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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4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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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2013.5.26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그래도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사야43:1-7
백일성씨가 지은 <땡큐, 패밀리>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다가 이분이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답니다. 아들 이름이 형우인데 "형우야, 손톱깎이 좀 찾아 와라."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옆에 앉아 있는 딸아이에게 미루었답니다. "송이야, 아빠 손톱깎이 좀 갖다 드려." 그러자 딸아이는 안방에 있는 아내에게 소리쳤답니다. "엄마! 아빠가 손톱깎이 좀 달래." 이 말을 안방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손톱깎이 안방에 있으니까 가져가라 그래!" 이분은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답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을 째려보며 말합니다. "아들…… 니 많이 컸다?" 그러자 아들이 말대꾸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뭐, 덕분에…….”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써 놓은 것입니다. 이 정도 가정은 양호한 가정이지요. 모 인기 가수가 결혼을 앞두고 지금까지 번 돈을 동생이 다 탕진했다고 하니까 어머니와 동생이 반발하여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 기사화되었습니다. 딸이 어머니가 외도를 한다고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하루에 333쌍, 한 시간에 14쌍이 이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황혼이혼'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혼인·이혼 통계'에 의하면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은 3만 200건으로 전년(2만 8300건)보다 6.8% 늘었고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은 전년보다 8.8% 늘어난 8600건으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답니다. 현재 부부 10쌍 중 1쌍이 별거 중이고, 별거 가구의 비중은 매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별거 공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안전망인 가정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순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간의 인격적 성장과 성숙이 잘 이루어지며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의 욕구가 적절하게 충족되는 건강한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온전하고 균형 잡힌 가족들이 되어야 하는데 무엇엔가 중독이 되어지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기 삶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감정이 폭발하고 서로 실망하는 역기능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 못하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어떻게 대해 주십니까?
1)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만드시고 구속해 주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말에는 1절을 번역할 때 “아타”를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영어로는 “but now”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42장을 받아서 전환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존귀하게 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범죄하여 결국 바벨론을 통해 징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42장 25절을 읽어 보십시오. 우매한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남 유다 백성들의 완악함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족으로 말한다면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창조하신 하나님,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다'는 히브리어로 '바라'(bara)는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것이고 '조성하다'는 '야짜르'(yatsar)는 토기장이가 흙을 빚어서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했어도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망가지고 부서진 가정 아름답게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넘어지고 쓰러진 기업, 상처 나고 피 흘리는 마음 우리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아무리 콩가루 같은 가정일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함께 해 주시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가정으로 행복한 가정으로 재창조 될 수가 있습니다. 망가진 아담의 가정 영원히 버리지 않고 새롭게 빚어 주셨습니다. 욕심으로 망가진 롯의 가정 불구덩이에서 건져 새롭게 빚어 주었습니다. 거짓으로 아내를 속인 아브라함의 가정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빚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술로 망가진 노아의 가정 버리지 않고 새롭게 빚어 주었습니다. 간음으로 망가진 다윗의 가정 버리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폭력으로 망가진 모세의 가정 그대로 망하지 않고 민족 지도자로 새롭게 일어서게 했습니다. 가난으로 망가진 사렙다 과부의 가정 망하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12해 혈루증으로 망가진 여인 예수님께서 새롭게 일으켜 주었습니다. 무엇이 두려움의 대상입니까? 우리 가족 식구 중에 누가 문제입니까? 자꾸 문제만 보며 늪으로 빠져들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재창조해 주십니다. 우리 가족 식구는 사탄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족들을 볼 때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 식구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품은 대량생산을 한 것입니다.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은 유일한 것이고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 구성원들이 다양한 기질과 성격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고 있지만 다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우리가 가족들을 볼 때 아무리 부족한 점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뭐라고 말씀합니까?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값을 지불하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성취하여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가 귀국독창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팬들이 극장에 몰려왔습니다. 공연이 시작될 시간인데 사회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와 말했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다리시는 성악가가 비행기의 연착으로 도착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촉망받는 신인가수의 노래를 먼저 듣도록 하겠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불만이 가득한 청중은 신인가수의 노래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박수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청중 사이에 앉은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빠, 정말 최고였어요!" 신인 가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조명에 반짝였습니다. 얼마 있자 청중들의 굳은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하나둘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는 오랫동안 홀을 가득 매웠습니다. 그 가수가 바로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였습니다. 아들이 외친 격려 한 마디가 그를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한 소년이 작곡가인 아버지 곁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답니다. 아버지는 작곡을 하다가 상상력을 잃고 긴 한숨을 토해냈답니다. 그때 소년이 "아빠, 내가 한번 해볼게요."라고 말했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작곡을 맡겼고 제멋대로 적어놓은 악보를 보고 격려해주었답니다. "이것 참 대단한 작품인걸." 아버지의 격려에 힘입어 소년은 세계적인 작곡가가 됐었답니다. 그가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족을 대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네가 자랑스럽구나!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엄마 아빠는 널 믿어. 힘내."라고 소망을 준다면 자녀의 재능은 춤을 출 것입니다. 남편에게 "오늘도 수고했어요. 당신이 최고에요. 내가 결혼 하나는 잘 했지요. 다 당신 덕분이어요."라고 용기 준다면 남편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에게 "난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최고 예뻐요. 당신 없었으면 난 아무것도 못했을 거요."라고 격려해 준다면 아내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 가족이 진정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작품으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만들어 주십니다. 최고의 토기장이이신 우리 하나님의 손에 의해 새롭고 멋지고 아름답게 빚어질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확히 이름을 지명하여 우리를 부르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양육하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 가족과 함께하여 보호해 주심으로 사랑하십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물 가운데 지날 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몰려오고 백성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가운데에 함께 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미니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법궤를 매고 들어가니까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나아가니까 이성으로 이해하라 수 없는 일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이 믿음을 지키기다가 풀무불 가운데 들어가지만 하나도 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가정에 전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질병이 찾아 올 수 있고, 때로는 이혼의 위기가, 때로는 경제적 고난이, 때로는 갈등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불같은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이런 위기는 우리를 더 정금처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불순물을 제거시키고 강한 군사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시키는 과정이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지만 영원히 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을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 대신 주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부족하고 타락하고 연약한 백성이지만 하나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와 함께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아내를 바로 궁에 빼앗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로에게 재앙을 내려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하게 형제들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여 그의 생명을 죽음의 구덩이에서 살리셨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그를 보호하여 결국 국무총리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욕심을 내어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 위해 아버지를 속여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를 보호하셔서 삼촌집에서 결혼도 하고 부자로 만들어 12지파의 조상이 되게하였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가정에서 거짓말도 할 수 있고 형제들의 시기 질투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재산 싸움으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나오면 우리 하나님이 그 허물들을 다 용서해 주시고 함께 하여 보호해 주십니다.
외로운 도망자 야곱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시대의 영웅 모세를 잃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시고 침몰하지 못하게 하고 불에 타지 않게 하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사랑받은 우리 가족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일어난 일만 보며 두려워하며 포기하지 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일어나 맡겨준 사명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1, 5) 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갔던 10명의 군사와 백성들은 가나안 거민들을 두려워했습니다.(민14:9) 결국 어떻게 됩니까?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여깁니다. 결국 40년간을 방황하다 광야에서 소멸되는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민14:36)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지만 두려워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만 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불안, 두려움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10대들은 입시에 실패할까 봐 혹은 또래와 어울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20대는 취업을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30대는 결혼문제로, 40대는 노후, 50대는 구조조정, 60대 이상은 건강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남자들의 두려움에 대한 유머가 있습니다. 30대는 신용카드, 40대는 야한 속옷 입은 아내, 50대는 곰국, 60대는 이사가는 날, 70대는 등산 가자고 할 때 두렵다고 합니다. 직장인 스트레스 1위는 '불안한 미래'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R. May)는 "불안은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라고 합니다. 두려움이 일종의 문화가 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성폭력, 폭력, 테러, 인터넷 스토커, 전화사기, 유행병, 살 먹는 박테리아, 암, 기후 변화, 환경 호르몬, 유전자변형작물 등 예측하지 못할 위협으로 두려움이 어느 때보다 커진 '위험 사회(Risk Society)'에서 살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네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첫째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두려움이란 괴물은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쓸 기회를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에서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능을 개발하는데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공포 즉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그 재능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재능의 숨통을 죄고 있는 공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파괴해 버립니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비난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피해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행복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은 대인 공포증, 광장공포증, 고소공포증, 질환공포증, 죽음공포증 등과 같은 심각한 만성 공포증 환자가 되어 버립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라고 했습니다. 세네카라는 사람은「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넷째는 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린다 새퍼딘은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라는 책에서 두려움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하고, 늘 경계심을 품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자신이 없게 만들고, 매사에 비판적이게 하여 자신을 망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거짓말을 하게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패배의식에 빠지게 하며(민13:30~33), 불안하게 하고(신28:67), 절망하게 합니다.(수5:1) 또한 사람의 올무에 걸리게 하며(잠29:25), 떨리게 하며(단5:5), 주를 부인하게 하고(마26:67~74), 몸을 마비시키고(마28:4) 진실을 증거하지 못하게 합니다(요9:21~22). 도피를 부추기며(창3:8~10; 왕상19:2~4;마26:47,55,56), 능력을 상실하게 하고(삼상17:32), 용기와 희망과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합니다.(민13~14장) 두려움의 95%는 상상적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이유 없는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적은 하나님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두려움의 적은 능력입니다. 신앙인들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적(enemy)은 사랑입니다. 비록 작은 쥐 한 마리에게도 놀라는 어머니라도 사랑하는 자녀가 사나운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으면 두려움 때문에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역비례합니다. 두려움과 사랑은 역비례합니다. 두려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믿음은 떨어지고 믿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두려움은 적어집니다. 두려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랑은 적어지고 사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적어집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2) 하나님의 사랑받은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왜 우리를 창조하였다고 말씀합니까?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왜 내가 존재하는가를 분명히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가족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5,6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다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이것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니까 가족이 망가집니다.
지도자를 태우고 당나귀 우화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도자를 태웠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중하게 절을 하였습니다. 이 당나귀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잘생긴 얼굴과 튼튼한 몸매에 반하여 절을 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흡족한 기분으로 몸을 크게 뒤채고 낄낄 거리다가 그만 상전을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만한 당나귀는 자신의 실수로 상전이 굴러 떨어진 게 아니고 상전이 당나귀 타는 요령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쫓겨난 당나귀가 혼자 아무리 거리를 쏘다녀도 누구 한사람 절을 하기는커녕 아무도 먹을 것 한조각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화가 치밉니다. 가게에 들어가 과일들을 짓이기며 행패를 부리다가 되레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개구리가 창공을 날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학의 다리를 물고 창공을 올랐습니다. 웅덩이에 있는 개구리들이 부러워 물었습니다. “누가 너를 그렇게 창공에 오르게 했느냐?” 개구리는 입을 벌려 대답을 합니다. “내가” 그 순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입을 벌린 순간 땅 바닥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영광 횡령범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꽃이 있기 때문에 향기가 나는 것이고, 한 덩어리 돌이라도 위대한 작가가 있기 때문에 걸작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답니다.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이 대답했답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셔셔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작곡한 곡 가운데 유명한 곡 중에 [천지창조]가 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턴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그는 이 위대한 [천지창조]를 작곡했답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팠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곡이 공연될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게 되었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답니다. 그 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자리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답니다. 이 때 하이든이 갑자기 청중들을 중단시키면서 말했답니다. "아니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3) 하나님의 사랑받은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8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유다 사람들을 그렇게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 어려움 가운데도 보호하시고 그들을 존귀하게 만들었습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열방에게 하나님을 누가 알려 주겠습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마지막 남긴 유언이 무엇입니까? 증인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연세대의 정신적 지주인 용재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는 무당이었답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 백무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 무당 짓 하다가 나중에 지옥가면 어떻게 하겠소? 자식들 멸망 받을 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화가 난 백 무당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아니 재수 없게 무슨 소리야, 너나 잘 믿고 천당인지 백당인지 가라" 그런데 역사는 그 다음에 일어났답니다. 이 백무당이 잠만 자려고 하면 그 사람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자식들 멸망 받을 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이 소리에 못 견디어서 나중에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에서 백낙준 박사 같은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10人'에 56회나 선정된 목사님이 계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입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 가정적인 목사님입니다. 그는 아내에 대하여 "아내는 나의 영적인 동반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내가 곁에 없는 날은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다"면서 "나는 아내를 65년 전 휘튼대학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지금 더욱 사랑한다"면 같이 묻히고 싶어했습니다. 전미복음주의협회의 레이스 앤더슨(Leith Anderson) 회장은 성명에서 "미국의 복음주의 활동의 재기는 빌리 그래함 목사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는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정치, 야망, 돈, 권력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증거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94세가 되는 그래함 목사는 185개국에서 온 약 2억 1,500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증거했으며, TV나 다른 형태의 방송은 이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도 그의 조언을 소중하게 여겼고 31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빌리그래함이 어느날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영적 영웅으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는 빌리그래함이 있기까지 주일학교 교사인 킴볼(Kimball)씨는 1858년 보스턴의 신발 가게 점원이었던 무디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였습니다. 점원 L. 무디는 복음주의자가 되어 1979넌 메이어(Frederick B. Meyer)의 가슴에 복음의 불을 일으켰습니다. 메이어는 미국의 대학에서 설교하던 중 채프먼(J. Wilbur Chapman)이란 학생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채프먼은 YMCA에서 일하면서 빌리 선데이(Billy Sunday)라는 야구 선수를 복음 사업에 고용했습니다. 선데이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샤로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이 부흥회에서 빌리 그래함이란 젊은이가 복음을 들고 그리스도께 삶을 바쳤습니다. 우리 가족을 통해 하나님은 수많은 빌리그래함이 하나님 나라에 돌아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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