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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9:1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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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
본문: 느헤미야 9장 17, 31절, 찬송가 384장(통 434장)
우리는 때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범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올바로 깨끗하게 살려고 힘써도 부지중에 잘못하고 주님의 뜻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해 보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쳐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돌보아 주십니다. 은혜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회개할 때 즉시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온전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에 파우스트가 자살하려다가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젊을 때는 충실히 신앙 생활했던 파우스트가 그의 학문이 진보하자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사회에서는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러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칠 때 낙심하고 자살을 기도하게 됩니다. 독배를 들고 그 인생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찰나, 먼 곳에서 부활절의 교회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교회 다닐 때의 일과 교회를 떠난 후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됩니다. 결국 그는 독배를 내던지고 통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회개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고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아무리 타락한 사람도, 돌아오기만 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온갖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뉴욕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었습니다. 그 높이가 무려 102층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개척 정신과 감사의 정신을 심어 준 102명의 선조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은 그해 겨울에 굶주림과 질병,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44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지속되는 흉년에도 낙심하지 않던 그들에게 3년째 되던 해 풍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얼마 앞두고 벌레들이 수없이 나타나 곡식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벌레를 잡아도 소용이 없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밤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다음 날 아침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참새 떼가 하늘을 덮을 듯이 새까맣게 날아와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그 일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했음을 깨달았으며,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추수감사예배를 풍성하게 드렸습니다. 이로부터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추수의 원리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시65:10)
한 심리학자가 특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어느 동네의 한 구역을 택해서 집집마다 매일 100달러씩 갖다놓은 후 그 결과를 관찰하기로 한 것입니다. 실험 첫날 사람들은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의아해하면서도 슬그머니 돈을 집어갔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100달러씩 집앞에 놓고가는 사람 이야기로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둘째 주쯤 되자 현관 앞에 나와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셋째 주쯤 되자 돈을 받는 것을 이상해 하지 않았고 넷째주가 되었을 때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돈을 집어갔습니다. 실험기간인 한 달이 지나자 학자는 돈을 집 앞에 놓지 않고 그냥 동네를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매우 불쾌해 하며 “왜 오늘은 안 주고 가느냐?”고 따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유없이 베풀었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지 않는 것을 서운해하고 불쾌해 했던 것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시145: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시36: 5- 10)
아침 식탁에 올라온 밥은 농부가 한 해 동안 뿌린 땀의 결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볍씨를 모판에 뿌려 모종을 길러내고, 이것을 다시 논에 심고, 농약을 뿌리고, 잡초를 솎아내고, 새들을 쫓아내고, 거둔 다음에 타작하여 정미합니다. 농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100% 농부의 공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주시고 길러 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을 다한다 해도 가뭄이 계속되거나 물난리가 나면, 농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불치의 병을 기적적으로 낫게 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만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의사의 손길을 통해서 병이 치유되는 것도, 농부의 손길을 통하여 식료품을 공급받게 되는 것도, 내가 수고한 만큼 대가를 받게 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신앙인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90: 17)
오래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한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쓰레기통 주변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살아있는 것이 쓰레기통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쓰레기통을 뒤져보니 까만 비닐봉투 안에 막 태어난 핏덩이 아기가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몸을 떨면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 목사님은 그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따스한 물에 목욕을 시키고 우유를 먹인 다음에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기는 그 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그 아기를 자신에게 맡겼다는 믿음을 갖고 그 아기를 자신의 양녀로 삼았습니다. 비록 냄새나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비닐봉투에서 나왔지만 그 아기에게 예쁜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아기의 생모는 아마도 어린 자매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원치 않는 아기가 태어나자 무서움과 근심염려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 아기를 비닐 봉투 속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기를 살리시기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시는 목사님을 그곳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대신하는 그 목사님의 수고로 그 아기는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아기는 뭔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그 아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면 죽을 아이도 살아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삶도 성공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비록 나의 삶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와 같을지라도 불안해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좋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복된 길로 구원의 손을 부드럽게 펼쳐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 24)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 12)
나일 강에 버려진 모세를 건져내서 훌륭한 청년으로 키우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께서 나를 주님의 도구로 선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2서1:3)
본문 느헤미야서 9장을 보면 주님은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번번이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그리고 가나안 정복 때도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간 동안에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보호하여 주셨고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삼으신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보증된 영원한 사랑으로 변함이 없으십니다(롬8: 38, 39)
본문 17절에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하였습니다. 즉 회개하는 자에 대해 용서하시는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시130:4)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 6- 7)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 18)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단9:9)
딱따구리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 큰 고목나무에 올라가 벌레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톡! 톡! 나무를 찍는 순간 와지끈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졌습니다. 딱따구리가 깜짝 놀라 날아가며 하는 말 [내 힘이 정말로 세구나]라고 했습니다. 마침 벼락이 떨어져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을 자기 힘으로 된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우리들도 그 딱따구리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진단해 봐야겠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햇볕과 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내 주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고 측량을 다할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말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그 크신 은혜를 잊지 말고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져진 믿음으로 삶을 살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을 널리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blog.naver.com/hantai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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