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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의 백성보다 더 야훼의 백성 같은 이방인

요나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908 추천 수 0 2012.12.16 23: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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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욘1:1-10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야훼의 백성보다 더 야훼의 백성 같은 이방인
요나서1:1-10

지난주에는 아모스서를 통해서 오늘 우리의 신앙 자리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들었습니다. 복습삼아 말씀을 드리면, 믿음의 시야를 넓혀 세상과 이웃을 위한 복음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만 잘되면 그만 이라는 이기주의적인 기독교에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신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그게 아모스가 서기전 7세기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 살던 사람들에게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과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던 예언자가 한 사람 더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요나’입니다. 열왕기 하 14:25에 보면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 때에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BC782-752).

여로보암 왕은 이웃나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경제적인 부흥을 일으킨 왕이었습니다. 열왕기에 따르면 그는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해에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았다‘고 합니다(열하14:25). 하맛 어귀란 지금의 시리아 남부를 말하는 것이고, 아라바 해는 그 유명한 사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르단 동편의 상당한 지역도 이스라엘에 복속 시켰습니다.

이렇듯 여로보암 시대는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최대 강국이었던 오므리-아합왕에 버금가는 강대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로보암 왕의 팽창주의 정책‘으로 가능했습니다. 이런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던 왕궁 예언자 중에 한 사람을 지난 시간에 읽었는데, 그가 아모스를 비난하며 옥에 가뒀던 아마샤라는 예언자였지요. 그런데요 그런 왕궁 예언자 즉, 요즘으로 치면 정치권력과 결탁한 목사가 한 사람 더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요나라는 우리가 잘 아는 인물입니다(열하14:25). 요나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하죠.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 하라.”(1:2)
앗시리아는 여로보암 시대 직후에 팔레스틴에 쳐들어 와서 참혹하게 백성들을 학살했던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로 치면 철천지원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나라입니다. 그 당시의 자료가 희박한 탓에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혹하게 당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그 기억은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요나서는 이렇게 실존인물인 요나가 살았던 시대 보다 400년이나 지난 뒤에 기록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요나서를 쓰고 있는 사람은 400년 전 이야기를 당시대의 상황과 연결하면서 요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배경으로 현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는 말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의 식민지가 되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BC4).
  
여하튼, 요나는 야훼의 명령과는 반대편 서쪽 땅에 있는 다시스를 향해 떠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혹시라도 회개를 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두려웠다기보다는 기분 나빴다는 표정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러데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뱃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격랑을 막아 보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요나가 원인이었음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그는 자원하여 물속으로 뛰어 듭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흔히 물속으로 뛰어드는 요나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또는 ‘선지자다운 희생이다’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사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겼으므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당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시리아에 대해서 품은 생각은 강력했습니다. 더군다나 요나는 왕궁 예언자가 아닙니까? 바다로 뛰어든 일은 요나의 희생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가 그토록 강력하게 거부를 하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키고, 사흘 만에 땅 위로 그를 뱉어 냅니다. 그로인해서 요나는 결국 마지못해 니느웨로 가겠다고 항복을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합니다. 건성건성 했습니다. 그리고는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춘천으로 말하자면 구봉산 휴게소쯤에 가서 자리를 잡고 심판 장면을 구경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끌려 억지로 심판을 외쳤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강고한 사고를 뒤집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나를 고집불통이라고 가벼이 여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편견과 그릇된 학습이란 이렇게 무서운 법입니다.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으리만큼 말입니다. 요나는 바로 이런 인간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요나의 편견 밖의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악독하게만 여겨지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를 했던 것입니다. 요나는 극도로 불편한 심기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게 4:11절입니다. 소설 같은 요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당시대, 즉 BC4세기경의 백성들에게 요나는 훌륭한 예언자 였습니다. 의인 중의 의인이고, 예언자 중의 예언자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민족을 사랑했던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회의 가치관의 의로운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요나가 이렇듯 굳건히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요나가 생각하고 믿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내리고, 착하고 말 잘 듣는 사람에겐 상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야훼의 뜻이고 이것이 야훼의 법이었습니다. 이 법이 곧 이스라엘의 신앙 체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을 지키는 것은 야훼의 백성들의 체제와 제도를 지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요나의 행동들은 당시대로서는 의로운 자의 신실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좋은 믿음이었다는 말입니다. BC 7세기에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나서가 기록되던 BC4세기에는 이미 요나의 그런 행동들은 믿음의 신실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요나식의 믿음 체계 너머로 나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서는 이러한 자아중심적인, 배제주의적인 사고 체계를 하나님의 명령과 대립을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타인을 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너’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말씀의 요체는 이스라엘의 자아 중심주의를 해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자기 사회의 규범의 대립 또는 하나님의 뜻과 이기주의적인 욕망의 편견을 대립시키고, 그 대립을 통해 너의 옹졸함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자기 편견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요나서는 ‘자아 중심주의 대 타자 중심주의’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 개인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심리적, 정신적인 갈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런 갈등 속에 있는, 그런 방황의 경계 속에 있는 한국 교회를 향해 말을 건네고 계십니다. “이제 그만 너만을 위한 복음, 너만 위해주는 믿음의 체계를 버려라.” 요나로부터 4백년 뒤의 신앙인이 다시 읽었던 요나서를, 그로부터 2천5백 년 이 지난 오늘, 우리가  요나서를 읽는 뜻은 그것입니다.

“벗어나라. 요나와 같은 옹졸한 믿음의 체계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아가라. 너의 믿음이, 믿음의 실천이 너만 위하거나, 네가 속한 단체만의 유익을 위하지 않고 세상의, 세상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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