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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19:1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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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 http://www.john316.or.kr |
사사기(48) 값싼 사랑을 멀리하십시오 (사사기 19장 16-25절)
레위인이 자기로부터 도망갔던 첩을 장인의 집에서 데리고 돌아오다가 저녁에 베냐민 자손들이 살던 기브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때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 기브아에서 지내던 한 친절한 노인이 자기 집으로 이끌고 그들을 후히 대접했습니다(21절).
그때 동네 불량배들이 집 문을 두들기며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22절).” 이 구절에서 ‘관계한다’는 말은 ‘성 관계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불량배들은 레위인을 끌어내 호모섹스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자기 집 손님에게 그런 망령된 악행을 하지 말라고 하며 말했습니다(24절).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다.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이 레위인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
그 노인의 제안도 불량배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성의 성 행위보다 비정상적인 호모섹스에만 관심을 둔 것입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자 레위인은 먼저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러자 그 불량배들은 그 첩의 미모에 반해서 밤새도록 윤간하며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았습니다(25절).
이 레위인의 모습은 이기주의와 비겁함의 극치를 달립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데려왔던 첩을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자기 생명을 지키려고 불량배들에게 윤간대상자로 내준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레위인의 인격과 성품과 그 간의 상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런 스토리가 추정됩니다.
< 값싼 사랑을 멀리하십시오 >
어느 날, 꽤 풍채 좋은 아내가 있는 레위인이 어디에 갔다가 사람들을 접대하는 일을 하는 미모의 도우미를 만났습니다. 계속 만나보자 그녀는 미모도 있었지만 가정도 꽤 괜찮았고 여성스럽고 마음도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사탕 발린 사랑의 고백으로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유부남과 결혼한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평소에 예의와 따뜻함도 있는 편이고 꽤 높은 종교인이었던 것도 마음에 끌려서 결국 그의 첩이 되었습니다.
둘의 평소 관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본성이 드러날 때가 있었습니다. 심기가 불편한 일이 있거나 포도주만 마시면 손찌검을 하거나 심한 욕을 하면서 “접대부 출신 주제에...”라고 비하하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참았습니다. 심기가 좋아지거나 술만 깨면 잘못했다고 빌면서 또 잘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결국 그녀는 더 이상 같이 못살겠다고 아버지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레위인은 말도 잘하고 당시에 얼마든지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기에 그녀가 왜 도망갔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자신의 위신을 지키려고 말했습니다. “성적인 욕구가 강해 자꾸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그녀가 남편을 떠나 정부의 집으로 도망갔어야지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도망갔겠습니까? 아마 행음하고 남자를 떠났다는 성경기록은 레위인의 시각에 의한 기록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레위인은 첩이 떠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자기 정도의 풍채나 지위라면 얼마든지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른 여자를 만나도 도망간 첩만한 미모와 괜찮은 마음을 가진 여인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손찌검과 비하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후 데려오려고 첩을 찾으러 장인에게 갔습니다.
장인은 레위인 사위가 직접 딸을 찾아와서 용서를 빌고 데려가려는 것을 보고 사위가 딸을 더 사랑해달라는 의미로 그 레위인을 지극정성으로 대접했습니다. 또한 레위인 첩도 자기를 찾아와 용서를 빌고 다시는 옛날처럼 행동하지 않겠다고 호소하는 것을 보고 마음 문을 열고 그를 다시 따라나서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세상 말로 하면 “그놈의 정 때문에!” 다시 레위인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정 때문에 사랑 발린 말만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이 문제입니다. 때로는 단호해야 합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욕하고 손찌검을 할 때는 쉽게 용서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술 먹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그랬어도 쉽게 그런 버릇을 용납하면 안 됩니다. 술버릇, 말버릇, 손버릇은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버릇이 확실하게 고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마음 문을 열면 고생이 그치지 않게 됩니다. 희생하며 살려고는 해도 고생을 자초하며 살면 안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아내가 술버릇과 말버릇과 손버릇이 나쁜 남편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합니까? 잘못된 언행으로 큰 상처를 주고 그 다음에는 “잘못했소! 용서하오! 사랑하오!”라고 빕니다. 그러면 그 놈의 정 때문에 또 받아들입니다. 그런 ‘가정 안 스토커’로 인해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쉽게 용서하면 그런 잘못을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때 쉽게 용서하는 것은 좋은 용서가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는 다 용서했어도 쉽게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용납하면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회개를 앞세운 진정한 사랑의 고백은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쾌락과 외로움의 해결 도구로 사랑을 빙자하고 찾아오면서 용서를 비는 것에는 쉽게 마음 문을 열지도 말고 속지도 마십시오. 그것에 속으면 계속되는 ‘가정 안 스토커’로 인해 고생문은 계속 환하게 열릴 것입니다.
결국 그놈의 정 때문에 레위인을 따라나선 것이 결국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허우대가 멀쩡하고 종교적 지위도 있고 그럴 듯한 말로 사람을 유혹했지만 이 레위인에게 타인은 그저 이용대상이었을 뿐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후에 일어나는 동족상잔도 기브아의 불량배 탓도 있었지만 나쁜 레위인 종교인 탓도 컸습니다. 한 나쁜 위선적인 종교인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술버릇과 말버릇과 손버릇이 나쁜 자가 보여주는 허울 좋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거기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영혼을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종교에 넘기는 것과 같은 개념의 것입니다. 사랑해도 한시적으로 멀리하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고 용서해도 한시적으로 멀리하면서 용서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공의와 진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랑과 용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진정한 사랑과 용서가 되지 못합니다. 지금도 그놈의 정 때문에 거짓 사랑의 고백에 따라나섰다가 불행과 상처와 죽음의 그늘로 들어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값싼 은혜도 문제이지만 값싼 사랑도 문제입니다. 값싼 사랑을 멀리하십시오. 성경에서 사랑의 하나님이 때로는 정의로운 심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이유도 정의에 바탕을 둔 사랑이 진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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