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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6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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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영화 목사 |
참고 : | http://tgchurch.hompee.com/ |
이사야 60 : 1 - 5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끼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비행기가 가장 위험할 때가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파일럿은 이륙할 때와 착륙할 에 가장 긴장하며 점검에 또 점검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이륙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내부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거나 혹은 경고등이 켜지면 비행기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절대 이륙하지 않고 다시 활주로 밖을 나와 비행을 취소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비행기에 타고 있어도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지 못한다면 결코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활주로를 힘차게 날아 올라가야 할 비행기가 오르지 못하고 도중에 멈추거나 일정한 고도에 오르지 못한다면 타고 있는 승객들은 참으로 답답할 노릇일 것입니다.
그런데 비행기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서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힘차게 날아 비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신앙생활이 늘 땅에서만 맴도는 비행기와 같은 안타까운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오늘 하나님께서는 세가지의 복된 명령을 내리십니다. 원하기는 아직까지 비상하지 못하고 늘 제자리만을 맴돌고 있는 신앙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오늘 하나님의 세가지의 명령을 통해 은혜와 도전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하나님의 우리에게 하시는 첫째 명령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여기서 ‘일어나라’ 는 명령은 크게 두가지의 함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한가지는 상황적인 면에서 ‘절망과 위기’ 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역사 가운데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멸망과 두려운 포로생활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주신 명령이 바로 ‘일어나라’ 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입니까? 패배와 좌절과 너희들의 그 위기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일어나라’ 는 말씀을 자주 사용하신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장례행렬을 멈추고 그 청년의 관을 향하여 명령을 내리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은지 나흘이 되어 무덤에 장사되었던 나사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리고 그 명령 앞에 나사로는 일어나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도 “소녀야 일어나라” 고 명하실 때에 죽은 소녀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명령을 하자 그는 걷고 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람의 명령은 제한적이지만 창조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앞에 어떠한 것도 심지어 죽음마저도 굴복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 이름으로 “일어나라” 명하셨을 때에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병자가 일어났습니다. 안 풀리던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 명령을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듣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어떤 위기와 절망 가운데 있는지 도저히 할 수 없는, 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어나라’ 는 그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자는 반드시 어떠한 자리에서도 일어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번째로 ‘일어나라’ 는 것은 ‘지금 당장 일어나라’ 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은 항상 현재형이며 계속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일어나라는 것은 바로 ‘지금 일어나라’ 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일어나려고 하다가 안된다고 주저앉지 말고 일어설 때까지 계속 반복하여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음성을 들을 때에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막연하게 다음이라고 다짐만 하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일어나야합니다.
일어나는 것은 행동의 첫 단계입니다. 일어나지 않고는 결코 행동할 수 없습니다. 주저앉아서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일어나야만 다음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분 특별히 영적인 면에서 먼저 일어나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큰 뜻과 비전을 품는 것은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번에 우리 함께하는교회에서 인도 현지인 순일의 학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된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함께하는교회가 꿈꾸는 비전 가운데 하나가 현지 원주민 선교사 12명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현지인들을 가르쳐 그들을 세우는 것만큼 가장 효과적인 선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함께하는교회가 지금의 형편에서 이와 같은 일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 우리교회도 완전하게 자립이 되지 않은 마이너스 재정에서 이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찌 되었든 이제 첫 시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일에 우리 여선교회가 전적으로 감당하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선교회에서 이런저런 사업과 아나바다를 하면서 알뜰히 모은 선교비 전액을 정말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게 되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 형편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이와 같은 일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어나려고 하니 가능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꿈을 크게 가지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순종하며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 분명 놀라운 일들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명령은 ‘빛을 발하라’ 는 것입니다. 여기서 ‘빛을 발하라’ 는 명령은 일어나라는 명령과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일어나라는 것은 빛을 발하기 위해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주저앉아서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누워서는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라’ 는 명령은 다시말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을 발하면 ‘내가 여기 서 있구나,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서 길을 가다가 그만 맨홀에 빠졌습니다. 그 상태로 정신을 잃었는데 맨홀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관리하는 사람이 그만 뚜껑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한참만에 술에서 깨어나 보니 도무지 캄캄해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이제는 그냥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 하였는데 다행히 9일만에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빛이 없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빛에는 발광체가 있고 반사체가 있습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빛 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십니다.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는 스스로 빛을 발하시는 분으로 그 예수의 빛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는 반사체로서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태양은 발광체이지만 달은 반사체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빛을 발하라’ 는 것은 내가 스스로 내 빛을 발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비취도록 네 자신을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비추어 질 때에 그 가치와 존재와 삶의 목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 어떤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사업에도 성공하고 꽤나 잘나가는 사람으로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는데 그만 친구의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허름한 집한 채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허무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가 그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고 이들 부부가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외면했던 새벽기도를 나가에 되고 자기들 신앙에 철야기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줄 알았는데 철야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데 자꾸 이런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하나님 우리를 한 번 불쌍히 여겨 주셔서 내가 기필코 일어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한 번 볼 수 있게 하옵소서.”
나를 한 번 일으켜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가 반복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 하는 가운데 무엇인가 하기는 해야겠다 싶어 자기가 살고 있는 집 한 모퉁이를 골목쪽으로 헐어서 한평 남짓한 공간에 인형 가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나 친지들 심지어 교인들 조차도 거기에다가 무슨 인형가게를 하느냐고 그래서 무슨 장사가 될 수 있겠느냐며 한마디씩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안될 것 같았던 인형가게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예전에 배추머리 인형이 유행하였던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바로 그 때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형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 실적 때문에 총판권을 얻어서 거기서 모은 돈과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자리에 가게를 확장하게 되었고 마침내 몇 년 후에는 재기에 완전히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이제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배추머리 인형이 유행한 것은 저 집사님의 기도 덕분이다’ 라고 할만큼 이 집사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보일 뿐만 아니라 신앙도 얻고 잃어버린 재물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후로도 이 집사님의 삶의 현장에서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집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인생에서 떨어지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야 하고 빛을 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지만 한 번 불쌍히 여겨 주셔서 내가 기필코 일어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한 번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이러한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님의 능력을 빛으로 나타내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날마다 확인하고 내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으로 사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하십시오. 내가 주님의 은혜 안에 사는 감사의 모습을 빛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만 분명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는 것입니다. 4-5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일어나 빛을 발한 결과를 보라는 것입니다. 일어났습니까? 빛을 발했습니까? 이제는 그 결과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 4-5절에는 중요한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데 ‘오느니라, 오겠고, 올 것이라, 돌아오며, 옴이라’ 바로 ‘온다’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주신 축복을 보라는 것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한 결과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은혜는 내가 받은 은혜를 내가 먼저 보아야 남들도 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복을 내가 보아야 남들도 내가 받은 복을 바로 보게 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사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축복의 세계를 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유원지 근처에서 식당을 하던 어떤 집사님이 주일에도 영업을 하다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렇게 계속 주일날 장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과감하게 주일날 장사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사실 유원지 근처의 식당은 주일이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을 닫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전에 잃어버리고 있던 참 기쁨이 회복되어 전에 교회에서 봉사하지 못하던 몫까지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평일날 손님들이 더 많아져서 결국은 주일날 문을 닫음으로 영적인 기쁨도 회복하고 물질도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그렇게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남아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에 시간이 남는다고 그냥 남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겠다 싶어 남는 시간에 가게를 열수는 없고 대신 ‘내가 이것을 해야겠구나’ 했던 것이 바로 전도였습니다. 이 집사님은 ‘그렇다! 내가 이 남는 시간에 전도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교회 전도지를 가지고 매 주일 오후에는 유원지 앞에서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하면서 외지에서 놀러온 사람에게까지 무조건 전도지를 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을 통해서 전도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도지 한 장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라고 한 말이 뭐가 그리 큰 일이 일어날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결심하고 전하였더니 이분을 통해 유원지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전도지를 받고 교회를 나가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며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의 사면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 세가지의 명령을 온전히 지켜 행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 8. 25. 주일예배말씀 이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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