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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포로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1886 추천 수 0 2009.10.10 14: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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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61:1-3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0

[영적 치유]라는 책을 쓴 '케이 아더'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실제적인 치유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하는 좋은 책입니다. 그녀는 참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은 자신에 대하여 너무나 무관심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주먹까지 휘두릅니다. 별수 없이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안타까운 상담에서 목사님은 '별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였습니다. 두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상처를 받습니다. '혼자 별거해서 사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래도 내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부인의 질문에 남편은 '당신이 나에게 퍼부었던 그 끔찍한 말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남편은 가끔 '자기가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제가 당신을 유산을 상속받지요.'라고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무서운 것입니다. 오류월에 서리발이 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 품게 하지 마십니다. 우리 나라 전설의 고향을 보십시오. 한 품은 남자들 나와요. 나 여자들이어요. 여인들이 날마다 부엌에서 가지고 노는 것이 무엇입니까? 칼입니다. 무서워요. 고등어 머리, 칼치 모둥이 싹둑싹둑 자르지 않아요. 남자들 할 수 있겠어요. 무의식 속에 그 잔인성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보세요. 밥먹을 때 삼지창과 칼로 먹지 않아요. 우리 나라 사람은 어때요. 젓가락 수저로 국물과 함께 마셔요. 조금 부드럽지 않아요.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미국 사람들 더 잔인하지 않아요. 우리 나라 영화 아무리 폭력적인 것 만든다 해도 어떻습니까? 쉬리 정도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쉬리 정도가 아니어요. 남보 투를 만들어요. 한 방에 다 날리는 것입니다.
하였든 남자들은 여인에게 한을 품게 해서는 안됩니다. 끝이 좋지 않아요.
남편이 케이 아더에게 계속 전화를 하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편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미안해요,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부인은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추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 상처 투성이인 인생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프로이트는 그의 집단 심리학 이론 속에서 사이가 가까워 갈수록 마음도 자라나고 상처를 입게 된다는 말을 쇼펜하우어의 우화 고슴도치 이야기를 인용하였습니다.
겨울날 아침이었습니다. 고슴도치 한 쌍은 추위에 떨며 지내다가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데우기 위해서 몸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몸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 돋힌 수많 은 가시가 서로를 찔러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몸에는 상처만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고슴도치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몸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에 부디쳐 상처를 입듯이 마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 마음을 상한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오늘 성경은 상처받은 마음을 마음이 상한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포로된 자(신분 자유인이 아님), 갇힌 자(신분 죄인이 됨)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 가난한 자, 마음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그 당시 상황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자신의 사역에 직접 인용하였기 때문입니다.(눅4:17-21) 한번 찾아 보세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단순히 육신적인 포로에서 해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말씀입니다. 전인적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 보면 모든 것이 마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1절의 가난한 자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마태 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마음이 상한 자, 2절의 슬픈 자, 위로, 3절의 희락, 근심 등 모든 것이 마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 결국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희락이 없습니다. 슬픔이 가득합니다. 위로가 없습니다. 근심이 검은 구름으로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상처가 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상하였다는 말은 원어의 의미는 깨어졌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품을 떠나는 순간 마음이 땅에 떨어져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속에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습니다. 굶주림은 계속됩니다. 돈으로 명예로, 학식으로 권력으로 환락으로 아무리 채워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깨어진 마음 상처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하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까? 오늘 본문을 처럼 포로된 자 갇힌 자가 됩니다.
결국 포로된 자다 되어 버립니다. 신분이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삶의 환경이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바뀌는 것입니다. 사탄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더 의지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중독이 된다는 말입니다. 술 중독, 마약 중독, 일 중독, 쾌락 중독, 취미 중독 등이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중독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자신의 마음을 자신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갇히게 됩니다. 죄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갇힌 자는 포로된 자와 거의 비슷한 뜻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포로는 매여 있기는 하지만 외면적으로 보면 자유롭습니다. 죄인이 아닙니다. 세상에 사는 것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포로된 것입니다. 그러나 갇혀 있다는 뜻은 완전히 그 자유마저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꼼짝없이 갇혀 움직일 수도 없는 묶임의 극한 상태를 말합니다. 약간 풍유적인 해석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우리의 상한 마음은 결국 이렇게 전개되어 집니다. 처음에는 상한 마음은 결국 포로된 마음으로 포로된 마음은 갇힌 마음으로 진전됩니다.
2. 우리를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
우리의 육체가 다치면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조금 있으면 통증이 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받으면 의식이 발동합니다. 그것이 죄의식입니다. 수치를 느끼게 됩니다. 열등감이 생깁니다. 분노하게 합니다. 증오합니다. 미워하게 합니다. 좌절감이 생깁니다. 사람들을 기피합니다.
1) 다른 것을 이룸으로 보상받으려고 합니다.(방어기제)
자기의 약점이나 열등감을 들어내지 않고 위장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상(보상)-상처받은 자아나 열등감을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여 보충하려 합니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여 학업에 뛰어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얼굴이 미웁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값비산 복장이나 소지품으로 주의를 끌려고 합니다.
자기 또래에 끼지 못하는 어린이가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 틈에 끼어 대장 노릇을 합니다.
●합리화-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합니다.
잘못으로 시골로 쫓겨난 교사가 도시 공해보다 차라리 전원생활이 좋다고 말합니다.
성적이 나쁜 아이가 교사의 지도 방법이 나빠서 그렇다고 합니다.
●동일시-자기는 실현할 수 없는 적응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그 타인과 자기와를 동일시하여 대상적으로 만족을 느낍니다. 국회의원과 동석했음을 자랑합니다.
●성적이 나쁜 아이가 우리 아빠는 과장이고 너의 아빠는 계장이라고 우쭐 댑니다. 조상자랑을 합니다.
●투사-자기의 근심을 해소시키기 위해 그 원인을 남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선생님을 미워하는 학생이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를 싫어한다는 말 대신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승화-욕구가 억압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다른 욕구가 두드러집니다. 자녀 없는 여교사가 아동 교육에 전념합니다. 독신 남자가 예술 활동에 몰두합니다.
●반동형성-한 본능이 그 대립물에 의하여 의식면으로부터 감추어집니다. 전처 자식을 미워하는 계모가 그 미움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더 많은 사랑을 베푸는 행동을 합니다.

2) 어떤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여 모든 것을 잊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합니다.(도피 기제)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감추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감춥니다.
마치 가슴 속에 암덩어리를 지니고서도 x-ray가 투과하지 못하게 앞에 납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고립-자신이 없을 때 현실에서 피하려고 합니다.
혼자 있기, 집에 틀어 박혀 있기, 사업실패, 정치 실패할 때 그렇습니다.
●퇴행-어린 시절로 후퇴합니다.
술먹고 울면서 자기 하소연합니다. 아이들이 떠들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행동을 합니다.
●억압-부끄러운 일을 잊으려고 행동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백일몽-비현실적 공상을 합니다.
실연당한 남학생이 자기가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가정하고 그 아가씨가 간호해 주는 것을 그립니다. 부모에게 학대 받은 아이가 자기가 죽었다고 가장하고 부모가 울고 후회하는 장면을 공상함으로 빙그레 웃습니다.
●전위-부모에게 대한 적개심을 동생에게 전위시킵니다.

3) 자신에게 상처준 대상에게 복수를 합니다.-공격기제
●직접적인 공격기제-폭행, 싸움, 기물 파괴 등이 있습니다.
●간접적인 공격기제-욕설, 비난, 조소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상처가 치유될 것 같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입니다. 단지 감추어졌을 따름입니다. 종교 생활은 하지만 예수님께 자신의 상처를 내어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워의 포로, 원망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려고 합니다. 남을 것을 끌어들여 자신의 것인 양 과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있는 종으로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당겨 내가 능력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잘해주는 것 같지만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겸손하고 아주 열심히 봉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존심만 건드리면 불끈합니다. 진정한 희생이 아니라 희생을 통하여 남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희생을 통하여 상대방을 조정하고 상대의 마음을 사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을 택합니다. 그래야 편하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그 과거가 무엇이었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과거는 다 지나갔습니다.

상처 속에서 뒹굴던 [영적 치유]라는 책을 쓴 '케이 아더는 어느날,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 등.. 모든 저의 상처가 이제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겨우 치유되어, 마치 오랜 병상 생활을 했던 사람이 겨우 활동을 조금씩 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멋진 사역을 하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녀를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남편 혹은 아내의 불륜과 무관심 혹은 이혼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고 살 수도 있습니다.
결혼의 문제로 심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성과 교제 중에 깊은 상처를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불안한 장래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해해 질 수 있습니다. 부모의 폭력으로 부모의 외도로, 부모의 중독으로 가슴에 상처를 갖고 살 수도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신체적인 약점으로 인해,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로 인해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을 정죄하며 우울하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늘 불안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고 상처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부도, 파산, 등 물질적인 큰 손해로 상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로 마음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죄의 사슬, 질병의 사슬, 저주의 사슬에 묶여 사탄의 포로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내가 받은 이 상처는 그 누구도 고쳐줄 수 없다고,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3. 진정 우리의 상한 인생, 상한 마음의 치유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마음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음 상하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자유로운 자가 아닙니다. 상하고 찧긴 영혼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도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상처를 주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우상장사의 아들입니다. 그것 숨기지 않습니다. 그 상처 드러내 놓습니다. 모세 살인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서 그 기사를 빼지 않습니다. 살인자라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간음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은 상처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상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를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주님이 치유시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시 41:3)"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55:22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다 감싸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치유자가 되십니다. 참된 해방을 주십니다. 참 자유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우리 주님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습니까?
1)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가난한 자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핍절한 자 모두를 포함합니다. 마5:3에는 마음의 가난함을 눅6:20 물질적인 가난함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복음을 말합니다.(삼하4:10; 사40:9; 41:27; 52:7)
2) 우리 예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 주십니다.
이 마음을 고치는 자 예수(렘33:6; 마11:28,29)
독자를 잃고 상심해 있는 나인성 과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외동딸을 잃고 울고있던 야이로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상하고 찢겨진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오라비를 잃고 울부짖고 있던 마르다, 마리아 자매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3) 우리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죄와 사단의 소유물이 된 자(눅4:18)들에게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갈등과 평안이 없는 자들에게 참 평안을 주십니다.
4)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십니다.
5) 슬픔과 근심에 빠진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혜입니다. 희년입니다. 모든 노예로부터 풀려나는 날이고 잃었던 땅을 되찾는 날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겐 신원의 날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은혜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고통의 날이 다가 옵니다. 그날 우리는 위로를 받고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회복과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 슬픈자를 위로하시며 화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한다고 하셨습니다.
(3)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찬송의 옷이란 유대의 감사절같은 축제 때 입는 아름다운 예복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심으로 더 이상 슬퍼하고 근심하지 않도록 기뻐하며 찬송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재는 슬픔을 상징합니다. 찬송의 옷은 구원에 대한 기쁨의 노래입니다. 화관은 고대 여자들이 머리를 치장하기 위해 썼던 아름답고 수려한 관(사3:20)으로 기쁨을 상징합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자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으로 인한 기쁨(7)을 주십니다. 장래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롬5:2)을 주십니다(요14:2 고후 5:1) 하나님 한 분으로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10)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합 3:17-19)
이제 우리는 상처로 울지 맙시다. 주님을 바라보고 기뻐하여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근심하지 맙시다. 주님 바라보고 즐거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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