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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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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지역감정을 극복하십시오 (사사기 12장 1-6절)
본문은 이스라엘에 있었던 지파감정으로 벌어진 길르앗과 에브라임 족속간의 내전을 그리고 있는 본문입니다. 입다가 암몬을 물리치고 큰 공로를 세우자 자신들이 요셉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우월적인 지파의식이 유난히 강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1절). “네가 암몬과 싸우러 갈 때 왜 우리를 불러 함께 가게 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겠다!”
입다가 암몬과 싸우기 전 에브라임 지파의 참전을 권했지만 에브라임 지파는 길르앗 출신에다가 기생의 아들인 입다가 전체 대장이 된 것을 보고 자존심이 상해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에브라임 지파는 자존심이 강하고 질투심이 많아서 항상 자신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처럼 사력을 다해 싸워 암몬을 물리쳤는데 오히려 에브라임 지파가 책임을 추궁하듯이 나오고 협박까지 하자 입다도 크게 분노했습니다. 결국 길르앗 사람과 에브라임 사람 사이에 감정적인 문제로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분노한 입다는 지파감정을 가지고 항상 멸시했던 에브라임 지파를 응징하려고 길르앗 군사들을 소집해서 결국 에브라임을 쳐서 물리쳤습니다. 그때 길르앗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4절).”고 지파감정을 자극하며 길르앗 사람들을 마치 열등한 사람처럼 무시하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므낫세 지파인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후손이지만(민 26:29) 에브라임 지파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요단서편 지파 사람들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사람들을 은근히 멸시해서 문제가 생기면 “길르앗 사람들은 어떻다!”고 하며 평소에 차별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처럼 평소에도 감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암몬과의 전쟁 문제로 에브라임 사람들이 또 차별적인 말을 하자 “암몬을 물리친 은혜도 모르고 또 도발적인 말을 해!”하고 분노해서 결국 동족상잔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이긴 후 길르앗 사람이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의 패잔병이 요단강을 건너가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물었습니다. “너는 에브라임 사람이냐?” 그때 그가 에브라임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그에게 쉽볼렛이란 단어를 발음하게 했습니다. 쉽볼렛은 ‘시내’란 뜻을 가진 단어인데 그 발음을 하게 한 것은 그 발음을 정확하게 못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당시 에브라임 사람은 쉽볼렛을 잘 발음하지 못해서 십볼렛이라고 발음했는데 그렇게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그가 에브라임 사람인 줄 알고 그를 잡아서 요단강 나루턱에서 죽였는데 그때 죽인 에브라임 사람이 사만 이천 명이었습니다(5-6절). 이 장면을 보면 평소에 지파감정에 의해 무시 받던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사람들을 편견을 가지고 도매 급으로 차별하면 결국 큰 비극을 낳습니다.
< 지역감정을 극복하십시오 >
왜 지역감정이 생겼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욕을 가진 리더가 권력을 잡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잡은 권력을 굳게 하려고 자극해서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리더들이 유도하는 지역감정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성도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부모의 심정을 가진 좋은 리더들을 주소서!”
부모는 자식이 속을 썩인다고 자식을 버리지 않고 모든 자녀들을 동등하게 키우려고 합니다. 그처럼 정치 리더들은 각 지역에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지역에 따라 개발 분야의 차이를 돌 수는 있지만 사랑과 관심의 정도는 같아야 차이를 차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결국 차별의식이 생기는 것은 ‘우리 중심’의 넓은 사고보다 ‘나 중심’의 좁은 사고를 가진 리더의 책임이 큽니다. ‘나 중심’의 좁은 사고는 지역 간의 차이를 ‘차별의 토대’로 삼지만 ‘우리 중심’의 넓은 사고는 지역 간의 차이를 ‘문화적 개성’으로 발전시킵니다.
자세히 보면 권력자들이 지역감정을 고도의 통치기술로 활용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국민의 지지기반이 약한 정권에게 국민들의 단합된 힘은 권력유지에 유리하지 않기에 지역 간의 사소한 갈등과 균열을 교묘히 확대 재생산해서 그 크기를 치유하기 힘든 상황까지 만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정치 공학이 있을 수 있기에 각 개인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역감정 문제에 매몰되지 않게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여론’이란 무명씨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내십시오. 각 사람의 생각을 매몰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힘이 있는 여론에 의해 자신이 휘돌려지지 않도록 냉철하게 판단하고 더 나아가 ‘차원 높은 내 고향 의식’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자기 고향보다 더 어려운 지역이 있으면 그 지역을 먼저 배려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부모에게 여러 명의 분가한 자녀들이 있는데 어떤 자녀는 부자지만 어떤 자녀는 가난합니다. 그때 넉넉한 자녀가 가난한 자녀를 물질적으로 도우면 누가 그것을 가장 기뻐할까요? 부모입니다. 부모는 대개 넉넉한 자녀보다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자녀에게 더 애틋한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소외된 영혼과 소외된 지역을 더 살피고 도우려고 하면 누구보다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제 소외 받고 어려운 지역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내 고향 의식’을 ‘차원 높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발전시키십시오. 이것을 교과서에 나오는 꿈같은 얘기처럼 불가능한 얘기로 여기지 마십시오.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기심만 잘 다스리면 지역감정 문제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구원받은 성도는 그런 불행한 감정타파의 선봉장이 되라고 부름 받은 존재인 줄 믿습니다.
목회를 20년 넘게 하고 온라인 사역을 13년 넘게 하다 보니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제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헌신적인 성도들은 지역 출신을 가리지 않고 전 지역에 망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하면서 젊었을 때 있었던 한 점의 작은 지역감정조차 제게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과 가슴을 열고 오래 살다 보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그 원리를 조금 일찍 깨달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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