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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하나님의 Passion!

이사야 류공석 목사............... 조회 수 1566 추천 수 0 2014.04.18 1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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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9:6-7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성탄, 하나님의 Passion!

2010년 12월 18일 대림절 넷째 주, 텔아비브 욥바 교회
본문: 이사야 9:6-7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가 있다. 멜 깁슨이 만든 영화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영화이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수난 영화 중에 가장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고증을 잘한 영화이다. 영어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the passion이라고 하는데 왤까? passion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열정, 정렬을 뜻하지 않는가? 왜 그리스도의 수난을 열정을 의미하는 passion이라고 할까?

  영어의 passion의 어원이 라틴어 passio인데, 고통 받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열정, passion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자신을 희생하며 기꺼이 고통을 당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사랑한다는 감정을 넘어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전부를 희생하고 그 고통을 감수하는 상태가 바로 passion, 열정이라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의 수난을 passion이라고 하는가?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그 고통의 길을 가셨기 때문이다. 피가 끓는 사랑의 열정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passion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는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사람들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으로 보이지만 고문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뜨거운 사랑의 passion,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열정에 우리가 감격하며 감사하는 것 아닌가?

  오늘 본문에 보면 똑 같은 단어가 나온다. 바로 passion이라는 단어다. 7절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에서 ‘열심’이라는 단어가 바로 passion이다. 많은 영어 성경에는 the zeal of the Lord로 번역했는데, 본문의 의미를 살리면 The passion of the Lord라고 하는 것이 옳다. 둘 다 열의, 열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뜻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본문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보면 정말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 passion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passion은 무엇인가? 바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 장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메시아를 통해 임하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을 주시면서 그 예언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정, passion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다.

  그 구절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6절을 보자. 이렇게 시작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 예언의 말씀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말씀이다. 본문보다 앞에 있는 이사야 7:14 말씀과 연결이 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메시아가 인간 여자,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인데, 그 예언이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는 한 아기로, 한 아들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즉 사람의 몸을 입고, 아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예언이 바로 예슈아, 우리 주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을 보자.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여기서 번역된 정사는 통치, 다스림을 뜻한다. 그의 어깨에 정사, 즉 통치를 메었다는 말은 마치 왕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상징하는 표시로서 어깨에 망토를 둘렀던 것처럼 메시아가 왕으로서의 주권을 가지게 되신다는 예언이다.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요 주님으로서의 주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 예슈아를 만왕의 왕, 주의 주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슈아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며 주님이시다.

이어지는 구절부터는 메시아의 이름에 대한 것이다. 메시아가 이러 이러한 분으로 부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네 가지 이름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우리 성경이나 몇몇 영어 성경으로 보면 다섯 가지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 방식으로 보면 네 가지 이름을 말하고 있다.
  메시아의 첫 번째 이름은 ‘기묘한 모사’이다. 우리 성경은 기묘자라 모사라 둘로 나와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방식에 따르면 하나다. 히브리어로는 펠레 요에쯔(פלא יועץ)로 영어로는 wonderful counselor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요에쯔, counselor, 우리 성경에 모사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는 왕의 조언자, 상담자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지혜로운 이를 뜻한다. 실제로 지혜로운 이들이 왕의 조언자, counselor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메시아는 어떤 사람인가? 지혜로운 분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펠레, wonderful, 놀랍고 기이한 지혜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이다. 펠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어떤 경우에 많이 쓰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과 기사에 사용되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출애굽기 15:11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기이한 일, 여기서 쓰인 단어가 바로 펠레이다. 당시 최고의 강대국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이들을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며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펠레, wonderful, 놀랍고 기이함은 출애굽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출애굽 과정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말할 때는 모두 펠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출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가진 지혜는 무엇인가? 그 지혜가 무엇이기에 펠레, wonderful, 놀라운 지혜, 기이한 지혜라고 했을까? 출애굽과 같은 구원의 역사를 가져올 지혜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메시아를 통해 출애굽과 같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메시아에게 있기 때문이다.

  펠레 요에쯔, 그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놀라운 지혜를 가지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를 그 분의 지혜로 만드셨다. 하나님 자신이 지혜이시다. 그래서 잠언은 무어라 말하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지혜의 다른 표현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지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의 또 다른 표현은 진리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지혜시고 진리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지혜이다. 그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이 되는 것이다. 참 지혜, 참 진리를 아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깨닫고 살아가는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 지혜로운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전한 지혜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 안에 있는 진리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다. 나는 미련하나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지혜로우시기에 나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진리지만 내 안에 계신 진리이신 예수께서 나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놀라운 지혜가 되시는 주님을 소유하고 진리이신 주님 안에 거하길 축복한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깨닫는 지혜를 취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메시아의 두 번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어로는 엘 기보르(אל גבור)이다. 기보르는 능하다, 강하다란 뜻으로 엘 기보르라고 하면 능하신 하나님, 강하신 하나님이다. 우리 성경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메시아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유대교에서는 메시아는 하나님에 의해서 임명되어진 인간으로, 악으로부터 이 세계를 정화하여 확고한 기초 위에 선을 확립할 능력과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메시아의 신적 존재성을 부인하고 있다. 매우 의도적이다. 그 이유는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기독교에 대한 반감, 예수님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하게 말한다. 메시아는 엘 기보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디에도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인간, 하나님으로부터 능력과 권위만을 부여받은 인간이라는 표현이 없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이시라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성경 자체가 이렇게 증언하고 있음에도 오늘날 유대교에서는 다르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누구인가? 한 아기로 태어난 인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엘 기보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사람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한 말이 바로 이것 아닌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바로 이 고백을 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이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라는 이 믿음은 바로 구약성경, 특히 오늘 본문 말씀에 근거한 것이지 기독교에 만든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왜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신가? 그래야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인이 그 죄를 용서받으려면 그 자신이 죽거나 죄 없는 다른 이가 대신해서 죽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의미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죄 없는 이가 없다. 사람으로서는 진정한 대속을 할 수 없다. 죄 없는 인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독생자를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지고 대신 죽게 하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대속하는 구원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는가? 그분이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심을 믿는가?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내용이다. 오직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메시아이시다.

  메시아의 세 번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히브리어로는 아비-아드(אבי-עד)이다. 아비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드는 영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올람과 같은 뜻이다. 영원이라는 뜻은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하는 시간으로, 이 단어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다. 영원히 존재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으시다.

  그리고 이 영원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메시아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메시아는 영원한 존재이시다. 이 말은 메시아가 피조물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시는 하나님 그분 자신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메시아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여기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했다. 여기서 아버지는 야웨 하나님을 뜻한다. 메시아는 누구인가? 아비-아드, 영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야웨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놀라운 표현 아닌가? 신약이 아닌 구약 성경에 바로 이 표현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복음 10:30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또한 14:9-11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성부 하나님, 야훼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이심을 증거하고 계시다. 유대인들이 가장 공감하지 않는 부분이 이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유대인들은 신명기 6:4 말씀, 쉐마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스라엘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히브리어로 하면 '쉬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엑하드'인데, 이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러므로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쉐마에서 사용된 하나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엑하드(אחד)이다. 이것은 숫자처럼 하나 둘 할 때의 그 하나이다. 그런데 하나라고 번역할 수 있는 또 다른 히브리어 단어가 있다. 바로 약히드(יחיד)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absolute unity, 절대적인 하나를 의미한다. 반면 엑하드라는 단어는 composite unity, 복합적인 하나를 의미한다.

  한 예로 창세기 2:24에서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후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고 되어 있는데, 한 몸, 여기서 쓰인 단어가 바로 엑하드이다. 둘 이상의 어떤 존재가 하나가 되는 엑하드를 쓰고 있다.

  쉐마에서 절대적인 unity을 뜻하는 약히드를 쓰지 않고 복합적인 unity를 뜻하는 엑하드를 썼다는 것은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 엑하드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하나이심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의 본질과 성품에 있어서 동일하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을 때도 바로 이 엑하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내 안에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뜻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엑하드, 한분이시라는 말씀이다.

  그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의 아비-아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이다. 만일 메시아와 성부 하나님이 다른 분이고 하나이신 하나님이 아니하면 어찌 메시아의 이름을 아비-아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쓰는 표현이다.  

  우리는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하나되심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 존재와 본질과 성품에 있어 엑하드, 하나이신 하나되심이다. 삼신론이 아니다. 엑하드, 삼위로서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슈아를 부를 때 그 이름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고, 우리 성령님을 구할 때 그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함께 응답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삼위일체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비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우리가 믿는 것이다.

  유대교에서 거절하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하나되심은 바로 그들이 그렇게 존중하는 구약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내용이다. 메시아의 이름이 아비-아드, 영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반면에 절대적인 하나, absolute unity를 뜻하는 약히드라는 단어가 예수님께 쓰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생자라는 표현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독생자가 바로 약히드다, 벤 약히드(בן יחיד), absolute one로서의 아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 예슈아 외에는 다른 구원자를 주신 일이 없는가? 그분이 absolute one, 벤 약하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으로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구원자는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메시아이시고 구원자이심을 부인하고 자신이 메시아라고 재림주라고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거짓 가르침, 이단들의 가르침에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주신 유일한 구원자는 absolute one,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메시아이시다. 성경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의 네 번째 이름은 평강의 왕이시다. 히브리어로 샤르 샬롬이다. 평화의 왕자, 평화의 왕이란 뜻인데, 이 샬롬은 전에 산상수훈 강해를 하면서 그 의미를 한번 말씀드렸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팔복 중에 하나인데 그 때 말씀을 드렸다.

  샬롬은 완전함을 뜻한다. 그 어근이 샬렘이다. 완전함이다. 어느 한 곳 깨지거나 찢어지거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바로 샬롬이다. 이 샬롬을 가진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가질 때 이 샬롬이 주어진다. 그런데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이 샬롬이 깨어졌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참된 샬롬은 없다. 미미한 안정과 평안은 샬롬이 아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후에 샬롬이 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샬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한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죄의 문제로 인해 샬롬이 깨어졌기에 죄의 값을 치러야 한다. 값을 치른다는 것이 히브리어로 메샬렘이다. 샬롬과 같은 어근이다. 메샬렘, 이것이 바로 속죄이다. 내가 치러야 할 속죄의 메샬렘을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셨다. 대신 메샬렘하셨다. 그것이 바로 대속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메샬렘하심으로 내가 하나님과 샬롬하게 된 것이다.

  에베소서 2:14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 우리의 샬롬이시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메샬렘, 속죄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케, 샬롬케 하셨고, 나아가 원수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화평케 하셨고, 우리 모두를 화평케 하신다. 예수 안에서 모두가 화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보라. 유대인과 아랍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고 서로를 축복한다.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아랍 크리스천들이 얼마 전에 만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며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하면서 부둥켜안고 기도하며 축복했다.

  예수 안에서 용서 못할 사람이 없다. 예수 안에서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예수 안에서 샬롬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왜?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기 때문이다. 이 평화가 이 땅 이스라엘에 가득해져서 예슈아 안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샬롬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지금까지 메시아의 탄생과 그가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예언과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예언된 메시아는 분명히 하나님 자신으로 지칭되고 있다. 이 점을 옛 유대교 해석자들도 동의했었다.

  그런데 후기 유대교 해석자들, 즉 예수님 이후의 유대교 해석자들은 이 부분을 히스기야 왕에 대한 예언으로 만들어버렸다. 왜? 메시아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맞추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 본문의 의미를 크게 왜곡시키고 말았다. 오늘날 유대교에서는 성경 자체보다는 랍비들의 성경해석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의미들이 어찌 인간인 히스기야에 대한 예언이겠는가? 그렇다면 너무나 우스운 예언이 되고 만다. 이 예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고, 그 메시아는 하나님 자신으로 지칭되는 이름들을 가졌고, 하나님 자신과 같은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예슈아께서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이시며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이사야서의 예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7절은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이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첫 구절을 그 뜻을 살려 다시 읽으면 이렇다. "그의 통치와 평화가 커져가는 것은 끝이 없을 것이며" 그렇다. 이것은 메시아를 통해 시작되고 확장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인데, 메시아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커져가고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께서 비유로서 말씀하셨다. 바로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등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겨자씨처럼 작다. 즉 예수님 한 분을 통해 이 땅에 시작되었고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나 커져서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게 된다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점점 커지고 확장될 것에 대한 말씀이시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예수님의 비유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지난 2천년 동안 계속 커져서 지금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커져서 마침내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져서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이스라엘도 예슈아를 메시아로 고백하고 그분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이다. 그 순서가 그러하다.

  히브리대학 교수였던 다비드 플루저라는 사람이 있었다. 역사적 예수를 연구한 유대인 학자인데, 만일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오시면 나는 질문할 것이다. 처음 오신 것인지 두 번째 오신 것인지. 그래서 두 번째라고 하신다면 나는 지체 없이 무릎을 꿇고 그분을 경배할 것이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두 번째 오셨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도 나사렛 예슈아를 그들의 왕으로 메시아로 고백하고 경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 성경 말씀이 증언하는 바이다.

  이 모든 일들을 누가 이루시는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열심이, 그분의 passion이 이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열정, 히브리어로는 킨앗 아도나이(קנאת יהוה)인데, 킨아라는 단어는 '열정, 열심'으로 번역되고 때로는 '질투'로 번역되기도 한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할 때 이 단어를 쓴다.

  하나님이 왜 질투하시는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시는데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을 따른다면 어찌 하시겠는가? 그때 사용되는 단어가 바로 킨아라는 단어이다.

  여기서는 열정, passion의 의미이다. 질투이든 열심이든 열정이든 그 동기는 사랑이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보존하고 복주시고 당신의 사람들로 만들어 가시고자 하시는 그 사랑이 동기인 것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기에 질투하시고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이 일을 열정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passion, 그 하나님의 passion이 메시아의 탄생과 메시아를 통해 시작되고 확장되고 완성될 이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이 있은 지 칠백여년 후에 마침내 메시아께서 예언 그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한 아기의 모습으로, 한 아들로 우리에게 태어나셨다. 그분이 바로 예슈아 우리 주님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이 성탄은 하나님의 passion이다! 이 하나님의 passion이 느껴지는가? 열정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끓어오르는 열정 없이 어찌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피조물인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실 수 있겠는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passion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그 피 끓는 사랑의 열정 없이 어찌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 있겠는가!

  이 펄펄 끓는 하나님의 열정이 나를 향해 있음을 아는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자 약속하시고 마침내 그 약속을 이루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시고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그 펄펄 끓는 사랑의 열정, 그 passion이 느껴지는가? 그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나를 향해 있음을 아는가?

  이 사랑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의 열정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만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용서하고 나를 고치고 나를 새롭게 하고 나에게 새 생명과 소망을 주시는 것이다. 이 사랑을 받아들이라.

  지금 식어져 있는가? 교회는 오래 다닌 것 같은데 굳어져 있는가? 감격도 없고 열정도 없고 헌신도 없고 다 타버려 식은 잿더미 같은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가? 다시금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열정을 사모하라. 예수님의 passion, 하나님의 열정을 사모하고 그 열정으로 당신의 식어진 마음을 뜨겁게 하라. 하나님의 열정이 나의 열정이 되게 하라.

  하나님의 열정은 사람에 대한 열정이다.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며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하시는 열정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정이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확장되는 꿈이다.

  이 열정이 나의 열정이 되게 하라. 이 열정이 당신의 식어진 마음을 뜨겁게 하라. 이 열정이 당신의 굳어진 마음, 완고한 마음을 깨뜨리게 하라. 구하라. 사모하라. 채워달라고 부르짖으라.

  하나님의 passion,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살라. 그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라. 그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사역하고 꿈을 꾸라.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 나도 하고 하나님의 나라 이루어가는 데 내 인생 써 달라고 구하라. 그리고 그리 살아가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이 꿈이 되어 살아가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마음을 주시길 원하신다.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뜨거운 열정을 우리가 갖길 원하신다. 구하라. 그리고 받으라. 채우라. 그리고 꿈꾸고, 그렇게 나아가라.

  그 마음과 열정과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이루어질 것이다. 당신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passion, 하나님의 열정이 당신을 통해서 이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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