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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단4: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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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다니엘4장 1-37절
찬송가 86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다니엘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째 꿈을 통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하나님만이 온땅위에 주되심을 고백하게 되는 드라마와 같은 장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첫 번째 꿈을 통해 다니엘은 바벨론도 결국 영원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다니엘 2장 44절입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느부갓네살이 영원하지 못할 바벨론의 성들을 보며 흡족해 하고, 평안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할 때 두 번째 꿈을 꾸게 됩니다.
5절입니다.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그의 꿈을 다니엘에게 전했고 그 꿈을 해석해 줄 것을 청합니다. 그의 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나무가 견고하게 높이 자라 아름답게 서서 열매도 많이 맺고 그늘에서 새들이 깃들어 잘 지내고 있는데, 한 순찰자, 한 거룩한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나무를 베고,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모두 없애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 나무는 짐승의 마음을 받아 7년을 짐승처럼 버려져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꿈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순찰자들이 명합니다.
17절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꿈을 들은 다니엘이 번민속에 꿈을 해몽해 드립니다. 이 나무는 곧 느부갓네살 왕이고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고 짐승처럼 7년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를 남겨 두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닫고 난 이후 다시금 왕의 나라가 견고히 서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후 다니엘은 충언을 올립니다.
27절입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 이다 하니라”
다니엘의 충언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공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평안함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듣지 않습니다.
30절입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왕궁 지불을 거닐며 “나의 능력과 권세로, 나의 도성이 되었고, 나의 위엄의 영광이 나타났다”합니다. 지금 느부갓네살은 무엇이 안정된 삶을 주고 계속되게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나”입니다. 나로 비롯된 결과물들입니다. 눈에 보이것들, 이 보이는 것들이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준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꿈의 해몽도 다니엘의 충언도 눈에 보이는 것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원했던 공의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보이는 ‘것들’과 있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공의와 긍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5병2어 사건을 통해 남자만 오천명이나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한 이후 바로 무리를 떠난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환호하는 무리, 보이는 것들을 떠나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이후 다시 내려오셔서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놀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마가복음 6장 50절입니다.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대중이 아닌 삶을 함께 나누는 제자들에게 가기 위해 물위를 건너가신 것입니다. 당시 그 제자들의 영적상태를 마가복음 6장 52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는 그들이 그 떡을 떼시던 이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엄청난 기적과 위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예수님과 함께 삶을 나누던 제자들의 영적 상태는 둔함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삶을 함께하시며 게네사렛에 가셔서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목회는 성도들과 삶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아픔을 기도하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기도 하며, 때론 수많은 갈등을 안고 버티며 때를 기다려 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희노애락이 함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슬퍼하다가, 몇 시간 지나서 누군가와 또 함께 기뻐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목회는 대중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미운정 고운정이 쌓이고 쌓여 관계를 맺어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목회는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많고 적음은 있을 수 있습니다. 10명을 목회하는 목사도 있고, 500명을 목회하는 목사도 있고, 더 많은 성도님들과 함께 살아가는 목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훌륭한 목사도 덜 훌륭한 목사도 없습니다. 단 관계가 깊은 목사와 엷은 목사만 있을 뿐입니다.
가장 불쌍한 목사가 누구입니까? 가장 초라한 목사가 누구입니까? 개척교회 목사입니까? 대형교회 목사입니까? 성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못한 목사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과 성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못할 때 가장 초라합니다. 또 다른 목사가 있다면 대중만 있을 뿐 삶을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가 없는 목사도 초라합니다. 혼자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혼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해 산에 올라가신 일 외에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무리는 떠나셨지만 제자들을 떠나신 적은 없습니다.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삶을 사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왕궁 지붕을 거닐며 눈에 보이는 도성과 위엄의 영광을 자랑하며 평안해 했고, 편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이 입에서 떠나가기 전에 하늘로부터 한 소리를 듣습니다.
31절입니다.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그는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들과 함께 7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혼자 버려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있었고, 건물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7년동안 안정된 삶은 사람들과 분리되어 홀로 수많은 소유들로 채운 큰집도 통장금고도 아닌 공생하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일지라도, 심지어 어려움을 주는 이들일지라도 함께 삶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이들에게 공의를 행하는 것이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삶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갖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있는 그곳에 나도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붙들고, 비록 불편하고 다르다 할지라도 사람들과 함께 있으십시다. 서로 겸손히, 온유하며, 오래 참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며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미쉘원로직스 가족, 임원들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대중 속에 있으며, 누구가 아닌 무엇과 있는 것이 편안하고 평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옵소서. 비록 다름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일하시고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풍성히 맺어져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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