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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감동으로 사는 인생

이사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263 추천 수 0 2009.11.07 16: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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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53:1-6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남편에게 늘 구타를 당하면서 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처음 결혼하여서는 남편이 관심을 주었지만 조금 지나자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하였습니다. 구타는 날로 심해졌습니다. 목사님에게 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말을 들은 목사님은 '별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별거를 하였습니다. 아들이 둘이 있는데 두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남편은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옛날의 상처를 생각하여 매몰차게 거절하였습니다.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가끔 '자기가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제가 당신을 유산 을 상속받지요.'라고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마침내 남편은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불결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상처만 치유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랜 병상생활을 했던 사람이 겨우 활동을 조금씩 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멋진 사역을 하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케이 아더'입니다.
그녀는 이런 책을 썼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상처를 치유하신다'(한글번역판 '영적치유')
상처에서 피가 나지 않도록, 곪지 않도록 꿰매어서 이제는 상처가 아물어 버린 그런 정도의 치유가 아니라 그 상처에서 도리어 향기가 나도록 만든 그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엄청난 상처를 가진 이 여인을 이렇게 치유했까요? 무엇이 이 여인을 상처 투성이인 절망적 과거와는 전혀 다른 희망찬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감동입니다.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은 십자가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힘없은 십자가가 아니라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수치의 십자가가 아니라 치유의 십자가입니다. 정죄의 십자가가 아니라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십자가로 완전히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1) 우리들의 모든 영적 상처를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치유하였습니다(5).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녀에게 진정 문제가 된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성격차이였겠습니까? 가치관 문제였겠습니까? 진정 문제되는 것은 죄의 문제였습니다. 가슴 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죄입니다. 인생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진정한 자유와 참다운 행복을 만끽할 수 없습니다. 참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허물과 죄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사망입니다. 롬6:23 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죽음이란 곧 단절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단절입니다. 영과 육의 단절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엡2:1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담당시켰습니다(6). 죽음의 노예가 되어 버린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우리를 죄와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찔렸습니다. 상하였습니다. 징계를 받았습니다. 채찍에 맞았습니다(5).

2)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육신적 모든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4).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기서 질고란 약한 상태, 병듦, 괴로움 등을 말합니다. 우리의 질병입니다. 지고라는 말은 대신해서 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슬픔은 심적 육적 고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 지셨으며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짊어지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앞에서 우리의 육신적인 질병과 그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치유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질병을 치유하였습니다. 질병의 노예가 된 인간을 해방시켰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주님이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3)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을 우리의 정신적인 모든 상처도 치유하였습니다(3).
3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모든 정신적인 상처를 십자가에서 다 받았습니다. 그는 만왕의 왕으로 십자가에서 피조물들에게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조차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도 조롱합니다. 지나가던 나그네들도 조롱합니다. 심지어는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조롱합니다. 이 얼마나 수치이며 수모입니까? 그 모든 수치를 주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다 당하였습니다(7).

2. 왜 이런 고통과 수치, 수모를 당하였습니까?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했습니까?(5)
1)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인한 대리적 고난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었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는데 매맞고 고난의 쓴 잔을 마신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2)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내 죄값은 사망인데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정죄를 받으신 속죄 양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값을 속량을받은 것입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막 10:45).
3) 우리를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육적인 상처, 정서적인 상처, 영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누리고,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문법적으로 완료형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의 숙제가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상황이 끝나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기쁨 만족을 주시기 위해 그 끔찍한 고난을 대신 지시고 대신 죄의 값을 속죄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반역자, 노예, 악질적인 죄를 지은 자에게 가해지는 극형입니다. 십자가에 달리면 일주일을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악담하고 저주합니다. 그 말을 듣기 싫어서 혀를 깨물어 죽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벌레, 파리 떼가 달려듭니다. 그래서 질식해서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빨리 죽지도 않고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는 죽음이 가장 저주스러운 십자가 죽음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죽음을 요구하셨을까요? 십자가는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다 지옥에 가서 인간이 당하게 될 고난을 상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를 십자가를 통하여 단번에 완성하였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3. 우리는 십자가의 감동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있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 정신을 본받아 희생정신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 사건을 십자가의 감동을 내 감동으로 알고 일평생 사는 것입니다. 1)십자가 상에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단번에 치유하신 그 치유의 은혜를 누리를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도 영화관에서만 감동을 받고 생활과는 전혀 무관하다면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영화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에게 최대의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다양합니다. 그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알고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사건이 나와 관계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건을 일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그 감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십자가의 감동으로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동을 누리는 삶의 첫걸음이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믿지 않고는 십자가의 감동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느날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8)"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기적을 행하라.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라. 자녀를 잘 가르치라. 돈을 많이 벌라. 큰 교회를 지어라" 이런 식을 말씀을 하였을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9)"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 복음 20:31을 찾아 보십시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십자가 사건을 내 사건으로 믿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생활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때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임을 믿을 때 십자가의 감동은 삶의 구석 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성도 여러분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음을 믿습니까? 십자가의 사건으로 여러분의 육신적, 정신적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믿습니까? 아직도 영적인 상처를 부둥켜 안고 몸부림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어떤 허물이라고 괜찮습니다. 어떤 죄악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기만 한다면, 그 주님의 옷가에 손을 대기만 한다면, 옷가에 손을 댈 힘조차 없는 분은 그냥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그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싸매 주시고 어루만져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 혹은 아내의 불륜과 무관심 혹은 이혼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분도 결혼의 문제로 심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이성과 교제중에 깊은 상처를 체험한 젊은이도 불안한 장래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해하고 있는 분도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도 부도, 파산, 그리고 물질적인 큰 손해를 보고 주저 앉아 있는 분도 인간관계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분도 내가 받은 이 상처는 그 누구도 고쳐줄 수 없다고, 포기해버리신 분도 내 자신 혹은 가족식구들 중에 있는 질병 때문에 지쳐버린 분도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심한 절망감속에 있는 분도 심한 죄책감, 정죄감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분도 불안증, 우울증, 조울증 때문에 남몰래 고민하고 있는 분도 강박관념, 정신이상, 알콜중독, 고치지 못하는 습관으로 고민하는 분들도 십자가 앞에 나오십시오. 겸손히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랍보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이런 문제를 안고 이미 십자가에 못밖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호메트는 나이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도 7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나이 80세에 음식을 잘못 먹고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 가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과 저의 해결할 수 없는 인생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이 아닙니다. 메시야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고 구원주이십니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연한 순같고, 고운 모양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주시라는 것입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C . S 에스 루이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그의 일생을 두고 우리는 그를 위대한 도덕군자로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해야 한다. 적당한 도덕군자라는 말은 예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가 말한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아니면 반대로 미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을 그의 말씀대로 다 믿든지 아니면 전부 부정해야지 중간노선이라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단지 성인, 도덕군자, 기독교의 창시자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 8:4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십자가 사건을 내 사건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회를 담임하는 후안 카를로스목사는 심한 편두통 때문에 강단에서 설교를 하다가 기절해서 병원으로 실려가곤 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의사도 찾아가 보고 좋은 약도 먹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골로새서 2장 13절을 읽다가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이었습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너 때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네가 네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자세히 너를 알고 있는 내가 너를 용서했다. 그런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너는 누구냐? 나보다 더 거룩한 자냐?" 자신의 불완전성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늘 불만족스럽게 생각하였던 그는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자신의 행위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행위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보시는 예수님의 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놀라운 평안과 신비스러운 행복감에 젖게 되었습니다. 3주일후, 그의 편두통은 싹 사라졌습니다.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후안카를로스 목사는 한번도 편두통으로 고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 십자가의 감동으로 살아갑시다.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았다」,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졌다」, 「그는 징벌을 받았다」고 하였고, 5절에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그가 징계를 받았다」,「그가 책징 맞았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했다」, 「…그 입을 열지 아니했다」고 하였고, 8절에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게 하였다」, 11절에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았다」,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을 대신한 수난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의 죄인, 배신자, 배은자, 배반자, 배역자들의 길을 가버린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하는 수난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세기적인 음악가였던 헨델(Hendel)은 저 유명한 곡 '메시야'를 작곡할 때, 바로 이 이사야서 53장 부분을 작곡하다가 그만 붓을 멈추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식사시간도 잊은 채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식사시간을 알려 오는 하인에게 "나는 지금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고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작곡한 헨델의 곡 '메시야'가 지금도 전 세계의 영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이 군도에 가게 되면 모로카이 섬이 있다고 합니다. 문둥병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 다미에 신부가 가서 선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미에 신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어야 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얼굴이 상하고 몸이 썩어 들어가는 문둥병자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증거해도 그들의 마음에는 감동이 없었습니다. 다미에 신부에게 그들의 마음을 열지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미에 신부는 하나님 앞에 자신도 문둥병이 걸리게 해달라고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결과 다미에 신부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자신의 몸에서도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미에 신부는 "문둥병이 걸린 우리들,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됩시다" 라고 설교하기 시작하자 문둥병자들은 예수를 영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십자가의 감동으로 살아갑시다. 십자가의 감동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활기가 있고 능력이 넘칠 것입니다.


십자가의 감동으로 사는 인생/이사야 53: 1-6/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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