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삼상1:21-28 |
---|---|
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3.5.4
이런 이야기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싸우는 마치 콩가루 같은 가정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부부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주먹다짐이 오가고 고함과 욕설이 오가다 분을 참지 못한 아내가 방안에 불을 질렀습니다. 부모의 격렬한 싸움에 열받친 아들이 20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아들이 떨어지는 모습에 절망한 어머니도 뒤따라 베란다에서 몸을 날렸습니다. 소화기로 불을 끄던 아버지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뒤따라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 사람이 20층 아파트에서 떨어졌는데도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버지는 제비족이었고, 어머니는 날라리였고, 아들은 비행 청소년이었기 때문이었답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이런 가정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이겠습니까? 가정은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질서없는 가정 아무리 많은 것이 있다하여도 보기 좋은 집안이 아닙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 아담의 가정을 보십시오. 아내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형이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제 2의 인류 시작이 가정이었던 노아의 가정을 보십시오. 행복하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술이 취하여 추태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아들을 저주하였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저주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십시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들을 들나귀처럼 가정에서 쫓아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군이라고 하는 다윗의 가정을 보십시오. 아들이 반역을 합니다. 탈선을 합니다. 그리고 그 형벌로 자식이 죽습니다. 세상에 그림같이 행복한 가정이 그렇게 많이 있을까요? 다 작고 큰 문제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저의 가정을 어떨까요? 한달만 같이 살아 보십시오. 망원경으로 보니 아름답게 보이지 현미경으로 보면 세균덩어리가 많이 있습니다. 나만 큰 짐덩어리를 지고 사는 구나? 라고 자기 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사무엘 가정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인물이었다고 존경하는 사무엘의 가정을 보십시오. 한 시대 기도의 어머니였던 한나의 가정을 보십시오.
1) 불행한 가정이었습니다.
(1) 작은 댁이 있습니다(2). (2) 아이가 없습니다(2, 5). 똑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 없습니다. (3) 원수지간으로 살아갑니다(6). 마음이 괴롭습니다.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4) 한나의 자아상을 보십시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15) 슬픈여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이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봅니다.
2) 행복한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 아이를 낳았습니다(20).
(2) 남편과 의사소통이 잘 됩니다(21-23). 남편과 함께 기쁘게 예배드리러 갑니다(2:19)
(3) 하나님께 감사로 풍성하게 드리기를 기뻐합니다(24-28)
(4) 마음이 거뻐합니다(2:1).
(5)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잘 자랍니다. 세아들과 두 딸을 더 낳았습니다(2:21, 26). 한 시대 민족 지도자로 쓰임받았습니다. 지금 말하면 대통령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행복한 가정으로 한 시대 살 수 없겠습니까? 문제 속에서 살면서도 그 문제로 불행하고 초라한 인생으로 끝내지 않고 행복한 가정으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1.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19, 20)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가정이 되어야 우리는 문제 속에서도 그 문제로 불행한 가정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받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한나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으로 변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각하사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문제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가정 문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대 쓰임받았던 것은 하나님의 전전인 은혜입니다.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고 하나님이 행위대로 갚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한 시대 쓰임받는 가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나오미 가정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니 회복됩니다. 나인성 과부의 가정도 아들이 죽어 눈물흘리는 가정이 은총을 받으니 행복한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결혼 건축가]를 쓴 상담학자 로렌스 J. 크랩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 책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의 기초, 결혼의 기초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 헌신, 수용을 말합니다. 그 첫 번째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자랄 만큼 비참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 건축은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할 때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힌다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그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자랄 만큼 비참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세상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19명의 자녀를 낳은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를 보십시오. 청교도 목사의 딸로 때어났습니다. 가난한 순회 목사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주시는대로 낳았습니다. 말이 19명이지 이것 보통일이겠습니까? 여성이 주시는대로 낳으면 일평생 얼마나 낳을 수 있겠습니까? 역사상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기록을 보유한 사람은 18세기에 살았던 어느 러시아 여인이라고 합니다. 무려 27번의 출산을 걸쳐서 69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16번은 두 쌍둥이, 7번은 세 쌍둥이, 4번은 네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19명의 아이들 낳은 동안 몸은 병약해졌습니다. 재정적인 능력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인내로 양육 합니다. 그 중 9명이 근대 교회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나와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찰스 웨슬레가 나와 6000곡 찬송가 지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면 됩니다.
무디의 아버지는 40세에 별세하고 유복자 쌍둥이를 합해서 아홉 자녀를 키운 무디의 어머니는 밤마다 벽난로 앞에서 성경 가르치고 자녀들이 잠든 후에는 밤을 새워 울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사람들 가물어 우물파고 별짓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의 단비를 내리면 순식간에 해갈됩니다. 사람들이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묘한을 마련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을 주시면 일시에 해결됩니다.
2. 하나님을 통하여 문제를 푸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27, 12-15).
프로이트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던 듯하다'라고 못박았습니다. 그이 영향을 받은 정신과 의사들은 줄곧 그런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마음의 고통을 평범한 불행으로 바꾸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수셨고 인간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건강을 가꾸는 것도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문제는 그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1) 어떤 사람들은 행복을 소유로 누리려고 합니다. 물질, 명예와 권력, 건강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슴없이 말합니다. 행복은 욕구에 반비례하고 소유에 비례한다고 말입니다.
2)어떤 사람은 마음의 평정을 통해 행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마음 다스림, 무소유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득도, 신비 종교, 불교 등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프리드만 교수는 행복의 핵심적 3요소를 낙천적 인생관, 사랑, 보람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행복을 구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마이어스 교수는 행복해지기 위한 심리구조를 지녔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행복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서 "마음의 수행을 통해 사람들은 차츰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버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람에게 자비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심리 과학을 다루는 학자들은 뇌에는 '행복의 정점’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인간의 행복은 선천적인 뇌의 구조와 더불어 성장배경과 기억 등에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4) 심리학자, 교육학자 중에서는 학습에 의해 되어진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심리치료사이자 초 베스트셀러 작가인 리처드 칼슨 박사는 "생각의 집착을 버리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책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 '건강한 심리작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쾌활한 감정의 근원이며, 진실과 영원한 행복이 머무르는 곳이며 열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심리작용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지 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사람은 16세까지 자신에 관해 17만 3천 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데 어떤 것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복의 방법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인류의 불행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합니까? 아담과 하와 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죄로 감옥에 갇히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개역 성경에는 행복이라는 말이 4번 나옵니다. 죄 용서와 관계하여 롬4:9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행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우리를 하나님은 행복자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행복한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한나 가정의 근본적인 불행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죄의 문제입니다. 작은 댁이 아이 없는 것으로 멸시하고 천대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라는 기회입니다. 문제 때문에 절망하고 그 문제로 불행을 향해 끝없는 방황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기도합니다.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합니다(12). 술취한 여인처럼 간절히 기도합니다(13). 심정을 통하며 기도합니다(15).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17-18).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도합니다. 결국 응답받게 되었습니다.(27)
가정 행복을 찾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불행으로 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들고 하나님께 나오시라는 신호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불행이 행복으로 바꾸어집니다.
문제 없는 가정을 꿈꾸지 마십시오. 문제는 죽는 날 까지 우리를 따라 다니면 하나님께 나오라고 손짓할 것입니다. 인생이란 문제의 연속이며, 삶이란 그런 문제를 계속 풀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가 없어지는 날은 우리가 무덤에 들어간 날입니다. 공동묘지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그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느냐 어떤 방법으로 푸느냐는 것입니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은 파도를 다루는 법을 알기 때문에 큰 파도 앞에서 더 행복해 합니다. 행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은 바람을 기대합니다. 높이 날아오를 것을 기대하며 행복에 겨워 기대하는 것입니다. 향나무는 도끼로 자신의 몸통을 맞으면서도 도끼에게 향기를 풍기는 것입니다.
자녀가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 확실한 것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이고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자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가 하도 아들이 속을 썩이니까 감독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부모가 피난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녀의 피난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 14:26)"
몇 년 전에 한꺼번에 두 아들이 사법 고시에 합격한 분이 신문에 났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남자만 6형제를 두었습니다. 다섯째 아들은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하였습니다. 막내는 사법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기자가 자식들이 그렇게 잘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때 김진성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재촉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할 것만 당부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앞에 기도의 본을 보이려 힘썼을 뿐이지요.』
그들의 기도제목은 자식들이 꾸준한 신앙생활로 모두 장로 직분을 맡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설득의 시대가 아닙니다. 공감의 시대입니다. 자녀에게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설득시대가 아닙니다.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00만 부 이상 판매된 자녀양육서입니다. 스티브 비덜프는 불행해 지는 이유를 미리 그들의 생각 속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해지는 것을 배워왔으며, 그렇게 입력된 대로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무심코 던진 말들이 자녀들의 생각 속에 입력되어 그들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의 씨앗 이라고 합니다.
3. 하나님께 맡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24-28).
사람의 행복은 문제가 해결된 후의 대처가 그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느냐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어 그것으로 더 불행해지느냐를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으로 고통받다가 사업에 성공하여 잠시 동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사업 성공으로 더 바빠지고 술대접에 바쁘고 미래에 투자에 염려하고 그러다 돈이 생기니까 바람나고 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 오히려 더 가정이 불행해지는 사람들도 봅니다.
한나의 가정을 보십시오. 어떻게 낳은 아들입니까? 아들이 없어 얼마나 고통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버립니다. 자신보다 더 잘 길러 주실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하나님께서 늘 같이 있으면서 행복해 할 만한 자녀를 더 줍니다(2:21).
(2)사무엘은 참으로 잘 성장하였습니다(2:26)
(3)하나님이 같이 하는 사람이 됩니다(3:19)
(4)한 시대 쓰임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민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7:3,5,9,13,14,17).
사는 날 동안 기도하며 사는 날 동안 적군을 물리치며 사는 날 동안 그가 거하는 곳에 평하나님의 신정 정치를 실현시킨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시길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옛날에는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그냥 방치하며 길렀습니다. 오늘날은 하나 내지 둘이다 보니 끝까지 맡기지 못합니다. 얼마나 자녀에게 집착하는 지 모릅니다.
97세의 할아버지와 95세의 할머니가 이혼 신청을 하여 가정법원에 왔다. 판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둘에게 물었다. "이제 100세가 다 되어가시는 분들이 무슨 이혼을 하시겠다고 그러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저 여자는 남편 알기를 너무 우습게 알고 혼자 잘났다우. 결혼하고 처음엔 안그랬는데 1년이 지나니까 본 모습이 나오지 뭐요?" 할머니도 지지 않고 말했다. "다 거짓말이라우. 저 양반은 매일 술만 먹고 주정만 하는 양반이지." "그럼 왜 그때 안하시고 지금 오셨어요?" "그때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이혼을 하면 자식들이 불행해진다고 합디다. 그래서 자식들이 죽을때까지 기다렸지."
우리 부모님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까? 교회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많은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자녀들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느 곳에 많은 것을 투자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을 여행이나 봄나들이를 교회에서 가면 여집사님들을 보면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전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자녀가 투자한 대로 잘 됩니까? 부모님 마음대로 되어집니까? 되지 않습니다. 영국 속담에 자녀와 건강만은 자기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밖에 없는 아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립니까?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내가 포기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무관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책임을 회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농부 곡식 심고 날마다 그것을 간섭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초제란 많은 영향분을 넣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이 좋지만 많으면 홍수가 됩니다. 불이 좋지만 제어할 수 없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화마가 됩니다. 아무리 영양분이 좋다하여도 너무 많이 주면 병들고 죽습니다. 지켜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 하나님의 비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 계획 없이 낳았다해도 하나님은 우리 아이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줄 믿습니까?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사 44:2)"
엘리 제사장을 보십시오. 아이들을 품안 안고 살지만 결국 아이들 징계하지 못하여 어떻게 됩니까? 자신도 죽고 아이도 죽고 마 망해 버립니다.
노년에 백성의 존경 못받지 못했습니다(2:22,23;3:13) 두아들과 엘리 비명횡사하였습니다(삼상4:5-11,4:18) 물질적 긍핍하였습니다(31-34, 36). 제사장 직분을 잃어 버렸습니다.(35)
무엇보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못했고 사명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간음하고 하나님의 제물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그를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불량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12).
어떤 사람은 비꼬아 자녀를 위해서는 양잿물을 마실 준비도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세요. 같이 있다고 개 안물리는 것 아닙니다. 응급실에 다쳐 온 사람의 80% 이상은 부모와 함께 있다 다친 자들이라고 합니다. 자녀 뿐만이 아닙니다. 건강, 노후 대책, 미래 다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문제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삼상1:21-28/ 김필곤 목사/ 2003.5.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