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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를 넘어서는 성취

느헤미야 이동원 목사............... 조회 수 2224 추천 수 0 2009.11.21 12: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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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느 6:1-3, 15-16 
설교자 : 이동원 목사 
참고 : 지구촌교회 
반대를 넘어서는 성취(느 6:1-3, 15-16)

뜻있는 일을 결심하고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반대를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포기하셨습니까?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꿈을 실현해 보셨습니까? 유명한 마더 테레사가 수녀가 되고 기도중에 인도함을 받아 2년후 그녀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를 설립합니다. 1952년에 그녀가 인도 칼카타에 가난하고 병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아보기 위해 작은 건물을 준비하고 ‘니르말 흐리다이(순결한 마음)’라고 명명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직면한 것은 그 이웃에 있던 힌두교 지도자들의 격렬한 반대였습니다. 시위, 폭력, 위협이 계속되었고 그녀의 스태프들조차도 장소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죽지 않는 한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나를 부르신 이가 내게 맡기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가 시도하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원인은 크게 둘 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하나는 내 잘못일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 잘못과 상관없는 경우입니다. 내 잘못으로 겪는 어려움의 경우 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적어도 그것이 해결의 시작일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잘못과 상관없이 우리가 시도하는 일들이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입니다. 기독교적 전망에서 관찰할 때 이런 반대는 주로 사단의 방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단의 존재를 가르쳐 대적 마귀라고 합니다. 마귀는 반대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반대는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시도할 때 더욱 현저히 작용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경험한 반대는 바로 이런 사단 마귀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도 테레사처럼 이런 반대를 넘어서서 예루살렘 성을 쌓아 올리는 역사를 성취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15절을 보십시오."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앨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느헤미야는 마침내 이 모든 반대를 극복하고 소명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절은 "--모든 대적이--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16절)고 했습니다. 그런 반대가 있었고 그런 쉽지 않은 장애가 있었기에 성역사의 완성은 인간 느헤미야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임을 모두가 다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느혜미야가 직면한 반대는 무엇이었으며 그가 이런 반대를 어떻게 넘어서서 소명을 성취할수 있었을까요? 느헤미야가 직면한 반대는 바로 성도의 일상에서 날마다 직면하는 반대이기에 오늘 우리는 더욱 본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성도의 미숀을 방해하는 사단의 반대의 전략들과 우리의 준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첫째는, 타협의 전략입니다.

그것이 본문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느헤미야의 성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사단은 타협의 전략을 구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줄곧 조롱과 방해로 일관하던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은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 만나 이야기하자"고 타협의 의사를 전달한 것입니다. 2절을 읽어 보십시오."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 싸우지 말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타협을 제안한 것입니다.

타협은 우리의 일상에서 좋은 의미로도 혹은 나쁜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시도하는 일의 목표가 동일할 때 혹은 목표는 달라도 양자 모두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타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 특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타협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은 모두 건강한 타협을 배우지 못한 때문입니다. 동일한 목표 그리고 공동의 선을 나누기 위한 타협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진 두 사람, 두 진영 그리고 양자 모두에게 혹은 양자중 한 편에게 명백한 악을 초래할 때 타협은 용납될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산발랏, 도비야의 타협안은 궁극적으로 느헤미야를 파괴하고 성 역사를 중단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타협안이었습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분별하고 있었습니다. 2절의 마지막 부분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습니까?"---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자, 이런 악의적인 타협에 대한 우리의 대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느헤미야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분별했고, 둘째 거절했고, 셋째는 미숀에 집중했습니다. 2절 마지막 말씀은 적의 의도를 분별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3절에 나타난 느헤미야의 대답을 읽어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거절과 함께 자기 미숀에 집중할 것을 천명합니다. 사단의 의도는 결국 느헤미야가 소명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사단의 의도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정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집중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고난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것-그것은 주께서 주신 소명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할 일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는, 중상의 전략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해의 전략입니다. 그것이 5-9절의 내용입니다. 타협으로 안 되자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음해를 시도한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느헤미야가 페르샤 왕에 대한 모반을 시도하고 그가 왕이 되려 한다는 것입니다. 순 거짓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사단의 또 하나의 전략입니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속담은 본문에 비추어 보면 사실이 아닙니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역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사단은 자주 음해적 소문(거짓 류머)을 퍼뜨리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요한8:44에서 사단을 가르쳐"--저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거짓의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사단의 도구인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거짓말과 중상, 험담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돌이킬수 없는 성처를 입히고 돌아다니던 사람이 랍비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랍비에게 자기같은 사람도 용서 받을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랍비는 그에게 "정말 용서받기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랍비는 "한줌의 새의 깃털을 주면서 이 깃털들을 마을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당신이 한번이라도 음해한 일이 있는 이웃들의 집집마다 다니며 그집앞 문턱에 깃털을 한개씩 놓고 오라"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하고 돌아 오자 이번엔 "다시 그집들로 돌아가 그 깃털을 회수해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이웃집들로 갔을 때는 깃털들은 바람에 날아가 버린 후였습니다. 그가 힘없이 돌아오자 랍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자들을 용서하지만 당신이 음해한 거짓말은 다시는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충고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느헤미야처럼 음해의 대상이 될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두가지입니다. 첫째 사실을 밝히고, 둘째 자기의 미숀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8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문제로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대신 기도합니다. 모든 진실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단순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사명인 예루살렘 성 건축에 집중할수 있는 힘을 달라는 기도였습니다."--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혹시 우리 중에 중상과 음해에 시달리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사실을 밝히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그 일에 매달리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더 중요한 주께서 당신에게 맡기시는 소명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자존심 보다도 더 중요한 것--그것은 소명입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후회없는 결산을 위해 중요한 것, 그것은 자존심보다 더 소명의 성취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도피의 전략입니다.

마지막으로 산발랏과 도비야는 스마야라는 거짓 선지자를 매수하여 거짓예언을 통해 느헤미야로 성전에 도피하여 숨게 함으로 사역의 현장에서 도피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것이 10-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10절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 나오는 스마야라는 사람은 12-13절에 의하면 뇌물 받고 고용된 거짓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너를 죽이려 하는 자들이 있으니 성전에 들어가 도피해 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 역사는 중단될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사역의 현장에서 도피한 비겁자로 소문날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도피의 전략이었습니다. 어찌해서든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를 떠나게 함으로 더이상 하나님의 일이 진척되지 못하게 하는 것-그것이 사단의 느헤미야 공작의 핵심적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에 대한 전략인 것을 아십니까? 목자의 자리, 교사의 자리, 섬김의 자리를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으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당신을 향한 사단의 공작일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느헤미야의 대응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분별이고, 둘째는 직면입니다. 종교인의 소리라고 다 믿지 마십시오. 세상에 가장 가짜가 많은 것이 종교의 영역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찍이 철학자 파스칼은 거짓 종교의 범람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왜 가짜가 많은가? 진짜가 있기 때문이다"고. 아무도 값싼 다이아몬드를 위조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치가 있는 곳에 거짓과 유사한 가짜 모조품이 범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영을 시험하고 분별하라고.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라"고 촉구하지 않습니까?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거짓 예언을 분별하고 사역의 현장을 떠나 성소로 도피함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도피가 아닌 직면을 선택합니다. 그는 도피가 문제의 해결이 아닌것을 알았습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도피를 선택하지는 마십시오. 현실이 어려울수록 그 현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직면하면 그 현실을 감당할수 있는 용기는 주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직면의 용기를 어떻게 얻을수 있습니까?

저는 부분적으로 느헤미야의 현실에 직면하는 용기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아래 살고 있었던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모세의 법인 말씀에 의하면 제사장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예컨대 민수기 18:7에 보면 "--성소에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이울지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그가 순종해야 할 가장 긴급한 명령은 성의 건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 11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그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실에 직면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도피하지 마십시오. 도피는 결코 해결이 아닙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급증하는 자살율의 증가는 인생 문제의 손쉬운 해결로 도피를 선택하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자살은 해결이 아닙니다. 자살은 성경적으로 인생을 죄로 마무리하는 가장 무책임한 도피에 불과합니다. 자살하지 마십시오. 도피하지 마십시오. 직면하십시오. 직면이 두렵거든 기도하십시오. 14절의 느헤미야의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야다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룻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이 기도로 느헤미야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백성들과 더불어 마침내 성의 건축을 실현할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그를 향한 모든 반대를 넘어서서 소명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를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칼카타에 요양소를 열자 마자 반대에 부딪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피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반대를 개의치 않고 기도하면서 해야 할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사역을 반대하던 힌두교 성직자였던 사람이 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퇴출당한 이야기를 보고 받고 그를 요양소에 데려 옵니다. 최선을 다해 그를 돌보고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시신을 힌두교 사원으로 돌려보내어 장례하게 했습니다. 이 사건이 힌두교 지도자를 감동시켜 그녀의 사역이 인도인들, 그리고 인도 정부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극적인 전기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를 넘어 비전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그녀가 그런 모든 반대를 극복하고 소명에 집중할수 있었던 삶의 비밀에 대하여 질문 받았을 때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 방향밖에는 바라 볼수가 없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계획을 가질수가 없답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으신다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여러분과 저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 때문에 사는자가 아니라 그분의 맡기신 일을 위해 사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 방향밖에는 바라 볼수가 없는 자입니다. 행여나 뒤를 돌아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소명의 십자가를 질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소명의 도구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느헤미야 6장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2. 느헤미야 6:1-4에 나타난 타협의 유혹을 느헤미야는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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