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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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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67) |
참된 정의감을 가지라 (느헤미야 5장 1-7절)
< 분노를 다스리는 자제력 >
살다보면 역경과 반대와 대적은 늘 있다. 그 중에 공동체의 가장
큰 대적 중의 하나는 빈부격차로 인한 내부 분열이다. 느헤미야가 당시에 성벽 재건공사를 할 때는 흉년 때였다(3절). 흉년이 오거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난한 자는 더 살기 힘들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당시에도 부자와 고위층은 고리대금업을 통해 가난한 자들을 더 힘들게 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동족끼리 그럴 수 있느냐?”고 부자들을 원망했다(1절).
어떤 사람들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돈과 곡식을 빌려
빚더미에 앉았고(2절), 어떤 사람들은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히고 빚을 얻었고(3절), 어떤 사람들은 흉년으로 세금 낼 돈이 없어서 빚으로
세금을 냈다(4절). 그 결과, 가난한 자들은 자녀를 종으로 팔았고 딸은 종이나 첩이 되어 성적 농락을 당했고 밭과 포도원도 빼앗겼다(5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예나 지금이나 지나친 빈부격차는 사회를 망치는 독버섯이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부르짖음에 크게 노하면서도
먼저 깊이 생각했다(6-7절). 본문 7절에 나오는 “깊이 생각하고”란 표현은 자제력을 가지고 신중하게 어떤 구상을 했다는 표현이다. 느헤미야는
부자의 횡포에 크게 분노했지만 바로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신중하게 구했다. 불의나 죄를 보고 분노할 때는 그 분노를
지혜롭게 표출할 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이다. 분노를 잘못 표출하면 문제가 더 얽힌다. 그러므로 거룩한 분노를 가지면서 동시에
분노를 다스리는 자제력도 가져야 한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을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했다.
성공하고 리더가 되고 최종승리자가 되려면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운동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먹는 것도 절제하고 선수촌에 들어가 사람 만나는
것도 절제한다. 마음대로 선수촌을 나올 수도 없고 사랑도 못하고 술 담배도 못한다. 그렇게 절제할 때 결국 승리하듯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힘써 절제해야 한다.
< 참된 정의감을 가지라 >
느헤미야는 신중히 생각한 후 잘못된 부자들을
꾸짖었다(7절). 비전 동지들인 그들을 꾸짖기는 쉽지 않았지만 과감히 그 일을 했다. 처음에 별로 반응이 없자 느헤미야는 대회를 열어 그들을
공개적으로 야단치면서 잘못된 행동으로 이방인들보다도 못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8-9절).
투철한 정의감을 가지라. 물론
정의란 자신이 가진 바른 생각만이 아니다. 정의를 그렇게 알면 정의를 외치는 사람 때문에 오히려 싸움과 소리가 커진다. 진짜 정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는 것이다. 진짜 정의는 대개 목소리가 큰 곳에 있지 않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의 겸손한 자세도 참된 정의를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정의를 이루려면 ‘겸손한 주인의식’은 있어야 하지만 ‘교만한 주인행세’는 없어야 한다.
인터넷 카페들을 보면
보통 운영자와 운영진과 운영원칙이 있다. 그 운영원칙이 잘못된 것이거나 상식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면 회원들은 그 운영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세워진 원칙과 질서를 따라 자기주제를 잘 파악하고 자기위치를 잘 조율하는 것이 최상의 정의다. 정의의 기준은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참된 정의도 잘 모르면서 정의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있는 한 기독교
카페를 들렀다. 거기서 설교게시판을 클릭했는데 설교는 나오지 않고 “먼저 회원으로 가입하라!”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그는 은근히 분노가 생겼다.
“아니! 어떻게 기독교 카페가 하나님 말씀을 못 보게 해!” 할 수 없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다시 어떤 게시판을 클릭 했다. 그러자 또 안내문이
나왔다. “이 게시판은 정회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운영자에게 정회원 신청을 해주세요.”
마침내 그는 흥분했다.
“아니! 믿는 사람들이 사랑과 섬김도 없이 왜 이리 절차를 까다롭게 해!” 그래서 자유게시판에 그 카페의 회원가입 원칙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보고 카페의 운영진이 덕이 안 된다고 여기고 그 글을 삭제했다. 그때 그는 “어떻게 믿는다는 사람들이 나의 바르고 정당한 글을
삭제해!”라고 더욱 흥분했다.
그렇게 살면 악과 병과 상처만 남는다. 자신은 정의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남들은 맛이 간
사람처럼 생각한다. 남의 집에 가서 남의 가훈이 맘에 안 든다고 “가훈을 바꾸라!”고 시비를 건다면 얼마나 교만한 태도인가? 남의 원칙과 내
원칙은 다를 수 있다. 그때 내 원칙을 관철시키려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 진짜 정의는 겸손과 순종의 기본 바탕에서 성립한다. 겸손과 순종은
정의를 참된 정의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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