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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는 종

이사야 양주섭 목사............... 조회 수 331 추천 수 0 2018.12.20 23: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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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53:1-9 
설교자 : 양주섭 목사 
참고 : 탈라하시장로교회 http://tallakoreanchurch.net 

고난 받는 종 (이사야 53:1-9/  2016년3월20일 고난주간)
 
서론
 
민법상으로 어떤 사람이 빚을 지면 누군가 대신 갚아줘야 죄가 사하여 지는데, 옛날에는 형법상으로도 누가 대신 형벌을 받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징역10년을 받으면 누군가 대신 10년을 감옥에서 살아준다면 죄를 지은 당사자는 자유로운 겁니다. 또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누군가 대신 죽는다면 죄를 지은 당사자는 자유로와 지는 겁니다. 로마서3장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6장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죽을 운명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진게 없는데 왜 그러셨을까?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우리 죄를 대신 갚아주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무지입니다. 자기 죄를 대신 갚아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받은 고난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대한민국의 5공화국때 있었던 인권탄압의 상징인 삼청교육대가 있었는데 처음 입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개다. 개는 주인이 주면 주는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 그런데 이런 삼청교육대 같은 거랑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라는 영화를 보면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해서 눈을 뜨고 제대로 볼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처참한 고난을 대신 받지 않으면 우리를 살릴 길이 없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 받는 종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예언의 노래는 성육신하시어 여호와의 종으로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 대속 수난에 대하여 마치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의 진술처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예언은 그로부터700여년 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1. 여호와의 종이 받은 멸시와 천대 (1-3절)
 
1-3절은 여호와의 종의 지극히 보잘것없는 외적 모습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에 대한 기록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1)”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를 비롯한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하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관한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지 않으니까 정작 예수님이 오셨을때도 예수님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무슨말을 해도 그것을 믿어주지 않을때처럼 답답하고 가슴아픈 일은 없습니다. 진리를 말하는데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말을 믿어야 살텐데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합니다. 우리 주님이 사람들에게 그런 불신을 당하셨습니다.
 
오래전에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에 코페루니쿠스 혼자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고 그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코페루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이 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을때 그분의 메시지를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이셨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2)” 예수님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집안이나 학벌이나 인물이나 얼마나 부자인가를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극히 초라한 외모를 갖고 계셨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거친 노동에 지친 30대 남자의 모습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볼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치 길밭의 풀같이 사람들에게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길밭의 풀은 아무리 짓밟혀도 계속 솟아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3)” 사람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못배웠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평생 그 상처를 잊기 힘들만큼 고통이 큽니다. 그런데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습니다.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en. 이게 예수님입니다.
 
간고와 질고는 인간이 겪을수 있는 모든 슬픔과 고통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는 말은 익숙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간고와 질고에 익숙한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을수 있는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주님은 다 몸으로 겪어서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슬픔과 고통을 겪을 때 주님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렸다고 했습니다. 마치 문둥병이나 전염병 환자를 봤을 때 얼굴을 가리고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멸시를 당한 것입니다. 마태복음27장39-44절에 주님께서 받으신 모욕이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이처럼 본문1-3절에서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받으신 멸시와 천대가 잘 묘사되었습니다.
 
2. 여호와의 종의 처절한 대속수난 (4-6절)
 
4-6절에서는 예수님이 그토록 처절하게 겪으신 고난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 그당시 사람들은 예수가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아 십자가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그를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 그들은 예수가 자기 죄 때문에 십자가 고난을 받는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당하신 예수님의 수난은 극한적인 수난이었습니다. 여기서 ‘찔림(pierced)’이라는 말은 관통했다는 의미입니다. 창이 예수님의 심장 끄트머리에 살짝 닿은 정도가 아니라 꿰뚫고 몸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상함(crushed)’이라는 말은 살짝 상처를 입은 정도가 아니라 짓이김을 당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또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은 보통 채찍이 아니라 끄트머리에 쇠붙이와 뼈 조각이 붙어 있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한 번 등을 후려치면 살점이 떨어지고, 혈관이 끊어져 피가 났습니다. 영화 Passion of Christ 에서도 너무 잔인해서 가장 보기 힘든 장면중 하나가 예수님이 이 채찍에 맞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극한 수난의 희생을 당하신 것은 ‘우리 때문에’ 이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창이 몸을 관통하여 심장이 터지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살점이 떨어지고 혈관이 끊어져 피가나는 극한 수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은 치유의 은혜와 평안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 양은 시력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지 않으면 앞이 절벽인지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 가다가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시기에 다 영적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조금만 멀리 보면 있는 천국을 못보고 바로 눈앞에 있는 이세상이 다인줄로 착각하고 자신의 정욕대로, 죄악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종의 침묵 (7-9절)
 
7-9절은 대속 수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침묵을 기록했습니다. 이 고난을 받을 때 예수님은 어떠한 자세로 받으셨나요? 한마디로 침묵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7)” 사람들은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난리를 칩니다. 자기 방어는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 억울한 핍박과 죽음을 당하시면서도 침묵하셨습니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들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8)” 밤새 곤욕과 심문을 당하셨으면서도 그 고통을 남에게 호소하지 않고 예수님 혼자 감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그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면 백성들이 형벌받을 것임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욥이나 이사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힘들면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다 쏟아냈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 세대 사람들은 이 예수의 고통이 마땅히 형벌 받을 자신들의 허물 때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보혈을 통과하기 전에는 십자가를 봐도 남의 일 같고 그냥 무덤덤합니다. 그런데 십자가 보혈을 통과하면 그 십자가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고 십자가만 봐도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은줄 알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9)” 강포는 폭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무한한 권능을 갖고 계시면서도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는 인간들에게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선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살인 강도들과 똑같이 취급하려했습니다. 그당시 흉악범들의 시신은 묻어주지 않고 그냥 광야에 던져 들개나 까마귀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만 지나면 시신이 훼손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로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가 나와서 자기의 무덤에다가 안치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흘후에 깨끗하게 부활하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은 이렇게 예언하시고 처음부터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거기서 끝났더라면 아무 의미가 없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엄청난 구원의 축복을 배풀어주셨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가 나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없는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합니다. 죄악의 때로 얼룩진 우리의 삶을 눈보다 깨끗게 씻으시는 겁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수난받고 죽으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시고, 이 주님의 크신 은혜과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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