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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민감성: 시대의 소리를 들으라

아모스 김기동............... 조회 수 1901 추천 수 0 2009.04.24 23: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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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암4:4-13 
설교자 : 김기동 자매 
참고 : 2008.03.02 새길교회 주일설교 

 어거스트 러쉬라는 영화는 아주 소리에 민감한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뉴욕 한 복판, 수많은 소음을 오케스트라의 합주로 들을 정도지요. 아직 10대 초반의 나이이며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소리에 대한 집중과 관심으로 갖는 아기때 잃은 부모를 찾는 행운아이기도 합니다.
  휴일 아침, 달콤한 잠과 휴식을 거부하고 일부러 이곳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지요? 이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지금 저를 통해 무엇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예배는 드리는 것, 하나님께 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는데, 우리의 삶을 통해 예배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신앙과 삶의 일치를 끊임없이 말하는데 과연 그 일치는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적어도 신앙인으로서의 진실된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신앙인으로 가져야 할 관심과 집중, 신앙인으로서의 민감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구별해 내고 들어야 할 참된 소리는 무엇입니까?

  아모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물론 본인이 직접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남긴 첫 번째 예언자입니다. 그는 원래 남 유다에서 목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서로 반목하던 북이스라엘로 건너가 하나님의 징벌을 외칩니다. 그 때는 북이스라엘이 300년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롭고 풍요를 누리던 때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이 평화와 풍요를 누리는 때는 주변 강대국이 미처 이스라엘 땅에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을 때입니다. 북이스라엘을 늘 위협하는 나라는 북쪽에 있는 시리아 다메섹이었는데, 주전 773년 다메섹은 앗수르에 의해 공략 당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아직은 북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그 때, 여로보암 2세는 그 틈을 타서 동부 요르단 지역을 탈환하고, 암몬과 모압을 제압했습니다. 영토가 확대되고, 세력이 확장되는 가운데,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해도 국내적으로 평화와 번영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난데없이, 남 유대 목자출신 한 남자가 와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렇게 평안을 누린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부르심을 받은 자 아모스는 그 평안함 속에 감추어진 사회정의의 부재를 간파합니다. 암2:6-8은 이러한 악의 현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부와 풍요는 결코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리는 현실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자나라라 해도 가난한 이는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부자가 얼마나 그 가난한 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가라는 것인데, 인간의 본성은 그것이 절대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복지정책을 법제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아모스가 본 이스라엘의 패역,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저지르는 가장 큰 악은 바로 그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짓밟고 억압하고 학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풍요를 즐기는 나머지 드러나는 성적 타락, 신앙의 왜곡 그 모든 것의 근원은 바로 선과 공의의 부재였습니다. 그 유명한 명령 ‘공의를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라’가 바로 아모스가 북이스라엘 한 복판에서 외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모스의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은 결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북이스라엘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배하기에 열심이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힐난합니다. 풍부한 제물을 통해 더 풍요로운 삶을 보장받길 원하고, 예배하는 행위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보증으로 여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국가 성소 베델과 길갈을 찾는 것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들에게 아모스는 하나님의 입을 빌어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선고합니다. 6-11절까지 이 말은 5번 반복됩니다. 기아, 흉년, 자연재해, 전염병, 전쟁. 어떻게 보면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열거된 내용들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모스의 이 처절한 외침은 풍자인 동시에 현실인식인 것 같습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풍자로서 절대적 파국과 징벌의 선언입니다. 인간의 무력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돌아오지 않는데, 하물며 안락을 누리는 너희들이 돌아오겠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지구 한복판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우리들에게는 신앙의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면, 12절은 이 풍자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 구원의 날이라 하며, 그 날을 기꺼이 준비한다는 이들에게 아모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준비해 봐라, 하나님을 만나 봐라 그것이 과연 너희들이 원하는 바와 같은지, 경험해 보아라’

  특히 사회 정의, 윤리 문제에 집중하는 아모스의 예언의 뿌리가 과연 어디인가라는 문제에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합니다. 계약법 안의 정언법규에서 온 것이다, 그 당시에 씨족지혜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 그 당시의 윤리규범을 차용한 것이다 등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봐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예언의 뿌리 문제가 아니라, 아모스는 현실 안에서 바로 그 불의한 사회현상에서 하나님 신앙과는 맞지 않는 악의 편재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모스에게서 드러난 신앙인의 민감성은 그 시대 악의 근원은 곧 사회불의라고 간파한 것입니다. 수 천 년을 넘어 지금까지 아모스의 외침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가 활동한 기간은 기껏해야 단지 몇 달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지금도 여전히 우린 안에 불의가 판치고 있다는 점에서 유효합니다.

  어제는 삼일운동이 있은 지 89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많은 교회들은 삼일절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독립선언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그 당시 기독교인은 인구의 1.3% 정도였지만, 만세운동에서 참여한 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을 들어 대단히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를 폄훼하는 자들은 33인에 있던 기독교인들은 사실상 주동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일제 35년간 결국은 변절한 자들이 많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우이동에 가면 봉황각이 있는데, 어제 그곳에서 삼일만세사건을 재현하는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그곳은 손병희 선생이 1912년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독립운동이 실질적으로 구상되고 실현된 곳입니다. 33인의 민족지도자 중에서 15인이 이곳에서 배출된 천도교도들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민족이 스스로 자각하여 식민지 억압에 저항하고 자유를 선포하는 거국적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33인의 연합에서 또 하나의 다른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천도교, 불교, 기독교, 종교의 차이는 더 이상 시대의 소리 앞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발을 두고 있지만, 절대자를 소망하는 자, 그 신앙인으로서의 민감성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의 신앙 안에서 하나님/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용납할 수 없는, 그 시대에 편만하고 시급한 악의 현실이 무엇인지 공감하며 간파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 억압은 곧 한 민족의 삶과 정신을 말살 시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엄성의 상실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입니다. 하나님, 절대자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곧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난 것이지요.

  21세기로 돌아와서 다시 질문합니다. 여전히 하나님 신앙을 찾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인의 민감성은 무엇일까요? 아모스에게는 풍요 속에 가려진 사회 불의의 현실이 하나님의 뜻에 배반하는 가장 큰 악으로 다가왔고, 일제시대 한국민들에게는 식민지 억압이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가장 시급한 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이 시대, 신앙인의 민감성으로 시급하게 간파해야할 악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아모스에서 같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면, 하나님이 가장 통탄할 악은 무엇일까요?

  아모스의 외침이 귓가에서 자꾸 메아리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은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너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여라’

  매일 하나님을 찾는 이들로 넘쳐나고, 예수 사랑을 외치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정의와 사랑은 뒷전인 채, 자기 안에 쌓고, 자기들만의 사랑과 풍요를 즐기면서 회개는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의 몫인 양 외치는 대다수 한국교회 현실 앞에서 이 아모스의 고발이 다시 외쳐지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나를 찾는다고 하지만, 제일 악한 것들은 바로 너희들이야라는 하나님의 질책이 한국교회 안에 주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은 신앙인이 있어,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89년 전 삼일운동 만세 소리를 통해 보여준 신앙의 담대함, 그리고 21년 전 새길교회를 탄생케한, 그 군부독재 말기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소명에 대한 깨달음, 그것은 하나님 신앙 안에서 들려오는 시대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이 시간, 이 시대 돌이켜 회개해야 할 가장 큰 악이 무엇일까, 세미한 음성 가운데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를 구별하고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귀기울임으로 이 시대를 위한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아침,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유는 바로, 그 소리를 듣기 위함이며, 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격을 통하여 그 소리에 응답하기 위함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듣기를 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선과 정의 앞에서 우리의 악과 불의를 고백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명을 되찾길 원합니다. 신앙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우리들에게 그 원함대로 참되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악을 악이라고 담대히 고백하므로, 회개와 구원의 새로운 시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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