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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1: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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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
https://www.youtube.com/watch?v=jWgSXr3TU-M&t=44s
(이곳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동영상 설교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당만 밟을 것인가?
(사1:10-17)
주일이 오면 제일 먼저 우리는 ‘예배’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는 ‘예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믿는 우리이고, 예배를 받는 분은 바로 하나님 한 분이지요.
그래서 예배를 본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고,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이 정확하게 맡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불쌍(?)해서 예배를 보러온 것이 아니고, 지금 각자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러 온 것입니다.
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리고 그분의 나를 구원하셨으며, 그 구원의 사건에 감사하여,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마음의 표현이 바로, 매주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드리는 자가 우리이고, 예배를 받는 자가 하나님이시라면, 그 예배가 잘 드려졌는지, 아니면 잘 드려지지 못했는지를 평가는 우리가 아니라, 예배를 받는 분인, 하나님이 되지요.
그런데, 가끔 우리가 그 예배의 평가자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왜 그럴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보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한마디로 제사, 하나님께 예배드린 자의 모습들을 보시고, 마치 하나님이 그 예배 자들을 평가하시고, 그 평가서를 내 놓을 모습처럼 보입니다.
좋은 평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좀 화가 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 놓으신 평가는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화가 나신 것 같고, 더 나아가 ‘너희들 그럴꺼면 예배드리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 ‘거절당한 예배 자들’ 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까요? 하지만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그 예배를 거절당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예배자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5장23절을 보시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원망 들을 만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원망들을 만한 일이 뭐하거든요? ‘생각나거든’ 예물을 예배드리는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이지요.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한 진실 된 마음으로 다가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는데, 예배를 드리러 오는 자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막 속상해서 예배드린 적 있지요. 마음에 천불(?)이 나서 예배드린 적 있지 않나요? 그러니까 주일날 아침에 조심. 교회 오는 차 안에서 까지도 조심해야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화목하고 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11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시작) 한마디로 ‘하나님은 너희가 바친 이 모든 제물을 바라지 않는다, 형식적인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들이 이제는 지겹다, 양과 염소의 피도 반갑지 않다’ 그보다 앞선 것은, ‘난 너희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진실 된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제일 기분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요? 마음을 안 주는 사람이지요. 이렇게 대화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느껴지면, ‘아~ 이 사람은 나하고 마음을 트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가 서먹서먹할 때가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는데, 하나님께 마음을 안 주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이 느껴진다면, 그리고 하나님도 ‘아~~ 이 사람은 나하고 마음을 트지 않는구나! 라고 하나님 스스로 말씀하신다면?
그저 와서 형식적으로 앉아 있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앉으라면 앉고, 노래하라면 어쩔 수 없이 따라 부르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그 마음이 읽혀진다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죠. 나에게 형식적으로 드리는, 살진 짐승의 기름들이 이제는 지겹다. ‘마음에도 없는 것 이제는 반갑지도 않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단언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12절입니다.(시작) 여러분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내 마당만 밟은 뿐이다. 너희는 나를 만나러 오지만, 그러나 들락날락하며, ‘내 마당만 밟은 뿐이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 예배 시간에 참여를 해도 하나님이 ‘내 마당만 밟은 뿐이다’ 라고 평가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그냥 왔다 간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헛 일, 헛수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성전에 와서 마당만 밟고 가는 거지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 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17절과 18절에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내용이 이곳에 들어 있습니다. (시작) 여러분 잘 보세요. 한마디로 그 당시의 생활상을 설명하는데, 억눌림(학대받는) 받는 사람을 도와주고, 재판에서 고아들을 지켜 주며(신원하며), 과부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주었다“
그렇게 하시고, 18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때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서 ‘변론하자’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17절에 있는 모든 일들 하고 나서, 그리고 나에게 오라! 그리고 나에게 예배하라! 그 번제(예배)를 통해,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어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선포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의 기준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예배의 기준이 지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예배하는 자의 마음이, 어떤 상태냐 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하는 사람의 상태를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마다, 그저 그들의 마음이 은혜를 받고, 그저 감동을 받고, 마음의 도전을 받는 상태가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러 올 때, 이미 우리들의 마음의 상태는, 억눌린 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도와주었고, 재판에서 고아들을 지켜주었으며, 과부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주었던, 그 모~~든 상태! 그 모든 마음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로 나올 때,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와 하나님이 생각하는 예배는 다른 것이죠.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자, 예배를 통해 어떤 위로를 받고자 성전에 온다면,
그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는 이미 일주일 동안 살면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그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냈던, 그 마음으로 예배에 올 때, 그 예배를 받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난주일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나 서, 오늘 방금 예배드리기 전 까지를 가지고,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받으시고, 안 받으시고를, 하나님이 결정하시겠다는 겁니다.
아무리 지금 예배를 드리고,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다 해도, 지난 한 주간의 삶이 ‘원망’ 받는 삶을 살았다면, 그리고 그 마음으로 지금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처럼,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것이 예배이다! 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할 때 맨날 결심만 하자나요. 매날 깨닫기만 하자나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한 주간 변화된 삶으로 살다가 예배의 자리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 예배를 받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 적이 있나요? 저는 가만히 보면 언제일까? 주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가 그렇게 사모) 군 시절 이등병 때, 동해안 레이다 기지 산 꼭대기. 산을 내려가서.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주일 전부터 준비.
그리고 가는 사람이 없으면 무산 되요. 가능하면 많이 끌어 모아야 가요. 일주일 내내, 착한 사람처럼 보여 줘야되요. 라면도 끊여줘요. 담배 배급 받은 것 교회가자고 담배 줘요(?) 일주일 내내 준비하는 거예요.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저의 그 모습을 한번 보자고요. 찬송에 얼마나 힘이 있겠어요. 말씀은 듣는데, 얼마나 집중해서 듣겠어요. 또 언제 오나하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예배드리는 겁니다. 저는 그때만 생각해 보면, ‘생명을 드리는 예배’를 나는 드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예배당을 나서면, 우리는 다음 주일의 예배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드리고 나서, 교회를 나서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다음 주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으로 욕먹지 말아야 하고, 믿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 말아야 하고, 예수님 때문에 손가락질 당하지 말아야 하고,
열심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가능하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살아 내다가, 그리고 예배하러 올 때, 그 예배를 참된 예배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삶으로 살다가 예배하면 얼마나 감격이 될까요? 그런 삶으로 살다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기적과 은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그 마음과 정신으로 예배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바로, 19절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뭐라고요?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요. 여러분, 이것이 예배하는 자에게, 이 땅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 복을 다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들락 날락하며 내 마당만 밟은 것인가? 그것은 아무 소용없다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거절당하는 예배 자가 아니라,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 이 땅에서 베풀어 주시는 땅의 소산도 넉넉하게, 충분히 받고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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