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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역사를 이렇게 주관하십니까, 하나님

요나 최용우............... 조회 수 2107 추천 수 0 2012.07.05 23:45:48
.........
성경본문 : 욘4:1-11 
설교자 : 한완상 형제 
참고 : 2012.6.24 http://www.saegilchurch.or.kr/sermon/121748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어찌하여 역사를 이렇게 주관하십니까, 하나님- 62년 전 6.25전쟁을 생각하며

(요나 4:1-11, 누가복음 11:32)

 

2012년 6월 24일 주일예배

한완상 형제

 

 

   6.25 전쟁은 내 머릿속에만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가슴, 내 창자 속에 녹아 있습니다. 6.25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통이 너무 억울하고 너무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그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이 21세기 우리 민족의 현실 속에 아직도 아물지 않고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기에,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정말 역사를 주관하시기는 합니까?

주관 하신다면,

어떻게 이렇게 우리역사를 주관하실 수 있습니까?“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나는 한국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기도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고 쉽게, 관례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때로는 참을 수 없는 허망한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지난 20세기 우리민족이 당한 고통과 그 고통의 억울함을 새삼 기억할 때마다 더욱 그러합니다.

 

   62년 전 6.25를 생각하며 우리는 지난 한 세기 간 우리 민족의 부당한 고난사(苦難史)를 잠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제국은 대만을 식민지로 삼켰습니다. 일본제국은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했습니다. 그 십 년 후인 1904년 노일전쟁을 승리한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키려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열강으로 우뚝 서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에 미국정부가 은밀하게 협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05년 미국 해군장관 태프트(후일 미국의 대통령이 됨, William Howard Taft, 미국 27대 대통령, 재임기간 1909-1913년)와 일본 수상 가쓰라(가쓰라 다로 桂太郎, 일본 11, 13, 15대 총리, 재임기간 1901-1906, 1908-1911, 1912-1913년) 간의 비밀 협약이었지요. 그래서 미국은 필리핀을 쉽게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로 너무나 부당하게 병탄(倂呑)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1941년 12월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저질렀습니다. 이 기간 우리민족의 고통은 더욱더 가중되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총알받이로, 우리의 딸들은 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바로 이때 36년 간 너무나 억울하게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졌던 우리 민족은 마땅히 자유롭고 독립된 주권국가로 회복되었어야 했습니다. 통일된 자유와 평화의 국가로 벌떡 일어섰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민족은 이른바 <해방>을 맞자 바로 분단 현실의 비극에 맞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도 미국정부의 신중치 못한 결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요. 원래 국가와 민족의 타율적 분단은 전범국이 패전하게 되면 으레 감수해야 하는 징벌입니다. 독일 분단을 생각해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범국이었던 일본은 패전 후에도 통일된 자유로운 국가로 인정되었습니다. 너무나 부당하게도 분단의 징벌은 우리민족에게 벼락처럼 떨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두 대령의 경솔한 결정으로 38선이 그어졌던 것입니다. 식민지 이전 우리 민족․국가의 국경은 38선을 그을 때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지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우리는 열전(熱戰) 3년 간 완전히 초토화 되고 말았습니다. 1951년 미국 공군 지휘관이었던 오도널 씨의 상원증언에서 말했듯이, “한반도 전역이 거의 거대한 쓰레기더미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파괴 되었다.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비참한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내 창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처절하고 비참한 비극을 우리 민족이 겪고 있을 때, 일본은 미국의 후원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여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휴전 후에 민족분단은 더욱 고착되면서 남북 간 긴장 대결, 불신은 차갑게 더욱 강화 되었지요. 그리고 남북 각 체제는 안으로 더욱 비민주적 정치 행태를 강화시켰습니다. 이 기간 일본은 세계 제 2 경제 대국으로 크게 비상했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역사 현실 속에서 6.25를 회상 할 때마다 나는 안일하게 기도드릴 수가 없습니다. 역사를 적어도 정의의 심판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렇게 주관 하실 수 있는지 하나님께 항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대국에 의해 멸시당하고, 억압당하며, 수탈당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울부짖었지요. 강대국의 횡포를 하나님께서 징벌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로 징벌해달라고 예언자들은 요구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이 같은 정의의 심판을 요구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선지자 요나의 그 정직한 기도, 그 성난 기도에 새삼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심오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고대 이스라엘의 14대 왕, 재임기간 주전 786-746년) 때 북 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였습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Assyrian)에 의해 자주 침공을 당했던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되기를 바랐습니다. 요나는 그러한 민심을 대변했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회개시키라는 소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몹시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 반대 방향, 곧 스페인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못된 강대국에게 회개와 용서를 선포하는 따위의 사명은 역겹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도망가면서 혹독한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3일 밤 낮 고래 뱃속에서 죽을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기사회생한 요나는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흥미롭게도 강대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백성과 함께 굵은 베옷을 입고 참회했습니다. 심지어 동물에게까지도 베옷을 입혔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회개를 보시고 용서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바로 이때 요나는 밸이 꼬였습니다. 요나서 4장은 요나가 하나님께 대어드는 모습을 잘 드러내 보입니다. 요나와 하나님 간에 솔직한 소통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선적이고 관례적인 기독교 신자일수록, 진솔하고 화통한 이런 대화에서 깨달을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요나의 티 없이 정직한 고백에 귀기우려 보아야 합니다. 그가 스페인으로 멀리 도망갔던 이유를 이렇게 비꼬듯 하나님께 말했지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려했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요나 4:2-3)

 

   요나는 정의 없는 세상에서 살기 싫다고 했지요. 사랑의 하나님이 악한 강대국을 용서한다는 것을 그는 도무지 받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의 비상한 정의감이 이렇게 하나님께 대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 라고 버럭 화내는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인자한 엄마 같이 타이르듯 부드럽게 책망했지요. 정직한 요나를 달래시는 인자한 엄마 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여기서 확인하게 됩니다.

   개성과 성깔이 뚜렷한 요나는 니느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곳에 초막을 지어 거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니느웨를 어떻게 처리하시는 지를 직접 살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의 기후조건은 고약했지요. 그곳의 뜨거운 햇볕을 요나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성깔마른 요나의 고생을 덜어 주기 위해 시원한 박 넝쿨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요나는 아기처럼 좋아했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심술궂게 벌레로 하여금 박 넝쿨을 갉아먹게 했습니다. 여기서 요나와 하나님 간의 대화 또한 퍽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흥미롭습니다.

   요나는 뜨겁게 내리쬐는 해살에 견디지 못해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 고 하나님께 보채듯 항변합니다. 하나님은 또 심술궂게 “이렇게 화내는 것이 옳으냐.”고 점잖게 되묻습니다. 여기에 요나는 더 화가 나서 “옳다 뿐이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라고 거칠게 대꾸했습니다. 이 같은 솔직한 소통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조용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자기의 유치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인자하고 진솔하게 대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그는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 없이 많은 이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요나 4:10-11)

 

   요나의 성깔부림은 여기서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성난 질문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할 능력 없이 주변 약소국들을 괴롭히는 강대국을 사랑으로 변화시켜 그 강대국의 악행을 종말 시키려는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을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자기를 잠시 시원하게 해 준 박 넝쿨을 그토록 이기적으로 아꼈던 그의 속 좁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의 정의감도 따지고 보면, 속 좁은 이기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의 정의감은 자기 비움과 아무 연관도 없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동물의 생명까지도 살리시려는 지독한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세인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온 징표(sign)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국권회복을 갈망했기에 이런 거창한 역사적 과업을 예수가 수행할 메시아라면, 메시아라는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한 것이지요. 거대한 로마체제에서 해방시킬 힘이 과연 예수에게 있는지를 보여 달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그는 질문자들의 삶이 요나 당시 니느웨 사람들 수준보다 낫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자와 바리세인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얼듯 듣기에 이해하기 힘든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 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이 선언이 오늘 62년 전 6.25전쟁을 기억하는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징벌적 심판이나 복수적 정의를 선포하고 실천하러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 아니 최고의 가치를 실천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자신의 삶 자체이지요. 고난과 죽음의 골고다 길을 몸소 가신 예수의 결단과 실천에서 드러난 가치는 철저한 자기부인과 자기비움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실천은 참으로 괴롭고 외로운 실천이었습니다. 십자가 고통의 극점(極點)에서 그는 그 아픔을 이렇게 정직하게 표출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최고의 자기비움의 최대의 고통절규>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상상 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 최악의 수모, 최악의 고독과 절망의 총합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그만큼 예수님의 사랑실천, 자기비움의 실천은 너무나 억울한, 너무나 부당한 아픔이지요. 이것보다 더 억울한 고통이 세상 어디에 이겠습니까. 이 십자가의 아픔이 너무나 구체적인 아픔이기에, 너무나 처절한 육체적, 정신적 아픔이기에 이 아픔을 신자들이 값싸게 추상화 하고, 종교화 하고, 신학화 하는 것은 예수의 사랑의 억울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가한 일 같습니다.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십자가 처형의 아픔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감동을, 그 감동의 뜻을 종교적 명상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사랑은 어느 종교적 수행 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깊고, 더 역사적이고, 더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더 현실적입니다. 그의 억울한 역사적 아픔이 있었기에 부활은 그만큼 불가피한 사랑폭발의 결과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자기비움, 자기죽임을 통해 하나님 스스로가 자기를 옹호하신 결과입니다. 자기비움의 극적인 고통은 부활환희라는 다른 극점의 기쁨으로 그래서 연결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 점에서 예수님은 요나 보다 훨씬 큰 분이시지요.

 

   나는 지난 6월 초 여수의 한 작은 교회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하루를 내어 순천과 벌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현장, 순교비, 순교기념관에 들렀습니다. 나는 여기서 요나보다 더 큰 한국의 예수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이 환자를 고치실 때 만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문둥이를 꼭 만지시며 치유하셨습니다. 손 목사님도 한센병 환자 요양소를 운영하면서 환자의 가장 더러운 발바닥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환자가 너무 당황하여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거부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나는 “아! 여기 한국 예수님이 계셨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6.25 때 손 목사님의 두 아들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총살당했지요. 이때 그는 사모님과 함께 일곱 가지를 감사했습니다. 그 일곱 가지 모두 감동적인 감사기도이지만 다음 몇 가지는 정말 사랑의 힘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감동적 감사 기도였습니다.

 

<죄인 혈통에서 순교자식이 나온 것에 감사했습니다.>

<3남 3녀 중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큰 아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준비를 했는데, 그 아이가 미국보다 더 좋은 곳에 간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로 삼을 수 있는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나는 손 목사님께서 총살당하신 바로 그 현장에 서서, “여기 요나보다 더 큰 한국 예수가 살아 계시는 구나.” 하고 또다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원수를 사랑함으로 원수를 영원히 사라지게 한 손 목사님의 사랑실천 삶이야말로 바로 예수의 삶 그 자체요, 모든 한국 크리스천들이 마땅히 따라가야 할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징벌적 정의가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사랑 속에 정의는 이미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불행했던 지난 100년간의 우리 민족사를 회상하며 그 억울함에 분노 하는 수준에서 뛰어 넘어가야 합니다. 그 억울했던 고난의 고비 고비마다, 스스로를 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우리는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고난의 순간 순간에는 우리가 그 사랑의 임재와 현존을 미처 깨닫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요나 보다 더 큰 예수님이 우리 곁에 항상 계셨는데도 우리는 요나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사랑이 조건 없는 사랑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조건이 아님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해야만 사랑을 베푼다는 식으로 회개를 조건으로 내 걸지 않으십니다. 회개는 다만 하나님 사랑의 그 심오한 깊이와 넓음을 늦게 깨닫는 사람들의 자발적 자기 변화일 뿐이지요.

   탕자는 아빠 하나님의 사랑을 늦게 깨닫고 자발적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탕자에게 회개를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탕자의 귀환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예수님 사랑은 그러기에 요나의 정의감 보다 그리고 어떠한 조건적 사랑보다 더 크고 더 감동적입니다.

   사도 바울도 견디기 힘든 육체의 아픔, <가시의 아픔> 속에서, 그리고 온갖 위기상황에서 겪었던 억울한 고통 한 가운데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고통과 고난 속에서 넘치는 사랑의 은혜로 그는 고통과 약함을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우리도 억울한 민족 고난 속에서 넘치는 하나님 사랑과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 정의를 넘어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그 사랑으로 주관하여 주소서.” 라는 기도를 뜨겁게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정의의 심판으로 주관 하시는 역사 보다 말 할 수 없이 더 아름답고 더 감동적임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이에 62년 전 우리에게 손양원 목사님을 보내주시어 사랑의 힘이 증오와 승리주의의 원자폭탄 보다 더 큰 사랑의 원자폭탄임을 친히 보여 주셨음을 우리 모두 감사하며 기뻐합시다. 6.25의 62주년을 맞으며, 사랑만이 참 평화와 참 정의를 열매 맺게 한다는 영원한 진리를 감사함으로 받아드립시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크신데, 우리는 요나보다 턱없이 작은 난쟁이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그 비움의 사랑을 더욱 갈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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