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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2: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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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65) 2016.6. |
느헤미야(3) 자기변화에 관심을 가지라 (느헤미야 2장 1-10절)
< 자기변화에 관심을 가지라 >
일전에 ‘대도(大盜)’ 조세형이 16년 만에 출옥해서
변화되었다고 교회마다 다니며 간증집회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에서 좀도둑질을 하다 다시 붙잡혔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성신앙의
위험성을 느낀다. 사실 어려운 일과 장애물을 몇 번쯤 넘어 본 사람이 진국신앙을 가진 성도가 된다.
조금만 배우면 혼자 아는 척
하고, 조금만 은혜 받으면 자기 신앙이 제일인 줄 알고, 꿈 한번만 꾸면 신령한 척 하고, 체험 하나만 있으면 간증한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것 같다. 어떤 단체는 속성으로 목사 안수를 해준다. 어떤 사람은 미국행 비행기에서 자기 손으로 안수해 집사로 타서
목사로 내리고 미국에서 목사 행세를 한다. 속성신앙은 내일의 패망을 예고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정상과정을 거치려고 하라.
기복주의란 ‘과정을 생략한 속성주의’다. 못된 행동을 해도 복 받는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마음과 태도와 행동이 엉망이어도 복 받는다는
말은 믿지 말라. 복은 ‘좋은 말씀을 들음’으로 받기보다 ‘좋은 말씀을 듣고 변화됨’으로 받는다.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씀도 잘 들으라. ‘단
음식’만 먹으면 온갖 성인병이 생기듯이 ‘단 말씀’만 들으면 실천이 없는 영적 성인병에 걸린다.
신앙생활에서 ‘말씀을 듣고
위로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변화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성경을 읽으면서 좋은 말씀에만
줄을 쳤지만 점점 책망하는 말씀에도 줄을 쳤다. 그처럼 자기변화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그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도 커진다.
< 드릴 때 더 얻게 된다 >
살다 보면 어느 분야든지 성장과 부흥이 정체될 때가 있다. 마치 성벽이
무너진 채로 있는 예루살렘의 모습이다. 그때 어떻게 다시 성장과 부흥을 이끌어내는가? 당시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라고 지칭했다(10절). 느헤미야처럼 부흥을 이끌어내는 리더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기도해야 한다.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느 1:1)는 4개월이 지나 니산월까지 계속되었다(1절). 그 기도가 마침내 응답되어 아닥사스다왕이
느헤미야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게 되었다. 그때 그는 잠깐 기도한 후에 소원을 말했다. “왕이여! 괜찮으시면 저를 유다 땅 조상들의
묘실로 보내주시어 성을 건축하게 하소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예루살렘의 중건을 위해 자신을 드리려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라. 그
모습이 이방 왕에게도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겠는가?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언제인가? 자신을 드릴 때다.
느헤미야가 그
말을 할 때 성경은 “왕후도 왕 곁에 앉았다.”고 언급한다(6절). 그 기록은 왕후도 느헤미야의 모습에 감동했을 것이라는 암시다. 그때 왕후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훌륭한 신하네요. 저런 신하의 소원은 들어주세요.” 그때 왕이 물었다.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그 질문은 왕이 느헤미야를 곁에 두고 싶어 했음을 알려준다. 그만큼 느헤미야는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면
느헤미야와 같은 헌신적인 평신도 리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개혁은 능력과 신분이 있는 사람만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능력과 신분이 개혁에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헌신’이다. 한 사람이 헌신으로 인한 작은 바람이 나비효과를 통해 엄청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모든 개혁과 변화는 자신의 기도와 헌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목회자를 최대한 존중하되 교회개혁 문제는 목회자에게만
미루지 말라. 목회자는 제도권 안도 살펴야 하기에 교회개혁에는 평신도 리더의 헌신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가끔 휴가 중에
선교지에 가서 의료봉사 및 건축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성도는 모두 ‘느헤미야를 사모하는 모임’인 ‘느사모 회원’이
되어 자발적인 헌신에 나서야 한다. 좋은 일에 자기를 드릴 줄 아는 느사모 회원이 많아질 때 그 공동체는 희망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에이즈나 암이나 핵폭탄’이 아니라 ‘마음속의 이기심’이다. 헌신이 없으면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소망이 없다. 그러나
헌신하면 희망이 보이고 축복의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자기를 드리면 손해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드릴 때 자기 영혼을 얻고 남의 마음도
얻고 환경의 도움도 얻는다. 어느 공동체든지 얻을 생각보다는 드릴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을 통해 그 공동체는 부흥하고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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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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