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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에6: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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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6장
1절-3절: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 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혹시 밤에 한 잠도 안 자고 뜬 눈으로 세운 때가 있는가? 뭐하는데 뜬 눈으로 세우는가? 철야하느라고?
하나님 앞에 신앙문제 때문에 잠을 안 잔 일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바로 살아볼까?’ 하며 진리를 생각하느라고, 신앙 믿음을 생각하느라고, 어떤 결심 각오를 다짐하느라고, 신앙 면에서 염려 걱정을 하느라고 밤에 잠을 안 잔 일이 있는가?
혹 철야기도를 한다고 해도 신앙문제 때문에 하는 것은 별로 없고 집에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그 일을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느라고 밤새 잠을 안 자는 일은 더러 있는 것 같다. 신앙문제 때문에 날을 샌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상당히 받을 텐데···. 참 고상한 신앙이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왕이 잠을 안 잤는데 이것도 구원인가? 하나님께서 왕을 잠을 안 재운 모양이다. 하나님의 선민의 구원 때문에 파사 왕 아하수에로 왕을 잠을 안 재운다. 이래서 궁중일기를 읽게 하고, 모르드개가 들어가게 된다.
왕을 잠을 안 자게 하고, ‘밖에 누가 섰느냐’ 하고 물을 때 하만이 막 왕의 문 밖에 도착한 것이라든가, 하만은 하만대로의 그 밤에 왕 앞에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는 허락을 받아내기 위해 도착한 것 등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 왕은 사람을 높이려고 하는 거고, 하만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를 아끼시고 보호하시며 마지막 그 날까지 구원역사로 섭리하시는 것을 보면 하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세상조건이 다 갖추어진) 돋보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신앙자들을 원수들의 생각대로 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만을 들어오게 했을 때 하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옳구나 됐다, 말할 기회는 이때다’ 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제는 입만 벌리고 허락만 받으면 된다.
하만을 들어오라고 하는 왕과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허락을 받으러 들어가는 장면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 모르드개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회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이 될 것이다.
‘왕에게 선행을 한 자에게 어떤 상을 주랴’ 라고 왕이 말하기 전에 하만이 먼저 그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신앙이 없이 봤다면 마음이 녹았을 것이다.
그런데 왕이 ‘왕을 존귀케 한 자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이 때 하만의 말인즉 ‘왕처럼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을 높이는 자를 하만의 말대로 왕의 대우를 해 주고 자랑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자기가 자신을 두고 그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말이다. 모르드개를 두고 한 말이라면 하만 자신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높이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리라!
10절: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이 말을 들었을 때 하만의 얼굴색이 어떻게 되었을까?
왕의 말대로 모르드개를 그렇게 해서 하만 자기 입으로 성을 돌면서 모르드개를 자랑했다.
자랑하는 그 말을 외칠 때 기분이 좋아서 외친 게 아니고 심술이 섞인 목 메인 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12절-14절: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하만이 그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펄펄 끊는 이마를 싸매고 드러누워 버렸다. 이제는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이 행동을 보고 아내와 친구들이 물어서 사실을 말하자 그들이 ‘과연 그렇다면 이제는 모르드개 앞에서 굴복을 당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왕의 내시들이 들어와 하만을 데리고 신속히 잔치자리로 나갔다.
처음 잔치 때는(왕후가 불렀을 때는) 즐거워서 토끼처럼 통통 뛰어나갔는데 이제 두 번째는 하만의 발걸음이 쇠뭉치를 달아놓은 것처럼 천근만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기 싫어도 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기 싫어도 질질 끌려가는 이 장면을 상상해 볼 때 이런 장면에서도 구원도리가 있는 것인가? 성도라면 마지막 그 날에 잔치자리에 가기 싫어도 가야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 정이 들어서 안 가려고 버티는데 천사 두 명이 와서 양쪽 어깨를 끼고 가지 않겠는가? 어느 영이라고 안 가겠는가? 억지로라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 어떤 이유도 안 통한다.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요약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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