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절히 진실하게 기도하라
느헤미야는 고국의 안타까운 소식에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고 울면서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다(4절). 기도할 때 체면과 격식을 차리지 말고 사람을 의식하지 말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지 ‘사람이 듣게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기도할 때 웅변조, 설교조, 비난조, 그리고 미사여구를 버리라.
어린 자녀가 인형을 사달라고 할 때 이렇게 아빠에게 요청한다. “아빠! 인형 사줘요!”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저를 낳고 길러준 아버님! 그 동안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에 변고는 없는지요? 이제 소자가 인형이 갖고 싶어서 구하오니 가납해 주소서!” 아이가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웃기는가? 그처럼 기도할 때 미사여구로 하나님을 웃게 하지 말라. 때로 문법이 틀리고, 때로 서툴게 들려져도 단순하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진실한 고백을 오히려 기뻐한다.
기도로 남의 심금을 울리려고 하지 말라. “오! 전능하신 하나님! 이제 겨울도 끝자락을 보입니다. 요새 눈 밟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한데, 그 눈 밟는 소리가 찬송 소리로 변해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게 하소서! 날씨가 추운데 마음도 추워서 지금 절망한 사람이 있습니까? 철학자 키일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는데, 이제 절망의 옷을 벗고 소망의 나래를 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문학청년의 심금은 울려도 하나님의 심금은 울리지 못한다.
기도는 단순하고 간절히, 그리고 끈질기게 하라. 느헤미야는 밤낮으로 끈질기게 간절히 기도했다(6절). 그 기도가 언제까지 계속되었는가? 그가 고국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때는 아닥사스다 재위 20년 기슬르월로 오늘날의 11월 중순 경이고(느 1:1),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떠난 해는 아닥사스다왕 20년 니산월로 오늘날의 3월 중순경이다(느 2:1). 즉 그의 간절한 기도는 약 4개월간 지속되었다.
기도할 때 간절히 끈질기게 하라. 그래서 기억, 기도, 기적, 기대, 기다림을 가진 ‘오기’있는 삶을 살라. 즉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기도’한 후 놀라운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라. 하나님의 때는 사람의 때와 다르다. 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를 포기하지 말라. 기다림이 길면 축복도 커진다.
2.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라
느헤미야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운 하나님’으로 지칭하고, 또한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며 긍휼을 베푸는 주’라고 지칭했다(5절). 느헤미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며 기도했다. 간절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최대한 존중하고 높이며 간절히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를 존중하고 예절을 갖춘다. 무작정 사람을 붙잡고 떼쓰면 더 정떨어진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높여주면 마음을 연다. 그처럼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준비하라.
어느 날, 한 형제가 한 자매를 소개받았다. 첫눈에 반한 형제는 자매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다. 때로는 집 앞에서 잠복했다가 갑자기 나타나고, 밤늦게 전화를 걸고, “죽을 때까지 목숨 바쳐 사랑할게요!”라고 너무 쉽게 말하니까 더 정떨어졌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결혼 후에는 대개 전혀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 상대를 깊이 고려하는 예절이 없는 자의 구애에 속으면 평생 마음고생을 한다.
기도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자의 간구에 귀를 기울인다. 하나님을 높이는 자는 때로 문제가 생겨도 원망하지 않고, 기도 응답이 늦어져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찮은 모래로도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창조주 하나님’(렘 5:22)의 신비한 손길에 대해 감사하고 감격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영혼의 기도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
3. 겸손히 회개하며 기도하라
느헤미야는 회개기도를 할 때 자기만 회개하지 않고 가정과 민족 전체의 죄를 짊어지고 회개했다(6-7절). 그는 겸손한 기도자였다. 사실 모든 문제 해결과 축복은 나의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회개할 때 가정과 교회도 회복되고, 심지어 나라와 민족도 바뀐다. “내 탓이다!”라고 해야 희망이 있지 “네 탓이다!”라고 하면 절망뿐이다. 정치인 탓, 리더 탓, 배우자 탓만 하지 말고 내가 작은 리더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기 탓부터 하라.
어느 날, 한 가정세미나에서 강사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것처럼 집에서 남편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고 보고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때 한 권사는 남편이 일찍 타계해서 숙제를 할 수 없었다.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평소에 부부싸움이 잦은 아들집에 가서 며느리의 발을 씻겨주기로 결심했다.
그 권사가 며느리 집을 찾아가 말했다. “얘야! 오늘 네 발 좀 씻겨야 되겠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시어머니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며느리가 말했다. “그러면 그러세요.” 그 권사는 대야에 물을 담아 며느리 발을 정성껏 씻으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사랑하는 며느리가 시집 와서 마음고생이 심합니다.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한 저를 용서해주소서!”
그때 며느리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자책되면서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이 며느리의 발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숙제하는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자 너무 감동이 되어서 따라 울었다.
발을 다 씻은 후 며느리가 말했다. “어머니! 저도 어머니 발을 씻겨드릴게요.” 시어머니가 “그래라!”고 하자 며느리도 엉엉 울면서 시어머니의 발을 씻었다. 그 뒤 아들 가정의 부부관계가 멋지게 회복되고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시어머니를 생각해주면서 아들 가정이 행복을 찾았다. 회개 없는 삶은 ‘회의’를 부르지만 회개하는 삶은 ‘회복’을 부른다.
4. 약속에 근거해 기도하라
느헤미야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했다(8-9절). “하나님! 죄를 지으면 망해서 흩어지지만 회개하면 다시 택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 약속을 기억해주소서! 이스라엘 백성은 주의 백성이니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내세워 백성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주셨다. 때로 환난이 있어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굳게 붙들고 믿음의 기도를 하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하나님! 차라리 전 재산을 달라거나 제 목숨을 달라고 하시지요?”
그때 아브라함의 머리를 번쩍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다! 그 하나님이 내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 하나님의 인격과 약속을 신뢰하자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과감히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자 오히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말렸다. “아브라함아! 됐다! 네가 정말로 나를 경외하는구나!”
그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수양이 보였다. 그 수양으로 아들 대신 번제를 드리고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뜻을 가진 ‘여호와이레’라고 붙였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약속했다. 그러므로 현재의 형편이 조금 어려워도 미래는 항상 희망적임을 잊지 말라.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 형통하면 형통한 대로 감사하고 힘들면 힘든 대로 감사하라. 그런 성도는 사단도 도무지 어떻게 요리할 수 없다. 이리 내쳐도 감사하고, 저리 내쳐도 감사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는가? 현재 모습이 불행한 모습이라도 내일의 승리와 축복을 확신하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약속에 근거한 믿음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다.
5. 자기를 드리며 기도하라
당시 느헤미야는 왕이 가장 신임하는 술 관원으로서 누구보다 안락하게 살 수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자신을 드리기로 결심하고 형통의 은혜를 구했다(11절). 그때 그가 구한 형통의 기도는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가 아니었고, 왕의 은혜를 입어 예루살렘 성벽 회복에 앞장서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남을 돕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형통의 은혜도 구하라. 마음과 함께 외모도 좋게 되기를 힘쓰라. 외모 지상주의자가 되면 안 되지만 외모를 더 낫게 가꾸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말라.
예전에는 여성들의 화장 안 한 얼굴을 순수하게 보았다. 그러나 요즘은 여성들의 화장을 안 한 얼굴을 ‘순수함의 표시’로 보기보다는 ‘게으름과 짜증과 귀찮음의 표시’로 보고, 마치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는 경향이 늘고 있다. 자다 일어난 기미가 가득한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와 짜증 섞인 말투를 가지고 성경을 인용해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하면 안 된다.
인상은 인생의 흔적이다. 외모도 잘 가꾸고 사회적 위치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도록 힘쓰라. 잘 믿는 사람은 일도 잘해야 한다. 믿음과 게으름은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신앙을 빙자해 자신의 할 일을 망각하는 것은 죄이고, 교회 봉사를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서 라면만 먹게 하는 것도 죄다. 교회 봉사 때문에 살림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다. 조금만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살면 교회에서 1등 봉사를 하면서도 누구보다 살림을 잘할 수 있다.
탈무드는 “땀이 없으면 도적질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우리말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한다. 여당에 속해도 좋고 야당에 속해도 좋지만 불한당에는 속하지 말라. 땀을 흘리며 영향력을 키우려고 힘쓰라. 그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해내겠다는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라. 어디에 가든지 최선을 다해 욕심 없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 자기를 드리라. 기도와 욕심은 반대다. 기도에는 욕심의 냄새가 없고 사랑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
어떤 중년여성은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자 사람 숲을 헤치고 10미터 거리를 단숨에 달려와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기도한다. “하나님! 자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런 기도에 하나님은 매력을 느끼지 않으신다. 진정 능력 있는 기도를 원하면 자리를 양보하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이 사랑이 시들지 않게 도와주소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것도 원하시지만 남을 배려함으로 기도에 향기가 있기를 더 원한다. 그래야 하나님은 “네가 정말 기도하는 사람답구나!”라고 생각하시고 축복의 문을 열어주신다.
이제는 기도할 때 “달라!”는 기도만 하지 말고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까? 어떻게 더 많이 선교하고 더 많이 헌신할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며 기도하라. 경기가 이처럼 어려울 때 어떻게 남을 돕는가?”라고 하지 말라. 그런 핑계를 대면 아무도 헌신하지 못한다. 가끔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 될 때도 있다. 그때 다른 지출은 줄여도 ‘위로의 드림’과 ‘옆으로의 나눔’과 ‘아래로의 베풂’은 줄이지 말라. “우리도 어려운데 어떻게 나누는가?”라고 하면 평생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내 안에 말라버린 사랑의 샘물을 퍼 올리라.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나눔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관심의 문제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돌아다니는 자동차보다 가만히 서 있는 자동차가 더 빨리 망가진다. 그처럼 가만히 있는 영혼은 더 망가지지만 헌신의 짐을 지고 사랑의 샘물을 퍼 올리면 기도의 능력도 커지고 내 안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축복의 샘물은 더 고인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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