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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아2: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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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꽃(花)에 대하여
아2:11-13, 이사야 40:6-8
14. 3. 30, 야외예배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라는 시입니다.
산에는 꽃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
산에는 꽃 지네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 //
성경에서 꽃에 대한 구절들을 찾아보니 대체로 유한성, 허무함 등에 대한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풀이나 꽃과 같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풀과 꽃의 피어나는 것과 시드는 것 모두 ‘여호와의 기운’이 작용하는 것처럼, 인간의 피어남과 시듦 역시도 ‘여호와의 기운’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말씀은 허무함, 유한성에 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관계하는 인간, 하나님과 관계하는 풀과 꽃(자연)이라는 점에서 복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복된 삶이지요.
1. 꽃은 피어나는 순서가 있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꽃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꽃들은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습니다. 일단은 키가 작은 순서대로 피어납니다. 다음은 키가 작되 이파리보다는 꽃을 먼저 피우는 것이 있습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 중에는 바람꽃 종류가 상당히 많은데 그냥 막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습니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등의 순서로 피어납니다. 간혹 새치기하는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숲의 질서는 그러합니다. 바람꽃과 함께 처녀치마 피어나고, 복수초 피어나고, 괭이눈, 범부채 등이 피어납니다. 신록의 숲이 되기 전에는 양지꽃, 제비꽃, 앵초가 앞을 다퉈 피어납니다. 다들 작은 꽃들입니다. 왜 이렇게 작은 꽃들이 앞다퉈 피어나느냐면, 나무의 이파리가 나면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피어나고, 나무의 이파리는 그들의 피어난 뒤에 새순을 내고 숲을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가을꽃들은 가을에 피어난다고 늦장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들도 봄부터 싹을 내고 충분히 준비하여 여름을 지내고 나서 꽃을 피웁니다. 가을꽃 중에는 국화과 꽃이 많은데 국화과의 꽃들은 한 송이처럼 보이지만, 수백 송이가 피어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꽃을 만들려니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물론,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만, 대체로 이러합니다.
꽃은 자기의 때에 피어납니다. 그러나 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피는 꽃은 열매를 위해 헌신합니다. 열매를 맺을 조건만 되면 꽃은 미련없이 집니다.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는 없습니다. 자기의 때에 피어나고 때가 되면 지는 것, 자기의 때를 잘 아는 꽃의 지혜,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는 떨어진 꽃이 없이는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떨어진 꽃에 감사해야 합니다.
꽃의 피어남에서 위에서 말씀드린 것 중에 어떤 상징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하나는, 서로에 대한 배려입니다. 숲의 나무와 작은 풀꽃들이 서로 피워낼 수 있도록 자기의 때를 기다립니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화사한 꽃이라도 때가 되면 지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2. 못생긴 꽃도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피어날 때 날씨가 좋으면 고운 꽃을 피울 수 있지만, 꽃샘추위를 만나거나 비바람을 만나면 꽃을 곱게 피울 수가 없습니다. 때론 산짐승들에게 먹히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고, 꺾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못생기고 상한 꽃이라도 꽃술만 남아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고운 꽃이 맺은 열매와 다르지 않은 열매를 말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봅니까?
우리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그럴싸하면 대우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내면을 가꾸기보다 외모를 가꾸는 데에 치중하고,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신경을 씁니다. 큰 차, 큰 집, 메이커 같은 것들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 내면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 입니다.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적으로, 오늘 본문에 따라 말씀드리자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꽃과 같으니’ 하시는 말씀에서 그 풀과 꽃은 외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그 외형적인 것들은 유한하고, 허무하다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외형의 것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말고 신앙의 본질을 찾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어 못생긴 이들, 천대받는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물론, 잘난 사람들이라고 배척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예수님과 담을 쌓았습니다.
3. 떨어진 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과, 배, 복중아 등 과수들은 꽃을 따주고 태풍과 바람으로 열매를 적당히 정리해 줍니다. 그래야 가을이 되면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과수나무들이 만약 피어난 꽃 모두 열매를 맺었다면 버티지 못했거나 열매가 잘고 맛이 없을 것입니다. 떨어진 꽃이 있어 탐스러운 열매들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떨어진 꽃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백의 낙화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올립니다. 동백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날 그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꽃이 떨어집니다. 땅에 떨어진 후에도 한참을 새빨갛게 타오르는 동백, 청년 예수를 보는 듯합니다.
떨어진 꽃에서 ‘실패한 이들’ 혹은 ‘낙오된 이들’을 떠올려봅니다. 경쟁사회에서는 일등만 최고라고 하지만, 일등이 있으려면 이등도 있어야 하고, 꼴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오로지 일등만이 모든 것을 다 독식합니다. ‘일등을 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선의 사회에서야 한 줄 세우기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원형의 나라이고 지구는 둥글기에 모두가 일등을 할 수 있고 내가 서 있는 곳이 중심입니다.
떨어진 꽃들, 그래서 짓밟히는 꽃들, 실패한 이들, 그래서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는 이들, 허드렛일처럼 여겨지는 일을 하는 이들, 무엇보다도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는 농부와 우리 의식주의 기본이 되는 것들을 만드는 노동자들, 그런 이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맨날 싸움질이나 해대는 이들보다 얼마나 더 소중한 이들입니까? 그런데 세상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이들은 우습게 보고, 비난받아 마땅한 이들에게는 굽실거립니다.
그러나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 그들이 못 생기고, 덜 떨어졌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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