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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칭찬하며 삽시다

사무엘하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501 추천 수 0 2009.11.07 16: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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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하6:12-16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몇 년 전에 어느 여전도회 회장님이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교회에 커틴을 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커틴의 색깔에 대하여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하며 당장 거두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어 그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는 한 나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합니까? 자녀가 시험점수를 받아 오고 아내나 남편이 무슨 일을 하면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합니까?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남편은 "당신 왠 일이이냐? 오늘 해가 동쪽에서 뜨겠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편에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장미 꽃 한 송이를 사 가지고 저녁에 들어갔는데 이것을 받고 아내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느냐?" 고 말한다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이가 모처럼 100점을 받아 왔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자 마자 "누구 컨닝했냐?"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며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먼저 하십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70년 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에 모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하면 국무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는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대상 13:1). 국민 투표에 붙였습니다. 온 회중과도 합의했습니다(대상 13:2-4).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뺀 3만 명의 정예를 모았습니다(삼하 6:1). 전국의 유명한 악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행사였습니다. 새 왕의 등극과 함께 전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법궤) 중심으로 뭉쳐지는 대동단결의 장면입니다. 전 이스라엘의 중심이 그 법궤 앞으로 집결되었습니다. 다윗이 법궤가 들어 올 때 춤을 추었습니다. 70년 만에 들어온 법궤이니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단강을 가를 때,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맨 앞에 나아갔던 능력의 법궤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 때 찬 물을 끼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이 너무나 좋아 춤을 추며 기뻐하였는데 그의 아내 미갈이 창문으로 그 장면을 본 것입니다(16).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비웃었습니다. 마음으로 비웃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집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공동 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다윗이 자기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돌아 오자 사울의 딸 미갈이 나가 다윗을 맞으며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 체통이 참 볼만하더군요. 건달처럼 신하들의 여편네들보는 앞에서 몸을 온통 드러내시다니." (삼하 6:20)"

1. 우리는 남이 하는 일을 보면서 비난보다는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서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가들은 남의 약점을 드러내기 좋아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결함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남을 가장 많이 비판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한 일을 업신여기고, 경멸하고 조롱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풍자하여 비웃기를 좋아합니다. 미갈이라는 여인은 왜 다윗을 비난했을까요? 남편을 사랑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남편인 다윗이 법궤가 70년 만에 돌아오니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왕의 체면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베옷 즉 평민의 복장을 하고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자세로 법궤를 맞으며 춤을 추었습니다(14). 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습니다(13-15). 그는 사람의 체면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14,16).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진솔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1).
그런데 미갈은 그의 심중을 몰랐습니다. 그가 왜 그런지 모르고 자신의 체면만 생각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남의 하는 것을 비난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을 생각해서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더 잘하여 시기심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그렇게 합니다. 칭찬보다는 비난을 늘 앞세웁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셔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방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답니다. 심방 가서 눈에 띠는 것 중에 마음이 들기만 하면 칭찬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집에 갔는데 참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것도 칭찬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선물이 왔는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목사님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겠습니까? 그런데 다음 주일에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사모가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성도들이 모여 소근 소근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4:1-3을 보면 유대 백성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건축할 때 적들이 비웃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어떻게 비웃었습니까? 2절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라고 조롱하며, "너희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고 비웃습니다. 3절에서 도비야 라는 인물은 "저들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말하며 비웃었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네가 만약에 소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네 목에 연자 맺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낳다" 고 도 하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면서 서로를 세워 주며 살아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이나 약점은 사랑으로 덮어주고, 절대로 조롱하거나 비웃지는 말아야 합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욥은 남편을 비난했습니다. 욥의 아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2)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서 칭찬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들어오니까 어떻게 합니까? 좋아 기뻐 춤만 춥니까? 17절에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1)먼저 되어지는 일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2)법궤를 메고 온 사람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축복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백성들을 칭찬했다는 말도 포함됩니다(18). (3)그리고 백성에게 떡을 나누어 줍니다(19). (4) 그리고 자기 가족도 축복합니다(20).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축복하며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못한다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합니다. 교인들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 웃기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도 웃지 않습니다. 별 소리를 해도 눈만 끔벅끔벅하지 아멘 소리도 하지 않습니다. 이 목사님이 아무리 해도 반응이 없으니 교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웃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 여자 성도님이 용감하게 "당회의 허락이 떨어져야 웃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눅이 들었으면 그렇겠습니까?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면 안됩니다. 우리는 칭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부족한 점이 있다하여도 칭찬해야 합니다. 서로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한다하여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미갈이 비난한다고 법궤가 예루살렘에 오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에 맞지 않아 비난한다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워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비난한다고 이루워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소리지르지 않으면 돌들이라도 소리지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남이 봉사하는 것을 보고, 다른 성도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칭찬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칭찬 한 마디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토머스 칼라일의 부인은 참으로 현명했다고 합니다. 부인은 남편을 존경했으며 칼라일 역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여인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부인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듣지 못했던 말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일기에 딱 한 번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칼리일은 한번도 나를 칭찬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으면 그것으로 모든게 제대로 되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부인이 죽은 후 칼리일은 부인의 일기를 읽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은 (칭찬의)말을 듣고 싶어 몇 년이고 기다렸던 한 여인과 친교를 맺어 왔다는 사실을 때달았다고 합니다. 죽은 시체에 놓고 칭찬해 보았자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학창시절을 보면 그는 결코 천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담임 선생님은 "이 학생은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든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낙담해하는 아들을 오히려 달래며 "아들아,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단다. 네가 다른 아이와 같다면 너는 결코 천재가 될 수 없어"라고 칭찬하며 격려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칭찬과 격려로 아쉬타인은 변하였다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학교에서는 우등생이었습니다. 같은 학생인데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꾸중과 비판과 질책이 있었고,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인정과 신뢰와 칭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신뢰와 칭찬과 격려는 에디슨을 세계적인 발명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한상군 한약상 부부 살해 아들 13년 동안 부모 칭찬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30년 동안 칭찬 한 번 받아 보지 못한 미국인의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회사의 경리 책임자가 갑자기 자살을 하는사건이 생겼습니다. 경찰은 즉각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표면상으로는 자살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가 맡아서 했던 회사 장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휴지통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쪽지에는"나는 지난 30년 동안 단 한번도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니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2. 칭찬하지 못하고 비난한 결과는 무엇입니까?(23)
남편의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여인, 하나님께로부터 도 버림을 받아야 하는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남편을 칭찬하거나 축복하지 못하고 조롱하고 비웃다 당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징계를 보면서 하나님도 너무하셨다고 말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다윗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앞에 지금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 많은 준비를 하여 축제적 분위기로 법궤를 모셔오려고 했는데 웃사가 즉사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7). 그것도 하나님의 궤 곁에서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너무하신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법궤가 넘어지려고 하여 그것 넘어지지 않게 한 것인데 무엇이 상 줄 만한 일이지 무엇이 죄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레로 법궤를 운반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배운 것입니다(삼상7:2). 민수기 4:15절의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는 경고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정에 따라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 아닙니다. 웃사의 행동은 결국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불경은 결국 다윗과 백성들에게 파급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사울에 의해 통치된 나라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과 백성들을 경고하기 위해 모델로 치신 것입니다. 역대상 15:1 3에 보면,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고 법궤는 어디로 갔습니까? 오벧에돔의 집으로 갔습니다(10). 법궤가 그곳에 가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석달 동안 복을 받았습니다.
역대상 13장 14절에는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미갈이 모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복을 내렸습니다.
사무엘하 6장 12절에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올라 갈새」라고 하였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궤를 모셔오면서 기뻐하는 다윗을 비난 한 것입니다. 곧 그것은 단순히 다윗을 비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다윗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사울의 딸이라고 본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갈은 아버지 사울이 언약궤를 함부로 다룬 것을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대상13:3) 다윗이 신앙적 열정으로 하나님의 궤 앞에서 춤을 춘 것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미갈은 얼마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까? 사울 가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잊고 비난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비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르고 자기의 자존심, 자신이 조금 손해된다고 다른 사람을 비난합니다.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옛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은혜를 모르는 호랑말입니다. 나그네는 커다란 통나무를 넣어서 호랑이를 구해주었건만 호랑이는 배가 고파 나그네를 잡아 먹겠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나그네 소나무를 붙잡고 물어 보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를 보고 물어 보아도 나그네에게 유리한 변호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토끼가 나그네의 울음을 듣고 왜 그러느냐 물었습니다. 나그네의 말을 들은 토끼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확인해 보자고 구덩이로 갔습니다. 호랑이는 구덩이에 들어가고 그 안에 넣었던 통나무는 밖으로 끌어 내었습니다. 토끼는 능청스럽게도 말하였습니다. '제일 처음 상황이 이런 모습이냐 ?' 그리고는 '은혜를 모르는 호랑이는 언제까지나 갇혀 있어야 한다.'면서 나그네와 함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서 비난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그일을 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해 줍시다. 오히려 다윗처럼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붓은 마리아를 보며주님께 '왜 허비하는가?'라고 비난하는 가롯유다가 되지 맙시다.


우리 서로 칭찬하며 삽시다./사무엘하6장12-16/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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