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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62: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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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성도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이사야 62장 6-12절)
요새 시대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급변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면 살 길은 많습니다. 요새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힘입니다. 결국 지식과 정보를 가진 자가 이깁니다. 나라도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진 나라가 결국 이깁니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촌에서는 엄청난 문명의 이기들이 개발되었고 지식과 정보의 양도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이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좋게 보면 더 편해지고 더 삶의 질이 높아지겠지만 나쁘게 보면 인간성이 상실되면서 사회 혼란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사람의 수명도 크게 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성입니다. 사실상 인류의 운명은 지식이 아닌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발전해도 한 사람이 잘못되면 그 사회는 파멸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어려워도 인물이 한 명만 있으면 다시 희망이 생깁니다. 그처럼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은 정말 중요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한 명이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모세를 지켰기에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지 마십시오. 사람도 믿지 마십시오. 불완전한 사람을 믿으면 불안전도 커집니다. 돈도 믿지 마십시오. 돈 때문에 흥한 사람보다 망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염려와 낙심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믿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새 귀한 것은 버리고 헛된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버리고, 말씀과 기도를 버리고 그 대신에 변하는 것들과 변하는 사람을 의지하려고 열심히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의 손을 잡아도 하나님의 손만 꼭 잡고 나가는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조선시대에 세종대왕 한 사람 때문에 나라에 얼마나 많은 인재가 등장했고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까? 그때 바른 정치혁명을 일으킨 황희 정승이 있었고, 과학혁명을 일으킨 장영실이 있었고, 문화혁명을 일으킨 음악천재 박연이 있었고, 군사적으로는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최대의 문자인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반면에 연산군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얼마나 무너졌습니까? 연산군은 19살에 왕이 되어 날마다 기생들과 놀아났습니다. 그때 기생을 ‘흥청’이라 했고 흥청이 들어오면 망한다고 해서 ‘흥청망청’이란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또한 연산군은 모친의 보복을 위해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부친의 후궁들인 엄귀인과 정귀인을 직접 죽였습니다. 결국 반정이 일어나 왕좌에서 쫓겨나고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31살에 죽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마음에 생긴 미움과 질투가 세상을 그렇게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왜 과거 왕들은 수명이 짧았습니까? 중국 왕의 평균 수명은 33세이고 우리나라 왕의 평균 수명은 38세였습니다. 그렇게 단명한 이유는 여자를 너무 많이 거느렸기 때문입니다. 중국 왕은 여자가 보통 3000명 정도 있었고 진시황은 일만 명까지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어떻게 오래 살겠으며 궁정 안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기심 때문에 나라가 풍비박산이 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에 시기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 119편 133절에 나오는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란 말씀처럼 시기심이 자신을 주관하게 하지는 마십시오. 시기심을 이기지 못하면 시기 대상보다 자신이 먼저 망합니다. 그처럼 나쁜 마음이 자신 안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미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미움이 자신을 주관하지는 못하게 하십시오.
욕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잘생긴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그 끌리는 마음이 자신을 주관하지는 못하게 하십시오. 그처럼 지신을 절제할 줄 아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라가 어려워도 다윗 같이 리더 한 사람만 있으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른 믿음을 가진 한 사람만 있으면 가정도 회복되고 교회도 회복되고 삶도 회복됩니다. 그런 회복의 은혜를 추구하십시오.
< 회복의 은혜를 입는 길 >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면서 그 회복의 때를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묘사하는 본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 부서지고 깨진 것이 회복되는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약속을 내세우십시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며 침묵할 줄 알아야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쉬지 않고 기억하시게 해야 합니다. 기도응답의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꼭 이뤄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자기 문제만 말씀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경제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자녀 문제로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가 그런 문제와 고통 중에 있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를 계속 아뢰면 믿음은 약해지고 자기 연민에 빠져 낙심합니다. 그러므로 문제(problem)만 아뢰지 말고 약속(promise)을 아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켜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당하기 힘든 대적이 오는 상황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 대적이 옵니다. 제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억울합니다.”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은 대적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대적을 이겨내게 하소서!” 같은 기도지만 하나님이 이미 아시는 문제를 아뢰는 기도보다는 하나님이 이미 약속한 축복을 아뢰는 기도를 하십시오.
재정적으로 힘들 때도 “하나님! 경제가 어렵습니다. 물가는 높아지고 소득은 제자리입니다. 아이들 학원비도 못 내고 있고 외식도 몇 달 째 못했습니다.”라고 계속 문제만 아뢰지 말고 이렇게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은 신실한 자녀의 필요를 다 채워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될 줄 믿습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하나님! 제 간이 50%밖에 기능하지 않아서 간의 해독능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위장도 안 좋습니다.”라고 문제만 아뢰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은 치유를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처럼 문제를 장황하게 나열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억나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기억력이 없어서 약속을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는다는 표시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뤄주십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람의 맹세는 언제나 깨질 수 있기에 사실상 맹세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은 성도의 회복을 맹세하며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굳게 믿고 ‘문제를 아뢰는 기도’를 ‘약속을 아뢰는 기도’로 바꾸면 우울한 패배자가 아닌 활기찬 승리자의 모습이 생기고 기도응답의 가능성도 현저하게 커집니다.
2. 끈질기게 구하십시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어 하나님이 찬송을 받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라고 합니다. 기도할 때 “내가 이렇게 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쉬지도 못하시고 얼마나 짜증나실까? 하나님도 쉬셔야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십시오. 누군가 집요하게 요구하면 사람은 짜증이 나지만 하나님은 짜증내지 않고 결국 들어주십니다.
어느 날, 한 어린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 그때 아빠가 가볍게 말했습니다. “그래! 조만간 한 번 가자.”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약속했지요?” 아빠도 깊은 생각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약속했다.” 그 다음부터 그 아이는 그 약속을 내세워 매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빠! 약속했잖아요.”라고 하면서 놀이동산을 가자고 졸랐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서 바쁜 중에도 아빠가 시간을 내서 놀이동산에 갔습니다.
인간 부모도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더욱 그 말씀에 책임을 지시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런 말을 체질화시키십시오.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대로 이뤄주실 줄 믿습니다.”
사업이 어려우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은 꿔주는 자가 되고 꾸는 자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뤄주소서!”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을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뤄주소서!” 그처럼 기도할 때 한 번 아뢰고 기도를 끝내지 말고 “하나님! 그렇게 약속하셨지요?”라고 하면서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날 때 우울한 기분으로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십시오. 샤워할 때나 운전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십시오. 사무실이나 가게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연민에 빠진 불쌍한 구걸적인 기도만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하셨지요?”라고 하면서 약속을 붙잡고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극적인 반전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3. 축복을 준비하십시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이 말씀은 백성들이 회복되어 돌아올 때를 대비해 길을 닦으라는 말씀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했어도 그 축복이 오도록 길을 닦고, 장벽을 무너뜨리고, 만민을 위한 좋은 축복의 모델이 되도록 준비하되 특별히 2가지를 준비하십시오.
1) 지식
어떤 분들은 믿고 아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아멘!” 하면 안 됩니다. 참된 지식은 신앙에 방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 알아서 그렇지 잘 알면 지식을 통해 더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정보 사회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더욱 공부하고 준비해서 유능한 지성인이 되십시오. 옛날에는 목사가 믿고 “할렐루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공부도 많이 해야 책임적인 좋은 리더가 됩니다.
어떤 전도사는 시험 때도 공부하지 않고 늘 기도만 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니까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또 기도했습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자기가 공부해서 써야 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겠습니까? 안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시험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교수님! 저는 몰라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지식이 다가 아닌 줄 믿습니다.” 몰라도 겸손하면 봐주겠는데 지식은 다가 아니라고 교만까지 떠니까 교수님이 “가만히 두면 나중에 교주가 나오겠다.” 싶어서 그를 낙제시켜 버렸습니다.
믿음은 멋대로 놀고 적당히 살면서 축복받는 도구가 아닙니다. 신약에서 가장 큰 일을 한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당대 석학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 학문을 익혔기에 엄청난 문서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큰 지도자인 모세도 40년 동안 바로의 궁에서 다양한 학식을 쌓았기에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못한 것’과 ‘공부를 안 한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공부를 못했어도 쓰임은 받지만 공부를 안 하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공부해야 할 때 공부하는 책임적인 사람을 통해 큰일을 하십니다.
성도가 공부를 배척하고 지성을 무시함으로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께 결코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도 책임감이 없는 상태에서 게을러 뒤쳐지지는 마십시오. 왜 모든 부모는 사위나 며느리가 학력이 좋기를 원합니까? 학력에 책임감, 땀, 인내심, 인격이 녹아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땀과 지식을 우습게 보는 우상문화와 기복주의에 넘어가지 말고 늘 최고의 믿음과 함께 최고의 지성도 꿈꾸십시오. 그래서 자기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가 되십시오. 그처럼 열심히 준비하면 회복의 때는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2) 사명감
시대를 이끌고 변화의 동인이 되는 사람은 대개 사명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건져내고 가정과 교회를 살리는 사람도 역시 사명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아무 데나 가서 마음대로 살라고 하지 않고 주어진 할 일이 분명히 있기에 이 시대에 이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 사명감을 인식하며 살 때 삶이 멋지고 아름답고 건강하고 힘 있게 됩니다. 또한 그때 제일 존경 받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잊고 이익과 수입을 좇아 어떤 일을 찾지만 사실상 사명을 가지고 자기 일과 자기 길을 찾아야 됩니다. 잘 먹고 잘 살려는 목적으로만 일하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그저 자신의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겠다고 각오하는 사람이 진짜 잘사는 사람입니다.
요새 높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높은 곳에 오르면 그곳에서 더 영광을 누리고 더 있을 생각만 하지 그곳으로 보내주신 사명을 잘 감당한 후에 깨끗하게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섰을 때 제일 중요한 자세는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보니까 그 자리가 좋아서 그 자리를 오래 차지하려고 집착하다 보니까 결국은 다 잃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래 있을 생각을 하면 대개 사명을 잃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리는 어느 자리든지 오래 있을 자리는 없습니다. 그저 사명 감당하다가 적절한 때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으로 가겠다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과 은사를 가지고 사명을 따라 살면 길은 열리고 반드시 크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4. 더 많이 심으십시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때가 되면 잘한 일에 대해서는 상급을 주시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보응을 해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된 삶을 원하면 심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은 ‘공평한 하나님’이기에 축복의 기회는 동일하게 주시지만 ‘평등한 하나님’은 아니기에 모두를 똑같이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펼쳐가는 삶에 따라서 주어지는 보상과 거두는 열매도 달라집니다. 또한 거두는 과정과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당대의 축복으로 거두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자손의 축복으로 거두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내적인 평화로 거두게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세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죽어 마땅한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공평하심의 증거입니다. 또한 살아있다면 넘치는 희망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받는 일만 관심을 두지 말고 심는 일에 더 관심을 두십시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정의로운 하나님’이지만 열심히 심으면 심은 것 이상을 보너스로 주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후반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며 주시리라!” 그런데 그 말씀 전에 전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말씀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먼저 아름다운 마음과 믿음을 보여드리고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구하는 모습을 염치없게 보시지 않고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염려’도 없어야 하지만 가끔 ‘염치’도 없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보면 염치없는 기도의 축복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가끔 기도한 후에 “정말 기도대로 될까?”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심이 응답을 막습니다. 의심은 하나님에 대한 큰 모욕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 성도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
물론 굳건한 믿음을 가져도 문제가 바로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란 말을 앞세워 기도하면 정말 그 일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입에서 이런 탄성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이루어주셨군요. 정말 현실로 만드셨군요. 정말 회복시켜주시고 갚아주셨군요. 하나님! 정말로 하나님 말씀은 사실이었군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자 백성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동족들이 비참하게 죽고 굴비처럼 엮여 이방나라로 끌려가고 의식주도 제대로 없는 것도 고통이었지만 무엇보다 큰 고통은 하나님의 약속이 서린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믿을 수 없는 현실로 잠시 넋을 잃고 울부짖었지만 그들은 곧 약속을 생각해내고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생각'에 있습니다. 한자로 ‘생각 사(思)’ 자는 ‘밭 전(田)’ 자와 ‘마음 심(心)’ 자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생각은 ‘마음의 밭’이란 뜻입니다. 생각이 커져야 마음도 커지고 축복도 커집니다. 결국 고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욕망을 따라 살아서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하고 회개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의 신비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바른 생각도 생기지 않고 순종도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가는 ‘숫돌 고난’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살면서 가끔 죄를 짓고 고난도 당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통해 무엇을 배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제자리를 찾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주어집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고 적절한 때에 그 시련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주시며 성도를 점점 인물로 빚어 가십니다(고전 10:13).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고난은 자기 자리와 사명을 찾으라는 싸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기 자리에 있을 때 실현됩니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면 방황은 계속됩니다. 이제 빨리 자기 자리를 찾고 그 자리에서 삶 자체를 감격하며 열심히 살면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먼저 자신부터 좋아집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멀리서 찾지 마십시오. 깊이 생각하면 삶의 매 순간이 행복의 순간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느슨해졌던 정신이 거룩한 서리를 맞아 맑게 깨어나고 인물이 되는 꿈을 새롭게 품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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