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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애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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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눈물의 애국자 예레미야
렘애1:1-5
08. 6. 1, 애국. 환경주일
* 광우병, 시국, 환경주일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호국보훈(護國報勳)이란 나라를 수호한 공로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이만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 라고 합니까? 그것은 6일은 현충일이고 6.25사변이 일어난 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날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6.25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람들에게서 애국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애국은 사람됨의 기본입니다. 애국할 수 없으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기업가도, 목사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기본이 바로 애국입니다. 가정도, 학교도, 교회도, 기업도 애국심이 있어야 합니다. 애국심이 있어야 성공 할 수 있습니다. 애국심 없는 기업가는 장사꾼에 불과합니다. 애국심 없는 정치가는 권력가일 뿐입니다. 애국심이 있을 때, 우리는 살맛이 납니다.
한국의 역사는 실로 눈물의 역사였습니다. 피와 눈물의 역사! 수 천 년을 매 맞고 짓밟히고 조롱받고 속임을 당하는 우리의 역사! 아직도 고난이 끝나지 않아서 남북이 대치하고 살아야만 하는 고통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역사를 "눈물이 없이는 쓰지 못하는 역사. 쓰다가도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몰라도 우리 역사는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은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역사도 피로 얼룩진 역사입니다. 압제와 항거,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계광장, 시청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
미국산 쇠고기를 완전개방한 것을 계기로 삼았지만 사실 정권의 거듭되는 잘못에 대한 항의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영어몰입교육, 0교시부활, 일제고사 부활, 고소영내각, 강부자 청와대, 한반도 대운하,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뉴타운 거짓공약핵심도시 재검토, 대북강경정책 등 불만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단순히 광우병의 문제가 아니라 굴욕외교에 대한 국민의 자존심 문제요, 농민을 지키고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자는 얘기 같습니다.
오늘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이스라엘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하여 생각함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으면 눈물의 선지라고 했겠습니까?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1. 예레미야
그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베냐민 땅 아나돗에서 출생했습니다(렘 1:1). 남 유다 요시야 왕 제13년 곧 B.C.627년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년) 이후 유다 남은 백성들이 애굽에 이주하여 정착할 때인 B.C.580년까지 약 50여 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을 시작할 당시는 국제 정세는 갈대아와 앗수르가 세력 다툼을 하였으나 유다는 평화로운 상태였습니다. 선한 요시야 왕이 등극하여 성전을 정결케 하고 우상을 제거하는 등 내실을 다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B.C.609년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 왕 느고(Neco, B.C.610-595년)와 싸우다가 전사(戰死)(대하 35:20-24)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유다는 급속히 쇠퇴의 길로 치달았습니다. 유다의 왕들은 애굽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악행과 실정(失政)을 계속하게 됨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는 B.C.605년 바벨론에 의해 첫 침공을 당하여 복속(服屬: 전쟁에 패한 나라들은 승리한 나라에 복속하게 됨)하게 됩니다. 그 이후 유다는 B.C.597년과 B.C.586년 거듭해서 바벨론에 침공을 당하여 마침내 멸망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운명을 바라보았던 예레미야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눈물의 선지자"라고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함락된 예루살렘의 참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밤에는 슬피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 거쥬하면서 쉴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뛰따라 잡았도다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애1:1-4).
예레미야는 유다의 패역함을 깨우치기 위해 소명 받은 선지자입니다 (렘 3:11-22).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백성들은 물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를 배척하고 핍박한 것입니다(렘 11:21-23; 26:6-9).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는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렘 27:17). 이 말 때문에 예레미야는 동족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거나 세계정세에 대한 기회주의적 외교를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그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렘18:6).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백성들이 듣지 않고 배척하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는 몇 차례에 걸친 투옥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렘 20:9). 그리하여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소명 의식이 투철하고 인내심이 강한 선지자였습니다 (렘 20:1-3; 37:13-15; 38:4-18).
2. 그리스도인의 애국
내촌감삼은 말하기를 "우리는 일찍이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이 속한 현실 세계와 육신이 죽은 후에 돌아갈 영원한 하늘 나라와 두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둘 중에 하나에만 치우쳐 살기 때문에 현실을 빙자(핑계)하여 신앙을 소홀히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신앙을 빙자(핑계)하여 현실은 외면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누구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모세나 신약의 바울 사도와 같은 사람이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걸고 사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모세와 다윗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여 고대국가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요, 다윗은 통일 왕국을 견고히 세운 최고의 정복군주였기 때문입니다. 80세가 된 모세, 어린 목동 다윗, 왕후 에스더, 포로인 느헤미야 모두 애국자였습니다. 우리 모두 애국신앙으로 신본주의 애국자가 됩시다.
①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아론과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게 되었습니다. 돌비가 깨지고 삼 천명이 죽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노가 풀리지 않자 모세는 이렇게 간청합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출 32:32). 백성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② 느헤미야 1:1-11에 보면 느헤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는 동족들이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는 울며 조국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③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르드개에게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 4:16).
땅위에 주소를 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나라가 평안할 때 비로소 신앙 공동체인 교회도 평안할 수 있지만 만일 국가가 외세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빼앗기거나 경제적으로 피폐할 때 교회 운영도 선교도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일컫는 유월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더욱 나라 사랑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애국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국민의 의무를 잘해야 합니다. 병역, 납세, 교육, 근로의 의무를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
만일 어떤 사람이 큰 성공을 했다면 그 성공 뒤에는 남 모르는 희생과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한 나라가 번영했다면 번영을 위해 말없이 희생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명실공히 세계 위에 군림하는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그러한 나라가 되기까지에는 무명의 소시민으로부터 이름 있는 장군이나 대통령들의 헌신과 봉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 당시 한 병사가 적군에게 붙잡혀서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집행관이 "마지막 할 말이 없는가?" 라고 묻자 집행관에게 그 병사는 "내게 내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인 것이 유감입니다" 라고 말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미국이 그냥 있어진 것이 아니고 이렇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만큼이라도 자유와 번영을 누리면서 사는 것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던져 이 나라를 구한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 시대 한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장, YMCA 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이상재 선생이 3·1운동 당시 일본 순사로부터 심문을 받을 때,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가?'고 하자, '하나님이 시켰소'라고 했고 '3·1운동의 본부가 어디 있는가?'라고 하자, '하늘에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신앙과 애국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3·1운동 때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에 16명이 그리스도인과 목사들이었던 것은 어느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6.25사변 시에 전선 곳곳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전우들의 피가 오늘의 이 강산 이 조국을 지켜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국이 없이는 교회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오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맡은 일을 충실히 하여 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교회와 성도가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를 꺾고,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높입시다.
* 6.25 하면 치를 떨고 아파하는 성도가 있어서 수위를 조금 조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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