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사9:1-7 |
---|---|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2.27 http://www.john316.or.kr |
성탄절(7) 내려가는 삶도 잘하십시오
(이사야 9장 1-7절)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사람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눈높이를 낮추셔서 사랑하는 대상처럼 사람이 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고 그 입장이 되어 행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한 집사님의 자녀가 대학교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좋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구와 싸웠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같은 교우의 자녀가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그 교우를 생각해서 기쁨을 절제한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집사님입니까? 그처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성육신의 사랑을 가지고 자기를 죽이고 낮추고 지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 개척교회에서 처음 중등부가 결성되어 한 유식한 집사님이 중등부 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중등부 첫 시간에 학생들의 신상파악을 위해 그 부장집사님이 양식을 만들어 왔는데 신상명세서에 이런 난이 있었습니다. <간부재임여부>. 비즈니스를 오래 했던 그 집사님에게는 어느 단체에서 간부로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사람의 능력 평가에 중요하기에 <간부재임여부>란 난을 만들어왔지만 중학생들은 그 말뜻 자체를 몰랐습니다.
얼마 후에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때 사회를 맡은 그 부장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제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상견례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선생님들이 다 웃었지만 중학생들은 왜 웃는지조차 몰라서 쑥스럽고 난처한 표정을 했습니다.
저도 미국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의 말에 미국 학생들은 깔깔 웃는데 저는 왜 웃는지를 몰라 혼자 멍하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부끄럽고 왕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미국 학생들이 웃으면 이해가 안 될 때도 같이 웃는 척 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미국 문화와 유머를 알 수 있을 정도까지 영어실력을 잘 구비하게 하소서!”
그때 그 부장집사님은 유식함을 자랑하려고 그런 말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수준을 맞추는 지혜가 없어서 생긴 실수들이었습니다. 그처럼 눈높이를 맞추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언어생활을 어떻게 쉽게 바꿉니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지혜와 배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수준에 맞춰 말하고 기도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좋은 선생입니다.
< 내려가는 삶도 잘하십시오 >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가 성경 얘기를 해준 후 재울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요나가 하나님 말씀 안 듣고 떼 부리다가 물에 빠졌잖아요? 그래서 물고기가 먹었는데 하나님이 구해주셨지요. 그런데 은혜는요. 요나처럼 되지 않을래요. 떼 부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 잘 들을게요. 그리고 오늘은 한나를 때렸어요. 그래서 엄마가 속상했어요. 엄마에게 미안했어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요.”
그렇게 기도하면 아이들도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처럼 아이를 위한다면 아이처럼 말해주고 아이처럼 되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신 것은 아이를 사랑해서 아이처럼 되어준 사건이고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춰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성육신의 사랑을 가지고 저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어느 날, 진리를 추구하는 한 청년이 진리를 찾겠다고 산에 올라가서 진리를 찾지 못했다고 도무지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어머니가 한 목사님에게 아들의 설득을 부탁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산에 올라가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곧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제 아들을 그렇게 쉽게 설득했나요?” 그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집사님! 저는 설득하지 않고 그저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다고 말해주었어요.”
진리는 산 위로 올라가서 준비한 후 산 아래로 내려가서 실천할 때 다가옵니다. 그처럼 성도는 인물이 되려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사랑이 되려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그처럼 산에서 내려오는 삶이 바로 성육신의 삶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거룩한 성산인 천국에서 영혼을 구하려고 이 땅의 산 아래로 내려오신 날입니다. 그 성육신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변화의 주체가 됩니다. 기독교 역사는 부족한 사람이 성육신의 사랑을 맛보고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킨 역사입니다.
지금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실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깊이 생각하고 묵상할수록 성육신에는 깊은 사랑의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성육신의 사랑을 회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혼의 행복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각기 있는 처소에서 성육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실천함으로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고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