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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5) 힘들 때도 감사하십시오 (다니엘 3장 13-18절) < 단호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 신상에 절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의 회유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고 거절했습니다(16절). 그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어떤 논쟁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입니다. 그런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절대가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축복은 절대적인 삶에 주어집니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단호하게 헌신하십시오. 그래야 인생이 맑아지고 밝아집니다. 둘째 딸 한나가 어렸을 때 말했습니다. “아빠! 앞으로 저는 교회 이름을 지으면 ‘맑은 교회’ 혹은 ‘밝은 교회’라고 지을래요.” 그냥 한 말인데 잘 생각해보니까 정말 좋은 이름인 것 같았습니다. 좋은 일을 피하려고 자꾸 핑계하고 논쟁하지 말고 깨끗하게 헌신해서 ‘맑고 밝은 성도’들이 되십시오. 어떤 분은 십일조를 논쟁거리로 만듭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의 율법이다. 신약은 은혜 시대인데 은혜 시대에 무슨 십일조의 율법을 지키는가?” 은혜시대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언뜻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되어 더 큰 은혜를 받았다면 헌신도 더 커져야 마땅합니다. 결국 신약시대 성도는 십일조 이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구약시대의 율법으로 몰아 논쟁거리로 삼는 사람들은 십일조 이상을 하려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십일조는 ‘율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임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정말 감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공동체 비전의 책임을 느끼는 사람에게 십일조는 아마 최소한의 헌신이 될 것입니다. 헌신을 방해하는 논리에 자꾸 귀를 기울이지 말고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을 택해서 단호하게 그 길을 가십시오. 그때 맑고 밝은 신앙이 형성될 것이고, 그런 절대 신앙에 절대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 힘들 때도 감사하십시오 > 사드락과 메살과 아벳느고가 “저희들을 불에 넣어도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절하지 않겠습니다.”고 고백했을 때, 그 고백을 하나님이 얼마나 감격하며 들으셨겠습니까? 성도에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자!”는 고백도 필요하지만 더 소중한 고백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고백입니다.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77년 일생의 대부분을 병과 싸웠습니다. 그녀는 24세부터 결혼하기 전인 37세까지 13년 동안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비극은 자신이 억울하게 고통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그 생각을 투영시킨 글을 통해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돼 감사합니다.” 진정 축복을 원하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라는 고백을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웃으면 복이 오지만 범사에 감사하면 더욱 확실하게 복이 옵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기도 응답이 더 빨리 옵니다. 힘들 때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라고 고백하면 그때 마귀와 질병과 저주는 순식간에 결박당하고, 축복의 대로가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다니엘(15) 힘들 때도 감사하십시오 (다니엘 3장 13-18절)
< 단호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 신상에 절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의 회유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고 거절했습니다(16절). 그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어떤 논쟁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입니다. 그런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절대가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축복은 절대적인 삶에 주어집니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단호하게 헌신하십시오. 그래야 인생이 맑아지고 밝아집니다. 둘째 딸 한나가 어렸을 때 말했습니다. “아빠! 앞으로 저는 교회 이름을 지으면 ‘맑은 교회’ 혹은 ‘밝은 교회’라고 지을래요.” 그냥 한 말인데 잘 생각해보니까 정말 좋은 이름인 것 같았습니다. 좋은 일을 피하려고 자꾸 핑계하고 논쟁하지 말고 깨끗하게 헌신해서 ‘맑고 밝은 성도’들이 되십시오. 어떤 분은 십일조를 논쟁거리로 만듭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의 율법이다. 신약은 은혜 시대인데 은혜 시대에 무슨 십일조의 율법을 지키는가?” 은혜시대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언뜻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되어 더 큰 은혜를 받았다면 헌신도 더 커져야 마땅합니다. 결국 신약시대 성도는 십일조 이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구약시대의 율법으로 몰아 논쟁거리로 삼는 사람들은 십일조 이상을 하려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십일조는 ‘율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임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정말 감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공동체 비전의 책임을 느끼는 사람에게 십일조는 아마 최소한의 헌신이 될 것입니다. 헌신을 방해하는 논리에 자꾸 귀를 기울이지 말고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을 택해서 단호하게 그 길을 가십시오. 그때 맑고 밝은 신앙이 형성될 것이고, 그런 절대 신앙에 절대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 힘들 때도 감사하십시오 > 사드락과 메살과 아벳느고가 “저희들을 불에 넣어도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절하지 않겠습니다.”고 고백했을 때, 그 고백을 하나님이 얼마나 감격하며 들으셨겠습니까? 성도에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자!”는 고백도 필요하지만 더 소중한 고백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고백입니다.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77년 일생의 대부분을 병과 싸웠습니다. 그녀는 24세부터 결혼하기 전인 37세까지 13년 동안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비극은 자신이 억울하게 고통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그 생각을 투영시킨 글을 통해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돼 감사합니다.” 진정 축복을 원하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라는 고백을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웃으면 복이 오지만 범사에 감사하면 더욱 확실하게 복이 옵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기도 응답이 더 빨리 옵니다. 힘들 때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라고 고백하면 그때 마귀와 질병과 저주는 순식간에 결박당하고, 축복의 대로가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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