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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1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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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환경의 노예에서 환경의 변혁자로
삿11:1-11
요즈음 어르신들 입에 이런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못 먹고 안 입고 죽기 살기로 아들 딸 잘 길러 보려고 노력했는데 길러 놓고 보니 모든 게 소용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애지 중지 아들 기르지만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이고, 며느리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착각하는 3대 여인은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라고 합니다. “애들 죽기 살기로 가르쳐 봤자 다 쓸 데 없어”라는 어르신들의 자조적인 이야기, 스스로 자기를 비웃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사다리가 사라진다” “희망의 사다리가 사라진다”라는 연재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 사회를 떠받쳐온 '상승의 사다리'가 작동을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면 된다'는 계층 상승의 메커니즘에 균열이 생기고, '노력해도 가난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우리 사회에 폭넓게 퍼져 있다"고 했습니다. 560만 명의 빈곤층은 희망이 사라졌고 서울의 어느 판자촌에서 30년 동안 그곳을 탈출한 가구는 3가구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한 번 좋지 않은 환경에 빠지면 그 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용어로 하면 환경결정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타고난 환경 어쩔 수 없을까요?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입다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렇지 않다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환경하면 일반적으로 인간을 둘러쌓고 있는 외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자연적 환경 인문적 환경으로 나눈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자연적 환경은 사람이 만들지 않은 땅이나 공기 같은 것을 말하고 인문적 환경은 사람이 만들어내 도시나 고속도로 등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조금 세분하여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적인 환경(자연적 환경), 인적인 환경(인적, 정신적 환경), 문화적 환경입니다. 입다가 처한 세가지 환경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환경의 종이 아니라 환경의 변혁자로 살 것인가를 교훈받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물적 환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까요?
1.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물적 환경에 처한다하여도 포기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여 물적 환경을 변혁시키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입다를 보십시오. 8대 사사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8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날 때 그가 처한 물적 환경을 보십시오. 내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을 보십시오. 나라 환경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고국 이스라엘 나라는 전쟁의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막강한 암몬이 쳐들어 왔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혼돈의 때입니다. 가정환경은 어떻습니까? 그의 어머니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기생이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창녀였다는 말입니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아들입니다. 원치 않는 아이입니다. 거부당한 아들입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창녀의 자식이라는 괄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물적 환경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며 분노와 슬픔, 열등감 속에서 심각하게 자존심이 상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 같으면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부분 아이들이 어떻게 됩니까? 탈선합니다. 반항아가 됩니다. 환경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 입다가 자포자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한 물적인 환경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마쳤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8대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정을 위기에서 구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절 보면 입다는 큰 용사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물리적 환경에 노예가 되어 자기 재능을 잠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성장해서는 그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타인의 힘에 의해 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3절에 보면 집에서 쫓겨나 형제를 피해 돕 땅에서 잡류들과 어울렸다고 했습니다. 무익한 쓸모없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무리들과 어울린 것입니다. 그러나 건달 세계에서 깍두기 건달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 지저분한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갔지만 대장이 된 것입니다. 대장 건달이 된 것입니다. 지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잡류들을 그에게 모였고 그를 따랐습니다. 체력만 개발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지혜를 보십시오. 고난 가운데 지력을 개발했습니다. 암몬군대를 어떻게 무너뜨립니까? 먼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택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암몬 왕과 담판합니다. ‘당신이 왜 우리를 치러 왔느냐?’ 하니까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땅은 모두 자신들의 땅이니 돌려달라고 합니다. 그 때 입다는 3가지로 대처합니다. 첫째는 그 일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21-23). 이 입다의 고백을 통해 입다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주어진 환경은 어떤 환경일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하나님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24).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 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현제 삶의 태도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환경에 비교하면 어떤 환경이 주어진다하여도 하나님이 인도하는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역사의 심판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27).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자신이 심판자가 아니라 심판하시는 분은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물적 환경에 처한다하여도 포기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여 내게 주어진 환경을 변혁시키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좋지 않은 환경이라고 비관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천대받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천적으로 재능을 별로 갖지 못하고 태어났습니다. 아이큐가 태어날 때부터 높지 않았습니다. 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권력, 학력, 매력이 없는 집안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다고 자포자기 말아야 합니다. 상승리 불가능하다고 되는 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2006년 가을, 천재를 연구한 논문을 최초로 집대성한 책인 '전문지식 및 전문가의 케임브리지 편람(Cambridge Handbook of Expertise and Expert Performance)'이 출간되었습니다. 편집을 맡은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은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단언했습니다. 이 책에서 과학자들은 천재가 1%의 영감, 70%의 땀, 29%의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다윈은 어린 시절 학교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흐, 고갱, 차이코프스키, 버나드 쇼도 늦은 나이에 비로소 재능을 발휘했답니다. 천재는 보통사람보다 다섯 배 정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천재 중의 천재로 손꼽히는 모차르트는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해 35년의 짧은 생애에 무려 600편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45년간 330건의 논문을 남고, 아인슈타인은 50년간 248건의 논문을 발표했고, 에디슨은 1093개의 특허를 냈으며, 볼테르는 2만1000통의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노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쯔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을 보십시오. 그는 15살 때 자전거 점포에서 일을 시작하여 일본 최대의 그룹인 마쯔시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냐고 누군가 물으니까 "나는 3가지 감사할 조건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첫째는 11살에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그래서 남보다 일찍 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내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아쉬움으로 평생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환경은 중요한 변수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입니다. 환경을 탓하는 것은 공짜를 바라는 거지 근성 때문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를 보십시오.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는 의문의 변사를 당했습니다. 아버지의 동업자들이 전재산을 빼돌려 가족들은 졸지에 거리에 나앉고 말았습니다. 테레사는 자신에게 다가온 처참한 환경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주위에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고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할지라도 환경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하는 변혁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을 보십시오. 아브라함도 우상 장사 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의 변혁자가 되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에게도 양어머니와 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입양아 신세로 자랐습니다. 노예 민족입니다. 그는 환경의 종이 아니라 환경의 변혁자가 되어 노예 민족을 자유민으로 해방시켰습니다. 요셉은 어머니가 넷인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신 매매 당했습니다. 억울한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족을 살리고 가문을 일으키고 시대를 살리는 시대의 변혁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물적 환경에 처한다하여도 포기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여 물적 환경을 변혁시키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인적 환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까요?
2. 우리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보며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인적환경인 사람을 변혁시켜야 합니다.
태어나 보니 부모가 장애인입니다. 태어나 보니 부모가 가난하고 이혼하였습니다. 태어나 보니 형제들이 시기합니다. 인적 환경이 나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수치스럽고 불행한 환경입니다. 입다를 보십시오. 형제들이 어떻게 합니까? 사랑해주고 위로해 주고 힘을 주어야 할 혈족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정도 성장하니까 동생들은 그를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형을 쫓아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돈에 얼마나 민감합니까? 돈에 눈이 멀면 부모 형제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의 인적환경은 어떻습니까? 동네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합니까? 불의에 대하여 지적하며 약자인 자신의 편을 들어 주지 않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동네 사람들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그를 미워하여 그들이 입다를 쫓아내는데 함께 하였습니다. 이 정도의 인적 환경에 놓이면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원망합니다. 저주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벼들어 함께 자멸해 버립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았지 않습니까? 결혼 반대한다고 여자의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죽였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사장을 죽이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교회에 불지르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입다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적 환경의 불합리한 처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였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동생들에게 쫓겨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실제적으로는 큰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1, 2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는 큰 용사였습니다. 힘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쫓겨났습니다. 나라가 위급하니까 장로들이 입다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입다에게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어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머리는 ‘카친’이라는 말로 군대 장관, 전쟁의 우두머리가 되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기분이 안 좋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을 쫓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속을 알고 있는 입다는 구역질 이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인간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도 일반적인 통치자 "로쉬"(8)가 되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전쟁의 우두머리입니다. 위급하니까 네가 나가 싸워달라는 것입니다. 다행이 싸워 이기면 좋고 죽으면 너나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입다는 그들에게 물어 봅니다. 9절보십시오. 여기에 나오는 머리는 ‘로쉬’입니다. 일반적인 통치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통치자로 삼겠느냐는 것입니다. 비록 불쾌하고 속보이는 짓들을 하고 있지만 나라를 위하여 위기 앞에서 과거 환경의 노예가 되어 그들을 원수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었습니다. 그는 창녀의 아들이었지만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좋지 않는 과거가 있는 장로들이 요구할 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삿11:9)” 현재, 내가 쫓아내면 내가 전쟁에서 이기면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넘겨주시면 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적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에도 하나님께서 넘겨 주셨다는 것입니다(21,23).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넘겨주시면 적들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30).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이기게 할 것을 확신하며(9,24) 기도합니다(11).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이기게 하였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21,23)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보지 않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여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의 약함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인적 환경,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 붙들고 다투고, 억울해 하고, 원망하며,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의 힘을 기르면 그 사람들 언젠가 변화되는 때가옵니다. 자식들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 잘 시키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다 너무 중요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어르신들 유행하는 이야기 또 해보겠습니다. 아들 아들 하며 아들 죽기 살기로 아들 기르는데 아들 그렇게 교육시켜보았자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돈 잘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고, 빚진 아들만 내아들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여 과외시켜 길렀는데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에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아들 딸 너무 중요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이 힘주시고 위로해주시고 하나님이 은혜 주어야 합니다. 힘없어 나를 둘러싼 인적 환경에 대하여 부당하게 생각하며 억울해 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고 영적 능력을 기르고 육적 정신적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은 후패하나 우리 영은 날로 날로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내가 힘있으면 아들 며느리 돌아가실 때까지 효자 효부 됩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보며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인적환경인 사람을 변혁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문화적 환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까요?
3. 우리는 이방 문화 환경의 노예가 아니라 문화를 그리스도의 문화로 바꾸는 변혁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주어진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환경이 좋으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며 살 수 있는데 그 문화적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퇴패문화, 향략문화, 인본주의, 쾌락주의, 폭력 문화 속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태어 나 보니 불교 집안, 이슬람 집안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는 좋은 문화 환경에서 태어났는데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직장 생활하다 보니 아주 좋지 않은 문화 환경에 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입다를 보십시오. 그가 쫓겨간 곳은 어디입니까? 돕 땅입니다. 이방 땅입니다. 이방 땅에서 폭력배들과 어울려 사니 그의 행동 양식은 이방문화에 흠뻑 젖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30절 보십시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제사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만큼 이방 문화에 물이 들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입다는 불우한 물적 인적 환경을 극복하였지만 결국 이방 문화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입다는 이방 풍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방의 잘못된 언어습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방 철학, 이방 사상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먼저 만난 사람을 인육제사를 드린다고 서원하였습니다. 환영하는 사람 칭찬해주고 상급주어야 하지 왜 제물로 바칩니까? 이방 사람들이 몰렉 신에게 바치는 것을 배웠습니다. 입다가 쫓겨나서 돕 땅에 가서 살았는데 수리아 지역입니다. 거기에서 이런 풍습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방 풍습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딸이 처녀의 몸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했겠습니까?
우리는 진공 속에서 살지 않고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이방 문화 환경입니다. 어떤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는 성가 연습을 다 한 후에 "성불사의 밤"을 흥얼거립니다. 교회 예배 시간에 배꼽티를 입고 와서 목사님께 인사를 합니다. 목사가 하도 민망하니까 얼굴을 보니 못하고 옆을 보니까? "목사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새벽기도를 끝내고 나오면서 바위섬을 부릅니다. 그랬더니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교인들도 따라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큰 교회에 다니는 청년회 회장이 고민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부 예배를 마치고 2부 순서로 인천 앞 바다를 간다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어울려 한잔하고 온다는 것입니다. 교회 어는 여대생 모임에서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2부로 카페에 갑니다. 앉자마자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어 돌립니다. 서울에 있는 어는 목사님은 철야 기도를 마친 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가 답답하다고 여전도 회장님에게 수원에 가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밤중에 수원에 가서 여전도 회장님과 한잘 걸치고 왔습니다. 남편이 하도 오지 않아 교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 4시에 목사님과 함께 차에서 내리더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 어떻게 되겠습니까? 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는데 옛 문화, 이방 문화, 죽음의 문화, 타락한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가 됩니까?
제가 요즈음 계속 현용수 박사의 유대인의 교육을 추천도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인성교육, 유대인의 효도 교육, 영재 교육, 경제 교육, EQ 교육 등 다양한 책을 교회 도서실에 사놓았습니다. 유대인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0.2%인 약 천 오백만 명인데 노벨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2%인 560만 명에 불과한데 미국 400대 재벌 중 23%가 유대인이고, 맨해튼 빌딩 주인의 40%, 미국 대학 교수 중 25-35%,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 중 50%, 뉴욕 의사의 과반, 미국 법조계 70만 변호사들 중 14만 명(2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대학 교수 중 25-35%,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 및 주요 책임자 90%, 아이비리그 교수진의 약 40%, 하버드, UCLA 의대 및 법대 교수의 50%, 상위 15개 대학의 21%의 학생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3대 방송사와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영화사를 장악하고 있고 전미 50대 기업 중 17개가 유대인이 설립한 기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은 아이비리그에 들어가지만 44%가 중도 하차하고 졸업을 하여도 70% 이상이 미국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버지 가계를 이어 받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은 강조하기를 수직 문화를 도외시하고 수평문화만 강조하고 아이큐만 강조하고 이큐를 도외시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구약 성경과 토라를 가르치며 하루에 쉐마를 두 번 외우게 하고 세 번 기도회를 가지며 3대가 신앙 문화를 전승하는 교육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수직문화는 심연문화 뿌리 문화로 영구적인 가치, 인생의 의미를 찾는 문화, 하나님 말씀, 지혜교육, 깊이 생각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수평문화는 일시적 외형 문화로 시대에 따라 바뀌는 문화, 충동적인 문화, 개인주의, 쾌락주의, 과학만능주의, 물질 주의 등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고 환경을 초월하지 못하는 문화라고 말합니다. 수직문화를 계승하니까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 문화가 4천년이 넘도록 멈추지 않고 있고 심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자아 개념, 집중력, 고난에 대한 인내력 등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 문화를 통하여 13살까지 정의적 영역 감정과 의지의 영역을 높여 준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통한 의지력, 사명 감, 가슴에 끓는 열정을 넣어 준다는 것입니다. 쉐마 교육(신6:4-9)을 중심으로 “지혜 교육, 슈르드 교육, 질문식과 탈무드 논쟁식 IQ 계발 교육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 EQ, 수직 문화, 효도, 고난의 역사를 교육하고 외면적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IQ 계발, 지식 전문교육, 체력 단련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텔레비전을 집에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공부하라며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가 없다고 합니다. 하루에 세 번씩 3대가 기도를 하며 자녀들과 함께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쉐마를 암송하며 수직 문화를 계승한다고 합니다. 인성교육과 수직문화를 무시하고 수평문화에 방치하면서 지식 교육만 강조하는 교육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다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신약과 구약을 선물받은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얼마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문화, 영원히 변치않는 복음의 문화를 우리 후대에 전승할 수 있습니다. 문화 환경은 물과 같습니다.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신앙의 좋은 물을 후손에게 남겨주어야 합니다. 100년이 지나면 문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나라는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여 고생스럽게 신앙 생활을 합니까? 우리는 우리 가정 문화, 우리 교회 문화, 우리 시대의 문화를 하나님의 중심의 문화, 말씀 중심의 문화, 살리는 문화, 진정 재미의 문화, 서로 공존하는 문화로 바꾸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세대에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놓아야 우리 후손들이 조금은 갈등 없이 살만한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 문화 환경의 노예가 아니라 문화를 그리스도의 문화로 바꾸는 변혁자가 되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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