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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라. 이제 그만 울어도 된다

스가랴 구하라 목사............... 조회 수 458 추천 수 0 2015.03.05 19:37:51
.........
성경본문 : 슥12:1-14 
설교자 : 구하라 목사 
참고 :  

스가랴 12장:1-14절/작성자:주께하듯하라!


찬송가: 279장

15개월된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애가 6-7개월 됐을 때였을까요, 아내가 볼일이 있어 반나절을 제가 돌봐야 했습니다. 엄마의 부재를 금방도 알아채립니다. 울어대는데, 도대체 그 울음의 이유를 모르겠는 겁니다. 맘마를 방금 먹었으니 배고픈건 아니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안아주고, 졸린가해서 아기 띠를 매줘도, 까꿍을 수십번을 외쳐도, 슬피 웁니다. 눈물을 뚝뚝 흘려가면서까지. 참으로 모호한 울음입니다. 자기 딴에는 불만족과 불안으로 울어제쳤겠죠, 분명 자기만의 울음의 이유가 있었겠죠. 그런데, 우는 아이를 가만보니, 답답한 울음입니다. 아무리 울어도 시원치 않는 울음, 아무리 울어도 해결은 없고, 답을 얻어 낼 수 없는 막막한 울음입니다. 안 우는 것보다 못한, 울면서 더 불만족스러운, 난감한 울음입니다.

이스라엘의 처지가 바로 이랬습니다. BC587년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너도나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갑니다. 민족 전체가 이때보다 더 처절하게, 슬피 울어댔을 때가 또 있었을까요? 우여곡절 끝에, 50여년이 흐른 후에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 귀향민들이 돌아옵니다. 황폐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통곡했지만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을 수 없는 법이죠. 예루살렘 성전을 속히 재건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했습니다. 아니, 옛 다윗 왕조의 부활을 꿈꿨다고 해야 솔직합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귀향민들은 조급했고 절박했습니다. 그 부푼 마음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했고(스3:8), 기초 공사는 어느덧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은 중단 되고 맙니다(스4:1-24). 혹독한 현실이 발목을 잡고 쓰러뜨린 것입니다. 당시 열강들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겪을 수 밖에는 없었던 나라 잃은 설움,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방해, 경제적 궁핍, 무엇보다도 암담한 현실 속에서 분투하는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것만 같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과 회의 등, 참담하고 절망적인 현실과 상황에 좌절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15년이 넘도록 성전 재건은 중단된채, 예루살렘 귀향민들에겐 울음만 가득합니다. 막막하고 한숨 가득한 울음입니다. 갓난아이의 답답하고 막막한 울음. 울어보지만, 시원스럽지 않는 난감한 울음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실과 상황이 딱 그랬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패배감과 좌절감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과 묵시(계시)로 소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슥1:1)

오늘 본문은 그렇게 나자빠져 울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울지마라. 이제 그만 울어도 된다. 이제 울만큼 다 울었다.
이제는 내가 너희를 보호하고 지키련다.
열강들이 너희를 에워싸고(2절),
너희를 들어 던지려하고(3절),
너희를 치러 달려들지라도(9절),
내가 너희를 구원하마.
다시는 너희를 저들에게 내주지 않으련다.
너희를 이방 나라를 향한 진노의 잔으로(2절), 사용할 것이다.
너희를 무거운 돌로(3절), 사용할 것이다.
너희를 햇불로(6절) 사용하여
저들을 다 멸할테니(9절),
걱정마라, 슬퍼마라.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눈물을 삼켜라."

그런데 그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 중에 뜬금없이 애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12:10)

독자가 죽었을때 절규하는 그 애통, 장자가 죽었을 때에 통곡하는 그 처절한 울음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정인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윗의 집과 예루살레 온 주민에게 그와 같은 애통하는 심령을 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온 나라가, 모든 족속이 통곡과 애통하는 모습을 예언적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11-14절).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이야기 입니까? 가뜩이나 한숨과 눈물로 충혈된 백성에게 회복과 위로의 격려도 부족할 판국에, 애통에 대한 예언은 무엇입니까?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6-37)

스가랴 12:10절의 말씀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됩니다. '그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슥12:10)의 '찌른 바 그'는 , 십자가에서 찔리고 못박힌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스가랴의 말씀처럼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십자가에서 찔리고, 찢기고, 못박힌 그 그리스도를 향하여 저들은 애통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행2:36)!

"내가 그리스도를 찔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찢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못박았습니다"
"나, 어찌할꼬, 어찌할꼬, 어찌할꼬!"

그 통곡이며, 그 애통입니다.

신앙은 이 애통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눈물짓는 것으로, 우리 신앙이 전부일 순 없습니다. 삶의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막막함, 난감한 울음은 끝이 없습니다. 사실, 숨이 붙어 있는한 계속될 울음입니다. 진짜 회복은, 참된 소망은, 기독교 본래 신앙은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애통만이 내 영혼을 씻기는 울음이며, 속시원한 울음이며, 해갈의 울음이며, 자유의 울음이며, 내 영혼이 숨을 내시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울음입니다.

"죄인된 내가 그를 찔렀습니다."
"그를 찌르고 찢은 주범이 바로 나입니다."

이 존재적, 근원적 애통으로 목놓아 울어보신적은 언제입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 이 애통이 사그라진지 오래입니다. 내가 그를 찔렀던 사건은 2000년 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고난주일 퍼포먼스 소재일 뿐입니다. "내가 죄인의 괴수 입니다. 내가 그를 찔렀습니다." 그 바울의 고백은 잠잠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나는 매번 그를 찔러됩니다. 어찌할꼬..." 그 바울의 외침은 흐릿해졌습니다. 나는 더이상 그를 찌르지 않을만큼 괜찮은 실력이며, 그를 찌르는 자는 나 아닌 저 무능하고 못난 타인의 이야기라고 단정하고 맙니다. 정죄와 판단만 날카로울 뿐이죠. 단 한번도 그 애통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찌르면서까지도 자신의 가치와 영광을 챙겨 먹으려했던 바리새파의 피가 내 안에도 흐르고 있음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전방위적으로 얼마나 깊고도 넓게 부패해 있는지, 썩어 문드러진 곳이 얼마나 끔찍한지, 내 깊숙이 숨어 있으며 꿈틀거리는 죄성이 얼마나 치가 떨리는지, 대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이런 인간이었나?', '아니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 나였나?' 그런 깊은 자각과 성찰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고 자기애로 가득할 뿐입니다. 그럴듯한 표정을 지어가면서도,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불안해하며, 초조와 두려움, 눈치와 인정, 신음과 한숨으로 그렇게도 많이 눈물 짓고 있으면서도, 그렇게도 회복과 소망을 절박해 하면서도 참된 회복과 소망의 자리인 이 애통의 자리에는 나오려하지 않는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이 지독스러운 자기 우상으로 가득한, 가시투성이인 이 인생을 오늘도 말없이 끌어안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오늘도 찔릴때로 찔려 피를 흘려가면서까지도 우리를 품에 안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훌륭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한다고 하실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보다 먼저 그 애통의 자리에서, 지극한 사랑으로 애통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이 진리가, 이 신비가 내 삶에 실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백 가지 죄를 감추기 위해,
한 가지 선을 행하며,
나는 이렇게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자위하는 자가 바로 나 입니다.
그렇게 자기애로 막막한 울음만 가득한,
가엾은 이 인생을,
부디 그 십자가 아래, 애통의 자리로 끌어내 주십시오.

"내가 찔렀습니다. 내가 찢었습니다. 어찌할꼬.."
"사랑한다"

그 고백을 뱉어내는,
그 음성을 듣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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