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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망각의 심판

아모스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171 추천 수 0 2009.07.29 1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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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암8:4-12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38492 

emoticon
목자 아모스

아모스는 여러 면에서 특이한 인물입니다. 1장1절에 따르면 아모스는 남유다 지역인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예언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족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닌 평범한 목자가 이런 예언을 했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닙니다.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과일을 팔던 장사꾼이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아모스가 목자이긴 했지만 그 어떤 전문적인 예언자들보다 훨씬 영적인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한다는 게 그저 자기 혼자 나선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성령의 활동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아모스의 예언이 이렇게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아모스에게는 평소에 상당한 수준의 영적인 훈련과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모스는 위에서 말한 대로 남유다 출신이지만 예언 활동은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와 벧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재위(주전 786-753년) 기간의 한 시점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한 해가 주전 721년이니까 아모스가 활동할 때는 아직 국운이 쇠하기 이전입니다. 오히려 정치,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힘을 유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전문적인 예언자가 아닌 목자 아모스가 예언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 당시의 종교적 상황을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떤 특별한 예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태평스러운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면 굳이 예언자가 나서서 트집을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언자의 일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그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평화가 작동되는 시기에는 예언자가 입을 다무는 게 옳습니다. 그러나 아모스 전체를 통해서 볼 때 그 당시의 이스라엘은 겉으로만 평화스러운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사회적으로 매우 바르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그 당시 전문적인 예언자들이 어용적이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언자들의 실존은 이 두 경계선 사이에서 위태롭게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확실하게 서서 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과 전적으로 정치 권력자의 입장에 서서 어용의 길을 가는 것 말입니다. 목자 아모스가 예언활동에 나설 정도로 사회 문제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었는데도 전문적인 예언자들이 앞에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들의 어용성에 대한 반증입니다. 사실 종교는 늘 이런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기득권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을 각오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종교는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또는 그런 기득권자들까지 위로해야 한다는 일반론 때문에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이런 생각에 젖어들면 이 세상의 실상이 예언자의 영적 촉수(觸鬚)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무의식에서 거부되고 있는 대상은 그 사람의 실제 의식에도 포착되지 않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참된 예언자들은 그런 사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고 생생하게 깨어있는 영적 통찰력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사태를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비인간화의 극치

그 당시 전문적인 예언자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은 사회 현상이 아모스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보지 못하거나 약간 낌새를 알아채도 쉬쉬했겠지만 아모스는 노골적으로 까발렸습니다. 그 내용이 4-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흙에 묻혀 사는 천더기의 숨통을 끊는 자들아, 겨우 한다는 소리가 “곡식을 팔아야 하겠는데 안식일은 언제 지나지?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가짜 저울로 속이며 등겨까지 팔아먹어야지. 힘없는 자 빚돈에 종으로 삼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 종으로 부려먹어야지” 하는 자들아.

지금부터 2천7백년 전의 예언자의 입에서 나온 이 예언은 우리 인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천민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우리의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 가짜 저울로 가난한 사람들을 속여 돈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아주 순진했을 법한 고대 사회에도 여전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우리는 자기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인간을 제외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동물이나 생명체도 이미 자신의 생존 조건이 충분하게 주어진 상태에서 상대방을 수탈하지 않습니다.

아모스의 예언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사회가 눈감고 있지만 인간의 생명과 생존을 파괴하는 현상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곧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입니다. 아모스 시대에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고, 푼돈으로 그들을 종으로 삼는 행위였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는 어떤 것들일까요? 저는 그런 현상을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현상은 약간의 세계 통찰력만 있으면 저절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옆에서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의 영성이 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아닌지 예민하게 성찰해야만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신앙이 좋다고 말하는 형편이니까요. 저의 주장도 역시 부분적인 데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순전히 인간의 개인적인 종교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종교 행위는 분명히 영성의 왜곡이며, 그 결과로 이 세상의 사태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인간 중심의 예배와 종교 행위가 왜 문제일까요? 왜 그게 영성의 왜곡일까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도 결국 우리의 마음이 편해지자는 것, 또는 예수님 믿고 축복하고 구원받자는 것이니까 교회의 신앙활동은 당연히 신자들의 마음과 감정을 위로하는 쪽으로 꾸려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열린예배, 찬양과 경배, 상담술, 멀티 프로젝트, 가벼운 복음찬송 중심의 예배 등등.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예배와 교회 행사는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고 재미를 느끼고 감정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속화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하나님의 통치는 상실되고 인간의 종교적 재미만 과잉 생산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종교가 흡사 대중들에게 ‘아편’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오늘 아모스의 영적인 시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계시 망각

아모스는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를 잊지 않는다고 경고합니다(7절). “대낮에 해가 꺼지고 백주에 땅이 캄캄해지거든” 그것이 곧 야훼의 일인 줄 알라고 합니다(9절). 이스라엘의 마지막 날은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10절). 이런 예언이 기원전 721년의 멸망을 내다본 것일 수 있긴 합니다만, 반드시 그런 역사적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심판의 예언은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명백한 진단입니다. 푼돈으로 가난한 자를 종으로 부려먹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그 공동체의 마지막은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 아모스의 영적인 분석에 따르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이 역사에 간섭하십니다. 아모스의 예언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그 예언이 구약성서에 선정되었겠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이 예언은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설령 이스라엘의 멸망이 늦었다거나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예언자의 눈에 이스라엘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칼과 재난에 의한 것만이 아닙니다. 굶주림과 갈증과 전염병 같은 것들만이 아닙니다. 이런 재앙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서 일어나기도 하고, 재앙이 끝난 다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대낮에 해가 꺼지고 백주에 땅이 캄캄해진다는 자연 재해나 상여 소리 퍼진다는 군사적 재앙보다 더 근원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아모스는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서 굶주린 것이다.”(11b). “야훼의 말씀을 찾아도 들을 수 없는 세상이다.”(12b). 오늘 본문의 전체 구조를 통해서 볼 때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사태는 이스라엘의 불의로 인해서 임하게 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물론 이것이 곧 심판을 불러일으키게 된 원인일 수도 있긴 합니다. 아모스에 의하면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심판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한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문맥적으로 심판의 결과로 보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11절 전체를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 이 말씀이 이해되나요? 양식과 물이 부족해서 당하는 생존의 위기가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장은 이해되지만,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서 굶주린다는 게 왜 하나님의 심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생각해서, 앞으로 적군에 의해서 이 나라가 멸망당하게 되면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모스가 그런 정도의 의미로 이런 예언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아모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전통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끊어진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야훼의 말씀에 굶주리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아모스가 가리키고 있는 이 야훼의 말씀, 곧 그의 계시는 인간의 죽은 언어가 아니라 야훼 하나님 자체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늘 진리를 담아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릴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망각되고 인간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설교는 아무리 많이 외쳐진다고 하더라도 무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이 가장 큰 위기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예배와 설교는 자주 행해지지만 하나님은 점점 더 망각되는 이런 사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서 굶주린다는 아모스의 예언을 대충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깊은 의미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설령 깊은 의미를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더 이상 그 문제가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흡사 음악 경험 없이도 얼마든지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광휘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세계가 우리에게 점차 또렷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생명, 부활, 평화, 기쁨, 자유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일상에 중심이 되고 있나요?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의미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미 우리의 개인과 사회와 교회 안에는 그런 심판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는 담소는 많지만 하나님의 세계를 치열하게 구도하듯 파고드는 설교와 신앙이 우리 주변에 드물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어처구니없이 우리는 지금 말씀에 굶주려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2004.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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