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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16: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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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사사기(41) 패망의 선봉 4가지 (사사기 16장 1-17절)
어느 날,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던 삼손이 가사에 가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1절). 가사는 가드,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과 더불어 블레셋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블레셋의 원수인 그가 어떻게 블레셋 지역의 기생에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인 일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몹시 두려워했고 삼손도 자신의 힘을 믿고 블레셋 땅을 맘대로 활보한 것 같습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기생은 원어로 매춘부를 뜻합니다. 즉 삼손이 가사에 어떤 일로 갔다가 음욕을 이기지 못하고 매춘부와 동침한 것입니다. 그 행위는 사사로서 도저히 취하면 안 될 행동이었지만 음욕을 못 이기고 또 음행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바람기가 결국 그를 실족케 하고 비참한 종말을 몰고 온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지만 음행은 패망의 입구입니다. 고단한 현실을 잊으려고 몸을 쾌락에 맡기면 더 고단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2. 교만
가사에서 괴력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 삼손은 그 일 후에 삼손은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란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4절). 가사의 기생집에 들렀다가 큰 변을 당할 뻔했던 삼손이 또 육신의 정욕에 빠진 것입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하는 줄 알고 블레셋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삼손을 꾀어 삼손의 힘의 근원과 결박해 굴복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면 각각 은 천백 세겔을 주겠다고 했습니다(5절).
그때부터 들릴라는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집요하게 질문했습니다. 삼손은 자신을 결박하려는 계속된 질문을 통해 들릴라의 계략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괴력을 믿고 아무런 방비도 없이 게임을 즐기듯이 희롱하며 들릴라와 말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만이 결국 그를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의 됩니다.
3. 우유부단
처음에 삼손은 들릴라의 질문을 농담으로 받아들여 농담으로 대답했습니다(7절).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실제적인 결박사건을 체험하고 들릴라의 간청에 블레셋인들의 계교가 담겨 있음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래도 단호하게 들릴라를 멀리하지 않은 것은 정욕에 빠져 그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유부단한 태도로 들릴라는 계속 유혹의 손길을 뻗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힘의 근원인 머리털에 대해 언급한 삼손의 세 번째 대답은 이전의 대답들보다 사실에 가까워졌습니다. 그처럼 사탄은 조금씩 사람의 영혼을 파고들어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 사탄의 단계적인 잠식공격에 무엇이 틈을 제공합니까? 우유부단함입니다. 엉거주춤한 발길은 사람을 늘 주변에만 맴돌게 만듭니다. 특히 성도의 우유부단함은 말씀의 확실성에 대한 모독으로서 하나님에게 큰 모독감을 주는 것입니다. 결단해야 할 때는 결단할 줄 알아야 중심인으로의 영적인 승진이 이뤄집니다.
4. 외로움
삼손에게 세 번 속은 들릴라는 최후로 사랑을 빙자한 책략을 씁니다. 딤나 여인의 간청을 견디지 못해 결국 수수께끼의 해답을 털어놓아 비극을 초래했듯이 눈물과 사랑으로 날마다 호소하고 재촉하고 조르는 들릴라로 인해 삼손은 깊은 번뇌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16절). 왜 삼손이 그처럼 들릴라에게 깊이 빠졌을까요? 첫째 아내인 딤나 여인이 죽고 사사로서 그때까지 혼자 지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삼손의 번뇌는 아직 그가 나실인 의식이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계명과 욕망 사이에서 크게 갈등했지만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17절). 사자를 찢어 죽이고 일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나귀 턱뼈로 쳐 죽이고 성문을 나뭇가지처럼 들었던 강한 존재였지만 유혹의 올무에서는 너무 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처럼 유혹에게 지게 된 패망적인 삶의 선봉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생각할 시간과 자기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고 또한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혼자로 있음(loneness)’은 때로 필요하지만 홀로 남겨진 느낌으로 외로움에 젖은 ‘혼자라고 느끼는 상태임(loneliness)’은 고난을 불러들이는 통로가 됩니다. 더 나아가 ‘혼자라는 느낌이 여러 배인 상태임(lonesomeness)’은 비극적인 삶을 초래할 때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혼자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외로운 감정에 깊이 젖어들지 말고 더욱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붙잡고 나감으로 혼자인 상황을 가장 창조적인 상황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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