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암5:1-15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정의를 외친 선지자 아모스
찬송 : (338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본문; 아모스 5:1∼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
오늘은 이스라엘의 농부 출신인 공의의 선지자 아모스에 관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인적사항 및 생애
아모스라는 이름의 뜻은 '짐꾼' 또는 '무거운 짐을 진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모스는 남방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6마일 남쪽에 떨어져 있는 드고아 고원에서 목축을 하며 뽕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일개 농부가 아니라, 은둔 한 야인(野人)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 아모스서의 저자로서, 그의 문체를 살펴보면, 상당한 수준의 학문을 갖추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아들이 아니었고 일개 농부였습니다.(암7:14) 그러나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도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북이스라엘의 벧엘에 가서 예언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한 연대는 남쪽 유다 나라에서는 웃시야 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있을 때라 하였으니 북왕국이 멸망하기 30년전입니다. 그는 남쪽 유다 왕국 출신이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벧엘에 가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고 그를 위하여 예언하였습니다.(암7:11-13)
아모스는 요엘 선지자나 호세아 선지자와 비슷한 시기의 선지자로 이들과 서로 만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서로 격려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당시의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 상당히 번영하였습니다.(왕하14:23-29) 이스라엘의 국운도 최고도로 발전되어 백성들이 다 자유를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죄악도 최고도에 달하여서 도처에 악취가 심하였습니다.(암2:6-8)
왕은 상아로 장식한 호화로운 궁전을 가진 것 이외에 계절을 즐기기 위한 여름 궁과 겨울 궁을 따로 세웠고, 부유한 자들은 상아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송아지를 잡아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렸습니다.(암6:5) 따라서 빈부의 차이는 극심하였고, 부정과 부패는 극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현상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라는 구절들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빈부 격차와 착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상업윤리도 똑같은 정도로 전락하여, 저울을 속이며 쭉정이를 알곡에 섞어서 팔아, 부당이득을 취하는 현상이 다반사였습니다.(암7:3-5) 성윤리 또한 극도로 문란했습니다.
'부자(父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라는 지적만으로도 당시의 세태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이와 같이 죄가 많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강한나라(앗수르)를 시켜서 치실 때에 천 명이 나가서 싸워서 백 명만 남을 것이요, 백 명이 나아가서 싸운 성읍에서는 간신히 열명만 남도록 패망을 할 터인데, 이때에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로 피하여도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요 다만 하나님께로 피하여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만이 살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암5:3-5)
선지자 아모스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서 무서운 예언을 할 때에, 백성들은 그 사실을 두렵게 생각하고 회개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지자를 미워하며 바른 말하던 자를 싫어하였습니다. 이것은 죄를 고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고로 반드시 이것에 보복하시되, 앗수르의 대군을 몰아넣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아로새긴 돌로 지은 집에서도 거하지 못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고 그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죄를 짓고는 살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고집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은 심판대 앞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암9:2-10)
아모스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두려운 심판을 면하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암5:1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5:24)라고 모든 백성들에게 악을 떠나 회개하기를 촉구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이 풍요로운, 그러나 극도로 타락한 이곳에 정의의 심판을 선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자, 결국 예언대로 북왕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모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 여호와를 찾으라,그리하면 살리라
주전 750년께 이스라엘에 아모스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남쪽 지방에서 양을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던 목자, 농부였고 북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한 선지자였습니다. 특별히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궁극적 원인이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삶의 자세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그 앞에서 공의를 행치 않은 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살펴보면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또 국가 경영에도 육로와 수로를 이용한 중개무역으로 부를 크게 증진시켰습니다. 그러나 부유층과 서민 사이의 빈부차가 극심했고 흉악한 인신매매까지 공공연하게 자행됐습니다. 하나님을 잘 공경하던 백성들은 부유해지자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만 섬겼습니다. 관리들은 가난한 자를 핍박하고 뇌물과 부당한 세금을 취하였으며 의인과 선지자를 배척했습니다. 즉, 아모스 시대는 겉으로는 국력이 막강하고 화려했으나 내적으로는 죄악과 부패가 극에 달했던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개인과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상모략 흑색선전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습니다. 국민은 더럽고 힘든 직종을 기피하고 화려한 옷과 가구 등 사치스러운 생활에만 탐닉합니다. 매매춘 동성연애 마약 인신매매가 난무하고, 고춧가루에 톱밥을 섞어 팔고 어린아이들이 먹는 사탕에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에서 보듯이 기본적인 윤리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모스 당시 북이스라엘이 그랬듯이 한 나라가 외적으로 크게 번영할 때는 항상 그 이면에 극심한 종교적 도덕적 타락과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심이 팽배해집니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한국에 세계적으로 큰 교회가 많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형식은 번지르르하며 예배 순서는 그럴 듯하게 꾸며져 진행되고 있으나 깊은 은혜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감사의 찬송이 없고 죄를 깨닫는 애통의 눈물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 대해 엄하게 경고했습니다.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6절)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9절) 그리고 간절하게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선포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6절)
우리도 이제 입술만의 회개가 아니라 우리 행위와 죄를 철저하게 자복하면서 끊을 것은 끊고 죄에서 완전히 떠나 “내가 어찌할꼬”하며 마음을 찢는 깊은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 이기적인 내 모습은 철저히 죽이고 내 안에 있는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아 주님만 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죄악 중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인생이 아직 연약할 때에,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외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그 사랑을 기억하고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죄 때문에 무서운 심판을 받으니 망하기 전에 어서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8) 진정 여호와를 찾으면 삽니다.
3. 이스라엘의 죄악상
이스라엘이 아모스 때에 수리아로부터 잃은 영토를 되찾고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되자 백성들은 안일한 생활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악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의식은 여전히 지켰으나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백성들에게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아모스 5:5, 6)고 외쳤습니다. 벧엘은 여호와를 공경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졌지만 우상숭배하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길갈과 브엘세바도 역시 우상숭배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우상을 섬김으로 신앙적으로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의를 외면하고 불의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공법을 인진(쓴 풀, 사철쑥)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모스 5:7)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의를 외면하고 불의를 행함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와 같이 아모스 시대는 이스라엘 땅에 강포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셋째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것을 착취했습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그들에게서 착취한 돈으로 호화로운 집에서 사치와 향락을 누렸습니다(아모스 3:15, 6:4∼6). 그래서 큰 집에는 도둑질한 물건이 가득 찼고 장사꾼들은 저울눈을 속였으며(아모스 8:5, 6) 부정과 부패가 횡행하였습니다(아모스 5:12).
넷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실한 사역자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그 시대상을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아모스 5:10)라고 꾸짖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꾸짖고 심판을 경고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한 나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불의가 가득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1:28- 32)
4.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
미국 연방 대법원장을 지낸 호레이스 그레이 대법관이 어느 날 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무죄석방을 받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범법자를 알아본 그레이 판사는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유죄인 것은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소. 당신에게 꼭 일러둘 말이 있소. 후일에 당신은 인간보다 현명하시고 뛰어나신 재판장 앞에 설 것이오. 거기서는 세상의 법률이 아니라 공의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어둠이 판치지만, 빛이 비치면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공의가 없어지면 죄인이 판치는 세상이 되지만, 공의가 이루어지면 죄인은 설 곳을 잃습니다. 의인은 공의를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공의가 이루어지면 만족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공의를 행하기를 싫어하고, 공의가 이루어지면 두려움 가운데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에 그리스도인은 항상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의를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잠21:15)
재판석의 마차바퀴
독일에 '츄비켄' 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곳에 한 재판소가 있는데 이상스럽게도 법정에 들어서면 재판관석 정면 벽에 마차바퀴가 걸려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의구심을 가질 것입니다. '어째서 저 마차바퀴가 이 신성한 법정의 재판석을 내려다보며 걸려 있을까?' 사연인 즉 이렇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 츄비켄 마을에 한 신실한 청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었습니다. 청년은 조그마한 빵 가게를 운영하였는데 빵굽는 기술이 뛰어나고 또 언제나 정성을 들여서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인기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밀가루가 떨어져서 읍내로 밀가루를 사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동네 친구가 도와주기로 약속하고 함께 동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밀가루를 구입한 후 돌아오려하자 그 친구는 신실하지 못해서 약속을 어기고 딴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청년은 밀가루 두 포대를 혼자 짊어지고 돌아 왔습니다. 몇 일후 동네가 어수선해졌습니다. 이유인즉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던 그 신실하지 못했던 친구가 실종되었던 것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무래도 빵집 청년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몇 일전 읍내로 함께 나가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으며 그 이후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마을의 유지로서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성품이 나빠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사람으로서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며, 정직하지 못하였으며 약속을 어기는 것은 다반사 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급기야 그 아버지는 청년을 의심하게 되었고 자기 아들을 살해했다고 검찰에 고소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무 잘못도 없는 청년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구속을 당하고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날, 그 아버지는 돈으로 법관을 매수하고 또 살해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거짓증인까지 동원해서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결과는 사형이었습니다. 마을 한 복판으로 끌려간 청년은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죽이는 방법이 잔인했습니다. 청년을 눕혀놓고 그 위로 마차바퀴로 수없이 지나가게 하여 목숨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억울함을 변론할 틈도 없이 마차바퀴 아래서 피를 튀면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늙은 노모는 가슴을 쥐어뜯다 기절해버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죽었다던 문제의 친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보니 죽은 청년과 함께 읍내로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일을 돕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좋아서 약속을 어기고 놀다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청년의 아버지가 불의한 일을 꾸며 법관을 매수하고 거짓증인을 세운 것이 탄로가 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청년의 목숨이 끊어졌습니다. 이 기가 막힐 노릇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난 동네 사람들은 마차로 달려가 피 묻은 마차바퀴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법정으로 몰려가서 재판석 벽에 걸어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즉 이 잘못된 일을 거울삼아 다시는 판결을 굽게 하지 말라는 상징이었으며 그 후 오늘날까지 걸려져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된다고 분노하시겠지요? 하지만 이런 불의한 일들은 오늘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러한 일에 공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억울해서 어떻게 세상을 살겠습니까? 그냥 묻어지고 잊혀지고 맙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다'했습니다(창4:10). 하나님은 훗날 모든 은밀한 일에 대해 선악간에 심판을 하십니다. 이때의 판결은 결코 굽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에 들어갑니다. 한번 죽으면 끝이 아니라 둘째 사망이 있으며 이것이 곧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떠한 죄라도 용서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마차바퀴가 주는 교훈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판결을 굽게 하지 말며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0 (시편 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0 (시편 106:3)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17:15)
먼 옛날 중국에서 조조가 나라를 다스릴 때, 봄철이면 군인들이 술을 먹고 말을 탄 채 보리밭과 밀밭에 뛰어들어 전쟁놀이를 하는 통에 농사를 망가뜨리곤 했습니다. 때문에 농부들은 크게 낙심을 하고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사실을 안 조조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술을 먹고 말을 탄 채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는 군인은 극형에 처하겠다’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 엄명을 어긴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조조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오는데 그만 이 말이 습관적으로 보리밭으로 뛰어들어 밭을 망가뜨렸던 것입니다. 뒤늦게 술이 깨어 이 사실을 안 조조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사형틀에 자신의 목을 얹고 ‘당장 내 목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와 백성들이 크게 놀라 극구 말렸고 간신히 조조 대신 말의 목을 치는 것으로 문제를 수습했습니다. 이런 조조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은 군인들은 이후 다시는 술에 취해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잠17: 26)
* 공의와 사랑
옛날에 어머니에게 효성이 아주 지극한 왕이 있었습니다. 나라도 잘 다스렸는데, 백성들이 법을 반드시 지키도록 형벌을 엄하게 했습니다. 법을 어기는 자는 누구든지 잡아다가 40대씩 매를 쳤습니다. 이른바 태형입니다. 그러자 나라의 질서가 제대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교롭게도 왕의 어머니가 범죄를 저질러서 왕 앞에 붙들려왔습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저마다 근심스러운 얼굴로 ‘저 효성이 지극한 왕이 이제 자기 어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에 어머니라고 봐준다면 모처럼 세운 이 나라의 공의와 질서는 와르르 무너져버릴텐데..... 어찌될 것인고?’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재판장 자리에 앉은 왕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만에야 무겁게 입을 열어 명령했습니다. “저 여자를 기둥에 묶으라! 그리고 법대로 40대를 매우 치라!”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니 안칠 수가 없었습니다. 막 치려는 순간, 갑자기 왕이 달려들어 자기 옷을 다 벗고 어머니를 꽉 껴안았습니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40대의 매를 고스란히 다 맞았습니다. 왕의 등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이 나라의 공의를 드높이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5. 아모스의 3가지 환상
아모스는 세 가지 환상을 통해 여호와의 진노를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1) 메뚜기의 환상 (7:1-3)
이는 풀이 움을 돋우려고 할 때, 황충떼가 몰려와 모든 풀을 다 먹어 치우는 환상으로 장차 임하게 될 외세의 침략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초토화 될 것을 예언한 것이며
2) 불의 환상은 (7:4-6) 바다와 육지를 다 삼키는 공포 이는 불이, 주로 '가뭄'의 현상을 비유로 나타낸 것으로 온 땅이 가뭄의 재해를 만나 흉년과 기근이 퍼짐을 예언한 것이고
3) 다림줄 환상 (7:7-9)
여로보암왕 가문을 칼로 치고 멸망시킬 것이며 , 이미 다림줄로 재었은즉 온 성과 산당을 허물어 버리리라는 심판의 경고였습니다. 이 경고는 당시 벧엘에 금송아지를 모시고 있는 제사장 아마샤의 마음을 두려움과 격동을 일으키게 만들었고 그는 즉시 왕에게 아모스가 모반을 일으키고 있다고 모함하여 그를 처벌하게 만드는 한편 아모스에게 말하기를 '너는 유다땅으로 도망하여가서 거기서 예언하고 다시는 밷엘에서 예언하지 말라.'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 삯군 목자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기구역, 자기위치, 고수에 있는 것을 봅니다. 이에 아모스는 대답하기를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7:17) 하였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아모스는 유다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이스라엘은 아모스의 예언 후 60년이지나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① 이스라엘 백성은 물질적 풍요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6:3-6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흉한 날이 멀다고 말했습니다. 환난 때는 오지 않는 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강포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상아로 만든 침대에서 자고 기지개를 폈습니다. 송아지와 양을 위하여 먹었습니다. 악기를 만들고 악기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렸습니다. 몸에 귀한 기름을 발랐습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이 '대접'은 성전 제사에서 사용하는 대야를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전혀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환난'은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빠뜨리고 애굽에 내려가는 상인에게 팔았습니다(창37:23-25). 그들은 요셉이 애원과 울음을 외면했습니다. 창세기42:21에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요한 자들은 자기들의 즐거움과 유익을 위해 가난하고 의로운 자들을 학대했습니다. 의로운 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곧 자신들의 부요와 향락과 방탕에 취하여 살면서 의로운 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돈과 향락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기들의 영혼과 하나님 영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군대를 통해 그들을 치고 그들을 사로잡아 가게 하므로 그들의 떠드는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게 하겠다고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7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자로 살까? 어떻게 하면 잘 살까? 어떻게 하면 쾌락을 누리며 살 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가난한 사람의 고통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일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도 생각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에만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그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돈의 종이 됩니다. 돈에 속아서 살아갑니다. 돈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거나 행복을 유지시켜 주지 못합니다. 디모데전서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추구하는 모든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누려보았지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전1:2).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밭의 소출이 풍성해지자 곡간을 더 크게 짓고 곡식을 쌓아 둔 다음 '여러 해 먹을 것을 쌓아 주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영혼을 취해가면 그것들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며 어리석은 자로 규정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 주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지 못한 자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눅12:21). 야고보서4:13-14에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형적은 자 지나갑니다 (고전7:31).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영원합니다 (벧전1:24-25). 영원한 것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아무 것도 가져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딤전6:7-8). 가난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검소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빚지고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잠22:7). 풍부하나 궁핍하나 일체의 비결을 배워 자족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빌4:11-13). 그리고 영혼이 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원한 가치를 가진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최고의 가치를 가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②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다림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7:7-9에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에게 다림줄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담(벽)에 주께서 다림줄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림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림줄'은 건축을 할 때 담을 바로 쌓기 위해 끝에 추를 달아 수직으로 늘어뜨린 줄(실)입니다. 건축자는 그 다림줄에 맞지 않게 비틀게 쌓아진 부분은 헐고 다시 쌓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를 하나님의 시각에 맞지 않는 것을 허물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것도 성소와 산당에서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도구인 대접으로 술을 마시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성소와 산당을 훼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11:1-2에 보면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요한에게 성전을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성소)과 제단과 그 곳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청량하고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밖 마당과 그 곳에 있는 자들은 이방인에게 주어 42달(3년반) 동안 짓밟히게 한다고 했습니다. 전반기 환난 기간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표준 안에 들어온 자는 환난 기간 동안 보호해 주고 들어오지 못한 자는 보호해 주지 않고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은 환난 중에도 은혜 가운데 보호해 주나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자는 보호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대로 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고 하나님의 표준에 맞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전3:12-15).
본문이나 요한계시록이나 강조된 것은 성전 제사 곧 예배입니다. 8:1-2에 보면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여름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면서 이스라엘을 용서치 않겠다고 했는데, 8:5에 보면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라고 했습니다. '월삭'은 한 달에 한번 지키는 절기입니다. '안식일'은 일주에 한번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때 가장 강조된 것은 제사 곧 예배입니다. 그들은 월삭과 안식일 제사를 드리면서도 곡식 걱정입니다. 각색하면 "이 놈의 주일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와 카드결제일보다 더 빨리 돌아와 예배는 왜 이렇게 늦게 끝나 빨리 가서 일해야 되는데..."입니다. 일주일 밤낮으로 일하고 공부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예배를 위해 할애 못합니다. 텔레비젼 볼 때나 게임할 때나 잡담할 때나 데이트할 때는 수 시간 앉아 있으면서도 엉덩이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하면서 예배는 한 시간만 넘어도 인상이 변합니다. 교회 오래 다닌 사람은 예배가 길다고 말하면 자기 믿음 없는 것 드러날까 봐 초신자들 때문에 길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초신자들은 다 은혜받고 더 길었으면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40일이 걸렸고 40일 동안 떡과 물도 먹지 않고 교제했습니다 (출34:28).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지, 어떻게 판단하실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 불편하게 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③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8:11-13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주었으나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변질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영적인 기근을 당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지므로 젊은 사람들까지도 말씀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얻지 못하고 피곤하여 비틀거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양식인 순전한 하나님 말씀이 풍성히 주어질 때에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배우고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태복음4:4에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3:13-15에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주님 앞에 인정받는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 앞에 발견된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빌3:9). 주님께 가장 관심을 끌다가 주께서 오실 때에 가장 먼저 발견된 자 되어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6. 아모스의 경고
첫째로,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장소가 파멸당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아모스는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아모스 5:5)고 말했습니다. 아모스는 우상숭배의 도시인 길갈과 벧엘이 허무할 정도로 폐허가 되고 그 신상들도 멸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둘째로,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을 것을 경고했습니다. 아모스는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아모스 5:6)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한 나라를 일으켜 불의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을 경고하셨던 것입니다(아모스 6:7, 14).
셋째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와 착취로 얻은 것을 탈취당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잠언 24:12)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의로 지은 집과 착취한 재산을 탈취당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무엇을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불의를 심으면 근심을 거두고, 의를 심으면 기쁨과 화평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 기근이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갈하는 영적 기갈의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아모스 8:11).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히12:25)
7. 아모스의 권면
아모스는 곧고 솔직한 성품을 지닌 선지자였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한 후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권면했습니다.
첫째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찾을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아모스 5:6)고 외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살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헛된 우상을 찾는 자들과 함께 멸망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내다보고 그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아모스 5:14, 15)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직과 공의로 선을 행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를 심판하시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불의를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불의를 미워하고 선을 찾고 행해야겠습니다.
8. 아모스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을 살펴봅시다.
(1) 목자로서 가정에 충실했던 아모스는 아마샤의 갖은 협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메시지를 외침으로써 선지자 사역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2) 어떤 종교제도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의 정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종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모스의 신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3)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할 때 그들의 위선적인 종교 행사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오늘날 형식적인 예배와 도덕적 타락으로 일관해 온 사치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자들에게 아모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담대히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합시다. 성도들 각자가 공의를 흘러 보내는 작은 샘들이 되고, 교회가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공의의 수원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찾는 나라, 선을 행하고 정의를 세우는 나라, 그리고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나라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심판 대신에 더욱 복을 받아 번영을 누리도록 하는 일에 앞장 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공의와 공평 가운데 서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이 땅에 세우신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공의에 겸손히 무릎꿇게 하소서.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심을 알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언제나 겸비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