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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성공과 축복의 원리 (삼상 7:12)
< 삶 자체를 감사하십시오 >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단역으로 활동할 때, 그는 못생긴 얼굴 때문에 항상 시체역할이나 잠깐 스쳐가는 행인 역할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사가 있는 역이 주어졌는데, 환자의 사망을 확인하는 의사역이였습니다. 난생처음 대사가 있는 역할을 받고 그는 맹렬히 연습했습니다. 드디어 방송 날, 자신의 출연 차례가 되어 무대로 나갔습니다. 그때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눈꺼풀을 열어본 후에 심각한 표정으로 “운명했습니다.”라고 말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환자의 눈꺼풀을 연다는 것이 자신의 눈을 까뒤집고 “운명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방송사고였지만 그 장면을 보고 시청자들이 배꼽은 잡고 웃어서 오히려 그 일로 이주일 씨가 떴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잘못 때문에 더 잘되고, 실패가 성공의 보약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실패도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실패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실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살면 성도에게 감사의 조건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성도는 일상생활에서 감사거리를 잘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평범한 것에서 감사거리를 발견하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최고의 영안은 미래를 보는 미래안도 아니고, 천리 앞을 보내는 천리안도 아니고, 깊은 아름다움을 보는 심미안도 아니고, 감사거리를 잘 찾아내는 감사안입니다. 실 우리가 누리는 어떤 것도 당연히 주어진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병이 들었다가 나으면 감사하지만 사실은 병에 들지 않는 것이 더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평범한 것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고 감사하십시오.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평범한 삶이 기적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도 얻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요새 불의의 사고로 가까운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별한 기적의 주인공은 못 되어도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기적만 감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없이 지켜주시는 손길을 생각하면서 삶 자체를 감사하십시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어느 날, 한 어린이가 친구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날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가지 말라는데 아들은 가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허락해주었습니다. 결국 어린 아들은 혼자 길을 나섰고, 쌓인 눈을 헤치고 간신히 친구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친구의 집에 들어서자 멀리서 한 남자가 조용히 뒤에서 사라졌습니다.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건을 당하게 하면서도 늘 우리 뒤에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특별히 감사할 일만 감사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고,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십시오. 사실 지금 살아있는 것만 해도 범사에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수한 사고의 위험성 속에서도 이제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 뚜렷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 저는 요새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이제까지 왜 하나님이 우리교회의 교회성장을 보류시켰고, 지금은 교회가 새롭게 싹이 돋아서 자라려고 준비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깨닫습니다. 그처럼 사람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알아도 절실한 체험을 해야 그 지식이 진짜 지식이 됩니다. 제가 속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은 나름대로 상당한 영적 유산을 지닌 세계적인 교단입니다.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아서 한국 성도들은 잘 모르지만 홍콩, 필리핀,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그리고 나라는 없지만 중국 남방에 흩어져 사는 몽족 사이에서는 한국의 장로교처럼 영향력이 있는 교단입니다. 그 유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기에 한국에서 자랑스럽게 그 유산을 선보이며 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귀국 초기에 처음에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장로교로 교회를 개척해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척하면서 미국 교단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은근슬쩍 감추었습니다. 속은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 교단 목사이면서 겉으로는 기존 교단의 곁불을 쬐면서 그저 이단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교단 창시자는 장로교 출신이었습니다. 저도 미국 유학 전에는 장로교단인 김삼환 목사님의 명성교회를 다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속은 ‘기독교 선교연맹’으로 가득 찼는데 겉은 그러지 않은 것처럼 하는 모습에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지낸 지난 17년의 한국사역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제시할 때 “한국에서 선교에 탁월한 유산을 가진 건전한 기독교 선교연맹 교회들을 세우자!”라고 하면 비전이 되지만 “한국에서 이단 소리 안 듣도록 노력하고 기존 교단의 곁붙을 쬐며 지내자!”라는 하면 거기에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개척자는 물적 자산과 인적 자산이 없으면 ‘비전의 자’산이라도 뚜렷해야 합니다. 그런데 뚜렷한 비전 제시를 뚜렷하게 못하고 그저 좋은 말씀만 전하려고 했기에 교회에 코어그룹과 헌신적인 일꾼이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문제가 생겨도 성도들이 쉽게 흔들렸습니다. 비전이 강하면 큰 문제가 있어도 잘 흔들리지 않을 것을 비전이 희미했기에 작은 문제에도 성도들이 흔들린 것입니다. 평소에 착실하게 말씀교육을 받아도 사람이 시험에 들면 그때까지의 배움과 은혜는 잊고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감정을 무엇이 극복하게 만듭니까? 바로 비전입니다. 그처럼 비전이 중요한 것을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단들조차 “자신이 재림주다! 자신의 교회에 와야 구원받는 14만 4천 명 안에 든다.”고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니까 그런 엉터리 주장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선구자나 개척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뚜렷한 비전입니다. 그런 비전도 없이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과 전통적 자산을 엄청나게 가진 기존 교단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제대로 살아남겠습니까? 결국 저는 엉터리 개척자였습니다. 기독교 선교연맹의 개척자임을 자부하면서 저희 연맹의 비전을 강하게 제시하지 않고 어정쩡한 스탠스로 지냈기에 하나님이 비전에 헌신된 사람을 보내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 왜 저희 교회에는 코어그룹이 형성되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하니 하나님도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물론 그 동안 게으르게 지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자신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사역은 커졌습니다. 방대한 네트영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현재까지 29개의 방대한 설교파일 세트를 완성시켰습니다. 온라인 새벽기도 식구가 4553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50명 정도의 멤버는 우리 교인만큼 우리 비전을 위해 기도하는 핵심 기도멤버들입니다. 그처럼 남이 쉽게 이루지 못할 열매를 이뤄냈지만 보다 큰일을 하려면 교회도 커야 하고 그것은 위해서는 뚜렷한 비전제시가 필요합니다. 비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것은 금년 5월 말에 미국 켄터키에서 열린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총회에 참석할 때였습니다. 그때 총회에서 한인 목사님들만 따로 모여 한인총회를 했는데 총회 회의록에 2012년 한국총회가 결정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에 기독교 선교연맹에 대한 비전을 보다 강하게 성도들에게 제시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의 좋은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 동안 주일에 처음 교회에 방문하는 성도들을 생각해서 스스로 위축시켜 교단색채를 가급적 감추려고 했지만 그런 태도가 오산이었습니다. 물론 가끔 “나는 장로교 교회만 찾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뚜렷한 비전을 찾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왜 그 사실을 몰랐는지 후회가 됩니다. 저희 교단이 이단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단인데 왜 스스로를 그렇게 위축시켰는지 모릅니다. 개척자가 강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무슨 개척자입니까? 그런데 금년부터 강하게 기독교 선교연맹의 비전을 제시하자 지금은 그 비전을 공유하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기도도 더욱 절실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최근에 등록한 분들도 그 비전에 공감하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도 큰 거부감 없이 비전을 공유하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왜 진작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사람들이 장로교를 왜 선호합니까? 그래도 전통 있는 큰 교단이니까 장로교에 속한 교회라면 적어도 이단은 아니고 수준 낮은 목회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한 성도도 장로교에 200개도 넘는 교파가 있고, 요새는 이단들도 장로교 간판 뒤에 숨어 행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까지 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단이 아니라면 교단과 상관없이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는 성도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 사실을 최근에 와서야 깨달은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곁불 쬐는 삶을 버리십시오 > 인생을 지혜롭게 잘 살려면 곁불 쬐면서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어떤 위치를 주셨으면 그곳에 몰입해야 작품 인생이 됩니다. 우리 분당 샛별교회는 예수 믿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작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련도 있었지만 그 시련도 하나님이 허락한 좋은 시련이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코어 그룹이 형성되었고, 비전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 시련은 “이제는 곁불 쬐는 인생으로 살지 말라!”는 절실한 깨달음을 준 시련이었습니다. 요새 성도들에게도 기독교 선교연맹의 비전이 싹트면서 “예수 믿고 인물이 되든지 만들든지 하자!”는 표어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인물이 될 그릇들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도 “내가 이렇게 비전을 가지기를 기다리고 계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전만 준비되면 하나님은 엄청난 가속도로 사람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개척자는 처음만 힘들지 나중에는 누구보다 복된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 30년 후에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 교회도 상당히 많아질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에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총재인 게리 베네딕트 총재가 우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문형준 감독님과 부총재인 쇼퍼(Shaffeur) 목사님도 오셨습니다. 쇼퍼 목사님은 알고 보니까 20년 전에 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들과 교제하면서 교회성장의 열망도 생겼습니다. 한국에 기독교 선교연맹의 모 교회로서 역할을 하고, 인적인 자산과 물적인 자산을 다른 교회에 제공하고, 다른 교회들의 방패박이가 되어주고 큰 우산이 되어주려면 교회도 많이 커져야 합니다. 이번에 총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에 속한 2천 개 교회 중에서 제일 큰 교회가 LA 얼바인에 있는 한인교회인 베델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큰 교회가 이번에 오신 부총재 쇼퍼 목사님이 섬기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그레이스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어른이 약 2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은 세계 선교에 힘을 쏟아서 세계적으로는 잘 알려졌지만 미국 내 교회 중에는 큰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교단 발전의 큰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마음속에 어떤 강렬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마음을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소원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속히 어른 2천 명이 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외국 선교에 힘을 쏟아서 미국 내의 교회성장을 잘 이루지 못하고 고전하는 미국 교회들에게도 우리 분당샛별교회가 성장의 모델 교회가 되어 거꾸로 미국의 교회들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하나님! 정말 멋지게 한국에 기독교 선교연맹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동역자도 주시고 교회도 키워주소서!” 지금 그 소원이 너무 간절합니다. 금년에 미국의 경제난으로 선교사 30가정을 소환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유력한 교회였고, 또한 다른 유력한 교회들이 있었다면 그런 아픔을 얼마나 멋지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같이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 이제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 선교연맹의 때가 속히 오게 하소서! 그래서 한국에 신선한 선교의 바람을 일으키게 하소서! 개척자의 길이 힘든 길이지만 개척자와 그 동역자의 가정을 복되게 만들어주셔서 개척자의 길이 엄청난 축복의 길임을 알게 하소서!” 얼마 전에 지방에서 목회를 잘하는 한 친구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오실 생각은 없나요?”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 처음부터 교회를 개척하기는 힘들고 어디로 부임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처럼 실력 있고 훌륭한 목회자가 자리가 없나요? 지금 목사님 교단에 후임자를 찾는 큰 교회들이 많잖아요?” 그때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런 큰 교회 담임목사 자리는 대개 저희 교단의 성골과 진골들이 부임해요.” 제가 물었습니다. “교단에 성골과 진골이 있다니 무슨 말인가요?” 그 목사님이 말해주었습니다. “진골은 목사님이나 사모님 중에 한 명의 아버지가 교단의 목사나 장로이면 진골이고, 성골은 목사님과 사모님의 양쪽 아버지가 모두 교단의 목사나 장로이면 성골입니다.” 즉 부모가 교단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공헌한 목사나 장로라면 그 2세 목회자가 큰 교회 부임 1순위라는 것입니다. 결국 ‘선대의 헌신’은 ‘후대의 축복’을 예비한 제일 요인이 된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그 이상의 축복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고생만 하다 죽는 자리가 아닙니다. 초창기에 고생은 있어도 후세에 좋은 기억을 오래 남기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행복한 자리입니다. 기독교의 신선한 축복의 바람은 다 그런 개척자를 통해서 불어왔습니다. 그런 바람에 함께 이끌려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제 우리 분당 샛별교회 성도들도 어정쩡한 스탠스를 벌리고 저희 교회를 통해 작품 인생을 지향하며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꿈꾸고 힘쓰십시오. <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 이제는 곁불 쬐는 인생으로 살지 말고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자기의 색채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리고 현재의 상황과 처지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로서 ‘나’답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저의 17년 목회를 통해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체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지난 17년 가까이 곁불 쬐는 인생으로 살면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목회를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고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에벤에셀의 역사로 지켜주신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서 우리 분당샛별교회의 앞날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성도들의 앞날도 반드시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낙심하지 미십시오. 어려움이 있어도 범사에 감사하는 굳건한 믿음을 가질 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반드시 준비될 것입니다. 작년 초에 떼로 몰려와서 다시 떼로 몰려나간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지금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위해 예비된 일꾼도 서서로 다시 붙여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은혜를 입은 것을 2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어려움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성경공부가 끝난 후, 새로 등록하신 한 집사님과 비전을 나눴습니다. 그때 집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듣고 작년 초에 그렇게 어려운 일을 겪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고 기쁨이 넘쳐보였습니다. 만약 그런 편하고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면 저는 등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이 집사님의 마음뿐이겠습니까? 하나님도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약 제가 시련을 당했다고 슬퍼하고 울상만 하고 지냈다면 하나님도 좋은 분들을 보내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련을 당해도 죽도록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새로운 기회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된 삶을 원하면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감사를 잘해야 합니다.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다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자이고, 최고의 성도입니다. 또한 최고의 기도는 감사가 넘치는 기도이고, 최고의 영성은 감사하는 영성이고, 최고의 예언은 내 입에서 나오는 감사하는 말입니다. 그처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 사랑을 베풀며 사십시오 > 또 한 가지 우리교회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극한 어려움 중에도 선교사 후원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이 다치면 열심히 기도하며 병원비를 후원했고, 선교사들에게 어떤 물품이 필요하면 교회 물품은 못해도 선교사들의 물품을 먼저 마련했고, 선교사들에게 긴급하게 재정이 필요하면 교회도 재정이 필요할지라도 선교사들의 필요에 먼저 반응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감당하지 못할 때는 온라인 새벽기도 성도가 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라고 합니다. 그 말은 ‘옆에서 돕는 보혜사’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옆에서 도와주듯이 성령 충만하면 반드시 옆 사람을 돕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선교사들의 필요에 최대한 반응하십시오. 돈을 벌 때도 그런 목적을 가지고 돈을 버십시오. 그렇게 살 때 찡한 쾌감을 주는 화려한 은사와 기적은 없어도 그것이 가장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사의 씨앗과 악마의 씨앗이 동시에 있습니다. 어느 씨를 뿌리며 살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천사의 씨앗을 뿌리면 자신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얻는 것이 많습니다. 무엇을 얻습니까?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그것처럼 복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사람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어떻게 드리워지고 사단이 감히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일전에 교회에 승합차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분명히 필요한 것을 알면서도 경제가 어려워서 아무도 헌금을 못했습니다. 그때 운전으로 힘들게 먹고사는 한 젊은 집사 부부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학원 버스를 팔면 8백만 원 정도 받는데 그것을 헌금할게요. 그 돈을 계약금으로 걸고 교회 차를 사세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마지막 남은 재산을 바치겠다니까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그 얘기를 듣고 재정 집사들과 그 헌금을 받아야 할지 상의했습니다. 그때 한 집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그런 고귀한 마음을 주신 것이니까 기쁘게 받읍시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우리가 아무리 급히 필요해도 저는 그 헌금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다른 경로를 통해 주시겠지요. 그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그 헌금을 받지 맙시다.” 결국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기쁘게 드리는 것을 사양하는 것은 또 다른 인색함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젊은 부부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은 도저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 젊은 집사를 불러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의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그 헌금은 도저히 받을 수 없습니다. 헌금은 받지 않아도 마음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절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때 그 대화가 오고간 순간은 성령님이 감격적으로 운행함을 느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킨다면 신비하게 문제해결의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욕심을 초월해서 좋은 일을 위해 무엇인가를 바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러므로 항상 ‘나!’라는 말을 ‘우리!’라는 말로 바꾸며 사십시오. 내 욕망을 포기하고 선한 일을 위해 바치는 삶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고, 그런 삶이 진정 복된 삶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힘들고 문제가 많은 때에 남까지 신경 쓰며 어떻게 사나?” 그러나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면 신기하게도 내 문제가 풀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항상 어려운 사람을 힘써 돕고 선교도 더욱 힘쓰십시오.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선교사를 지정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삶도 꿈꿔보십시오. 저는 온라인 사역을 하기 때문에 교회 사역과는 별도로 전 세계 여러 선교사님들로부터 많은 기도와 후원요청 편지를 받습니다. 그런 요청에 반응하며 살려고 할 때 사랑과 믿음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항상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실천적인 나눔과 사랑을 통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분들이 되십시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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