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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느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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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제가 문제를 낼터이니까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범죄를 함께 저지른 범죄자와 동료을 붙잡았습니다. 경찰이 이 둘을 취조하였습니다. 각각 다른 방에 두고 취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1)만일 네가 자백하면 최대한 정상 참작해 너는 징역 1년으로 해 주겠다.
2)네가 자백하지 않고 네 동료가 자백하면 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징역 10년을 살게 될 것이다.
3)너와 네 동료 모두 자백을 하면 징역 5년이 된다.
4)만일 둘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범죄사실을 부인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이때 두 사람은 10년형이라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서로 자백해 5년형을 살게 된다는 것이 그 유명한‘죄수의 딜레마’이론입니다. 절대우위전략을 쓴다는 것입니다.
노이만은 이익이 완전히 상반되는 경쟁자들이 대결하는 게임들에 항상 합리적인 행동노선이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을 했습니다. 노이만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래로 게임이론은 수학, 정치, 경제, 군사, 경영, 법,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개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게임이론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법칙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게임 이론 중에서는 '백워드 인덕션(Backward Induc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현재에서 미래의 순으로 생각해나가지 말고, 미래의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한 후 현재의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역순의 사고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 아가씨를 사랑했던 수사자가 농부에게 찾아가 딸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의 이빨과 발톱에 딸이 상처 입을 것이 걱정된다고 하였고, 사자는 이발과 발톱을 모두 뽑았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몽둥이로 패서 쫓아 버렸습니다. 이 때 사자는 이빨을 뽑거나 안 뽑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고 사자의 선택에 따라 농부도 각각 수락과 거절의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습니다. 행동을 하기 전에 사자는 먼저 각각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봤어야 합니다. 만약 사자가 이빨을 뽑지 않고 계속 위협하여 청혼을 하였다면 농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딸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각각의 상황에서 상대가 정말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을 게임이론에서는 '백워드 인덕션(Backward Induction)'이라고 합니다.
게임 이론에 의하면 느헤미야의 적들은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포기할 것을 예측하고 계속해서 비웃고 조롱하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자신들의 예측과는 전혀 달리 성벽 재건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적들은 3가지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여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방법이 나와 있고 느헤미야가 그들의 극단적인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성벽 재건을 완수하는 장면 나와 있습니다.
성벽 재건을 방해하기 위해 사용한 극단적 전략은 무엇입니까?
1. 게임 상대자 제거
이런 상황을 게임 상황이라고 합니다. 게임 상황에는 세 가지 구성요소 게임의 참가자들(players), 참가자들의 전략(strategy), 게임이 끝나면 참가자들이 획득하는 보상 또는 이득(payoff) 등입니다. 이 중에 게임 상대자를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용한 전략이 1-4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임 상대자를 완전히 제거시켜 버리는 전략입니다. 게임 참가자를 바꾸면 변화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부시가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에서도 정적을 제거해 버립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을 바꾸어 버리고 아내를 바꾸어 버립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를 바꾸어 버립니다. 극단적인 방법은 게임 당사자를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산발랏이 이런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느헤미야를 제거시키는 전략을 꾸밉니다. 느헤미야가 왕의 신임을 받고 왕의 허락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무력으로 쳐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키면 바사 왕이 자신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정당해야 합니다. 무리가 없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선재 공격을 했다가는 국제적 비난을 받을 것이고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느헤미야만 제거하는 전략을 씁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를 제거할 음모를 꾸밉니다. 정당한 방법이 아닙니다. 갖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으니까 협상을 요구합니다. 대적들이 총 궐기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대적들이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그 당시로서는 사마리아와 아스돗 사이의 중립 지대로서, 완전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산발랏 일당들이 오노를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은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입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그들의 음모에 어떻게 대처합니까?
첫째는 그들의 음모를 정확하게 분별합니다. 현실 파악을 정확히 하여야 합니다. 모든 게임에 승리하기 위한 기초 작업입니다.
둘째는 그 음모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네 번이나 요구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상대의 전략에 말려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내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각각의 상황에서 상대가 정말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백워드 인덕션(Backward Induction)'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적들은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교묘한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그 유혹의 소리를 믿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셋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그 사명에 집중합니다.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문을 달아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입니다(1절). 바로 적들이 우리를 제거하려고 할 때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까지는 죽지 않는 사실을 깨닫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여야 합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해야 할 사명,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사명, 사업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사탄을 우리를 삶의 현장에서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명을 이루어 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2. 게임 참가자들의 게임 법칙 바꿈
음모를 통해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자 적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함을 통하여 정당한 힘에 의하여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극단적 제거 방법이 통하지 않자 교활한 방법을 택합니다. 그 내용이 5-9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게임 방법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왕이 느헤미야를 신뢰하여 성벽 재건을 허락하였는데 이제 이들은 이 성벽 재건이 왕께 반역하기 위한 느헤미야의 음모라고 몰아 부치는 것입니다. 정당한 힘 왕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여론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지지율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통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회장 사장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허위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실제하지 않는 것을 실제하는 것처럼 꾸며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원하는대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대체로 부당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쓰는 방법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음모가 먹혀들지 않자 다섯 번째 서신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서신을 봉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공식 문서는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으로 날인되어 봉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서의 신빙성을 보증하고 문서의 내용의 변조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봉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편지의 내용을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소문이 왕에게까지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느헤미야가 결국 자신들과 협상하자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서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역모를 꾸민다는 것입니다. 페르시아 왕실에 대해 모반하여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을 건축하는 본래 이유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반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허위 날조된 첩보를 흘리는 것입니다. 여론 조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전에 써먹어 재미를 본 것입니다. 휠씬 이전에 있었던 성벽 재건의 시도도 바로 이와같은 허위 보고가 페르시아 왕실에 올려짐으로써 좌절되었었습니다(스 4:11-23).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선지자를 세워 유다에 왕이 있다고 선전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족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선지자의 도움을 받아 왕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헛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느헤미야을 모함하여 오노 평지로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나오지 않으면 느헤미야를 모반 혐의로 왕에게 고소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술관원들의 모반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산발랏은 이점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 버리는 모함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첫째 그들의 소문은 사실이 아님을 정확하게 밝힙니다(8). 이런 일은 결코 없는 일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네 마음에서 지어낸 이야기 라는 것입니다. '타인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진실을 교묘히 왜곡시킨 이갸기'라는 것입니다.
둘째 허위의식을 폭로합니다(9).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결국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기 위한 술책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합니다(9). 자칫 잘못하면 페르시야 왕에게 처형 될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성벽 재건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게임 이론 중에 또라이 전략이 있습니다. 미군도 벌벌 떨게 만드는 천하무적이 또라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쓰고 있는 전략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북한 정권은 붕괴되고 맙니다. 김정일은 합리적인 정신 상태인지 또라이인지 분간하기 힘듭니다.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김정일은 아웅산 폭발사건이나 대한항공 757기 폭발 사건 등을 주도하고 가끔 일본인들을 납치하여 북송하기도 합니다. 최근 6자 회담에도 나왔다가 거부합니다. 또라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또라이 흉내내기입니다. 게임이론에서는 이런 것을 명성 혹은 악명효과(reputation effect)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비유하자면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또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약한 것같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미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위기가 와도 기도하고 인간관계의 위기가 와도 기도하고 슬픔과 고통이 와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종교 포용 정책으로 궁중 교육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이 출세하자 다니엘을 대적하는 자들이 게임방법을 바꾸어 버립니다.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사자굴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습니다. 모르더개가 적당한 지위에 오릅니다. 이스라엘 대한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모르더개와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하만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 버립니다. 이 때 에스더는 어떻게 합니까? 죽으면 죽으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시대 때 애굽왕 바로가 요셉 시대 때는 달리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 버립니다. 남자를 죽입니다. 노역을 시킵니다. 이 때 이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3. 게임의 기대를 0으로
이렇게 하여도 적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성벽 재건을 방해하기 위한 세 번째 전략을 구사합니다. 10-14절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느헤미야를 백성들과 분리시키는 함정(올무)을 놓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느헤미야에 대한 기대를 0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거역하기 힘든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는 덫을 놓은 것입니다. 백성과 분리시키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요즈음 말하면 국민의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를 따르고 있는 사람로부터 심리적으로 격리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런 기대를 가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신뢰감을 상실하게 만들어 따를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도자혐오증게 걸리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게임 이론에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할 때 가격 품질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느냐를 본다는 것입니다. 군중심리입니다.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성도 마비시켜 버리고 양심도 마비시켜 버립니다. 게임 이론에서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야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렇기 위해서는 적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첩보의 활용입니다. 첩자를 이용하여 적을 넘어뜨리는 방법입니다. 적들이 바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들은 이 일을 위해 측근을 사용합니다. 힘있는 자들을 사용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선지자를 매수하였습니다(12). 한 사람만 매수한 것이 아닙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여선지자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도 매수했습니다. 그들만 적들과 내통한 것이 아닙니다.
17절 이하를 보십시오. 느헤미야의 적대 세력은 선지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귀인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지도층 인사가 대적들과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탐지하여 그것을 도비야에게 신속하게 넘겼습니다. 도비야는 유력한 가문과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켰습니다. '므술람'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서 두 몫을 맡아 담당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3:4, 30). 저들과 동맹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내통자들은 도비야의 선행을 부각시켰습니다. 느헤미야를 넘어뜨리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를 대표적으로 이용합니다. 그는 제사장이며 선지자 행세를 하였습니다. 아마 느헤미야의 측근이었을 것입니다. 이 선지자가 가정에서 두문불출하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최측근이 이사가 출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궁금해 그 집을 찾아갑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무슨 말을 합니까? 산발랏 일당이 자객을 보내어 느헤미야를 암살할 계획이 있음을 알려 주면서 성전 외소로 피하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을 백성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음흉한 올무였습니다. 여기에서 외소(토크)는 구체적으로는 성소를 가리킵니다(겔48:21). 이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울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드리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지 않았습니까? 공식적으로 드러내 놓고 범죄한 느헤미야를 백성들이 따르겠습니까? 자기만 살기 위해 성소에 숨어 있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믿고 따르겠습니까? 기대치가 0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첫째 부정한 방법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억지로 기대치를 만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페르시아 왕실로부터 임명된 총독의 신분으로서 생명의 위협이있다고 해도 몸을 숨기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지도자로서 자신만 살겠다고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이외의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율법을 어기기 때문에(민 18:7)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둘째는 음모를 깨닫고 정확히 그 의도를 파악합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그러한 제한을 하는 스마야가 참 선지자가 아닌 것을 분별합니다. 스마야의 배후에는 산발랏과 도비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마야를 통해 함정에 빠뜨리려고하는 것은 자신을 두렵게 하고 범죄하게 함으로 백성들에게 비방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적들이 스마야를 매수한 세가지 이유는 자신을 두렵게 하고 범죄하게 하고 비방하기 위한 것을 알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이 문제를 풀어 주실 것을 기도하였습니다.
스마야의 이런 정체를 깨닫고 느헤미야는 무엇을 합니까? 스마야를 처형할 수도 있습니다. 적과 내통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기도합니다.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갚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맡겨 버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어야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기대치를 회복시켜 주어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느헤미야가 마지막 적들의 음모와 모함, 함정을 극복하고 성벽을 완공하였습니다(15-19)
15절을 보십시오. 결국 느헤미야는 모든 대적의 방해 공작을 물리치고 52일만에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이 때 적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6)
사마리아 사람, 암몬 사람, 아라비아 사람. 아스돗 사람(4:7)들이 두려워하였습니다. 스스로 낙담하였습니다. 대적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적들도 이 일이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방해했는데 이루어진 것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제적으로 목격했다는 말입니다. 나을 수 없는 암이 났고 부도날 수 밖에 없는 회사가 일어서는 것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가 쏟아져도 기차는 갑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 방해하는 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극단적이 방법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하고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 우리를 실패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에 대한 기대치를 완전히 없애려고 합니다. 우리는 적들의 정체를 분명히 깨닫고 사명을 가지고 기도로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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