 군살이 우리 살림 살이에는 없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몸집을 줄이는 것이 건강하듯,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자 성어에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the better)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도 많을수록 좋고, 차도 많을 수록 좋고, 자식도 많을 수록 좋으며, 재산도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도 이상의 군살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반대가 오히려 진리에 가깝습니다. ‘다다익해’(多多益害, the more the worse)가 맞는 말일 경우가 더 많다는 뜻입니다. 정도 이상의 돈은 우리를 타락시키거나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해롭습니다. 정도 이상의 물질도 마찬가지로 해를 끼칩니다. 정도 이상으로 많은 일에 붙들리는 것도 해롭습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말했듯이, 우리가 꿈꿀 것은 오직 “단순화, 단순화, 단순화!”(Simplify, simplify and simplify!)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3만 2천의 병사가 3백명으로 줄어들었을 때, 기드온은 하나님께 100%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삶의 규모를 줄이고, 군살을 제거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하늘을 쳐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적어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커지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커지는만큼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줄이고 버리고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유한 자원(limited resource)의 일부를 내려 놓는 대신 무한 자원(unlimited resource)이신 하나님께 더욱 깊이 연결됩니다. 전쟁이 진실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추구할 자원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해집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안심하기도 하고 또한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가진 것이 충분하다 싶어 안심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가진 것이 적다 싶어서 불안해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신과 우상 숭배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형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믿음을 얻게 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마져 다 놓아 버리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만을 철저히 믿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6.
작년,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몽골 선교사 이용규 박사가 쓴 <내려놓음>이라고 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래의 보장과 가족의 안전까지 모두 내려 놓고,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있는 교회를 섬기며 몽골국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책은 그분이 유학 생활과 선교 생활을 통해 체험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뭔가 작은 것이라도 붙들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 그것까지 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내려 놓았을 때 채워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왜 한국 교계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의 제목 <내려놓음>은 절대로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제목이 아닙니다. 모두 다 부자되기를 꿈꾸고, 모두 다 어떻게든 성공하기를 꿈꾸는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제목의 책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책 안에 기록된 생생한 하나님의 역사의 이야기들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철저한 내려놓음의 이야기들은 실로 감동스럽습니다. 또한 그렇게 내려 놓을 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더 더욱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이 책이 많은 신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들도 이렇게 철저하게 순종하고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지 못할 뿐입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가 대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게 됩니다.
대리 만족을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더라도 내려 놓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내가 ‘나’라고 붙들고 있는 자아도 내려 놓아야 하고,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계책과 술수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나 자만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에 믿음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때로는 재산에 대한 믿음도 포기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믿음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동안 꼭 기억하고 사십시다. 매일 매일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십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식대로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우리는 다만 하루 하루 그분을 따라 가십시다. 혹시 이 믿음을 저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내려 놓을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에 쥐어져 있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가 처한 전쟁에서 승리를 안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승리를 얻기 위해 더욱 그분만을 의지하며 순종하고 따라가는 새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실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믿게 하소서.
저희는
저희 홀로 싸우는 전쟁인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으로 싸워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심을 진실로 믿게 하시고
그 믿음 안에서
하루 하루 살게 하소서.
참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이끌어 주소서.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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