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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아4: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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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아가서 4:9-11
2018. 2. 4, 오전
여자에 대한 남자의 찬양입니다. 신부에 대한 산랑의 찬양입니다. 남자는 첫 눈에 여자에게 반했습니다. 이미 수차 언급한 대로 아가서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우리와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누이, 내 신부야!” 너무 귀여워서 나의 누이라고 부르고 있고, 사랑스러워 신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입니다. 무엇이 솔로몬의 마음을 빼앗았습니까?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영롱한 눈빛으로, 애틋한 눈으로,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이 그토록 좋았나 봅니다. 한 번 쳐다보는 눈으로 그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버렸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 솔로몬 왕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입니다.
다음은 ‘목의 구슬 한 꿰미’입니다. 구슬 한 꿰미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액세서리로 장식한 것입니다. 남녀관계는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 생기면 얼굴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옷에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한 번 외출하려고 하면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몇 번씩 반복하고 옷장에 수북이 쌓인 옷을 고르다가 입을 것이 없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하고 목걸이도 이것저것 걸어보고 선택에 애를 먹습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심리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같은 행동이 나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끌고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상대는 좋게 봅니다. ‘아,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저렇게 신경을 썼구나’ 하면서 좋게 여깁니다.
그런데 집에서 청소할 때나 주방에서 일하던 옷을 걸치고 남자를 만난다면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엔 한 번 쳐다보는 그 눈으로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고, 목에 건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왕이 구슬이 없겠습니까? 금이 없겠습니까? 진주가 없겠습니까?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세상에 좋다는 모든 보물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실 목에 걸려있는 그 구슬 때문에 마음이 빼앗겼겠습니까? 그 구슬로 자기를 아름답게 장식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솔로몬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입니다. 구슬은 다이아몬드나 진주에 비해 가치가 덜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잘 보이고, 예쁘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정성들여 치장을 한 그 마음에 솔로몬 왕이 마음을 사로잡혀 버린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래야 된다는 영적 교훈을 받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에게 잘 보일까? 어떻게 하면 주님에게 멋있게 보일까?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 생각하며 항상 주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 한 마디도 주님을 생각하며, 행동 하나에도 주님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사로잡을 수 있고 주님께서 내게 관심 갖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예수님께서 내 앞에 나타나서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고 말씀하시면 최고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오늘 주님이 내게 나타나셔서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최고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나의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신랑은 신부를 ‘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러기에 근친상간 아니냐고 토를 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대 문화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사랑하는 이를 오빠, 누이라고 자연스럽게 불렀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첫눈에 반하였습니다. 눈을 보는 순간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을 빼앗았다고 할 때 히브리어로는 ‘리바브티니’라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불을 붙였다.”는 뜻입니다.
‘내 신부’라고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주님에게 모두를 맡긴 신부에게 주님은 내 마음을 빼앗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만 맡기고 반은 맡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온통 모든 것을 주님의 것이라고 맡겨야 합니다. 내가 부정하면 그분이 긍정하여 주십니다. 내가 긍정하면 그분은 부정하실 것입니다.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궤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9절)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한 번’이라는 말입니다. 한 번 보고 일회용으로 끝나는 한 번이 아닙니다. 한 번이기에 두 번이라고 말할 필요 없는 영원한 한 번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데, 한 번 딱 보면서 영원히 눈을 떼지 않을 듯이 변함없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상대방을 즐겁게 하여주려고 목에 구슬을 걸었습니다. 얼굴은 내 것이나 표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구슬은 내 목에 걸었으나 나는 보지 못하고 상대방이 보게 됩니다. 나 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 중심입니다.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10절)
남자는 여자의 모든 것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미치도록 좋은 신부를 보니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있습니다. 포도주보다 진하고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게 보이고 있습니다. 신부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신랑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이 진하게 그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포도주보다 진하고 향품보다 향기로운 사랑을 솔로몬은 느끼고 있습니다. 진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11절)
여인의 입술에서는 꿀과 젖이 흐르고 있습니다. 입술의 육적인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평하였습니다(신 32:13-14). 최고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인은 ‘말을 잘 하는 여인’이 아니라 ‘잘 말하는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지혜롭고 평화스럽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축복, 풍요, 넉넉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입술은 젖과 꿀이 아니라 ‘꿀과 젖’으로 꿀을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달콤함을 먼저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무엇이 달콤한 것일까요?
우선 첫날밤의 입맞춤이 꿀 같을 것을 예고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꿀 한 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 방울 떨어지고 나면 감질날 것입니다. 더 사모할 것입니다. 계속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여인과의 키스도 달콤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여인의 언어입니다. 말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잠언 5:3)
그러나 꿀을 떨어뜨리는 입술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제사장의 기도소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혀 아래에서 발견되는 꿀과 우유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소리로 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 종류의 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입술의 꿀이고, 다른 하나는 혀의 꿀입니다. 다 꿀 같은 말을 할 때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어떻게 말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꿀 같은 말을 하는 신부에게 신랑되신 예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 향기 같구나.”
예수님은 향기가 있는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향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습니다.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후각입니다. 냄새를 맡는 이들은 모두가 즐겁습니다. 레바논의 향기는 당시 대표적인 향료였다고 합니다. 신부는 향기를 내야 합니다. 향기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분만 생각하면 훈훈한 향기가 나야합니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헤어지면 만나고 싶은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부를 향하여 신랑은 말할 것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신랑이 이런 고백을 하게 만드는 신부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주님의 마음을 빼앗는 성도, 주님의 마음에 드는 성도, 주님이 주목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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