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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9:4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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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사사기(26) 3가지 믿지 말아야 할 것 (사사기 9장 46-57절)
아비멜렉에 의해 세겜 사람들이 도륙된 소식을 듣고 세겜 망대로 피했던 사람들은 다시 굴속에 있던 엘브릿(바알브릿, 언약의 바알) 신전의 보루로 도피했습니다. 그 보루로 가면 바알이 도와서 안전할 줄 알았지만 그 도피처가 오히려 그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47-49절). 그처럼 우상은 도움이 필요할 때 전혀 돕지 못합니다. 또한 악인의 삶은 겉으로는 좋은 길로 가는 것 같아도 결국 죽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처럼 세겜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엘브릿 신전에 모인 소식이 아비멜렉에게 들리자 그때를 세겜 사람들을 박멸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아비멜렉은 보루 위에 나뭇가지를 놓고 불을 질러 보루로 도피한 남녀 약 천 명을 다 죽였습니다(49절). 그렇게 엘브릿 신전에 있던 세겜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계속해서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을 도와 반역을 꾀한 데베스로 가서 그곳을 점령했습니다(50절). 데베스 사람들이 도망친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세겜 사람들을 죽일 때처럼 화공법을 쓰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한 무명의 데베스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렸습니다. 승승장구하다가 순식간에 여인이 던진 맷돌 하나에 아비멜렉이 허무하게 죽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처럼 악인들의 승승장구와 번성은 오히려 그들의 최후를 알리는 서곡입니다. 또한 한때 아비멜렉을 옹립해 권력을 잡았던 세겜 사람들도 씨가 마를 정도로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악인의 성공의 결말입니다. 사람의 성공은 한때의 성공에 불과합니다. 그 성공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2. 사람의 숫자
무명 여인이 던진 맷돌에 의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여자에게 죽었다고 조롱할까 두렵다.” 그래서 그 청년이 아비멜렉을 찔러 죽였습니다. 아비멜렉은 힘없는 여인에 의해 죽게 된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것 같지만 사실상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적인 교만을 버리지 못한 불행한 모습입니다.
그렇게 아비멜렉이 허무하게 죽자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싸울 명분이 없어서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처럼 대중은 이익을 따라 썰물처럼 모였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허무한 존재들입니다. 반면에 진리와 비전 안에서 모인 의로운 소수는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마침내 꿈과 비전을 이뤄냅니다. 사람의 숫자를 믿지 마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보면 압니다.
요새 평수나 층수를 자랑하고, 교인 숫자를 자랑하고, 새 프로그램 도입에 정신없고, 불의에 눈 감으며 물질 축복에만 매달리는 대중들이 많습니다. 또한 열린 예배나 프로그램을 따라 교회를 옮겨 다니는 대중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희망이 느껴지십니까? 섬기는 일에 관심이 많은 소수보다 섬김 받는 일에 관심이 많은 대중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이고, 또한 밤낮 몇 단계 공부로 머리만 커진 대중들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살면서 허무한 다수에 속하지 말고 의로운 소수에 속하려고 힘쓰십시오.
3. 사람의 동맹
기드온이 세겜 출신의 첩을 통해 낳은 자식인 아비멜렉은 지역감정을 일으켜 세겜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드온의 70명의 자녀를 몰살시키고 왕이 되었습니다. 권력을 잡으려고 일시적으로 서로 동맹한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이 인간적인 유익을 위해 맺은 인간적인 동맹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결국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 간에 서로 반목하며 내분이 생겼고 먼저 세겜 사람들이 몰살당하고 나중에 아비멜렉까지 순식간에 비참하게 죽음으로 그 인간적인 동맹은 끝납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인 악행을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도 그들이 몰살되게 함으로 갚으셨습니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56-57절).
사람들은 큰 문제에 직면하면 그 문제를 풀어줄 유력자나 연줄을 찾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쳐두면 문제 해결은 멀어집니다. 얼굴에 기미가 생길 때 연고만 바르면 됩니까? 얼굴의 기미는 장의 문제를 나타내기에 얼굴의 기미는 식생활과 삶의 습성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처럼 문제와 시련은 하나님과 동맹하라는 거룩한 초대장입니다. 그 초대에 응하면 문제와 시련은 오히려 영혼을 밝히는 연료가 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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