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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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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john316.or.kr |
느헤미야(2) 기도는 최초의 수단 (느 1:1-5)
<눈물은 영혼의 생수 >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된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그래? 어쩔 수 없지?”라고 반응하지 않고 이방 나라에서 유대인으로서 높은 자리에 오른 강한 의지의 사나이가 굵은 눈물을 흘렸다(4절).
지금 성도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눈물이다. 감동할 줄 알고, 눈물을 흘릴 줄 알고, 따뜻한 가슴으로 무엇인가에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가슴이 메마르지 않게 하고, 어려운 이웃을 살피면서 남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사회의 희망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며칠 전에 예루살렘 성의 파멸을 예상하시고 우셨다(눅 19:42-44). 그런 눈물이 마르면 안 된다. 눈물은 영혼의 생수의 근원과 같다. 그 생수의 근원이 막히면 안 된다.
일전에 빌라에 살 때 물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한 건물에 16가구가 있는 다세대 주택 3층에 살다보니까 아래층에서 물을 쓰면 위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밤에는 물이 잘 나오는데 출근 시간 때는 10분간 받아야 물 한 바가지가 나왔고, 여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이 끊겼다. 세면을 하는데 물이 안 나와서 보리차로 양치질을 하기도 했다. 물 근원이 막히니까 사람 사는 것이 말이 아니었다.
물 근원이 막히면 삶이 불편한 정도로 끝나지만 생수의 근원이 막히면 영혼은 살 수 없다. 어떻게 막힌 생수의 근원을 뚫는가? 눈물이 필요하다. 눈물을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 고대에는 신하들이 슬픈 표정을 하고 까닭 없이 눈물을 보이면 왕의 기분을 망친다고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느헤미야는 동족을 위해 과감히 눈물을 흘렸다. 그처럼 의인의 눈물은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고, 은혜의 문을 여는 원천이다.
< 기도는 최초의 수단 >
예루살렘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기도했다(4절). 결국 예루살렘 재건의 대역사는 느헤미야 한 사람의 기도에서 시작되었다. 부흥의 대역사도 기도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안 되면 친구나 지인을 찾는다. 그래도 안 되면 막다른 길에서 하나님을 찾아 기도한다. 형식적인 성도는 기도를 ‘최후의 수단’으로 삼지만 신실한 성도는 기도를 ‘최초의 수단’으로 삼는다.
참된 개혁과 부흥은 기도에서 출발한다. 왜 오늘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그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는가? 혼자서 개혁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개혁은 많이 사람들이 함께 해야 성공한다. 영적인 개혁도 마찬가지다. 혼자 하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개혁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는 개혁과 부흥을 위한 최초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살다 보면 많은 부조리가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의분이 치솟지만 비판보다는 기도를 더 많이 하라. 보통 사람들이 8대 2의 비율로 칭찬보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면 믿는 사람들은 그 비율을 2대 8로 돌려야 한다. 사람들이 정치가 개판이라고 말할 때 믿는 사람들이 “그런 정치판이 잘 되도록 내가 기도했나?”하고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이제 비판하는 입술을 기도하는 입술로 바꾸라. 기도하면 생각이 변하고, 말이 변하고, 가능성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결국 부정적인 삶을 긍정적인 삶으로 바꾼다. 사실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안 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안 된다!”는 믿음을 “된다!”는 믿음으로 바꾸어 준다. 신실한 기도는 반드시 역사를 일으킨다. 실제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엎드려 기도하면 절망의 땅에서도 기적은 일어난다. 꿈같은 은혜를 원하면 무엇보다 기도로 스타트를 끊으라.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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